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7)
167 걱정 인형
정신없이 한 주가 흘렀다. 난징변압기와 전장특수변압기에 보낼 물량이 슬슬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창저우트란스퍼에 보낼 변압기가 급하게 만들어져 컨테이너 30대분이 1차로 선적됐다. 컨테이너 트레일러 30대가 줄지어 대기하다가 짐 싣고 떠나는 광경도 장관이다. 이 공장에 매연이 가득했지만, 이른 아침 상쾌한 안개처럼 느껴진다.
“드디어 수출품이 나가는구만.”
“이제 시작이지. 앞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이만큼씩 나갈 거야. 만드는 족족 짝짝 빠지니까 기분은 좋네.”
장관을 지켜보는데 어디서 담배 향기가 달콤하게 느껴지나 했더니, 덕준이가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왔다. 이런 장관을 혼자 지켜보는 것은 아깝지.
“아무래도 필지 하나 더 분양 받아야 할 것 같네.”
“너도 그 생각 했구나?”
“한 번에 두 대씩밖에 작업 못하는 거는 너무 낭비야. 그리고 관수 납품까지 겹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장소만 넉넉하고 지게차 여유 있게 있으면 컨테이너 쫘악 세워 놓고 한 번에 쭉쭉 밀어 넣으면 되잖아?”
내 생각을 이리 잘 알아주는 덕준이.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는 걸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선할 점을 캐치했으면 바로 실행에 옮겨야지.
“우리 공장 뒤로 한 필지 받아서 하역장으로 만들면 괜찮을 것 같지? 관수랑 민수는 앞으로 빼서 보내고, 수출품은 뒤로 빼서 포장해서 컨테이너에 싣고 말이야.”
“이왕 돈 쓴 김에 호이스트도 넉넉하게 달면 어때? 관수야 처음보다 나아지긴 했어도 물량 터질 때는 차에 싣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뭐야, 한 이틀은 족히 걸리잖아. 하역장으로 만들 거 제대로 만들어 보자고.”
“그거 좋지. 앞으로도 보내고 뒤로도 보내고. 이렇게 말하니까 어째 토하고 설사하는 거 같다야.”
생산이야 자동화가 많이 진행돼서 수월해졌지만, 하역은 여전히 노가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역이야 돈만 있으면 금방 해결되는 것이니 돈 쓸 때 팍팍 쓰자.
“사장님아. 저 뒤로도 저렇게 땅이 남아 있는데, 저거 다 사면 좋겠다. 그치?”
“이 과장이 우리 공장 주변은 따로 빼놓는다고 했으니까 차근차근 사자고. 못해도 이 구역 전체는 다 사 버릴 테다.”
“오호라. 처음에는 혁신산단 다 사 버린다더니 꿈이 좀 줄었습니다요? 내가 저번에 얘기한 것처럼 급작스럽게 하지 말고, 계획 잘 세우고. 그리고 땅 분양 받을 때 박 대리 보내지 말고 직접 다녀와. 간 김에 유 대리 얼굴도 한 번 더 보고.”
“이 새끼 또 시작이네.”
“허허허. 난 거래처 갑니다요.”
틈만 나면 엮으려 드네. 자꾸 언급해서 그런지 생각은 나네. 대체 머릿속에 생각나는 여인만 몇 명이냐? 필이 확 오기 전까지 다양하게 만나 보지 뭐.
그나저나 이럴 때가 아닌데 자꾸 이러고 있네. 정신 차리고 저기 멜라닌 색소가 과다 분비된 사람이나 보러 가자.
“과장님! 포장해 보니까 어때요? 할 만하죠?”
“네, 네. 이제 좀 손발이 맞아 가네요. 더운 게 힘들긴 한데, 뭐 고생한 만큼 챙겨 주시니까 감내해야죠.”
수출포장반장 김준영 과장이 새까매진 얼굴로 자신감을 드러낸다. 뙤약볕 아래서 포장 훈련에 매진한 성과다. 보름 넘게 맹훈련을 한 결과 포장과 컨테이너 선적은 걱정할 일이 없어졌다.
“대략 한 달에 컨테이너 100대 정도 작업해야 하거든요. 스케줄 어긋나지 않게 일정 관리 잘해 주세요. 그리고 은하무역 김 사장님 소개로 온 분은 도움이 됐습니까?”
“네. 확실히 전문가는 다르더라구요. 그냥 나무에 못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신경 쓸 것이 많데요. 제대로 전수 받았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얼굴이 너무 탔네요. 제가 차광막 생각을 못했네요. 당장 차광막 쳐 드릴게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도 마당이 아스팔트라 이 정도였지, 쎄맨 바닥이었으면 빛 반사돼서 더 많이 탔을 것 같아요.”
