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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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218화>218 마당쇠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눈이 내렸다. 매년 이맘 때 눈이 내리더니 올해도 어김없다. 벚꽃 피면 비 오는 것과 크리스마스 앞두고 눈 내리는 것은 한결같다.
내린 눈은 꽤 됐지만, 우리 회사만 비켜 간 듯하다. 눈이 쌓일 새도 없이 트럭 바퀴에 녹아 없어진 탓이다. 눈조차 쌓일 수 없는 바쁜 프라임일렉트릭. 이 회사를 내가 만들었수다!
회사는 여전히 바쁘고 성과는 척척 쌓여 가는데, 마음도 한가롭고 몸도 한가하다.
이제 좀 사장할 맛을 만끽하는구나. 기분 좋게 공장이나 한 바퀴 돌고 올 생각으로 사무실을 벗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변압기가 쉴 새 없이 트럭에 실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수출 포장하는 타정기 소리가 드럼 솔로처럼 들린다. 다들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니, 난 그냥 공장 경비나 하고 있어도 될 것 같다.
“사장님아! 따땃하니 햇빛 쬐면서 담배나 한 대 피웁시다.”
생산동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친 덕준이다. 전국을 돌며 변압기 팔고 다니는 방물장수 덕준이가 담배 타임을 권했다. 방금 막 피웠어도 무조건 오케이지.
“아따 춥그만.”
“뭐냐? 그 어색한 사투리는?”
“인자 여기가 제2의 고향 아니냐. 전라도 사람 되려면 여기 표준어를 익혀야지. 윤경이가 말할 때마다 있냐 있냐 하는데, 첨엔 무슨 소린가 했다니까.”
“자네 부모가 전라도 사람인가?”
“그래 인마, 내가 콩고 왕자다.”
“콩고 왕자, 걔 요새 방황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요새 TV도 안 나오잖아.”
“그럼 난 둘째 할랜다. 걔보다 동생이 훨 낫더라고.”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받아치는 덕준이. 이곳에 이런 노가리 상대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오늘은 어디 가는데?”
“아따, 연말이라 바쁘구만. 여기저기서 차 한잔하러 오라고 난리여.”
덕준이가 콩고 왕자 모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이야 어색한 사투리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면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겠지 뭐.
“차만 마셔라. 괜히 술 마시고 운전대 잡지 말고. 맨정신에야 음주운전 안 한다고 다짐해도 술 마시다 보면 객기 부리기 마련이야.”
“걱정 마쇼이잉. 난 술 마시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놈이랑께.”
“그나저나 요새 업체들 분위기는 어때?”
“뭐 모였다 하면 순실이 얘기지. 쇼킹하잖아? 아주 남녀노소 안 가려. 다들 입만 열면 그 얘기야.”
사건이 터진 지 2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상이 떠들썩하다.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는데도 밝히지 못한 부분이 더 많은 지경이다. 꼼꼼하게도 해 먹었고, 별의별 짓을 다 했더라.
“이참에 세상이 좀 좋아져야지. 대통령 탄핵했다고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가다 보면 나아지겠지.”
“아따, 우리 사장님. 아조 현자 다 되셨습니다요.”
“사투리 어색해, 미친놈아. 못 들어 주겠네 진짜.”
“아따, 그요이잉.”
주눅 들지 않고 이 동네 표준어 공부에 한창인 덕준이다. 명예 콩고 왕자로 임명하고 싶다.
간만에 가진 덕준이와 담배 타임을 헛되이 쓸 수 없다. 덕준이에게 주어진 중요한 미션이 슬슬 결과를 낼 때가 됐다.
“한 부장아, 중전기조합 쪽 회사들 접촉해 봤어? 입질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그쪽이 우리 회사라면 이 가는 거 알잖아? 접근하기 디게 힘들더라고.”
대한전력의 폐지품목 재고품 구매계획이 나가리 났다. 이제는 낙동강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알 신세가 된 중전기조합 쪽 회사들한테서 재고품을 떨이로 사 드릴 시점이다.
많은 기업들은 12월이 되면 해 바뀌기 전에 매출 올리려고 대들보라도 뽑아서 파는 데 혈안이 된다. 값을 후려쳐서라도 팔고 싶을 때 아닌가! 12월의 매력이다.
“그래도 그놈들 엄청 아쉬울 텐데?”
“빙고! 업체 하나 갔는데, 첨에 졸라 아니꼽게 쳐다보더라고. 뭐 어쩌겠어. 아쉬운 놈은 내가 아니잖아. 하하하.”
“그래서 얘기 좀 해 봤어?”
“세원변압기거든. 그나마 김진욱 부장님이 미리 얘기를 해 줘서 소금 안 맞았지 뭐.”
“맞네, 김 부장님이 거기 출신이었지? 김 부장님도 좋게 나온 건 아닌데 나름 신경 써 줬네.”
