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78)
178 미친 더위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3월까지 그렇게 춥더니, 5월부터 한반도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7월은 말 그대로 미친 날씨였다. 3일 비 오고 나서 일주일 동안 찾아온 뜨겁고 습한 공기로 찜통을 만들기를 반복. 군대에 있었으면 비 온다고 쉬고, 덥다고 오침하면서 하늘에 감사했을지도 모른다.
며칠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7월 날씨는 미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7월 말부터 시작된 폭염은 8월에 들어서자마자 절정에 달했다. 한반도 불지옥설이 난무했고,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는 더위 1위 도시 안 해도 좋으니 그만 더워지라고 사정할 정도였다.
“사장님,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수출품 포장반장 김준영 과장이 사장실로 찾아왔다. 너무 더워서 사장실 밖을 벗어나기도 힘들 지경이다. 자연스럽게 직원들이 사장실로 찾아온다.
“네, 과장님. 어서 오세요. 많이 덥죠?”
“이거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너무 덥습니다.”
검게 그을린 바탕 위로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불지옥의 위엄을 체감하게 해 준다. 35도만 돼도 혀를 내두를 상황인데, 매일같이 최고 기온을 경신하고 있다. 아스팔트도 녹아내릴 화끈한 열기다.
“저도 여름 대비한다고 차광막도 치고 쿨링 조끼도 샀는데, 이 정도로 더울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인간적으로 살려 주십시오. 와, 이건 진짜 말도 안 나옵니다.”
김 과장의 눈에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저건 일을 못하겠다는 눈빛이 아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일을 하다가 죽게 생겼다는 생존 본능의 눈빛이다.
“과장님, 이번 여름만 잘 버텨 주시죠. 겨울에 하역장 공사 들어가니까 그때부터는 날씨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아이고야. 진짜 이런 더위는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애들도 너무 힘들어하는데, 오후에는 좀 쉬고 오전이랑 저녁에 작업하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될 것 있습니까? 과장님이 작업반장이니까 그게 나을 것 같으면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김 대리님한테 얘기해 놨으니까,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랑 얼음 비어 있다 싶으면 사무실에다 큰소리쳐도 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일정은 빵꾸 안 나게 하겠습니다.”
살인적인 더위가 찾아왔지만, 직원들을 보면 마냥 시원해진다.
시키는 일만 하고, 사장 입만 쳐다보는 직원들이 아니다. 불만이나 고칠 점이 있으면 그냥 내질러 버린다. 그렇다고 지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 고민해서 대안도 들고 온다.
나는 들어 보고 좋은 제안이면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직원들 저마다 애벌레를 물어 오기에 그저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된다. 이처럼 쉬운 사장 노릇이 또 있을까 싶다. 사장 편하게 해 주는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복 받을 일이다.
물론 판단을 위해서는 부서별 이해관계를 잘 따져 봐야 하고, 말이 나오기 전에 파악해서 조치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둘 다 부지런히 하면 되겠지.
김 과장이 폭염에 생존을 걱정하고 가니, 검사부가 눈에 아른거린다. 관수 한 납기가 2천 대 밑으로 떨어졌지만, 변압기 부하를 걸어 뜨겁게 달궈야 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거기에 수출품 검사까지.
시원한 사장실을 나와 사무동 연결 통로로 현장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불태우는 맹렬한 더위에도 현장은 에덴동산을 보는 것 같다. 일하기 좋은 최적의 온도가 늘 유지되니, 노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에덴동산을 지나 검사부로 진입하니 화탕지옥이 펼쳐졌다. 숨이 턱하니 막혀 온다. 호기롭게 불가마 사우나 문을 열었다가 터져 나오는 열기에 다시 문을 닫아 버렸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이 부장님! 일은 할 만하십니까?”
“아후, 날이 진짜 너무 덥네요. 저희 부서 애들 다 죽을라고 합니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이규철 부장은 꽤 오동통했다.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있으면 사람인지 토토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입사 2년째 돼 가는 지금은 바지를 배에 걸치지 않아도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는 실연을 당하거나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것이다.
“그래도 대한전력이 검사부 살려 주겠다고 발주 크게 줄이지 않았습니까? 한 납기에 2천 대도 안 되는데 껌이죠.”
“그렇긴 한데, 지금 날씨 어떤지 아시잖습니까? 예전처럼 층고라도 높으면 좀 덜 더울 텐데, 죽겠습니다.”
