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8)
168 시체육회
나주 혁신산단에 입주한 8개 변압기 회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직원과 그 가족까지 천 명이 넘는 인원이 나주공설운동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뜨거운 햇빛을 막아 줄 천막도 화려하게 쳐졌다. ‘나주시체육회’ 글자가 박힌 천막. 무시무시하군.
이들을 먹일 출장 뷔페와 통돼지바비큐도 자리를 잡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취사, 음주, 흡연 불가가 원칙이지만, 원칙이 있으면 항상 예외가 있는 법.
나주시청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나주시 먹여 살리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덕분에 아침부터 막걸리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이쿠, 사장님들. 어서 오십시오.”
“누가 터줏대감 아니랄까 봐 제일 먼저 자리 잡았구만.”
우리 회사 최대 라이벌 안성파워를 이끄는 강호창 사장이다. 직원만 450명. 축구에서는 금성전기에 일격을 당했지만, 여전히 강팀이자 우승 후보이다.
“사장님, 우리가 축구 우승해서 안성파워 복수를 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허허. 내가 많이 자책했어. 우리 직원들을 너무 굴렸나 싶기도 하고. 아니, 어떻게 금성전기한테 질 수가 있어!”
“사장님, 우리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에요!”
축구 결승 진출로 다크호스로 등극한 금성전기를 이끄는 박준희 사장이다. 직원은 110명에 불과하지만, 뛰어난 조직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하하. 박 사장 왔나? 아니, 넌 직원들 일 안 시키고 축구만 시킨 거야?”
“저희는 3년 전부터 동아리 활동, 분임조 활동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다 구단주의 탁월한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박 사장의 의기양양한 표정과 강 사장의 분한 표정이 교차한다. 서로 친한 사이라 억지로 과하게 표정을 짓는 것 같다. 서로 진심이었다면 살벌한 긴장감이 흘렀을 텐데, 분위기는 더없이 좋다.
“그런데요, 지 사장님! 안성파워 복수를 한다구요? 그렇게 편먹는다 이거죠?”
“하하. 귀도 밝으십니다. 이따 결승전 명승부 기대하겠습니다. 어차피 우승은 우리 차지이지만요.”
“뭐예요? 어디 그 자신감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보겠어요. 호호.”
프로리그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나 볼 수 있는 가벼운 신경전이 펼쳐졌다. 향긋한 냄새를 품기며 익어 가는 통돼지바비큐에 어울린 만한 즐거운 신경전이다.
“어휴, 여기 우승 후보들이 다 모여 계시는군요!”
일심전기 유원태 사장이다. 솔직히 우리 회사와 안성파워, 금성전기를 뺀 나머지 5개 사는 참가에 의의를 둬야 한다. 직원이 많아야 50명이 안 넘는 회사들이라 선수 추리기도 벅찰 것이다. 응원과 레크레이션 점수로 만회하길.
“유 사장님, 체육대회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뭐 한 게 있습니까? 여기 사장님들께서 협찬해 준 돈 쓰는 것 말고는 한 게 없지요. 하하.”
유 사장은 혁신산단 변압기협의체 의장으로 뽑혔다. 변압기혁신조합 설립 시 가장 앞장서면서 지금의 이 자리를 가능케 한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강경파답게 중전기조합 죽이기에 힘쓰는 것도 맘에 든다.
“그냥 우리끼리 뛰고 놀려고 했더니, 뭐 그리 유명 인사들을 많이 초청하셨습니까? 유 사장님도 인맥이 화려하십니다.”
“어떻게 알고 전화해서는 인사하러 오겠다는데 어찌 마다합니까? 하하. 이번엔 8개사만 참가했는데, 다음에는 우리 조합 회원사 모두 다 내려와서 조합 체육대회로 커졌으면 좋겠네요.”
“올해 입찰에서 중전기조합 제대로 밟아 놓고 나면 다들 나주로 내려올 것입니다. 지 사장님, 그렇지요?”
유 사장과 담소를 나누던 강 사장이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내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자동권선기 부지런히 만들고 있습니다. 늦어도 입찰 전까지는 업체당 2대씩은 돌아가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우리가 지 사장 믿으니까 이렇게 팔자 좋게 체육대회도 열면서 놀고 있는 것 아닌가? 하하.”
“이번에 지 사장님네 코아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현장에서 끼우기 수월해졌다고 아주 좋아합니다. 가격도 싸지고, 아주 좋습니다.”
오늘도 여전하다. 모였다 하면 낯 간지러운 칭찬이 가득이다.
