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72)
172 잔챙이
체력을 풀로 충전하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이했다.
이번 주도 여전히 바쁘다. 수출품을 만들기 무섭게 포장해서 내보내야 하고, 관수와 민수 변압기도 여전히 정신없이 뽑아내야 한다.
바빠도 할 것은 해야지. 체육대회 우승 공약으로 내건 것들을 이행해야 한다.
“대리님, 우승 상금 500만 원 받은 거 직원들한테 고루 나눠 주세요.”
김지연 대리가 또 걱정 어린 표정으로 쳐다본다. 연예인과 사장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꼭 저리 걱정을 한단 말이지.
“사장님, 금요일에 회식비 많이 나오지 않았어요? 2차만 200만 원 넘게 나왔잖아요? 상금으로 회식비하시죠?”
“하하. 저 돈 많습니다. 제가 기분 좋아서 쓴 거니까 회식비 걱정은 마세요.”
“아니, 돈이 얼마나 많길래 그렇게 펑펑 쓴데요? 남들은 회사 돈 못 써서 안달인데, 사장님은 하여간 특이하셔.”
“그럼 1등 종목 선수들에게 상품권 두 장씩 돌리기로 한 건 경비로 처리해 줘요.”
“그것까지 사장님 사비로 하려고 했었어요? 돈이 그렇게 많으면 저 좀 빌려 줘요. 호호.”
솔직히 이번 체육대회 때 돈을 많이 쓰긴 했다. 한 방에 5천만 원을 썼으니, 간만에 통장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딱히 돈 쓸데도 없고, 소득세로 신 나게 뜯기느니 인심 쓰는 척 기분 내는 거지 뭐.
“태인산업 공장에 축구장 공사 들어갈 테니까 결제 부탁해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법인이 3개나 되니까 정신없긴 하네요.”
“이왕 고생한 거 좀 더 해 주세요. 회사 더 커지면 프라임일렉트릭 그룹 재무팀장 시켜 드릴게.”
“맘 편하게 경리나 하러 왔다가 이게 무슨 고생이람. 호호.”
일 많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승진과 연봉 인상을 마다할 직원은 없을 것이다. 김 대리도 말은 고생 타령이지만,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다. 40대로 보이지 않는 동안이라 그런지 웃으니 더 어려 보인다. 눈주름도 없는 것이 피부는 타고나셨군.
“대리님, 고양이들 밥은 잘 챙겨 주고 있어요?”
“어머? 그것도 아셨어요?”
“제가 모르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하. 공장에 쥐새끼들 안 돌아다니게 고양이들 잘 키워 주세요.”
“공장에 쥐새끼 있어요? 아휴, 그럼 냥이들 밥을 좀 줄여야 하나.”
주택의 주적이 바퀴벌레라면, 공장의 주적은 단연 쥐새끼다. 쥐새끼는 쥐라고 하면 안 된다. 꼭 쥐새끼라고 불러 줘야 한다.
공장만 생기면 어떻게 알고들 찾아오는지 원. 공장 순찰하다가 죽어 말라비틀어진 쥐새끼 사체를 보고 기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길고양이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름 쥐새끼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녀석들이다.
이렇게 공장을 꾸려 가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팔자 좋게 골프나 치고 비싼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사람들이나 만나는 것이 사장이려니 하지만, 갓 창립한 회사 사장은 하나부터 백까지 손때를 묻히고 다녀야 한다. 이 짓도 몇 년 더 하면 안 하겠지?
체육대회 뒤처리를 끝냈으니, 못다 한 수출 일을 마무리 지을 때다. 옆 공장 태인산업으로 찾아갔다.
“아이고, 왕사장님. 멀쩡히 출근하셨네?”
김희철 사장이 그날 펼쳐진 광란의 밤을 상기시키며 정겹게 맞이해 준다.
술을 못 마시는 줄 알았는데, 내 자신에게 속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많이 마실 줄을 감히 상상도 못했다. 술은 기분 좋게 마시면 취하지 않는 법이라더니,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술이렷다.
“제가 좀 달리긴 했죠?”
“난 우리 사장님 그렇게 잘 마시는 건 처음 봤어. 술 못 마신다고 만날 빼더니만 다 구라였어. 하하. 몇 년을 속인 거야?”
“저도 놀랐습니다. 그나저나 사장님, 바쁘시겠지만 계룡 한번 다녀오시죠?”
“계룡? 그 유해 발굴 어쩌고 그거 때문에 계룡대 다녀오란 말이지?”
“네, 맞습니다. 제가 얘기는 다 해 놨으니까 가서 인사하고 눈도장만 찍고 오시면 됩니다.”
