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6)
166 연애담
혁신산단 은인들과 만남은 늘 즐겁고 기쁘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얼마 전에 본 것처럼 익숙하고, 그러면서도 반갑다.
그렇게 즐거웠던 자리가 내 개인사로 대화의 추가 옮겨지니 가시방석이 된 것 같다.
내가 덕준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덕준이도 일단 엮고 보자는 무차별 난사가 시작될 것이다. 처음 덕준이와 혁신산단 방문했을 때 유아란 대리와 덕준이를 엮겠다며 지르고 봤으니 말이다.
예상과 달리 난사는 이정용 과장이 시작했다.
“사장님, 만나는 분 없으시면 우리 유 대리는 어떠십니까? 소개팅 한번 해 보실랍니까?”
“아휴, 과장님. 왜 그러세요!”
이 과장 어깨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덕준이가 내 허벅지를 꾹꾹 찌른다.
왜? 뭐? 기회라고? 뭐가 기회야, 인마! 뭐? 유 대리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대화하는 경지에 오른 것이 더 놀랍다.
“하하. 유 대리님도 어서 좋은 짝 만나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아버님은 잘 계시죠?”
덕준이가 유 대리 아버지 얘기에 내 허벅지를 또 찌른다. 왜? 장인어른 아니라고!
“네, 뭐 이것저것 활동은 많이 하시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호호.”
“뭐 시민 단체 활동이 그렇죠. 제가 대리님 아버님께 신세 진 것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꼭 전해 주세요.”
“아휴 뭘요. 매번 선물 보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
“명절 때 보내는 선물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신세 진 것은 그것대로 갚아야죠. 말 나온 김에 아버님 계신 단체에 후원 좀 해야겠습니다. 단체가 나주시민연합인가요, 영산강살리기운동본부인가요?”
“영산강살리기운동본부인데, 요즘은 나주시민연합 쪽 일을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뭐 둘 다 하신다고 봐야죠.”
“그럼 두 군데 다 후원해야겠네요. 후원금 영수증이나 잘 챙겨 달라고 해 주세요. 소득세가 어마어마합니다. 하하.”
마음 같아서는 넉넉하게 후원하고 싶지만, 성의와 뇌물은 한 끗 차이다. 상대방이 성의라고 생각할 정도로만. 유 대리가 만족해하는 혹은 고마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거면 됐다.
“사장님, 아니, 대리님한테 뭐가 돌아가야지! 하다못해 광주온세계 가서 옷이라도 한 벌 사 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요! 유 대리가 사장님 생각해서 큰 도움 드렸는데, 옷 한 벌 해 주세요. 유 대리! 사장님이랑 같이 광주온세계 갔다 와. 너 만날 입을 옷 하나도 없다고 그러잖아? 이럴 때 옷 한 벌 받는 거야.”
“아, 쫌! 과장님!”
덕준이와 이 과장이 갑자기 죽이 잘 맞는다. 유 대리가 이 과장 어깨를 치며 화들짝 놀라지만, 둘의 파상공세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이 무차별 난사쟁이들.
“하하. 뭐 옷 정도야 얼마든지 해 드려야죠. 대리님, 언제든 말씀하세요.”
“그러지 말고, 이 자리에서 날 잡아요. 뭐 언제 밥 한번 먹자도 아니고. 이번 주 토요일 어때요?”
덕준이가 집요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큐피드가 되겠다는 갸륵한 마음씨는 고맙지만, 꼭 저렇게 오버를 한단 말이지. 입을 옷 없다는 유 대리에게 옷 한 벌 사 주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니, 이참에 선물 하나 해 주지.
“대리님, 뭐 이렇게 됐으니 부담 갖지 말고 선물 받으시죠. 토요일에 시간 되십니까?”
“아니요, 뭐. 시간은 되는데요. 아휴, 제가 어떻게 그래요.”
“대리님! 우리 사장님 돈 많아요. 아까 들었잖아요? 나라에 내는 소득세만 월급쟁이들 연봉보다 더 많아요. 그래도 대리님이 도지사랑 연결시켜 줘서 우리 회사가 이렇게 잘나가는 것 아닙니까? 그 정도는 그냥 받아도 됩니다.”
결국 덕준이의 집요함이 이겼다. 토요일 점심 무렵에 광주온세계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데이트 비슷하게 돼 버렸네. 다 의도된 것인가? 선물 증정식을 데이트로 만들 수는 없지.
“과장님도 같이 가시죠? 양복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선물이니까 부담 갖지 마시구요.”
“그래요. 과장님도 같이 가요. 저만 뭐 된 것처럼 부담스러워요.”
