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73)
173 카운트다운
난 여전히 바쁘고, 앞으로도 쭈욱 바쁠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온갖 잡상인, 잔챙이들이 다 달려드는 법이다. 그놈들한테 감정 소모할 시간 따위는 없다. 7월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오는데, 괜히 열 내지 말고 내 일이나 잘하고 살자.
관수 물량이 한 납기에 2천 대, 월 4천 대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대한전력 발주는 연간 계약 물량 총액에 근접한 상황이라 폭탄이 쏟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당분간은 수출품 생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관수가 줄었지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수출품 납품에 집중해야 한다. 수출 1차분 마지막 물량의 선적을 가뿐히 끝내고 나니, 바로 2차 발주가 나왔다. 세 업체 합쳐서 8,650대. 금액으로만 82억 원어치다.
봄까지는 관수가 먹여 살렸고, 여름엔 수출이 먹여 살린다. 타이밍 절묘하게 물어 온 먹거리에 매출이 크게 뛰어올랐다. 돈 왕창 벌어서 좋긴 해도, 확실히 배웠다. 아직 뱁새에 불과한데 황새 따라 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충분히 준비한다고 했지만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물량에 아주 제대로 고생했고, 그걸 알면서도 수출로 또 고생하고 있다. 대한전력 내년 물량은 차근차근 준비해서 숨 좀 쉬면서 하자.
“사장님.”
회사에 얼굴만 비추고 밖으로 나가기 바쁘던 덕준이가 사장실로 찾아왔다.
“어이, 그래. 한 부장님아. 오늘은 외근 안 나가?”
“이따 오후에 나갈라고. 간만에 수다 좀 떨고 갈까 해서.”
“수다 좋지. 잠깐, 또 전화다야.”
매출이 늘어나서 귀찮아진 것은 은행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오는 것이다. 돈 필요 없다는데 대출해 주겠다는 선심을 왜 자꾸 베푸는지 원.
회사 인수와 공장 신설 등으로 대출 풀로 당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올해 예상 매출 기준으로 운전 자금 넉넉하게 빌려 주겠다는데, 귀가 솔깃솔깃하다.
돈 못 벌 때는 얄짤없던 은행이 돈 잘 버니까 어찌나 굽실거리는지 귀찮아 죽겠다.
“또 은행이야?”
“어. KGB은행이야 빌릴 만큼 빌렸으니까 조용히 있는데, 다른 은행에서 아주 난리다야.”
“좋네. 은행에서 먼저 돈 빌려 주겠다고 하는 건 좋은 거 아녀?”
“그건 그렇지. 그러고 보면 우리 참 사업 쉽게 하는 거야. 그치?”
“누가 들으면 사업한 지 몇십 년 된 줄 알겠네. 지금 한가롭게 추억에 빠져 회고나 하고 있을 때가 아녀. 다음 달에 대한전력 입찰 있지 않아?”
내년 농사를 점칠 대한전력 입찰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카운트다운 들어간 것이다.
예상대로 중전기조합은 승부수를 걸었다. 위장회사 8곳을 세우면서 나눠 먹기라는 조합 체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6곳인 줄 알았던 위장회사가 8곳에 달했다. 자식들, 제대로 망하게 해 주겠다.
“8월 둘째 주 정도쯤에 입찰 공고 나오니까 그즈음 해서 슬슬 얘기들이 나오겠지.”
“중전기조합이 회사 늘리고 있다면서? 우리 조합도 대응 어설프게 했다가 내년 입찰 망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이번엔 사이좋게 안 나눠 먹고 화끈하게 다 먹어 치울 테니까 기대해.”
이달까지 우리 조합 모든 회원사에 자동권선기 1대씩이 공급된다. 8월 말까지는 추가로 1대씩 들어가고, 자재는 이미 넉넉하게 공급하고 있다. 그 정도면 전투 준비는 충분하다.
“오호. 안 될 것 알면서도 말만이라도 기분이 좋네. 솔직히 독식은 어렵겠지만, 그 전략이 성공하면 중전기조합은 타격 제대로 받겠네? 돈 들여 회사 차려 놓고 물량 없어서 말라 죽겠어, 아주.”
“그렇지. 그러니까 올해 입찰에서 확실하게 잡아야지.”
“그래도 우리 피해가 만만치 않겠는걸? 물량이야 늘어나도 수익성이 확 떨어질 것 아니야? 조세 감면 혜택 있을 때 확 벌어 놔야 하는데 말이야.”