우리 회사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직원들뿐이다. 걱정 인형 같은 사람들. 다음 걱정 인형을 만나러 가 볼까?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 공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자회사 ODI를 찾아갔다. 더위가 슬슬 맹위를 떨치는데도 사무실은 아직도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지독한 황 사장.
“큰사장님 오셨습니까!”
“사장님! 에어컨 좀 트세요!”
“호호. 이 넓은 사무실 혼자 쓰는데, 에어컨까지 틀면 낭비죠!”
“전기 얼마 안 먹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펑펑 트세요. 그거 아낀다고 돈 왕창 버는 거 아니에요.”
“알죠. 근데 사람이 나태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이렇게라도 배고픈 시절 생각해야 정신 차리는 거라구요.”
초심을 잃으면 중심을 잃는다고 하던데, 황 사장이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야무진 걱정 인형 같으니.
“SPRD는 꾸준히 잘나가죠?”
“포장하기 무섭게 정신없이 나가요. 대한전력 납품이 빨리 끝내야 한숨 돌릴 것 같은데, 당분간은 편하기 글렀어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시원한 음료수라도 드려요?”
“아니에요. 여기저기서 많이 마시고 다닙니다. 제품은 문제없죠? 가끔씩 한쪽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게 나오기는 하는데, 대부분은 조립할 때 잘못해서 그래요. 구멍이 세 개면 돌아가면서 조금씩 조여야 하는데, 한쪽 다 조이고 다른 쪽 조이려니까 당연히 깨져 나가죠. 왜 그런지 빤히 알면서도 아무 말 안 하고 있어요.”
“잘하셨어요. 현장 사람들은 절대 자기가 잘못했다는 소리 안 하잖아요. 다 자재 업체가 잘못했다고 그러지.”
“그래서 뭐 파손됐다고 뭐라 그러면 바로 전량 교체해 주고 있어요. 니들이 조립을 잘못했니 해 봐야 좋은 소리 못 듣잖아요?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낫죠.”
묻지 마 교환이라니, 쌈빡하네. 독점 업체라고 목에 핏대 세우지 않는 자세. 보면 볼수록 맘에 든다. 황 사장도 인물이야.
“코아 생산은 어때요? 좀 벅차죠?”
SPRD야 머신이 밤낮으로 찍어 내는 거 간단하게 조립해서 포장하면 그만이지만, 코아는 그렇지 않다. 능력쟁이들 헌신으로 많은 부분이 자동화됐지만, 사람 손이 필요한 공정이 적지 않다. 무게 때문에 하나씩 자석으로 떠서 옮겨야 하는데,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일반 코아랑 아몰퍼스코아 둘 다 풀로 돌리고 있는데도 빠듯하긴 해요. 업체들마다 빨리 보내 달라고 난린데, 그거 맞추기도 힘드네요. 설비 4기만 더 있어도 널널하게 할 것 같은데요.”
“물량이 확 늘어서 그러겠네요. 제가 유 이사님 티 안 나게 들들 볶고 있으니까 한 달만 잘 버텨 주세요.”
“곧 죽어도 납품일 지키기로 각오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죽어도 제가 죽습니다. 하하.”
여기서도 걱정 말라는 말 들었다. 그렇다면 옆방으로 가야지.
“최 부장님! 저 왔습니다.”
“큰사장님, 오셨습니까? 제가 이따 찾아뵈려고 했는데 먼저 오셨네요.”
“왠지 오늘쯤 뭔가 나왔을 것 같더라구요. 하하.”
최형택 부장에게 의뢰한 조임쇠체결기 설계가 나올 때가 됐다.
문자님이 주신 배선체결기는 시제품이 나왔다. 역시 설계가 확실하니까 성능도 확실했다. 중신 하나 배선하는 데 못해도 20분은 걸리는데, 배선체결기로 작업하니 3분이면 끝이 났다.
1차 권선에서 삐져나온 알루미늄 코일을 알아서 피복 벗기고 꽈서 용접하는 걸 보고 나니, 입이 벌어진 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2차 권선의 두툼한 알루미늄 시트를 잘라서 꺾어 내는 광경을 보다가는 턱이 빠질 뻔했다.
입 벌어진 사람이 나뿐은 아니었다. 알루미늄 시트 꺾다가 곡소리 내기 일쑤였던 현장 직원들은 물론이고, 이 바닥 짬밥 30년 만에 해괴한 광경을 목격한 공장장도 턱 관절을 스스로 뺄 지경이었다.