진강특수변압기 쳔즈쉬앤 종징리한테 약속한 것을 지켜야지. 문자님이 알려 주신 장소에 뭔가 묻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공식 절차 밟아서 발굴만 하면 된다.
“잘됐네. 안 그래도 공주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겸사겸사 다녀오면 되겠네.”
“공주요? 공주면 썬시스전기 가시는 거예요?”
“어, 맞아. 거기도 부싱 꽤 쓰는 업체잖아. 이제 생산 탄력 붙기 시작했으니까 영업 좀 해야지.”
“본사랑 조합에 공급하기도 벅차지 않습니까?”
“에이. 편하게 차려진 밥상만 받아먹을 수 있나. 못해도 매출 반 정도는 새 업체들 뚫어서 만들어야지. 나도 가오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하.”
월요일 아침부터 좋은 소식이다. 사장으로 앉혀 놨어도 영업쟁이 기질을 잘 유지하고 있군. 우리 김 사장님아, 태인산업 무럭무럭 자라게 해 주세요.
“참, 사장님. 어제 박 상무한테 연락이 왔더라고.”
“박진호 상무요?”
이놈의 태양전기는 망해도 망령처럼 나를 쫓아다니나? 태양전기 최가네 밑에서 빌어먹던 박 상무가 왜!
“태양전기 망하고 요새 노는 모양이더라고. 이쪽 올 일 있다고 놀러 오겠다고 하는데 알았다고 했지.”
“혹시 우리 회사에 자리 하나 마련해 달라고 그러는 것 아닌가요?”
“말하는 뉘앙스가 그런 것 같더라고. 뭐 대놓고 얘기는 안 하길래 그냥 말았지.”
최가네 밑에서 꿀 빨다가 꿀 떨어지니까 나한테 와서 빌붙어 보겠다는 심산인가?
“그래서 여기 오겠다는 거예요?”
“한번 놀러 오겠다고 하는데, 그냥 하는 소린지 진짜 오겠다는 건지 모르지 뭐.”
“박 상무 와도 사장님이 알아서 만나고 돌려보내세요. 전 안 보고 싶네요.”
김 사장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표정이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에이, 사장님. 그러지 마. 그 사람이 못된 짓 하고 그랬어도 한솥밥 먹으면서 같이 일하던 사이였잖아? 다 지나간 일인데 그러려니 해야지. 그 사람도 뭐 먹고살려고 그런 거잖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김 사장 말이 맞아서 할 말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살짝 흥분했기 때문이다.
박진호 상무. 품질 담당으로 태양전기에 들어와서 특유의 야비함과 아부력으로 최가네의 신임을 받았던 사람이다. 권력을 얻자 본색을 드러내면서 툭하면 현장과 마찰을 야기했다.
품질로 시비 걸고, 일손 부족하다며 현장 직원 데려다 잡일 시키고 말이다. 품질 문제가 일어나면, 결국 나한테 돌아온다. 내가 자재 담당이었으니까 자재 문제로 떠넘기는 것이다. 멀쩡한 자재 공급한 자재 업체는 가만히 있겠나? 나만 중간에서 니미럴.
“제가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시죠? 품질하고 생산하고 사이 안 좋아져서 제가 중간에 껴서 개고생했잖아요.”
“알지, 알지. 그래서 공장장님도 그것 땜에 사장님한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그러잖아.”
“박 상무 그 사람은 잘못한 것 없다는 듯이 뻔뻔하게 굴었잖아요. 아무튼 태양전기 최가네나 그 밑에서 호가호위한 사람들은 다시 볼일 없습니다.”
꼴도 보기 싫던 박 상무가 결국 회사를 찾아왔다.
김 사장한테는 그렇게 질러 놨는데, 막상 박 상무 보니까 대놓고 말은 못하겠더라. 이래서 아는 사람이 더 대하기 어려운 법이라고 하는가 보다.
“지 과장, 아니지. 지 사장. 하하. 회사 차려서 성공했다고 소문이 파다하더니, 이렇게 큰 사업가가 될 줄이야. 하하.”
“네, 아주 크게 성공했지요. 올해 매출이 아마 2천억은 넘을 것 같네요.”
평소와 다르게 거만을 떨었다. 겸손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초장부터 자랑질을 할 줄이야. 강자에게 굽실거리기 좋아하는 꼰대에게는 기선 제압을 해 줄 필요가 있다.
“2천억? 이야, 어마어마하네. 현장 일도 알고 품질도 많이 배웠고, 멀티플레이어가 이끄는 회사라 확실히 틀리구만.”
다르다와 틀리다조차 구분 못하는 저 멘트에 귀가 거슬린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이해하는 전형적인 꼰대답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야 뭐 사람들 만나고 산에도 가고 그러고 있지. 30년 일했으니까 쉴 때도 됐지. 허허.”
