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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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176화>176 노래 불러
변압기혁신조합 사장단 회의가 만찬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이제 지난한 비공식 회의가 시작될 것이다.
“자, 자, 우리 모처럼 모였는데, 이렇게 밥만 먹고 가기 뭐 하지 않습니까? 가볍게 맥주로 입가심하러 가시죠.”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은 오늘도 기분이 좋다. 다른 사장들이랑 얘기하면서 호탕하게 웃어젖히더니 이대로 마무리하기 아쉬운 모양이다. 모였다 하면 하루 종일이네.
2차로 찾아간 맥주 집에서는 박준희 사장이 내 옆에 앉지 못했다. 내 주변 자리들을 두고 사장들의 경쟁이 꽤 치열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소문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일 것이다. 이놈의 인기, 피곤하네.
“지 사장님 덕분에 요즘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하하.”
“말도 마십쇼. 나는 우리 설계한테 아주 뭐라고 했다니까요. 왜 코아 맡기면서 설계가 좀 바뀌지 않았습니까? 진즉 그렇게 했어야 했어요.”
“자동권선기는 또 어떻습니까? 현장 가서 그거 돌아가는 거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디다. 하하.”
귀가 너무 가렵다. 면봉으로 살살 긁어 주고 싶다. 귀를 간지럽게 하는 당신들 덕분에 나도 돈을 잔뜩 벌고 있수다.
“저기, 사장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옆자리를 차지한 유원테크 김호진 사장이 말을 걸어왔다.
올해 창업해서 저번 달에 공장을 세운 사람이다. 개폐기 회사로 돈을 많이 벌었다더니 그냥 번 것은 아닌 것 같다. 조합 신입회원이 첫 만남에서 내 옆으로 올 정도면 보통 눈치는 아닐 것이니.
“네, 사장님. 아까 인사드렸는데, 제대로 소개를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이야 이 바닥에서 유명 인사 아닙니까? 제가 진즉 찾아와서 인사드렸어야 했는데요. 하하.”
낯간지러운 아부로 말문을 여는 걸 보니, 뭔가 아쉬운 것이 있는 모양이군.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인데, 얼마짜리 아쉬움인지 들어 보자고.
“하하. 저야 뭐 변압기 만들어 파는 조그마한 회사 사장일 뿐입니다.”
“듣던 대로 겸손하십니다. 안 그래도 제가 한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있는데, 언제라도 뵙는 것이죠 뭐.”
“저희가 올해 입찰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고효율주상변압기가 쉽지 않더군요. 사장님은 그걸 대체 어떻게 개발하신 겁니까? 이야, 정말 부럽더군요.”
이거 아주 비싼 아쉬움이다. 대한전력 입찰 메인 품목 개발을 못했으니, 속이 타들어 가는 모양이다. 새 계약분 납품까지 석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미칠 노릇이겠지.
“그게 온도 맞추기가 쉽지 않죠. 전기연구원 시험 의뢰는 하셨죠?”
“자체 시험에서 계속 불합격이라 아직 넘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전기연구원에 물어보니까, 대한전력에서는 납품 전까지만 성적서가 나오면 된다고 했답니다. 촉박하긴 해도 시간이 있긴 합니다. 전기연구원에서도 이번 달까지만 신청하면 9월까지는 성적서 나오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개발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설계를 달라는 것인지, 자문을 해 달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노래 한 번 불러 보셔.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유원테크 김호진 사장의 눈알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시끌벅적한 맥주 집이지만, 그 소리만큼은 또렷이 들린다.
고효율주상변압기는 대한전력 변압기 구매액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메인 변압기이다. 대한전력이 우리 회사의 개발품을 인증하고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서부터 모든 변압기 업체의 관심사는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에 쏠려 버렸다.
개발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대한전력이 제시한 규격에 맞춰 변압기 만들고, 규격대로 제대로 만들었는지 전기 연구원 인증을 받으면 그만이다.
물론 말은 쉽다. 대한전력이 규격을 늦게 발표한 바람에 개발 가능 기간이 4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4월에 규격이 발표됐고, 새 입찰이 8월이니 아주 똥줄이 탔을 것이다.
