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9)
169 축하 공연
줄다리기 예선 첫 경기부터 금성전기와 만났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벌어진 신야전투랄까?
“정수 씨, 줄다리기는 저희가 가져갈게요. 호호.”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죠. 우리 직원들 힘 좋습니다.”
박준희 사장과 대화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살짝 쫄린다. 이럴 땐 내기를 해야지.
“누나, 내기 한판 하죠? 저는 우리 팀이 이긴다에 저녁 걸겠습니다.”
“좋죠. 저는 당연히 우리 팀에 저녁! 메뉴는 원하는 걸로.”
“콜!”
양 팀 모두 자리 배치는 정석대로 갔다. 힘 센 선수를 앞으로 보내고, 여자들을 뒤로 보내는 정석 배치. 일 끝나고 회사 피트니스센터에서 무지막지하게 쇳덩이 집어 들던 맹훈련을 기억하라!
휘익.
휘슬을 불자마자 양쪽에서 힘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팽팽한 대결. 재수 없으면 초반에 무너져 와르르 끌려가는 참사가 생기는데, 다행히 줄 가운데 묶인 리본이 요동치지 않는다.
“와우, 프라임일렉트릭도 쫌 하네요?”
“아휴, 우리 애들 힘이 장사라니까요!”
“그래도 성냥이 장작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죠.”
말이 씨가 됐는지, 박 사장의 장작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리본이 한쪽으로 쏠린다. 우리 팀에서 날카로운 여자 비명이 들린다. 아! 안 돼!
근력이 지구력을 이길 수 없는 법인가! 여자 직원 2명이 넘어지면서 팀워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야식으로 라면 두어 개씩은 거뜬히 먹는 20대라도, 몇십 년 공장근육이 덕지덕지 붙은 장년을 이기기는 쉽지 않은가!
한 번 무너지니까 속절없이 끌려간다. 최전방에서 줄을 쥐어뜯으며 버티던 애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최후의 발악일 뿐이다. 졌다, 졌어.
“저녁 사는 것 잊지 마세요. 하하. 정수 씨 말대로 힘들이 좋긴 한데, 노련미를 이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보니까 내년엔 우리도 이기기 어렵겠는데요.”
예선 탈락인데 내년 희망을 얘기해서 뭐 한단 말이냐! 그래도 이겼다고 방방 뛰면서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박 사장,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구만.
결국 200점이 걸린 줄다리기는 안성파워를 무찌른 금성전기의 우승으로 끝났다. 우리 회사는 3등으로 겨우 체면치레.
우리 회사 400점, 안성파워 450점, 금성전기 430점. 당연히 종합우승 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이제 남은 건 100점이 걸린 육상 100미터와 200점짜리 계주, 역시 200점이 걸린 축구뿐.
육상 100미터는 기대하지 않는다. 정보분석관들의 염탐에 따르면, 축구 선출 출신인 안성파워 직원이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우리 회사 태영이도 꽤 날쌘돌이지만, 선출을 어찌 이기겠나.
“자, 자, 일단 밥 먹읍시다. 부지런히 먹어 둬야 오후에 힘내서 응원하지!”
“그래요. 우리 지 사장님이 쏜 돼지바베큐 맛 좀 보러 갑시다.”
통돼지바비큐 20마리가 점심시간에 맞춰서 아주 제대로 익었다. 출장 뷔페도 불러서 600인분이면 충분하겠거니 생각했는데, 걸신들 앞에서는 20마리도 어림없었다. 바비큐 사재기가 이어지면서 통돼지 대란이 일어났다.
엄마, 아빠 따라온 애들은 돼지를 통으로 구워서 썰어 내는 것 자체가 신기한지 뻥튀기집 앞에 몰린 애들로 변신한 상태다. 입 주위에 묻은 기름기는 닦으면서 먹지 좀.
“고기가 아주 부드럽네. 저번에 먹은 그 집인 거지?”
기름기로 입술이 번쩍번쩍 빛나는 강호창 사장이 에둘러 칭찬의 말을 건넨다. 체육대회 운을 띄웠던 회사 잔칫날에 먹었던 바비큐를 용케도 떠올린다.
“그 집만으로는 부족해서 업체 세 군데 더 불렀습니다. 앞으로 애용할 테니 혹시나 냄새 퍼지면 언제든 찾아오시죠.”
“우리 지 사장 말이야. 돈도 시원하게 벌더니 쓰는 것도 아주 시원시원해. 근데 본인한테도 좀 쓰지 그래?”
“하하. 집도 샀습니다. 많이 번다고 벌었는데, 투자가 많아서 아직 손에 쥐는 것은 없네요.”
강 사장이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건넨다. 너무 붙지 마세요! 귀에 기름 묻어요.
“여자를 만나란 말이네. 저저, 저기 보이지? 비계 골라내고 있는 사람? 저 애 좀 구제해 줘. 허허.”
비계 고르는 사람이 누구냐? 박 사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오늘도 여지없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머쓱하게 웃고 있는데, 다행히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장면이 전환됐다.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거 밥 얻어먹으러 온 것 같습니다? 하하.”