예전 같으면 이렇게 길게 운 띄우는 대화에 참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이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 그래서 담배를 두 대째…….
“얘기해 보니까 재고가 500대나 되더라고. 완전 미친놈들이지. 5억 원 어치가 넘어!”
“와우. 엄청나게 만들어 놨네. 대한전력이 사 주는 줄 알고 얼마나 신 나서 만들어 놨겠어? 생각만 해도 웃기네. 그래서 우리가 처리해 주겠다고 하니까 뭐래?”
“일단 후려쳤지. 대한전력 납품가의 40프로로 사겠다고.”
“40프로? 욕했을 것 같은데?”
“당연히 갈갈 날뛰지. 근데 바로 현금 지급하겠다고 하니까 표정이 달라지더라고. 당장 돈이 급하다 그거지. 아주 회사 말아먹을 놈들이야.”
우리 덕준이가 12월의 매력을 만끽하고 오셨군.
중소기업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여럿 있지만, 첫 번째는 세무조사고, 두 번째는 은행 대출계다. 구린 짓을 워낙 많이 하니까 세무조사 오면 백프로 추징금 폭탄 처맞는 것이다.
은행 대출계? 실적 구려지면 바로 자금회수 들어온다. 매출 떨어지고 적자라도 나면 백프로다.
흔히 사장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내 돈 주고 만든 내 회사’ 개뿔. 은행 돈이 어찌 사장 돈이란 말인가! 사실상 주인인 은행한테는 찍소리 못하는 사장 놈들.
그래서 12월이 되면 매출 끌어 올리는 데 혈안이 된다. 애기 돌반지라도 팔아야 할 판인데, 사 줄 사람이 없으니 안절부절못하며 몸이 달아오를 것이다.
내가 몸 달아올라 울상인 놈들을 위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게 해 주겠다!
“40프로도 너무 후려친 건데, 그걸 고민하고 있는 놈들도 참 대단하다야.”
“일단 지르고 보는 거지. 세원 박 사장도 첨엔 지랄지랄하더니, 두 번째로 찾아가니깐 자재값만 채우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더라. 그럼 중신만 40프로로 사겠다고 하니까 솔깃해하더라고.”
“이야, 그거 완전 좋네. 그거 사도 일일이 해체해서 다시 조립해야 하는데, 중신만 사면 완전 땡큐지!”
“사장님아. 사업을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
덕준이 이 자식, 아주 대단한 놈이다. 이런 기가 막힌 아이디어는 생각지도 못했다.
변압기 해체하는 그 지랄 같은 일을 오히려 떠맡기면서 생색을 다 내게 하다니.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라 걱정에 회사 생각을 등한시했군.
“역시 우리 한 이사야. 그래서 결론이 뭐야?”
“뭐냐? 언제 이사된 거냐? 암튼 대한전력 납품가 40프로에 중신만 건져서 받기로 했지. 성적서 다 주기로 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40프로에 받아서 외함이랑 부싱, 기름 넣으면 55프로쯤 되겠지? 그 정도면 짭짤하지?”
“아주 달짝지근하지. 바로 결제 진행하자고. 이제 세원변압기 뚫었으니까 다른 업체들한테서 연락 오겠네.”
“연락 오는 족족 가격 후려쳐서 다 사들여야지. 연락 없으면 내가 찾아가서 후려치고.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야. 후후.”
덕준이가 물뽕이라도 맞은 듯 흥분 가득한 모습이다. 중전기조합 망하는 꼴을 누구보다 기대한 사람답게 인정사정없이 임무를 잘 수행 중이다. 그래도 좀 진정할 필요는 있어.
“일단 뜸을 들여. 연말까지 버티면서 안달 나게 하라고. 우리야 현금 주고 사는 건데 급할 이유가 없지. 용량 확인해서 바로 내보낼 수 있는 것만 사는 걸로 하자.”
“아유, 그것도 좋지. 근데 너 담배 몇 대째냐? 뭐 집에 우환이라도 생겼냐? 무슨 담배를 그리 피워?”
덕준이랑 대화하다 보니 어느덧 손가락에 세 번째 담배가 걸려 있었다. 줄담배를 피웠는데도 목구멍에 스크래치 하나 없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덕준이 외근 보내야겠다.
“아따. 담배를 허벌라게 피워 브렀구만.”
“미친놈아. 니 사투리가 더 어색해.”
사장에게 미친놈 소리 하는 이 악질 직원 같으니! 덕분에 중전기조합에서 사들이는 변압기로 수출 물량 한두 번은 거저먹게 생겼다. 우리 중전기조합 회원님들, 아주 훌륭한 수출 역군이셔.
“참! 덕준아. 너 중전기조합 업체들 가면 대충 분위기가 어떤지 잘 살펴봐.”
“아이고, 이제 염탐꾼 노릇까지 시키십니까요? 왜 또?”
