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77)
177 박수 세례
그런 사람이 있다. 보면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 말이다. 변압기혁신조합 사장들 사이에서는 내가 그런 존재다.
나한테 무슨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은지, 내 폐 건강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유원테크 김호진 사장에 이어 수원중전기 박철원 사장이 폐 혹사 전령사로 나섰다.
박 사장이 어떤 노래를 부를지, 전주부터 요란하다.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을 마친 업체가 왜 고효율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기대감이 커진다.
“수원중전기는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 끝나지 않았습니까? 성적서까지 다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허허. 그러면 뭐 합니까? 양산을 못하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 갑니다. 솔직히 개발도 어거지로 겨우 합격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전기연구원 채 실장이 친한 동생 아닙니까? 채 실장이 안 봐줬으면 큰일 날 뻔했지요. 이거 어디 가서 말씀하지 마세요.”
이 사람 이거, 야매로 합격했구만? 이 분야에서는 전기연구원 성적서가 헌법이자 패스포트이다. 알게 모르게 친분이나 뇌물로 불합격을 합격으로 바꾸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니, 실존하는 일이었네.
순환보직 체제인 대한전력과 달리 전기연구원은 붙박이라 업체와 친분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짜리 시험인 열화가속시험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업체 공장에서 시행하는 경우도 그런 케이스겠지.
“뭐가 문제였습니까?”
“온도죠 뭐. 그래도 대표 규격 100키로짜리는 어떻게든 들어오는데, 그 아래 것들은 온도도 높고 소음도 크고. 이거 미치겠습니다.”
“소음도 문제가 됩니까? 소음은 아몰퍼스가 아닌 이상에야 크게 문제가 안 되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미칠 노릇 아닙니까? 저도 이 바닥 25년찬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변압기가 잘 나올 때는 아주 좋다가도 안 나올 때는 사람 미치게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자, 당신도 노래 한번 진하게 불러 보셔. 나름 알짜 회사인 데다 성격도 화끈한 사람이니까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고.
“저희 설계 한번 검토 좀 해 주시죠. 우리 설계하는 박 부장 쪼인트 몇 번을 까려다 겨우 참고 있습니다. 하하.”
어라, 노래를 안 부르네? 이거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 법이지. 세상에 공짜가 없는데, 어디 날도 더운데 공짜 밥을 잡수려고 그러시나?
역시나 박 사장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냥 해 주시면 좋긴 한데,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 규격별로 양산 성공시켜 주시면 크게 두 장 어떠십니까? 저도 대충 돌아가는 얘기를 들어서 이 정도는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천만 원 말씀이십니까?”
“아이, 사장님. 이 박철원이를 뭘로 보고 그러십니까? 당연히 2억이지요. 하위 품목 양산 못해서 입찰 받고도 연체료 무느니, 돈 쓸 때 제대로 써야지요. 우야든동 잘 좀 부탁합니다.”
유원테크 김 사장이 5억을 불러 버려서 감흥이 덜하다. 그래도 수원중전기야 개발 자체는 끝낸 상황이니 그 정도로 만족하자.
좀 뻗대다가 새 입찰 시작하고 나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 이용해서 값 좀 올리고 싶지만, 어려운 사람 앞에 두고 욕심 부리는 건 아니지.
“뭐 자문료까지 주신다는데 제가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회사 한번 찾아오시죠. 설계 검토해서 아무 문제없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지 사장님은 우리 조합의 은인이십니다. 근데 돈 쓴 김에 조금 더 써도 되겠습니까?”
담배도 다 피웠고 돈도 짭짤하게 챙겼겠다, 이제 들어가서 에어컨 좀 쐬려고 했더니 또 노래를 부른다. 싱글만 내고 끝낸 줄 알았더니 미니 앨범까지 낼 작정인가?
“박 사장님 돈 많다고 소문났더니만, 무슨 돈을 또 쓰시려고 합니까?”
“하하. 자동권선기 2대만 더 안 되겠습니까? 무슨 설비가 6억이나 하나 했는데, 이게 보통 용한 설비가 아닙디다. 저 돈 좀 쓰게 해 주시지요?”
들어오는 돈은 악착같이 챙기고 나가는 돈은 죽을힘을 다해 막는 사장들이 돈 싸 들고 와서 제발 돈 받아 달라고 사정을 한다. 이게 자동권선기의 위력이다.