덕준이와 담배 한 대 피우며 나누는 수다가 언제부터 이렇게 격조가 있어졌는지, 감개무량이네. 나는 문자님 믿고 지른다. 그러면 덕준이나 공장장이 걱정 어린 잔소리로 안정을 잡아 준다. 팀워크 좋다, 좋아.
“피해를 감수하고도 할 만한 가치가 있잖아? 아무래도 작년 입찰 때보단 낙찰률이 떨어지긴 하겠지. 그래도 중전기조합이랑 계속 부딪힐 텐데 이번에 본때를 보여 줘야지.”
“우리 사장님 데쓰노트에 이름이 올라갔으면 척살이지 뭐. 중전기조합 이놈들 이번 입찰에서 물 먹으면 민수 시장으로 죄다 달려들 텐데, 준비 좀 하고 있어야겠네.”
“맞다! 너 인마. 올해 민수에서 100억 매출 불가능하다고 했잖아? 이 자식아, 벌써 70억이 넘었어!”
“원래 목표는 소소하게 잡는 거야. 그래야 초과 성과로 기분을 낼 것 아냐? 하하.”
덕준이를 영업 담당으로 돌리면서 민수변압기 매출 100억 원을 잡았다. 내심 150억 원을 기대했지만, 작년에 고작 43억 원 했으니 100억만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150억 원이 가능할 것 같다.
역시 우리 덕준이. 날이면 날마다 쏘다니더니 주문 시원하게 받아 온다. 인센티브 두둑하게 챙겨 줘야지.
“매출도 좋은데 마진도 생각보다 괜찮아. 매년 이렇게만 매출 신장시켜 봐.”
“어휴, 나를 죽일 셈이야? 근데 확실히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더 낫긴 하더라. 예전에 집에서 놀 때 어떻게 집에만 처박혀 있었나 모르겠어.”
“너 보고 영업이 체질이라고 했잖아.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니깐.”
“또 시작이네. 담배 다 피웠으니까 난 일하러 갈랍니다.”
덕준이가 운을 띄워서였을까? 며칠 지나지 않아 변압기혁신조합에서 입찰 관련한 사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라고 해 봐야 올해 신년회 때 결정된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수순일 것이다. 중전기조합 죽이기로 작심들 했으니, 다시 한 번 모여서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겠지.
회의 장소인 안성파워 회의실로 찾아갔다.
아직까지는 이 업계 넘버원 회사라 그런지, 회의실도 아주 죽이게 만들어 놨다. 드라마에서 중역 회의 한다고 모여서 막장극 펼치던 그런 장소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은 재벌 같지도 않은 의류 회사나 프랜차이즈 회사만 있는지 궁금하네.
회의실 시설에 감탄하고 있으려니, 사장들이 속속 도착했다. 역시나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은 내 옆에 앉는군. 귓속말을 나누기엔 거리가 있긴 해도, 향수 냄새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거리다.
“정수 씨! 저녁 언제 살 거예요?”
체육대회 때 했던 내기를 잊지 않았네.
“오늘 저녁 어때요?”
“지금 장난해요? 회의 끝나고 저녁 먹으러 갈 것 뻔히 알면서? 자꾸 이렇게 빼면 저도 소원 안 들어줄 겁니다.”
“하하. 그럼 내일 먹죠. 내일 좋죠?”
“둘이서 무슨 작당 모의를 그렇게 하나?”
회의실 주인장인 강호창 사장이 나타나자마자 타박하고 나섰다. 뉘앙스가 타박 같진 않지만 뭐.
“사장님, 오셨습니까? 사장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지 사장은 여전해. 아무튼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거 보니까 보기 좋네. 허허.”
나만 여전한 것이 아니야. 틈만 나면 나와 박 사장을 엮으려 드는 강 사장은 오늘도 여전하다. 박 사장을 슬쩍 쳐다보니 배시시 웃고 있다. 저 웃음의 의미를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자, 자, 사장님들. 다들 착석해 주시죠.”
조합 이호영 상무가 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에도 전원 참석이다. 단결력 하나는 끝내준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제 대한전력 입찰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까? 이번 입찰은 예년과 다른 입찰이 될 것이라, 이사장님께서 입찰 전에 한번 모이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회의에 앞서 간략하게 현황 설명이 있겠습니다.”
이 상무가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정보를 정리해 발표했다. 작년 입찰 때 43개사였던 변압기 회사가 올해는 53개사로 늘어났다. 중전기조합이 8개사가 늘어났는데, 역시나 위장한 급조 회사였다.