“딱 때맞춰 잘 오셨습니다. 고기가 아주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이다. 고만고만한 중소기업들이 모여 연 체육대회에 공룡공기업 대한전력의 부사장이 왜 찾아가냐고 할지 모른다. 형, 동생 사이인 강 사장과 인연도 있지만, 그만큼 내 활약을 대한전력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일지니라. 뿌듯하다, 뿌듯해.
“사장님, 저희 왔습니다.”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과 유아란 대리도 찾아왔다. 고기 냄새가 나주 전체에 퍼졌는지, 시간 맞춰서 잘도 찾아왔네. 유 대리가 환하게 웃는 게 사뭇 생경한 모습이다. 한번 만나 보라는 이 과장의 드립이 아직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잘 오셨습니다. 사장님은 아침에 다녀가셨는데, 직원들은 따로 시간을 안 줬나 봅니다?”
“네에. 저희 사장님이 좀 깐깐해서요.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 이용해서 왔습니다.”
“전에 최 의원님 계실 때가 좋았죠? 하하.”
“곧 적응되겠죠.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법입니다.”
툭하면 바뀌는 사장. 사장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 직원들만 눈치 보느라 고생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창업주가 사장으로 쭉 계속 가는 중소기업이 장점이 있긴 하다. 사장과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는 힘든 미션이 있는 장점이지만 말이다.
“과장님, 대리님도 우리 식구나 마찬가지니까 편히 식사하세요. 내일 온세계백화점 약속 잊지 마시구요. 죄송한데, 전 우리 직원들한테 다녀와야 해서요.”
“네. 옷 사 준다는데 어찌 까먹을 수 있습니까? 바쁘실 텐데, 저희는 조용히 밥 먹고 가겠습니다. 시간 때문에 오래 있을 수가 없겠네요.”
“바쁘신데 와 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죠. 내일 못다 한 얘기 마저 하시죠.”
인사하고 우리 팀 천막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유 대리가 길을 막아선다.
“사장님, 이거 드세요.”
커피? 편의점에서 1+1은커녕 2+1도 잘 안 하는 고급 커피네?
“하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커피 당겼는데요. 잘 마시겠습니다.”
“매번 얻어먹기만 해서요.”
싱겁기는. 앙칼지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말 걸기도 쉽지 않았던 유 대리와 커피도 주고받는 사이가 됐네. 후훗.
차가워 물이 한가득 묻은 커피를 들고 천막으로 내려갔다. 우리 영감들, 아주 살판이 났다. 이미 막걸리를 말통째 들이부은 것 같다.
“아휴, 무슨 술을 이리 마셨습니까!”
“허허. 사장님 왔나? 우리 같은 노인네야 나갈 경기도 없고 여기서 부지런히 막걸리나 마시면서 응원해야지.”
“응원하고 계신 건 맞습니까? 술만 드신 것 같은데?”
“하하. 목소리 간 것 좀 봐. 내가 얼마나 응원을 열심히 하는데 말이야.”
“이따 기어가지만 않게 살살 드세요.”
멀쩡한 목소리를 내는 공장장이 손에서 종이컵을 놓지 못한다. 술 마시기 불편할까 봐 13온스 종이컵으로 준비했더니 술꾼들만 신이 났다.
선수단 천막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은 경기는 3경기. 안성파워와 격차가 벌어지고, 금성전기가 맹추격하는 상황이라 아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한 단장! 오늘 우승할 수 있지?”
“이야, 안성파워도 그렇고, 금성전기도 그렇고, 만만치가 않네. 나는 우리 회사가 젊은 애들도 많고 훈련도 많이 해서 당연히 우승할 줄 알았더니만, 쉽지 않아.”
“공장 노가다 짬밥을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 노련미가 있는 사람들이야.”
“계주 이기고 축구 이기면 무조건 우승이니까, 한번 해 봅시다.”
“애들 너무 많이 먹이지 마. 배부르면 몸 무거워져.”
“아휴, 걱정 마셔. 애들 지금 다들 불타오르고 있으니까. 근데 그 커피 나 주려고 가져온 거야? 역시 우리 사장님. 땡큐.”
한덕준 개새끼. 내 커핀데.
풍성하고 넉넉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경기가 시작됐다.
첫 경기는 100m 달리기. 최소한 2등만 하자.
“자, 레디! 셋! 고!”
8명의 선수가 일제히 뛰쳐나갔다. 그래! 태영이 잘한다! 달려라! 안성파워 선출이 역시나 빨랐지만, 우리 팀 태영이도 만만치 않다.
“아! 씨발. 안 돼!”
“어머? 정수 씨 욕하는 건 처음 들어요. 하하.”
“아휴, 죄송합니다. 잘 달리다가 저기서 왜 넘어지냐.”
100m 달리기는 박 사장에게 욕하는 모습만 선사하며 막을 내렸다. 자빠링을 선사한 태영이는 참가 점수 30점만 받은 채 늠름하게 천막으로 복귀했다.