그렇다고 마냥 주문을 받을 수도 없다. 지금이야 설비 제작부 인원이 늘어서 만드는 속도가 빨라지긴 했어도 한 달에 5대 뽑기도 벅찰 지경이다. 열 달 잉태하면 나올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임신 기간이 20개월이라는 코끼리이더라.
“저도 마구 만들어서 원하는 대로 다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근데 이게 생각만큼 빨리 만들지를 못합니다.”
“알다 마다요. 충분히 기다려 드려야지요. 그래도 날 추워지기 전에는 어떻게 되겠지요?”
겨울 대비하는 것을 보니 박 사장도 대한전력 물량전에 꽤 고생한 모양이군. 겨울 전까지라…… 아직 납품할 곳도 많이 남았고, 우리 것도 만들어야 하고. 에라, 모르겠다. 어찌 되겠지.
“한번 해 보겠습니다. 대한전력 물량 터지기 전까지는 2대 더 추가 납품 가능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아이고, 사장님. 감사합니다. 제가 그럼 자동권선기 2대랑 설계 검토까지 해서 14억 쏴 드리면 되겠습니까?”
맥주 마시다가 얼마를 번 것이냐? 매번 꿀만 빨다가 이빨 다 썩게 생겼다.
그러나 담배 타임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난 두 번 더 불려 나가서 사장들이 부르는 아리아를 들어야 했다. 입찰이 다가오자 다급해진 사장들이 부르는 노래는 억 소리가 절로 났다.
문자님이 주신 설계의 값어치. 밖에 나가서 담배 네 대를 피웠지만, 담배 26만 갑 어치가 내 품에 들어왔다. 문자님, 감사합니다!
“지 사장! 뭘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건가! 여기 좀 앉아 봐. 나는 오늘 자네랑 얘기도 못했네.”
안성파워 강 사장이 나를 애타게 찾았다. 설마 강 사장도 노래를 부를 심산인가?
“하하. 요즘 담배 안 태우시는 분들이 많아서 담배 피우기 쓸쓸했는데, 사장님들이 담배 친구를 해 주시네요.”
“어휴야, 담배를 얼마나 피운 건가? 자네, 젊다고 너무 그러지 말어. 몸 망가지는 거 순식간이야. 건강은 젊어서부터 평생 지키며 사는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꼭 이렇게 무리하게 되더라구요.”
강 사장이 무슨 노래를 부를지 궁금한데,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건넨다.
“설계 달라는 소리지?”
귀신같은 눈치다. 역시 사업 짬밥을 항문으로 잡수시진 않았구나.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얼마 전에 유원테크 김 사장? 그 사람이 찾아와서는 도와 달라고 하길래, 안 된다고 했지. 우리도 개발 끝내긴 했지만, 진짜 고생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내가 그걸로 돈 벌면 되겠나?”
“안성파워도 개발했으면 안성파워 기술이죠. 뭐 그런 걸로 그러십니까?”
“이 바닥 소문 빠른 건 자네도 알지 않나? 내가 그 몇 푼 벌겠다고 그런 짓 할 사람으로 보이나? 자네가 개발한 것은 자네가 과실을 따 먹어야 하는 법이야.”
확실히 강 사장은 난 사람이다. 눈앞에서 몇억이 아른 거리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니!
잘나가는 회사가 왜 잘나가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평판 따위 무시하고 푼돈 벌겠다고 욕심 부려 봐야 다시 돌아오는 법이겠지?
“사장님 덕분에 항상 많은 걸 배웁니다. 저 생각해서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시는데,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원.”
“하하. 갚기는 뭐. 오히려 내가 갚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나저나 회의 결과는 맘에 드십니까? 재고품 처리해서 조합 기금으로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산돼서 좀 아쉽겠습니다.”
“내가 이사장이라고 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나. 회원사들 의견이 그렇다는데, 별수 없지.”
말과 달리 강 사장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재고품 처리 계획은 단순히 조합 회원사들의 이익만을 위해 추진한 일이 아니었다. 혁신산단으로 내려오는 회사를 늘려 대한전력이 그리는 큰 그림에 일조하자는 취지가 더 컸다. 그게 지연됐으니 아쉬울 법도 하다.