유 대리가 의외로 수줍음이 많다. 차가워 보였던 첫인상은 수줍음 때문이었나 보다. 수줍음 많은 사람이 나 도와주겠다고 아버지 통해서 도지사와 만나게 해 준 것은 정말, 아주 최고로 고마운 일이다. 고기 마음껏 잡수라.
오고 가는 대화가 많이 쌓일수록 고기 흡입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제 다들 위장에 한계가 온 것 같다.
“고기 다 드셨으면 식사 시키시죠?”
나도 모르게 한국인의 불가사의한 발언이 나왔다. 고기 잔뜩 먹고 배부른데, 식사하자는 권유 말이다. 지금까지 먹은 건 식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한국인의 밥 사랑. 나도 어쩌지 못하는구나.
“고기를 워낙 많이 먹어서 배부른데 냉면으로 할까요?”
배부르면 안 먹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도 비빔을 먹을지 물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다. 냉면은 비빔이지!
냉면을 주문하고 유 대리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이 과장이 그새를 치고 들어왔다.
“사장님, 주말에 왜 저를 끼워 넣으십니까? 저는 사장님이 유 대리랑 데이트라도 해 보려는 줄 알았는데요. 유 대리 괜찮은 애예요. 그러지 말고 둘이 식사라도 한 번 해 보세요.”
“그것도 좋고, 이따 자리 파하고 나서 잘 들어갔냐고 깨톡이라도 한번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봤을 땐, 대리님이 사장님한테 관심이 있다니깐. 그런 거 바로 눈치를 채야 말이지. 이럴 때 보면 되게 눈치가 없어.”
“한 부장님도 그거 느끼셨구나? 역시 꾼은 다르네요.”
“하하하. 제가 또 전문가 아닙니까?”
둘이 주거니 받거니 잘 논다 아주.
유아란 대리. 키는 좀 작지만 다부져 보인다. 조금 앙칼져 보이기도 하지만, 대화해 보면 순둥이 같기도 하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여자만 있으면 엮고 보려는 이 저급한 술수에 빠지지 말자.
“냉면 나왔습니다.”
술수에서 구해 줄 냉면 쟁반이 들어왔다. 때맞춰 유 대리도 들어왔다. 늘 차가운 얼굴이던 사람이 미소를 머금고 들어오네? 색다른 모습은 늘 아름다운 법이지. 에잇.
“자, 자, 냉면이나 먹읍시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때는 상관없지만, 누군가가 화두를 꺼내고 나면 거기에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유 대리? 내가 유 대리와? 글쎄다. 뭔가 확 들어오질 않는데? 난 역시 수도사인가? 잡생각이 많아져서 냉면을 어디로 먹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얻어먹은 세 사람이 환한 얼굴로 배불리 먹었음을 과시한다. 54만 원이 나갔으니 당연히 잘 먹었어야지.
“월요일부터 달리면 힘드니까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에 날 잡고 밤새 마시도록 하죠.”
“아휴, 지금도 배가 터질 지경입니다. 사장님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올 테니 아무 때나 불러 주세요.”
“참, 과장님. 얼마 전에 회원권 몇 개 구입했는데, 휴가 때 리조트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휴가 때 어디 가려면 돈 많이 들잖아요? 제가 조금이라도 부담 줄여 드리겠습니다.”
이 과장이 리조트 얘기에 반색하며 반긴다. 그렇게 좋은가? 문득 유리와 패밀리랜드 갔을 때 만났던 가족이 생각난다. 가족들과 자주 놀러 나가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러기 쉽지 않겠지. 내 몫으로 챙겨 줄 테니 많이 놀러 다니길.
“사장님, 저한테는 리조트 가라고 얘기 안 해 주세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대리님도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다들 우리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죠.”
기분 좋게 유 대리에게도 리조트 사용을 허락하니, 덕준이가 발로 툭툭 찬다. 왜 또? 뭐? 둘이 같이 가라고? 이 미친놈 대체 오늘 왜 이러는 거야?
금요일에 있을 체육대회 초대까지 끝내고 은인 대접 시간을 마무리했다.
덕준이와 구석진 곳으로 가서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 고기 거하게 먹고 피우는 담배란 삼천갑자 동방삭이 훔쳐 먹은 복숭아 맛이다.
“우리 사장님 돈 잘 버니까 고기 한번 시원하게 쏘네. 아주 잘 먹었어.”
“너 이 자식, 오늘 왜 그렇게 오바한 거야?”
“무슨 오바? 나 오늘 진짜 조용히 있었는데? 내가 오늘같이 말 많이 안 한 거 본 적 있냐?”