우리 조합은 내가 스펙과 외형도를 미리 제공했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충분했다. 유원테크는 좀 다른 경우다. 조합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회원이라 내 혜택을 입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것이다.
“지 사장님, 혹시 담배 태우십니까?”
“담배 좋지요. 나가서 한 대 태우시죠.”
김 사장이 다른 사장들 있는 데서는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돈 주고 설계 사고 파는 일이야 흔하지만, 대놓고 거래하는 것은 창피하니까.
해가 떨어진 지 한참인데도 후덥지근하다. 매년 더워지긴 하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유별난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울려나.
김 사장은 더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변압기 업체들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사장님도 그러시죠?”
“하하. 아무래도 여름엔 태풍도 오고 변압기 수요도 늘어나니까 변압기 장사한테는 좋은 계절이긴 하죠. 김 사장님은 변압기 사업 시작해 보시니까 어떠십니까?”
“뭐 차단기나 개폐기보단 나을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 큰돈 들였는데 재미없으면 안 되죠. 변압기는 발주 금액도 크고 업체도 많은 편이 아니잖습니까? 개폐기 쪽은 덜한데, 차단기는 아주 매번 입찰 때마다 골치가 아픕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그쪽에서 돈 많이 버셨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그것도 다 옛말입니다. 솔직히 예전엔 아주 좋았죠. 평생 잘나가는 사업이 없다는 말이 맞습디다. 한 5년 됐을라나요? 요즘은 업체가 너무 많아져서 대한전력 물량 받아 봐야 운영하기도 힘듭니다.”
김 사장이 5년 전을 얘기하는 걸 보니 중소기업적합 업종제도 시행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 제도 시행으로 대한전력이 사야 하는 품목 상당수가 중소기업들에게서 전량 구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기업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것은 좋았지만, 중소기업들 꿀 빤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변압기만 해도 20여 개에 불과했던 관수 업체가 지금은 45개사로 늘어났다. 만들기 쉬운 차단기 같은 것은 더 심하다.
“메기 무섭다고 잡아 달래서 잡아 줬더니, 미꾸라지들이 너무 늘어나 버렸네요. 하하.”
“차단기나 개폐기는 대기업이 쳐다보지도 않던 것들이라, 대기업 참여를 막을 필요도 없는데 말이죠. 이제 거기서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죄다 변압기 쪽으로 넘어올지 모릅니다.”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네요. 저도 부지런히 먹거리 찾으러 다녀야죠.”
“제가 사족이 길었습니다. 사장님,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맥락 끊어지는 대화라,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
“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됩니까?”
“안 그래도 제가 친분 있는 업체 몇 군데에 요청을 해 봤는데, 사장님 눈치 보여서 힘들다고 하시더라구요.”
“하하. 제가 뭐 설계를 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얘기합니까?”
우리 조합 사장님들 아주 멋진 사람들이구만. 설계 팔면 돈 꽤 받을 텐데, 내 눈치 보느라 안 팔았다니. 이거 듣던 중 기분 좋은 소리로구나.
“보니까 우리 조합에서는 사장님에 대한 신뢰가 엄청난 것 같더라구요. 암튼, 회사에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데 온도가 안 들어갑니다. 그것만 맞추면 되는데, 시간은 없고, 이거 참.”
그것만 맞추면 된다니? 그게 제일 어려운 것인데!
“저도 도와 드리고 싶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조합으로 입찰 들어가면 나눠 먹기라 다른 사장님들께서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5억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아, 씨발. 담배 연기가 식도로 들어간 것 같다. 5억?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자. 기껏해야 5천만 원 정도 부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5억이라. 노래 한번 세게 부르네.
이 바닥에도 설계 들고 다니면서 팔아먹고 다니는 업자들이 있다. 설계 자문해 주는 경우, 설계만 파는 경우, 회사 들어가서 개발까지 끝내 주는 경우 등등. 여러 방법으로 팔아먹는다. 그래서 대략 시장가라는 것이 있는데, 5억을 부른다?
“5억요? 음.”
“조건이 맘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도와 드리자는 건데 조건 따지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그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신 겁니까?”