“덕분에 저도 매출 늘리고 좋습니다. 부싱은 어떠십니까?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거라, 맘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폴리머부싱 좋은 건 두말할 것도 없지요. 가격이 비싸서 못 썼지, 가격만 맞으면 당장 써야지요. 조립 편하지, 안 깨지지. 얼마 좋습니까?”
“부디 사업 번창해서 우리 자재 많이 사용해 주세요.”
이어서 속속 도착한 다른 회사 사장들도 인사 나누기 무섭게 ‘우리 지 사장님’ 타령을 한 소절씩 뽑아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미리 기분 좀 냈지. 내가 낸 거금 두 장으로 바비큐파티 신 나게 하고, 경품도 많이들 받아 가시라.
“아이고, 의원님 오셨습니까?”
과거 급제해 비단 옷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 최배근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역에서 열리는 동창회 모임에도 찾아가는 것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숙명이라지만, 저 얼굴은 전혀 억지로 찾아온 얼굴이 아니다.
“안녕하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겠습니다. 사장님 덕분에 나주가 아주 노다지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하.”
“저나 여기 계신 사장님들이 열심히 사업해서 나주 번창시킬 테니, 의원님은 나랏일 잘하셔서 우리가 좋은 회사 만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럼요, 그럼요. 이게 국회 일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 속도 있게 팍팍 이뤄지지 않습디다. 지금이야 하는 일 없어 보이지만, 물밑에서 부지런히 뛰고 있으니까 머지않아 좋은 성과들이 나올 것입니다.”
“의원님은 국회 가서도 두세 사람 몫을 할 분 아닙니까?”
보좌관이 시간 없다고 말리지 않았다면, 해가 질 때까지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을지 모른다. 우리 회사 창립 때부터 같이 2인 3각을 해 오던 사람이라 괜히 더 친근하고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수다스러운 인사들이 이어지다 커다란 마이크 소리에 중앙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이제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는군.
“자, 제1회 나주혁신산단 변압기협의체 회장배 체육대회의 성대한 막이 올라갑니다. 일심전기 유원태 사장님의 개회 선언이 있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와 환호로 사장님을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륙함에 타서 해안에 상륙해야 할 이들이지만, 긴장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축제로구나.
“제1회 나주혁신산단 변압기협의체 회장배 체육대회의 개막을 선언합니다!”
천지를 가르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눈앞에 경품으로 마련된 냉장고, 공기청정기, 무선청소기 등이 잔뜩 쌓여 있으니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며 소리들을 질러 댄다. 함께 온 가족들은 저마다 행운권 번호표를 꽉 쥐며 당첨의 기쁨을 미리 만끽한다.
“진행에 앞서 이번 체육대회를 축하해 주러 오신 귀빈들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귀빈 소개. 빼고 싶었지만, 바쁜 시간 짬내서 온 사람들이니 홍보 시간 정도는 줘야지.
최 의원을 시작으로 도의원, 시의원들이 줄줄이 신록이 푸르른 유월을 읊으며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어 버렸다. 정치인들도 고생이 많은 것은 알겠는데, 이 분위기 어쩔 것인가!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이번 대회를 흥겹게 만들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나주를 넘어 호남 전역에서 사랑 받는 호남 제일의 레크레이션 강사 김원중입니다. 아, 환호 소리가 약하네요. 다시 들어갈까요? 네, 그렇죠. 열화와 같은 성원 감사합니다.”
프로 사회자 등장에 침체된 분위기가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유 사장님. 준비 많이 하셨습니다?”
“사장님들이 찬조금 많이 냈으니 때깔 좋게 해야지 않겠습니까? 하하.”
옆에 앉은 박 사장이 매혹적인 향수 냄새를 풍기며 귓속말을 건넨다.
“정수 씨. 찬조금 엄청 내셨대요?”
“이럴 때 기분 안 내면 언제 내겠습니까? 미리 우승 턱 좀 냈습니다.”
“하여간 말은. 우리 회사가 우승할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한 3천만 원 정도 낼 걸 그랬어요. 호호.”
“누나, 괜히 욕심 내지 말고 맘 편히 바비큐나 드시고 가세요.”
우리 회사가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고 믿지만, 이 향수 냄새와 저 눈빛을 보니 질 것 같다.
“시작에 앞서 가볍게 몸풀기로 노래 한 곡 시작하겠습니다. 제 말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보겠습니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에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난데없이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사회자 때문에 살짝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거 분위기를 7080가요주점으로 만들 셈인가?