“분명히 내년 되면 버티기 힘들 업체들 나올 거야. 중전기조합 놈들이 회원사 망하는데 가만있을 놈들이 아니잖아? 행여나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감시 좀 해야지. 너 말고는 그런 일 할 사람이 없잖아?”
“사장 되더니 걱정이 많아지셨습니다요. 걱정은 공장장님한테 맡기고 맘 편히 살라니깐.”
“나도 그러고 싶다야. 자꾸 이 얘기 저 얘기 들어오니까 생각이 많아져. 그렇다고 사람을 안 만날 수도 없고.”
“회사 분위기야 업체 갔을 때 직원들 담배 피우고 있으면 슬쩍 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들어오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짜잘한 일은 직원들한테 넘기고 인생을 즐기셔. 알겠습니까, 사장님아?”
친구 놈의 진심 어린 조언. 친할수록 이런 얘기 안 하는 것이 남자들의 우정인데, 내가 꽤 걱정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휴가 한 번 떠난 적이 없다. 회사가 커지고 직원이 많아질수록 책임감이 막중해지면서 하루도 쉴 수가 없긴 했다. 내 팔자가 이러려니 하고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딱 내년까지만 고생하자. 내년이면 회사는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고, 그때부턴 팔자 좋게 놀러 다니면서 사는 거지 뭐.
결국 회사 일로 귀결됐다. 성대한 이벤트들로 따뜻한 연말을 맞게 생겼으니, 발기차게 내년 사업 구상이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이 일중독은 나라님도 구제 못할 것이야. 내 팔자야.
담배 냄새가 빠지자마자 상무실로 찾아갔다.
“아이고, 사장님. 찾으실 일 있으면 부르면 되지, 매번 이렇게 찾아오십니까? 허허.”
“하하. 회사에서 제가 제일 한가해서 그렇습니다. 다들 바쁜데, 오라 가라 시간 뺏으면 안 되죠.”
소파에 앉아 책상을 쳐다봤다. 여전히 서류 뭉치로 가득하다. 할 것 다 해 놓고, 뭐 그리 볼 게 많은지. 일에 대한 열정은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모양이야.
“사장님.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회사 오신 지 얼마 안 되셨지만, 회사 일이 윤곽은 잡히셨죠?”
“허허. 그거야 오자마자 했어야 할 일이죠. 회사 돌아가는 일 정도는 그려져 있습니다.”
“역시 상무님이십니다. 무리한 요구일 수 있는데, 내년도 사업계획 구상을 맡아서 해 주셨으면 싶습니다.”
“허허허.”
최 상무가 사람 좋은 웃음소리만 들려준다. 내가 할 일인데 왜 떠넘기냐는 의미인가?
“많이 늦으셨습니다. 못해도 저번 달부터는 말씀을 하셨어야지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꼼꼼하게 챙겼어야 하는데,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제가 보니까 사장님께서 너무 바쁘신 것 같습니다. 일을 좀 줄일 필요가 있어요.”
덕준이도 그러더니 최 상무까지 똑같은 얘길 한다. 전생에 마당쇠였는지도 모르겠다.
“신생 회사라 할 게 참 많습니다. 그래도 젊을 때 이렇게 안 하면 언제 또 하겠습니까?”
최 상무가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지그시 쳐다본다. 저 눈빛의 의미를 알기에 내가 쉬지 못하는 것 같다.
“사장님께서 바쁘셔서 그러셨겠지만, 별 얘기가 없으시길래 제 나름대로 사업 계획서를 짜고 있었습니다. 저도 좀 바빠서 아직 완성을 못하긴 했습니다. 허허. 곧 끝나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휴, 저 복덩이. 알아서 척척 하고 있었다니, 이리 고마운 소리가!
“그냥 기다리면 됐을 것을 괜히 찾아와서 시간만 뺏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허허. 뭐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죠.”
“저도 제 나름대로 구상을 할 테니, 마무리되면 다 같이 의논하는 걸로 하시죠.”
믿음직한 직원들, 어디서 이렇게 복덩이들만 들어왔는지 원. 내 인생 최고의 복은 문자님을 영접한 것이고, 두 번째 복은 인복이다.
나만 잘하면 된다. 동안거에 들어간 것처럼 사장실에 틀어박혀 내년 농사를 생각했다.
내후년까지는 회사 성장에 문제가 없다. 가마솥에 고효율주상변압기 밥 잔뜩 지어 놨으니 말이다.
우선배정이 끝나고 나서가 문제다. 품질개선 두 건으로 우선배정 20퍼센트가 또 기다리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성장세를 이어 갈 수 없다.
관수, 민수, 수출, 자재 각 분야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에 안 찬다. 발이 얼었는데 오줌 눈다고 녹는 것이 아니지.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새로운 분야로 진출. 내년부터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ESS 같은 전혀 모르는 분야가 아닌, 아직 개척하지 않은 이 바닥 분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