중년의 담배, 에세이를 맛깔나게 피우다가 툭툭 턴 김 사장이 다행이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급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중전기조합 회원사 몇 군데랑도 얘기해 봤는데, 그 정도를 요구합디다. 무슨 설계 하나에 그렇게 많이 달라고 하나 싶었는데, 이게 개발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이왕 큰돈 들이는 거면 원조한테 찾아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설계 파는 것도 수요와 공급 법칙이 작용하는구나. 5억이라는 거금을 들여도 1년이면 뽑고 남으니 거금도 아니겠구나 싶다. 5억을 그렇게 쉽게 낼 생각이라면 내가 좀 더 뽑아내도 아까워하지 않겠군.
“그럼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됩니까? 설계도를 드리면 됩니까?”
“그렇게 해 주시다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뭐 은혜랄 것이 있습니까? 서로 만족할 거래 하는 건데요.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부탁요? 말씀만 하십시오.”
개발 업체가 30곳이 넘어 딱히 의미도 없어진 설계를 5억에 파는 것도 크게 남는 것인데, 그걸로 끝내면 섭섭하지.
“개폐기에 들어가는 부싱, 우리 회사 걸로 해 주시죠? 아마 기존 업체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저렴할 것입니다.”
“아이고, 그건 제가 부탁드릴 일 아닙니까? 그것까지 말씀드리면 염치없는 것 같아서 말았는데, 먼저 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그런 겁니까?”
담배 한 대 맛있게 피웠다. 문자님이 주신 설계, 문자님이 인수하라고 한 회사 덕분에 달짝지근한 담배 제대로 피웠군. 폐가 건강해진 기분이야.
자리로 돌아왔더니 어딜 갔다 왔냐고 아우성들이다. 할 말이라고 해 봐야 자동권선기 언제 납품해 주냐, 추가로 더 살 수 없냐는 소리뿐이다. 돈이 되는 맑고 고운 소리 말이다. 덕분에 설비 제작부는 내년까지도 정신없이 바쁘게 생겼다.
기분 좋게 시원한 맥주 벌컥벌컥 마시는데 누가 또 나를 찾는다.
“사장님,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시죠?”
수원중전기 박철원 사장이다. 수원중전기야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 다 끝내고 성적서까지 나온 걸로 아는데?
“방금 피우고 왔어도, 사장님이 가자고 하면 또 피워야죠. 하하. 네, 가시죠.”
시원하게 맥주 마시다가 밖에 나와서 습하고 더운 공기 쐬는 것이 은근 고역이다. 담배를 텀 없이 연달아 피우는 것도 그렇지. 그래도 회사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면 감내해야지.
“수원중전기는 요즘 어떻습니까?”
“사장님이랑 금성전기에서 민수 싹쓸이하는 통에 손가락 빨고 있습니다. 하하.”
“에이, 왜 그러십니까? 제가 그래도 우리 회원사들 거래처는 안 건드리고 있는데요.”
“제가 여기에 공장 세우면서 민수 쪽에서도 힘 좀 써 보려고 했는데, 이거 원. 엄두도 못 내겠습니다. 그래도 우리 조합이 작년에 입찰을 잘한 덕에 관수 매출이 늘어나서 재미 좀 보고 있지요.”
환하게 웃고 있지만, 웃음이 좀 억지스럽다. 그래, 무슨 고민이 있어 나를 찾았는고?
“재미 보는 표정이 아닌데요? 요새 무슨 고민 있으십니까? 아까 회의 때도 평소랑 다르신 것 같던데요.”
“하하. 역시 지 사장님은 못 속입니다. 귀신이라고 소문이 파다합디다. 사장님, 저 좀 도와주시죠.”
성격 급하고 화통하기론 안성파워 강 사장 못지않은 박 사장이 이제야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서로 주례사나 주고받으면서 격식 차릴 정도로 내외하는 사이는 아니잖아?
“무슨 도움 말씀이십니까? 말씀만 하시죠.”
“고효율주상변압기 말입니다. 아주 죽겠습니다.”
이 사람에게서도 돈 냄새가 진하게 난다. 나한테 돈 주겠다고 ATM에서 갓 출금한 뜨끈뜨끈한 돈을 싸 들고 온 냄새 말이다. 자, 당신도 노래 한번 불러 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