“자! 10명! 10명이 한 팀! 정신 차리세요! 자, 오사삼이일! 그만.”
갑작스런 팀 짜기 놀이에 인조 잔디 구장에 난리가 났다. 이게 뭔 상황이냐며 멀뚱히 서 있는 사람들, 급하게 10명 짜서 강강술래 하는 사람들, 팀 찾으러 바삐 돌아다니다 넘어지는 사람들.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는 화개장터가 따로 없다.
“하하하하. 역시 프로는 다르긴 다르네요. 난리통이 따로 없어요.”
난리 난 분위기에 박 사장이 신이 난 모양이다. 근데 내 어깨는 왜 자꾸 치는 거야?
“성공한 팀에게는 혈행 개선에 도움을 주는 오메가, 프라임일렉트릭에서 협찬한 오메가 한 박스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사이좋게 나눠 드세요. 이렇게 사회사의 말에 집중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아시겠죠? 자, 집중의 박수를!”
가벼운 몸풀기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제 첫 경기다. 4인 5각!
하루가 멀다 하고 지지고 볶으면서 팀워크를 다져 온 우리 선수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자체 선발전을 거쳐 최고의 선수로 뽑았으니 무조건 이긴다!
“4인 5각 1등 회사에게는 100점이 주어집니다. 점수 따겠다고 무리하다가는 굴러갈 수 있습니다. 큰 웃음 주려고 무리하지 마세요. 오늘 응원 점수가 300점이나 되니까 술만 드시지 말고 목이 쉬도록 응원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자, 출발!”
사회자 말과 달리 초반부터 슬랩스틱이 난무한다. 웃음소리 사이로 비명도 터져 나온다.
마음은 이미 반환점을 돌아 다음 타자와 바턴 터치를 하지만, 몸은 인조 잔디와 혼연일체가 되어 절임 배추 위에 뿌려진 양념장 신세를 못 벗어나고 있다. 하필 빨간 조끼 입은 이들이 저런담.
“저기 빨간 조끼 일심전기 맞죠? 하하. 못살아.”
VIP석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일심전기 유 사장만 빼고.
“역시 프라임일렉트릭은 젊은 직원들이 많아서 아주 척척 잘하네요.”
“제가 이거 노리고 젊은 직원들로만 뽑지 않았겠습니까? 하하.”
직원 평균 연령이 40대가 훌쩍 넘어가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우리 회사는 20대 파릇파릇한 직원들로 가득하다. 20대면 하루에 5번 이상을 해도 끄떡없을 나이다. 응?
예상대로 첫 경기는 가볍게 우승하며 100점을 챙겼다. 선수단장이자 응원단장인 덕준이의 활약으로 응원전에서도 선전하며 응원 점수 300점도 목전이다.
이어서 펼쳐진 큰 공 굴리기, 인간지네 훌라후프 넘기기까지 속속 우승 소식을 전해 왔다. 기마전에서 아쉽게 3위에 그쳤지만, 너무 이기기만 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 현재 스코어. 우리 회사 350점, 안성파워 310점, 금성전기 250점.
“지 사장님! 너무 독주하는 것 아닙니까!”
“아휴 진짜, 젊은 애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네요. 우리 노인네 직원들이 고생이 많네.”
“하하. 아직 경기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볼멘소리가 우리 우승을 축하하는 팡파르로 들린다. 몇몇 회사는 경기보다는 먹고 마시는 데 집중하는 것 같다. 삼파전 싸움이니, 참가에 의의를 두고 노는 데 전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자, 다음 경기는 줄다리기입니다. 줄다리기는 무려 200점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 상남자들 힘자랑하려고 많이 기다리셨죠? 너무 남자 냄새만 나면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이번 줄다리기는 20명 중 여성을 반드시 5인 이상 참여시키는 걸로 룰을 바꾸겠습니다.”
줄다리기를 위해 엄선된 선수들을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쇳덩이 들게 훈련시켰는데! 여자를 포함시켜야 한다면, 우리가 절대 불리하다. 여자보다 강한 엄마들이 가득한 다른 회사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이거 재밌겠는데요? 우리 회사 여사님들이 힘 좀 씁니다. 호호.”
박 사장이 자신만만해한다. 20~30kg 정도하는 권선도 번쩍 들어 나르는 무서운 아줌마들. 대차 위에 실린 변압기도 끙끙거리며 둘이서 겨우 나르는 우리 직원들이 이겨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