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17)
217 날 위한 잔치
사업하는 사람들 간에는 친구가 되기도, 적이 되기도 한다. 재벌들은 애비 애미도 없이 싸우는 판이니, 생판 남인 사이에서는 더할지도 모른다.
사업하다 만난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과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야 하하호호 웃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어야 맞다. 상식적으로는 그게 맞지만, 그렇지 않다.
겉으로 하하호호 웃고, 속으로도 하하호호 웃는다. 강 사장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한배를 탔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 이후 정말 한배를 탄 것인 양 함께 노를 저었다.
2년 넘게 회사를 이끌면서 사람 복을 분에 넘치게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복은 직원뿐이 아니라 동료 사업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내 앞에 있는 강 사장과 여긴 없지만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준희 누나.
“그리고 이건 내 잇속 차리는 것이면서 자네 걱정해 주는 것인데 말이야.”
마지막으로 나온 누룽지까지 개운하게 비운 강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입찰공고 낸 곳이 두 군데지 않나? 아마 15개 지역본부 중에서 입찰 내는 곳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될 거야. 나머지는 수의 계약한다고 하는데, 지 사장 자네 같으면 수의 계약하면 어디랑 하겠나?”
“글쎄요. 아마 전우회 입김도 있으니까 전우산업에 주지 않겠습니까?”
강 사장이 숭늉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가 틀렸다는 것인지, 입을 헹구는 것인지 모르겠네.
“나한테서까지 겸손하지 않아도 되네. 2년 가까이 하루도 안 빼고 지켜본 사람인데 뭘 그러나. 하하. 내가 지역본부장이면 당연히 프라임일렉트릭이랑 수의 계약을 하지. 그게 맞는 것이고.”
수의 계약하면 우리 회사로 물량이 올 것이란 최윤근 상무의 예측과 똑같은 맥락이다. 추측인 것처럼 말했지만, 대한전력으로부터 확인한 정보가 있는 모양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저나 우리 회사에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럼, 문제가 되고말고. 자네도 이 바닥 잘 알지 않나? 지금도 자네랑 자네 회사 못 죽여서 안달인데, 이번 물량까지 대부분 가져가 보게. 뭐 능력과 실력으로 가져가는 것이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참 피곤합니다.”
“쉬운 사업이 어디 있나? 하하. 안 그래도 중전기조합이 올해 입찰에서 죽 쒔는데, 내년엔 아주 죽자 사자 덤벼들겠지. 내 제안이 해결책이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컨소시엄으로 들어가면 총구가 나눠지지 않겠어?”
나에게 향할 시기와 질투를 약간 가져올 테니 물량을 나눠 먹자로군? 경쟁을 피하는 대신 선택한 수치고는 실리와 명분도 있다. 나와 든든하게 쌓아 온 끈끈한 관계를 계속 이어 가자는 마음도 느껴진다.
“저야 사장님과 함께한다면 나쁠 것이 없지요.”
“솔직히 이번 입찰에서 전우산업도 강적인데, 프라임일렉트릭은 아예 답이 안 나와. 이러다 나는 하나도 못 받겠구나 싶더라고. 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하.”
“전우산업도 다른 회사나 크게 다르지 않잖습니까?”
“거긴 대한전력 전우회가 만든 회사라 이런 데서는 아주 강해. 그냥 뭐 대한전력 자회사나 마찬가지지 뭐. 근데 자동권선기 좀 돌려 보니까 가격 싸움이라면 이길 수 있겠더라고. 전우산업이야 그렇다고 쳐. 자네를 어찌 따라잡겠냐 이거지. 하하하.”
가격 경쟁하다 공멸의 길을 걷는 것보다 공존을 선택한 강 사장. 솔직한 심정까지 적나라하게 말해 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나도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 난 매출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이니.
“좋습니다. 사장님과 같이 높은 가격에 낙찰 받아서 재미 좀 보겠습니다. 하하. 저도 솔직히 입찰에 들어가겠다고 맘은 먹고 있었지만,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습니다. 사장님과 함께라면 걱정이 되지 않네요.”
“에이, 최윤근이 있는데 뭘 걱정이야? 윤근이가 아주 실력자야. 정치질을 못해서 처장까지밖에 못했지, 안 그랬으면 사장까지도 했을 사람이네. 그런 인재가 자네 밑에 있다는 것은 아주 큰 복이네!”
“저희 최 상무님 잘 아십니까?”
“아이, 그럼. 잘 알고말고. 춘배가 친한 형이라고 소개시켜 줘서 몇 번 밥 먹었지. 그 사람도 자네처럼 골프는 안 치더라고. 가만 보면 골프 안 치는 사람들이 일중독이야. 허허.”