“잘됐네요. 어쩐지 얼굴이 좋아 보이시더니, 계속 그렇게 맘 편히 지내시면 되겠네요.”
늘 돈 욕심 부리던 사람이 여유로운 척 쉬겠다고? 아무 이유 없이 나주까지 내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당장 돈이 아쉽지만 센 척하며 저러는 모습이 우스울 지경이다.
“근데 마당 보니까 변압기가 많이 있던데? 완성됐다고 해도 밖에 적재해 두면 품질에 문제가 있을 텐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밖에 놔둬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밖에서 비바람 맞고 먼지 쌓이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 아무래도 신생이라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말이야. 뭐 할 것도 없는데, 내가 내려와서 몇 달 도와줄까?”
결국 자리 하나 만들어 달란 소리구만. 돈 벌게 해 달라고 사정해도 모자랄 판에 뻣뻣하게 굴기는.
회사 걱정하는 척 헛소리하는 것도 여전하네. 남의 회사 일에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변압기를 밖에 둔다고 품질에 문제 생긴다는 개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저 무식함도 놀랍다. 검사장비 channel을 찬넬로 읽는 무식함이 어디 가겠나.
“이규철 부장이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회사 일은 사장인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규철이가 여기 와 있구만? 규철이는 검사 잘하나? 고등학교밖에 안 나와서 모르는 것이 많을 텐데.”
“상무님, 지금 시비 걸러 오신 겁니까?”
계속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뚜껑이 열려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 사장도 놀란 표정이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에게 어떻게 그러냐고 묻는 표정이다.
“시비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아니, 내가 걱정이 돼서 도움을 줄까 싶어서 몇 마디 했더니, 시비라니.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인가?”
“회사 일은 제가 알아서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불량 한 건 없는 회사에 와서 품질이니 학력이니 하는 소리가 어른이 할 소리입니까? 어른이 어른다워야 어른 대접을 하지요.”
“허허, 나 참.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도움 좀 주겠다고 여기까지 왔더니,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인가!”
일관된 패턴이다. 목에 깁스하고 뻣뻣하게 군다. 아쉬운 소리 할 사람에게 오히려 큰소리친다. 상대방에게 모든 잘못을 다 떠넘긴다. 최후의 수단으로 나이를 들먹인다.
지겹다 지겨워. 어쩜 태양전기는 그런 사람만 잘도 모아 놨는지 원.
“김 사장님. 제가 이래서 안 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데리고 나가세요.”
총대를 김 사장에게 넘겼다. 김희철 사장은 영업 담당이라서 박 상무가 얼마나 꼰대스럽고 비열한 사람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저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베테랑 정도로만 알고 있겠지? 그래서 저렇게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사장님, 그래도 상무님이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너무 그러지 말자고.”
“사람 뽑을 일 없으니 면접 볼 것도 아니고, 서로 안부 다 물었고, 할 얘기는 다 한 것 같습니다.”
여지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 내가 뭐 아쉽다고 저런 사람을 뽑아서 비싼 월급을 주겠나?
“지 사장. 내가 이 바닥에서만 30년을 일한 사람이야. 회사가 잘나가니까 계속 그럴 것 같지? 안 그래. 그래서 내가 도움 좀 주겠다고 하는데, 그러는 것 아니네.”
박 상무, 저 사람 많이 아쉬운 모양이다. 평소 같으면 나이도 어린 놈이 싸가지가 있니 없니 난리 쳤을 텐데,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저 정도 자제력을 발휘할 사람이 아닌데?
“30년 경력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도움 주세요. 제가 상무님한테 도움 받을 일도 없고, 상무님 실력 빤히 아는데, 딱히 도움이란 걸 줄 것 같지도 않습니다.”
“허허, 나 참. 나 참.”
어쩌다 앉아서 밀린 일 좀 하고 있으려면 귀신같이 올라와서 지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일이 뭐냐며 당장 내려와서 일 도우라고 윽박질렀었지. 젊은 놈이 편하게 일할 생각만 한다고 지랄염병.
태양전기 다닐 때 나를 그렇게 개잡부 취급하더니, 여기 와서는 아무 소리 못하는 모습을 보니 통쾌하면서도 안쓰럽다.
“상무님, 경력이라는 게 나이 먹는다고 그냥 쌓이는 거 아닙니다. 이 바닥은 겸손해야 합니다. 아셨죠? 여기까지 오셨으니, 김 사장님이랑 곰탕이나 한 그릇 하고 가세요.”
내 옷에 묻은 꼰대 냄새를 빨리 지워 버리고 싶다. 태양전기와 인연은 언제 끊어지나. 잔챙이까지 처리했으니 이제 좀 떨어져라. 담배 참 당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