“눈으로 다 얘기해 놓고 뭘 조용히 있었어!”
덕준이 말대로 오늘 조용하긴 했다. 그런데 눈으로 한 얘기가 너무 많았다.
“푸크크. 너도 참 귀신이다야. 아란 씨가 어때서 그래? 청춘 남녀가 만나면 쎄쎄쎄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보니까 서로 맘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더만.”
“내가 뭐 당장 여자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아쉬운 사람도 아니고, 일로 만난 사람하고 관계 애매해지는 게 좀 그래.”
“아니, 누가 당장 결혼하래? 서로 좋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만나서 얘기라도 해 보라는 거지. 서로 얘기해 봤는데 아닌 것 같다? 그럼 마는 거지 뭐. 너 인마, 수애랑 헤어진 지 한참 됐으면 이제 트라우마 벗어날 때 되지 않았냐?”
“하하.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바쁘다는 핑계를 댔지만, 내심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썸 타는 동안에는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귀고 나서는 나를 통제해야 한다는 일념만 남은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난 그렇게 느꼈다.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나는 반항을 이어 갔다. 반복되는 마찰. 헤어진 것은 그 갈등이 쌓이고 쌓이다 임계치를 넘어 버렸기 때문이겠지.
유독 그런 사람만 만나서인지 모르겠지만, 후유증이 꽤 오래간다. 역시 외모보다는 서로 잘 맞는 사람이 좋다. 수애가 이쁘긴 했지.
그렇다고 유리같이 쿨내가 진동하는 것도 나랑은 아닌 것 같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어도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이 있기를 바랐다. 유리? 글쎄다. 잘 모르겠다.
어휴, 이랬다저랬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겠나 싶네. 사우나 들어가면 냉탕이 생각나고, 냉탕에 들어가면 사우나가 생각나는 변덕스러움.
“담배 다 피웠으면 들어가자. 일단은 수출품 뽑아내는 거랑 체육대회 준비에나 매진하자고.”
“누가 수도사 아니랄까 봐. 사람 가리지 말고 마구 만나. 경험치가 쌓여야 레벨 업을 하지 않겠냐?”
경험치는 내가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충고니까 새겨들어야지. 나이 먹고 목화니 목련이니 하는 간판 달고 있는 술집 가서 가부키 화장한 나이 불명의 사람과 술 마시며 어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오늘 보고 말 사람도 아니고 언제 또 자리 한번 마련하지 뭐. 넌 오 기자랑 어때?”
“우리 이번엔 성과급 얼마쯤 나올 것 같아?”
“오 기자랑 어떠냐니까 난데없이 성과급 타령이냐? 뭐 목돈 필요해? 이 새끼, 설마?”
연애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결혼을 생각하다니! 하긴, 덕준이가 틱틱거리고 개소리를 종종 하긴 해도, 상대방 잘 맞춰 주고 속 깊은 놈이긴 하지. 내가 덕준이를 업어 키웠다는 생각에 좀 뿌듯해지긴 했다.
“어, 맞어. 서로 좋으면 됐지. 뭐 시간 끌 필요 없잖아? 집이야 해결됐으니까 상관없는데, 그래도 결혼이라는 게 꽤 돈이 들어가잖아. 평생을 엄마아빠 등골 빼먹고 살았는데, 결혼은 내 스스로 해야 하지 않겠어?”
“오호. 이 새끼 이거 사람 됐네. 근데 올해는 성과급 어려울 것 같은데? 내년에 투자할 돈이 한두 푼이 아니잖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회사 돌아가는 거 뻔히 아는데. 이놈 봐라. 화장실 가서 똥 누고 나더니 사람이 달라졌네?”
“하하. 걱정 마라. 성과급 안 나와도 내 돈 써서라도 내가 너 장가보내 줄라니까. 돈 필요하면 말만 해. 현금영수증만 해 줘.”
“현금영수증 같은 소리 한다. 뭐 당장 하겠다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부터 돈 부지런히 모아 두고 있어라. 축의금 얼마 안 했다? 나 몹시 슬플 것 같다. 알지?”
오냐, 내가 너 까무러칠 정도로 축의금 낼 테니까 기대해라.
“담배 다 피웠으면 들어가자. 날씨가 벌써부터 더워지네.”
“그래. 내일도 정신없이 바쁠 테니까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지. 어째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구나.”
연애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회사 일이 더 중요하다. 마라톤과 같은 사업에선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물량 터진 수출품과 8월에 있을 대한전력 입찰 준비하는 것에 매진할 때다. 금요일에 있을 체육대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