골프 압박 오랜만이다. 그동안 부지런히 연습장 나간다고 나갔는데, 영 실력이 늘지 않는다. 사회인야구 했을 때도 맞히는 것보다 던지는 것에 재능을 보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사장님! 내년 봄엔 꼭 같이 필드 한번 가시죠!”
“하하. 그래! 내가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과일을 안주 삼아 매실차까지 마시고 나니 그새 소화가 다 돼 버렸다. 한정식이 뭐 먹은 것 같지 않은데 은근 배부르다. 그런데 또 금방 배가 꺼진다. 미스터리다.
“사장님, 근데 말입니다. 대한전력 본사 말고 지역본부나 자회사에서 발주하는 변압기 입찰은 왜 매번 가져가는 업체만 가져가는 겁니까? 대략 보니까 안성파워나 전우산업 말고는 몇 개 업체 안 되더라고요.”
과일에 꽂혀 있던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던 강 사장이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다.
“그거야 뭐, 다른 업체들은 매번 조합으로 입찰 들어가니 받아먹는 것에만 익숙해서 그러겠지. 사무직 한둘 있는 회사들이 대부분인데 입찰까지는 무리일 거야.”
“그러고 보면, 저도 태양전기 다닐 때 영업과 경리 빼면 사무직은 저 혼자였네요.”
“그런 회사들이라 입찰에 대해서 공부할 생각도, 준비할 마음도 없는 거지. 그러니 만날 똑같은 회사들만 가져가는 거고. 뭐 입찰 받는다고 캐파 늘릴 형편도 안 되고 말이야. 연간 입찰도 겨우 해내는 판인데 뭐.”
강 사장과 대화하면서 중소기업의 적나라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전, 투자 따위는 개나 주고, 차려진 밥상만 먹는 사장들. 그러면서 이 나라 산업일꾼이랍시고 직원들이나 하청업체들한테는 거들먹거리고. 경쟁 상대조차 안 되는 그들에게 신경 끄고 내 갈 길이나 가자.
“이번 입찰 때 컨소시엄 구성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걱정 마. 다 확인했으니까. 내가 우리 직원 시켜서 일 처리 깔끔하게 해 둘 테니 사인이나 몇 개 해 주고 맘 편하게 입찰이나 지켜보라고.”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고맙죠. 이거 오늘 점심 제가 사야겠습니다?”
“내가 죽게 생겨서 자네한테 부탁하러 온 것이지만, 밥 사 줄 정도도 안 되겠는가? 하하.”
할 얘기 다 했고, 먹을 것 다 먹었고, 슬슬 일어나면 되겠다 싶을 때 문득 대한전력 인사가 떠올랐다. 최 상무에게 얘기 듣고 나서 찝찝한 기분이 계속됐었다.
“사장님, 저번 대한전력 인사 어떻게 보십니까?”
강 사장이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다.
“무난했지. 춘배가 국내파트 완전 장악했다고 보면 될 거야. 이제 실적 쌓아서 발전자회사 사장으로 넘어가야지.”
“김성호 본부장이 해외사업본부장으로 간 걸 두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은데, 다른 해석도 있더라고요.”
“응? 그건 무슨 소린가?”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 하려다 어정쩡하게 앉았던 강 사장이 자세를 고쳤다.
“김 본부장이 부사장 승진에서 멀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는데, 그 성격에 가만있을 것 같지 않다는 우려 말입니다.”
“그래? 최윤근이가 얘기했나 보구만? 나야 김성호 잘 모르니 최윤근이 그렇게 봤다면 그게 맞을 수도 있겠지. 자네 회사가 혹시라도 휘말릴까 봐 걱정하는 거지?”
“뭐 그런 것도 있죠. 가만있지 않는다고 해도 딱히 할 말한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긴 합니다.”
강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 한 잔을 들이켰다.
“그럴 때가 있지. 똥 싸고 안 닦은 것 같은 찝찝함 같은 거 말이네. 그건 내가 알아볼 테니까 당분간은 신경 쓰지 말고 있으라고. 일단은 우리 사업이나 잘 챙기자고.”
“네, 그럴 생각입니다. 혹시나 아시는 것이 있나 해서 여쭤 봤던 것입니다.”
“사업하다 보면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 어쩔 수 없어. 사장인 자네가 멘탈 관리하는 수밖에. 유비무환이라고 해도 어쩔 때는 모른 척하는 것도 필요해. 맘 편히 먹으라고.”