변압기 하역 빨리하겠다고 검사동 층을 두 개로 나눴더니 더위가 더 화끈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변압기 품질 문제 때문에 냉방 장치를 달 수도 없고, 이거 뭐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포장부서처럼 더운 오후에는 쉬게 할 수도 없다. 변압기 부하 걸고 나면 전원 끊자마자 바로 시험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존버만이 답이다.
“이번 여름이 유별나게 더운 거니까 어떻게든 버텨 보세요. 다른 데면 모를까 검사동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요.”
“네,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지인들이 왜 이렇게 살 빠졌냐고 하던데, 이번 여름 보내면 더 빠지겠습니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랑 얼음 꽉꽉 채워 둘 테니까 양껏 드세요. 예전 몸매로 돌아가야죠. 하하.”
“포장부서 사람들이 뻔질나게 와서 빼 먹어서 아이스크림 구경하기도 힘드네요.”
“하하. 아이스크림 경쟁도 치열하네요.”
하나 마나 하는 소리나 하면서 억지로 웃음 지어야 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올여름이 이렇게 더울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회사가 순탄하게 잘 돌아가니, 이제는 날씨가 미쳐 날뛰는구나.
문득, 올해 더위가 더 극심한 폭염을 앞둔 체험판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이 들면 꼭 들어맞던데…… 불길하다, 불길해.
미쳐 버린 날씨에 공사판으로 바뀌어 연일 흙먼지를 내품었던 혁신산단도 폭격이라도 맞은 듯 조용해졌다. 폭염 경보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자가 불을 뿜으면서 공사 현장도 잠시 멈춘 탓이다.
변압기 실으러 들어온 트레일러와 화물차들의 후진 경고음 소리가 자장가 소리처럼 들린다. 이 더위에 에어컨 쐬고 있으니 마냥 좋다. 캐리어 선생님, 감사합니다.
잠깐 눈을 붙일까 고민하던 찰나에 여지없이 전화가 울려 퍼졌다. 그럼 그렇지. 내가 쉴 시간이 어디 있나.
“김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유원테크 김호진 사장이다. 거액을 주고 설계를 사 간 사람이 전화를 줬으니, 들으나 마나 잘됐다는 소리일 것이다.
“날이 이렇게 더운데 어찌 지내십니까? 살다 살다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입니다.”
“저야 뭐 에어컨 쐬면서 편히 있지요. 직원들이 고생입니다.”
“하하. 역시 사장님답습니다. 사장님! 이번에 전기연구원 시험 통과했습니다. 입찰 막바지라 전기연구원에서 시험을 서둘러 줬습니다.”
“합격하신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맘고생 많으셨을 텐데 시원하시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날이 이리 더운데 전 아주 시원합니다. 지 사장님 덕분에 회사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랄 것이 있습니까? 사장님께서 큰 투자를 하셨고, 그게 결실을 맺은 것이죠. 이번 입찰에서 좋은 성과 받아서 내년 사업 잘하시기 바랍니다.”
입찰 참가 회사가 하나 더 늘었군. 김 사장이야 5억이나 들였지만, 100억 이상 매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됐으니 남는 장사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림없는 소리이다.
이번에야 돈 주고 산 설계로 어찌어찌 위기를 넘겼겠지만,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내년에만 패드변압기와 아몰퍼스변압기 새로 개발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기술개발 없이 돈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한계가 올 것이라고. 비싼 수업료 냈으니 교훈을 얻으시게.
계속되는 폭염에도 변압기 회사들은 속속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을 끝내며 대한전력 입찰 자격을 얻어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원의 정보 보고가 있었다.
“와, 진짜 날씨 미쳤다. 대구는 40도가 넘었대. 진짜 쓰러지겠네.”
“기름 값 아낀다고 창문 열지 말고 에어컨 빠방하게 틀고 다녀.”
“한참 더울 때는 에어컨 이빠이 틀어도 덥더라. 틴팅 세게 해서 그나마 다행이야.”
“그래, 이번 입찰 업체 정리 좀 해 봤어?”
전국을 휘저으며 돌아다니는 덕준이가 정보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한전력 기업 전용 사이트에서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입찰 전후로는 업데이트가 거북이 전력 질주 속도라 여기저기 찔러 대며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일단 우리 조합은 19개사 다 고효율 개발 끝냈고, 중전기조합은 34개사 중에서 확실하게 끝낸 곳이 14개사. 전기연구원 시험 중인 회사가 6개사인데, 대충 물어보니까 두 군데는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중전기조합은 그거밖에 안 돼? 잘해 봐야 18곳밖에 안 되네?”