“우리 회원사들 나주 내려오는 것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게 참. 노력하는 만큼 잘 안 되네. 이번 입찰 전까지는 11개사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 8개사나 남지 않았나? 내년까지 4개사 정도는 더 내려올 것 같은데, 나머지는 형편이 영 좋지 않은 모양이야.”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지원금 받고, 은행 대출 끼면 그리 큰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도 나나 자네같이 돈 넉넉한 회사나 그렇지. 영세한 업체들은 단 얼마라도 쉽지가 않아. 은행이 뭐 공짜로 돈 빌려 주는 곳도 아니지 않나? 이자 갚기도 벅찬 회사들이야.”
나도 따지고 보면, 문자님의 가호나 지역 배정 독식이라는 상상 못할 개꿀이 아니었다면, 바닥에 떨어진 너트 하나에 벌벌 떠는 영세한 회사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개구리이지만, 올챙이 적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되지.
“사장님, 조합에서 대출 이자 걱정이라도 덜도록 아주 저리로 장기 대출을 해 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냥 지원하는 것은 다른 회원사들과 형평성 문제도 있으니 힘들 것 같고 말입니다. 솔직히 이번 입찰만 잘되면 못해도 몇억 정도는 벌지 않습니까? 자금난만 해소해 주면 다들 잘 자리 잡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거야 좋지. 근데 생긴 지 이제 1년밖에 안 된 우리 조합이 무슨 돈이 있겠나? 수수료 받아서 이 상무 월급 주고 운영비 쓰고 나면 끝인데. 내가 사무실을 그냥 쓰게 해 줬으니 망정이지.”
강 사장 엄살이 심하다. 조합 수수료가 납품액의 2퍼센트라 지금까지 30억 넘게 모았을 텐데 돈이 없기는. 나한테 노래 좀 불러 달라는 신호인가? 나도 노래 부를 생각이었느니, 원한다면 얼마든지 불러 주지.
“제가 조합에 기부 좀 하면 살림살이가 나아지겠습니까?”
“기부 말인가? 하하. 돈 잘 버는 지 사장이 도와주면 최고지. 이거 뭐 내가 돈 달라고 압박한 것 같네. 하하.”
“말이 좋아 기부지, 제 사업 잘되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회원사들 다 나주로 내려오면 저야 운송비도 줄어들고, 자재도 더 많이 사 줄 것 아닙니까?”
말로는 안 그랬다지만, 표정으로 노래를 간청했던 강 사장이 환한 표정으로 내 노래에 흠뻑 취해 있다. 얼마를 부를지 기대하는 표정이다. 사업은 상대방의 기대 이상을 노래하며 놀라게 하는 것이지. 자, 기대하시라.
“그래서 얼마를 생각하는 건가?”
“5억이면 되겠습니까?”
“5억?”
“참말인가? 5천만 원이 아니고?”
“제가 언제 사장님 앞에서 허언한 적 있습니까?”
지를 때 화끈하게 질러 줘야지. 이게 다 투자다. 평판이 좋아지면 수입도 좋아지는 법!
조합에 큰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조합 수수료도 면제받았겠다, 조합 회원사들 덕분에 자동권선기와 자재 시원하게 팔면서 큰돈 벌고 있는데, 5억 정도야 자일리톨 껌이다. 당신들 덕분에 벌고 있는 돈이 이것저것 다 떼도 수백억 원이란 말입니다. 후훗.
“가만가만. 이걸 나 혼자만 듣고 있어서는 안 되지.”
강 사장이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화통한 목소리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자, 사장님들. 좋은 소식 하나 전해 드리겠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 사장님께서 우리 조합 회원사들을 돕겠다는 취지로다가, 조합 기금으로 5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굳이 박수 요청을 하지 않아도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박수 세례를 받았다. 여기가 도로였다면 카퍼레이드도 당당히 했을 것이다. 난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
“자,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우리 조합 기금이 좀 됩니다. 아직까지 나주로 안 내려오신 사장님들, 조합에서 여러 가지로 지원해 드릴 테니까 빨리 좀 내려옵시다. 우리 다 같이 나주에서 제대로 한번 해 봅시다!”
“그래요. 이사장님께서 지역 우선 배정도 늘리는 것으로 힘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우리 조합이 한번 제대로 똘똘 뭉쳐 봅시다.”
“이거 뭐. 우리도 몇 푼이라도 좀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한마디씩 던지는 사장들의 부러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난 이제 조합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인가!
“참! 우리 지 사장님 자재도 많이 사 주시지요. 우리 조합을 이렇게 먹여 살리는데, 우리가 지 사장님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또 한 번의 박수 세례. 이번 박수는 우리 조합 모두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