“우리 조합은 신생 회원 2개사가 늘어 19개사가 됐습니다. 새로 가입한 사장님들과 인사 자리는 이따가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중전기조합은 26개사에서 34개사로 늘어났는데, 아시다시피 물량 나눠 먹기에서 유리하려고 급조한 회사들입니다.”
“변압기 회사 늘어나는 것이야 늘 있었던 것이고, 문제는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에 성공한 회사 아니겠습니까?”
아주전기 이충원 사장이 치고 나왔다. 온건파였던 사람이 신년회 이후로 강경파로 변신해 중전기조합 때려잡기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우리 조합이야 프라임일렉트릭 지 사장님 도움으로 아마 입찰 전까지는 개발을 마무리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들 그렇죠?”
회의실을 쭉 둘러보니 대부분 사장들은 고개를 끄덕이는데, 얼굴이 편치 못한 사장들이 더러 보인다. 개발이 쉽지 않은 모양이군. 내가 밥상을 차려 줬는데 밥까지 떠먹여 줄 수는 없지. 안타깝지만 개발 못하면 이번 입찰을 쉴 수밖에.
“중전기조합 쪽을 알아보니까, 정확하지 않지만 현재 12사 정도가 개발을 끝낸 것 같습니다. 아마 입찰 전까지 더 늘어나겠지만, 전부가 다 개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하하. 회사 늘어 봐야 가져가는 회사는 작년만 못하겠군요?”
“네, 제 예상도 그렇습니다. 가장 파이가 큰 고효율주상변압기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는 작년보다 줄어들 것 같습니다. 대신 아몰퍼스랑 패드변압기는 작년보다 늘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한전력 입찰이 조합 체제로 나눠 먹기가 되다 보니, 매년 신설 회사가 늘어난다. 회사만 세우면 안정적으로 100억 가까이 먹어 버리니, 개나 소나 다 뛰어든다.
내가 그렇게 두진 않지. 눈먼 돈 먹는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가 피눈물 한번 흘려 보셔.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는데요. 회의 시작에 앞서 이번에 새로 우리 조합에 가입한 사장님들 소개가 있겠습니다.”
대한전력 다른 품목 납품으로 돈 벌다가 이 바닥에 진출했다는 사장 2명이 박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전했다. 얼마 전에 혁신산단에 공장을 완공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입찰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정신없겠군.
우리 조합에 회원사가 늘었다는 것은 내가 가져갈 관수 물량이 줄어든다는 안타까운 뜻이다.
그러나 또 다른 돈벌이가 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동권선기도 팔고, 자재도 팔고 말이다. 관수 물량 조금 내주고 더 큰 이익을 버는 것이지.
“그럼 이사장님, 회의 주재해 주시죠.”
사회권을 전달받은 강 사장이 포문을 열었다.
“저번 신년회 때 합의한 사안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모셨습니다. 중전기조합이 위장회사를 8개나 만들면서 우리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우리라고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기 지 사장님 덕분에 체력도 튼튼해졌으니, 이제 계획대로 제대로 승부를 봐야지요.”
원조 강경파 중 한 사람인 수원중전기 박철원 사장이 성질을 못 참고 한마디 하고 나섰다.
“하하. 박 사장님은 공장이나 빨리 지으세요. 한 달만 빨리 왔어도 같이 체육대회 하고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건설회사랑 싸우는 통에 이거 참.”
“공장 짓는 데 돈 아끼면 그런다니깐. 아낄 것 아껴야지.”
“이사장님. 회의 계속 진행하시죠.”
이 상무가 능숙하게 잡담을 중지시키고 회의를 속개한다. 금성전기 정년퇴직자 짬밥이 보통은 아니군.
“그래요. 아무튼 이번 입찰은 이 상무가 계획을 잘 짜고 있느니, 믿고 맡기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입찰에서 중전기조합과 경쟁하겠다는 계획에 반대하거나 이견이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찬성합니다!”
“없습니다!”
열아홉 사장들의 단결된 힘. 좋다. 이번에 아주 제대로 죽여 주자고.
“다음 안건에 들어가기에 앞서 비밀 유지 서약서 한 부씩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 이거 한다고 새 나가지 않겠지마는 그만큼 중요한 안건이니까 신경 써 달라는 뜻입니다.”
강 사장의 비밀 유지 발언에 회의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에 말했던 재고품 수거 계획을 말할 모양이구나. 다른 사장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용히 지켜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