우리 회사 430점, 안성파워 550점, 금성전기 510점. 우승이 위태롭다.
“역시 안성파워가 강력한 우승 후보답네요.”
“이거 승부욕 생기네요.”
우승은커녕 금성전기에도 따라잡힐 상황이 되자 여유가 사라졌다.
200점이 걸린 계주와 축구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래야 축구 3위가 확정된 안성파워를 제칠 수 있다. 월드컵에서나 하던 경우의 수를 여기서 따져야 한다니!
바로 이어서 400m 계주가 시작됐다. 자빠링한 태영이 몸 상태가 걱정됐는데, 아무렇지 않게 펄쩍펄쩍 뛰는 것을 보니 말짱해 보인다. 날쌘돌이 4인방아, 꼭 이겨야 한다! 늦은 밤까지 바턴 터치 훈련한 것 잊지 말고!
“레디! 셋! 고!”
두 번째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성파워 4번째 주자인 괴물 선출 때문에 초반에 마구 격차를 벌려 줘야 한다. 20대 패기를 보여 줘라!
“확실히 젊은 애들이라 그런지 잘 달리네요.”
박 사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우리 애들 잘 달리고 있다. 팍팍 치고 나가라!
마지막 4번째 주자 태영이가 바턴을 건네받았다. 안성파워 괴물 선출이 맹렬한 기세로 간격을 좁히며 따라온다. 저 사람 진짜 빠르네.
레인이 더 길었다면 따라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결승점을 먼저 통과한 이는 태영이었다. 아슬아슬했다. 미국과 자메이카의 대결이랄까? 누가 이겨도 이상할 것 없는 명승부였다. 잘 달렸고, 잘 이겼다!
계주 우승으로 우리 회사 630점, 안성파워 720점, 금성전기 610점이 됐다. 이제 남은 경기는 200점이 걸린 축구. 무조건 이겨야 종합우승이다.
“어휴, 이거 생각보다 엄청 치열하네요. 축구에서 우리가 이기면 안성파워가 우승이고, 정수 씨네가 우승하려면 축구 이겨야겠네요? 미안하지만, 축구는 양보 못 합니다.”
“축구는 회사의 자존심 대결 아니겠습니까? 우리 회사가 혁신산단 터줏대감인데, 축구를 내줄 수는 없죠.”
“자신감이 너무 넘쳐 나는 것 아니에요? 하하. 그럼 축구도 내기할까요?”
“콜!”
장내를 정리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초대 가수 불렀다더니 이제 오는 모양이네.
“누나, 초대 가수 누구 불렀는지 아세요?”
“안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얘기를 안 해 주더라구요. 미리 얘기하면 김샌다고.”
유라유라하고 보라보라한 아이돌이 오길 강력히 희망했는데, 비밀 유지할 정도면 혹시? 기대되네.
“이제 축구 결승전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끝내기는 아쉽죠? 대망의 축구 결승전을 앞두고 흥을 돋워 줄 초대 가수를 모셨습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이성을 찾으세요. 아버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 이상철 이사가 벌써부터 신이 났다. 신 난 건 이 이사인데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인지 모르겠다.
“자, 이 무대를 빛내 주실 가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진도의 명물을 넘어 호남을 평정한 최고의 트로트 가수 송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송인이어여라.”
송인? 누군데? 아오! 유라유라하고 보라보라한 아이돌은?
“누나, 누군지 아세요?”
“글쎄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유명한 가수 부르라고 찬조금도 넉넉하게 냈구만, 아쉽네 아쉬워. 아쉬운 반응과 달리 현장은 난리가 났다. 천막이 들썩거리는 게 한바탕 춤바람이 난 모양이다. 그래 뭐, 중장년들 취향 저격을 해 줘야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몸이 움찔움찔했다. 간간이 찌릿한 전율도 찾아왔다. 이거 그냥 트로트 가수가 아닌데? 아빠가 즐겨 불렀던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듣는데 살짝 오줌이 나올 뻔했다. 지린다!
“와우. 노래 끝내주게 하네요.”
“그러게요. 저 언니 노래 너무 잘한다.”
“진짜 우리나라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 저 실력으로 무명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으로부터 정보가 전달됐다. 이 동네에서는 아주 유명한 가수란다. 저 실력이면 전국 어딜 가도 먹혀 줄 것인데 운발이 안 터진 모양이네.
단 3곡으로 공설운동장 전체를 휘어잡더니 앵콜 2곡으로 무대를 뒤집어 버렸다. 무대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추고 있는 공장장과 이 이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하하. 저기 춤추는 분들 정수 씨네 공장장님 아니에요? 하하. 너무 웃기다.”
“네. 저희 공장장님이 한 춤 하십니다.”
노래에 전율하던 내 몸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덕준이까지 뛰쳐나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우리 직원들 진짜, 어딜 가도 확실하게 흔적을 남겨 주신다.
자, 이제 축구 시작이다! 우리에겐 승리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