이게 과연 현실일까 싶더라. 판타지여야 가능한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역시 우리 문자님! 사랑합니다!
문자님의 선물이 확실한 결과를 냈으니, 내 아이디어인 조임쇠체결기도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면 싶다. 설계가 얼마나 잘 나왔는지가 관건이다.
“설계는 나왔는데, 이사님들하고 상의하면서 검토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투박해 보여도 은근 정밀 작업이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설계가 나왔다는 것은 제품으로 나올 수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긴 하죠. 그래도 시행착오가 있을 것 같으니, 좀 기다려 주시죠.”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직원들뿐이라는 말은 취소다. 최 부장은 걱정 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성과로만 보여 줄 뿐이다. 기다리면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 오니 걱정할 필요 없는 것은 똑같지만 말이다.
“설계상으로는 작업 속도가 얼마나 개선됩니까?”
“기존에 중신 하나 끼우는 데 10분 걸린다 치면, 이건 5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개선될 것 같습니다.”
머릿속 계산기가 바삐 돌아간다. 기존에 2인 1조로 8시간 달리면 30대 나오는 작업이, 새 설비들을 활용하면 120대는 족히 나온다. 필요 인력이 30명에서 8명으로 줄어든다. 남는 인원은 설비 제작이나 수출품 포장 쪽으로 돌리면 된다. 어휴, 달달해.
“아주 좋습니다! 상용화에 만전을 기해 주세요. 그럼 전 부장님 믿고 가겠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7월까지는 테스트까지 완벽하게 끝내겠습니다.”
사족 붙일 필요도 없이 바로 나왔다. 더운데 에어컨 안 트는 것 말고는 다들 아주 잘하고 있다. 내일 체육대회 우승하는 모습이나 상상하면 되겠군.
직원들이 날 걱정할 일 없게 만들어 준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직원들을 위한 선물을 미리 준비해 놨다. 중국 가서 마사지 받으며 생각했던 일 말이다.
공장 일 자체가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데, 체육대회 준비한다고 날마다 강훈련을 펼친 터라 근육 뭉침을 호소하는 직원이 많아졌다. 이들에게 시원한 마사지를 제공하겠다!
스포츠마사지사 고용은 어렵지 않았다. 나주 일대에 촘촘하게 깔린 네트워크. 로타리클럽 회원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해 주니, 며칠 지나지 않아 2명과 근로 계약을 체결했다. 사무동 빈 공간에 마련된 마사지실. 요즘 유행한다는 안마 의자도 넉넉하게 구비해 놨다.
식당에 이어 마사지실까지 만들고 나니, 회사가 그럴싸한 모습을 갖추는 것 같다. 처음 공장 지을 때 부족한 자금 사정에 꼭 갖춰야 할 것만 겨우 구비했다. 아쉬움 가득했다.
돈이 생기면서 이렇게 하나씩 마련하는 것은 아쉬움을 쏠쏠한 재미로 바꿔 준다. 단칸방으로 시작한 신혼부부가 30평 대 아파트로 가는 과정이 이런 것인가 싶다.
“공장장님, 직원들 서로 싸움 안 나게 순번 잘 정해 주세요.”
“그럼, 그럼. 일단은 대회 나가는 직원들 위주로 받게 할 생각이야. 근데 어째 용케도 여자, 남자 한 명씩 잘도 구해 왔어?”
“남녀가 유별한데, 안마사도 각각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회사에서는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안 되지요. 참, 그리고 직원들은 일과 시간에 마사지 받도록 해 주세요. 안마사분들도 직원이니까 정시 퇴근하게 해 드려야죠.”
“그려그려. 이놈들 일 덜 한다고 아주 좋아하겠구만.”
“바쁠 땐 바쁘더라도 숨은 쉬게 해 줘야죠.”
직원들 만족도는 물어보나 마나였다. 본인 차례 돌아오려면 2주는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게라도 몸을 노곤하게 풀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회사가 더 커지면 심리 상담가도 뽑을 생각이다.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건강도 챙겨 줘야지. 이게 다 투자다. 투자한 이상으로 돈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체육대회 날이 밝았다. 창저우트란스퍼 긴급 물량 처리하려면 하루가 급하지만, 과감히 회사 문을 닫고 전 직원을 나주공설운동장으로 보냈다.
버스 3대와 수많은 차량이 격전지로 향했다. 150대군의 행렬이 늠름하다. 누가 우릴 이길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