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을 건네주는 이 사람.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밥 잘 얻어먹었으니, 회사 키우는 것에만 전념하자. 찝찝함 같은 건 감춰 놓자고.
강 사장과 만남 이후 대한전력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다른 지역 본부의 공고가 쏙쏙 등장했다. 최 상무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장님, 대전충남본부, 전북본부, 제주본부도 공고문이 올라왔습니다. 수의 계약하겠다고 하는데, 수의 계약 조건이 딱 우립니다. 최근 1년간 불합격이 없고, 월 생산량 3천 대 이상이면 우리 말고 더 있습니까?”
“정말이네요? 이건 우리보고 신청해서 받아 가란 뜻 같네요.”
“다 합치면 50억 원 규모에 4,420대입니다. 2월 말 납기라 시간도 넉넉하게 아주 좋습니다. 승인해 주시면 제가 바로 서류 준비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4,420대.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엄청난 물량전을 수도 없이 치르고 났더니, 4천 대 정도는 이제 물량 같지도 않다. 그래도 한 달 바짝 만들어서 내보내면 50억이 들어오니 꽤 짭짤하다.
“제가 승인하고 말 것도 없겠네요. 잘 처리해 주세요. 나머지 지역본부들은 어떻게 진행할 것 같습니까?”
최 상무가 준비했다는 듯이 바로 말을 받아 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5곳 정도는 수의 계약으로 돌릴 것 같습니다. 물량이 많아 봐야 지역본부당 1,000대 남짓인데, 남서울본부나 충북본부는 2,000대 가까운 물량이니까 놓치기는 아깝죠.”
“다른 회사에 물량 밀어주는 본부도 있겠죠?”
“남서울본부장이랑 강원본부장은 전우 이 사장이랑 절친이라 전우산업에 밀어주겠죠. 그래 봐야 3,000대도 안 될 겁니다. 발주 규모가 있는 지역본부들은 입찰하겠다고 하는데, 그거야 뭐 안성파워 믿고 기다려 보시죠.”
“바쁘실 텐데, 이것저것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뭐 월급쟁이가 이 정도도 안 하면 무슨 염치로 월급을 받습니까?”
“염치가 너무 많으셔서 월급을 많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잘될 것이란 최 상무의 예언대로 판이 돌아가니 마음이 더없이 편하다. 대략 예측해 보니 대한전력 지역 본부들이 쏟아 내는 물량의 절반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액수로 200억! 이거 뒤로 자빠져도 토마스를 춘다더니, 사업이 이리 쉽게 술술 풀려도 되나 싶다.
1차로 나온 입찰 2개 물량은 당연히 우리 회사와 안성파워 컨소시엄이 차지했고, 수의 계약 3개 물량도 지극히 당연하게 우리 차지가 됐다. 6,730대의 물량과 76억 3,000만 원이 예약됐다.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아주 최고다. 예정가의 96퍼센트 수준으로 받아서 짭짤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눈이 내렸는데, 맛을 보니 맛소금이랄까?
때맞춰 준희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축하의 전화겠지?
“정수 씨, 축하해요!”
“하하. 축하 멘트 많이 들었지만, 누나에게 듣는 게 최고입니다.”
“아휴, 왜 또 아부래요?”
“이번 달콤한 이벤트에 금성전기가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긴 한데, 그건 그거고 기분은 좋습니다.”
“저도 하고 싶죠. 근데 지금 상황에서 발주 더 받으면 감당이 안 돼요. 우리 회사도 빨리 키워서 프라임일렉트릭이랑 제대로 한판 붙을 생각이에요!”
“하하. 결투 신청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기분도 좋은데 이번 주 토요일에 데이트 어떻습니까?”
“오늘 정수 씨 기분 아주 좋은가 보네요. 크리스마스이브라…… 그래요, 뭐 정수 씨 위해서 희생하죠. 하하.”
기분이 좋고말고. 12월이 되자마자 연일 터진 이벤트가 나를 위한 성대한 잔치가 됐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애자류 입찰에서는 221억을 먹어 치우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이어진 중국 공습 이벤트에서도 최소한 440억짜리 잭팟을 터트렸다.
이것만으로도 업계 빅4가 되겠다는 야심이 뜻대로 되겠다는 희망을 품기에 충분했는데, 이벤트가 멈추지 않았다.
최대근 의원이 만들어 준 이벤트인 대한전력의 지역본부 발주전에서도 두둑한 성과를 내고 있다.
아직 반도 안 끝낸 이벤트라 새해 선물이란 기대감마저 준다. 내년도 기대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