형편없다고 해도 이렇게 형편없을 줄이야. 아무리 시간에 쫓긴다고 해도 넉 달이면 개발하고도 남아 떡을 치고 있을 시간 아닌가? 형편없는 기술력에 헛웃음이 나오고, 나눠 먹을 회사 줄이려고 서로 안 도와줬을 것을 생각하니 또 헛웃음이 나온다.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
덕준이가 참기름 짜다 나온 사람처럼 고소한 표정을 짓는다. 표정만 봐도 고소한 향이 가득하다.
“지들끼리 싸우기라도 한 거야?”
“아니, 중전기조합 이놈들이 이번에 더 많이 처드시겠다고 위장회사 세웠잖아?”
“그렇지. 회사 8곳 새로 세워서 등록했잖아.”
“거기서 두 곳이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을 못한 거야. 완전 코미디 아니냐? 거긴 망했다고 봐야지.”
“진짜야? 와, 미친놈들. 거긴 쪼인트 까이고 난리도 아니겠네?”
이런 쌤통이 다 있나! 어쩐지 개발 회사 수가 이상하다 싶더니, 그런 코미디가 있었네! 8개사가 위장회사라, 아무리 못해도 이미 개발 성공한 회사가 16개사는 돼야 하는데 말이다.
이번 입찰에서 욕심 부리겠다고 십 몇억 들여서 회사 차려 놨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시원하게 말아 드시겠군.
“사표 줄줄이 내고 난리도 아니래. 이제 와서 모가지 자르면 뭐 해? 내가 그 얘기 듣고 얼마나 웃었나 몰라.”
“더운 날 시원하게 해 주는 소식이다야.”
덕준이가 물어 온 정보가 확실하다면, 이번 입찰에서 가장 큰 덩어리인 고효율주상변압기에 참여할 회사는 37개사이다. 작년에 41개사였으니, 올해 12개사가 늘어났음에도 오히려 작년보다 줄었다.
“말 들어 보니까 참여회사가 줄어서 입찰이 좀 빡세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 엔빵하면 가져갈 것 많아지니까 혹시나 경쟁입찰이 돼도 후려칠 여력이 생겼다는 거지.”
“그건 걱정 말어. 우선배정 빼고 나면 얼마 안 돼. 오히려 작년보다 더 줄어들 거야.”
“근데, 중전기조합 쪽에서 이탈업체가 있는 모양이야. 조합으로 참여 안 하고 단독입찰 들어가겠다고 으름장 놓는 곳이 있나 봐. 이래저래 올해 입찰 복잡해지긴 할 것 같아.”
삼자 경쟁이 펼쳐질 수 있다? 골치 아프네. 강호창 사장이 걱정 말라고 했으니 일단 믿고 보는데, 조금 조마조마하다. 우선배정이 20퍼센트가량 있으니 안전빵으로 가자고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고민 하고 있는 것을 덕준이가 귀신같이 눈치챘다.
“뭐 근거 없는 자신감은 금물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잦 된 적은 없잖아? 잘될 거야. 우리 사장님은 걱정 말고 여자나 만나러 다니셈. 그러고 보니까 저번엔 좀 만나는 것 같더니 요새는 여자 체취가 안 느껴진다야?”
귀신인 줄만 알았더니 개코이기까지 했네.
서로 바빠서인지 유리 안 만난 지 근 한 달이 다 돼 간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두어 번은 밖에서 보기도 하고, 집에서 보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많이 뜸해졌다.
광태동생광식이라는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나왔지. 남녀 사이는 12개짜리 커피 쿠폰이라고. 12개 도장 다 찍을 때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고. 그런 것일까? 서로 구속하지 않는 관계의 결말은 다 그런가?
초기의 격정적인 호르몬 과다 분비가 가라앉고 나면 서로에 대한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관계를 촉발시키는 것이 에로스라면, 유지시켜 주는 것은 플라토닉이다. 넘어가는 과정이 지지부진하다.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 잡고 말았다.
“남녀 관계가 잘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복잡하잖아? 뭐 그런 거지.”
“이 자식, 잘 안 되는 모양이구만? 그러지 말고 유아란 대리랑 꽁냥꽁냥 해 보라니깐.”
“또 시작이다. 유 대리는 교회 오빠랑 잘되고 있대. 괜히 애먼 사람 찌르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
“오호라. 유 대리가 프로테스탄트였어? 그렇다면 쉽지 않지. 그럼 그 연예인이라도 어떻게 잘해 봐.”
“저리 가, 인마. 너 땜에 이 방 온도 올라가잖아!”
입찰이 됐건, 연애가 됐건, 될 대로 되라지.
덕준이의 정보 보고 이후 이틀이 지나 대한전력 입찰 공고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