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19)
219 악질 직원
모처럼 회의를 소집했다. 변비 걸린 사람처럼 끙끙거리며 내년 사업계획을 짰으니, 만민공동회를 열어야 하는 법.
회의실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장실에서 조촐하게 모였던 회의도 이제 규모가 커졌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중역회의 같은 느낌이 제법 난다.
“올해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주가 가기 전에 아주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인사말로 성과급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불어넣어 주었다. 회사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최윤근 상무만 빼고 다들 환하게 웃는다.
저마다 목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동네 상가들 연말특수 한번 제대로 보겠군.
“내년도 올해처럼 바쁠 겁니다. 관수는 여전히 많고, 수출도 본궤도에 올라섰으니까 물량 더 많아질 것이고, 민수도 마찬가지죠. 우리 조합 수주 물량 많아서 자재도 크게 성장하겠죠? 다들 고생길이 훤해 보입니다. 하하.”
“무슨 고생길! 다들 신 났어 지금. 내년엔 더 화끈하게 해 보자고.”
누가 뭐래도 1등 공신 공장장이 신 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 나이에 그 고생을 하고도 저리 기분이 좋은 것은 ‘내 회사’가 컸다는 자부심과 그에 따라오는 두둑한 보상 때문일 것이다. 또 모르지. 백지원 최봉숙 원장과 신혼집 차릴 기대감에 부풀었을지도.
“최 상무님. 내년도 사업계획을 발표해 주시죠.”
“네. 크음.”
최 상무가 정성껏 준비한 사업 계획서 발표자로 나섰다. 박아름 대리가 깔끔하게 만든 PPT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장님께서 일전에 변압기업계 빅4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회사 인수 없이 우리 힘으로 그렇게 간다는 것을 전제로, 앞으로 8년 예상합니다. 매년 20프로씩 성장해야 하는데,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믿습니다.”
초반부터 화끈하게 질러 주시는구만. 매년 고성장이라…… 까짓것 해 주지!
“일단 내년은 40프로 매출 신장이 예상됩니다. 3,500억 달성. 각자 맡은 부문에서 올해처럼만 하면 충분합니다.”
이윽고 세부적으로 발표가 이어졌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가능할까라는 두려움일 것이다. 올해도 말도 안 되게 키워 냈는데, 못할 것도 없다. 최 상무 말대로 조금씩만 더 팔면 가능하고도 남는다.
20분 정도의 발표가 끝났다. 발표 초반의 두려움이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최 상무의 꼼꼼함이 참석자들에게 확신을 불어넣은 결과다.
“좋네, 좋아. 최 상무, 아주 고생했어. 최 상무 말대로만 하면 다 될 것 같어. 우리 다들 내년에도 단내 나게 해 보자고!”
공장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총평을 했다. 계획 잘 세웠고, 현장에서는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매년 매출이 이미 달성된 느낌이다.
그런데 나는 만족스럽지 않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상무님, 고생하셨습니다. 내년 계획은 아주 맘에 듭니다. 근데 저는 장기계획에 더 관심이 갑니다. 제가 봤을 때 현재 사업 분야로는 내년 매출이 최고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상무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습니다. 지금 아이템으로는 4천억을 넘기기는 힘들 것입니다. 수출 포지션이 커지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요.”
최 상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역시나 핵심을 뺐다는 느낌이다. 나에게 넘기겠다는 의도인가?
그 의도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결국 전력용 변압기 시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자리에서 제안하겠습니다. 내년부터 준비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우선 철도용 변압기부터 시작해서 3년 안에 초고압 시장까지 뛰어드는 것으로 말입니다.”
시장 규모가 엄청난 전력용 변압기에 뛰어들지 않고서는 꾸준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게 내 결론이다. 최 상무도 그걸 알면서 내 입을 통해 나오길 바랐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기업 4곳이 꽉 잡고 있지만, 부딪혀 봐야지. 우공도 삽 한 자루로 산을 파냈는데 뭐.
“철도라. 그거 용량이 최소 육천 이상일 텐데, 우리가 경험이 없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그새 신 난 표정을 감추고 걱정하는 공장장. 지금까지 했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이기에 걱정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수출로 천, 이천짜리가 가끔씩 나가지만, 내년엔 사천짜리도 꽤 나올 것입니다. 설계야 우리 직원들 어디 내놔도 뒤처지지 않으니까 걱정할 건 없고, 설비만 잘 갖추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번엔 최 상무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변압기 시작했으면 전력용 변압기까지 가 봐야죠. 사업계획 잡을 때 염두에 두긴 했는데, 사장님께서 공식적으로 말씀하셨으니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상무님 발표하시는데, 냄새가 강하게 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전력용 변압기까지 안착해야 빅4로 올라설 수 있겠죠.”
“저야 뭐 막연하게 매년 이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에 불과합니다. 일단 공장 확대계획 잡을 때 그것까지 고려를 했으니, 사장님 말씀대로 설비만 준비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한전력에서 본부장까지 승진하지 못한 버릇이 또 나왔다. 일은 다 해 놓고,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그 버릇 말이다. 대한전력과 달리 나는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
공장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걱정은 많지만,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공장장의 발언이 기대된다.
“우리가 능력이야 충분하니까 못할 것은 없지. 제대로 준비해서 해 보자고. 근데 말이야. 지금 가진 설비로는 택도 없을 텐데, 유 이사, 괜찮겠어? 새로 한다 생각하고 생산설비들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야.”
공장장이 전투 의지를 불싸지르고는 걱정을 유재준 이사에게 토스했다.
뭐가 됐든 시작은 설비다. 지금 갖춘 설비들은 배전용 변압기에 특화돼 있다.
배전용과 전력용은 사이즈부터 다르다. 배전용이 잘해야 복층 원룸이라면, 전력용은 기본이 33평 아파트다. 대기업만 하는 이유는 기술 문제도 있지만, 스케일의 차이이기도 하다.
우리라고 못할쏘냐! 유 이사만 뺑이쳐 준다면야.
“저야 설계만 뽑아 주면 뭐 어떻게든 만들어야죠. 아휴, 내가 이 회사 와서 팔자 좋으리란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유 이사의 진심 어린 곡소리에 회의 참석자들이 최선을 다해 웃음을 터트렸다. 유 이사 고생하는 거야 모든 직원이 다 안다. 모르면 간첩이라지만, 간첩도 양심이 있으면 알아야 한다.
“저도 급하게 할 생각은 없고, 장기계획. 그러니까 우선배정이라는 보호막이 없어지고도 계속 잘나갈 것을 생각해서 제안한 것입니다. 차근차근 준비하죠.”
묵묵히 듣고 있던 이규철 부장이 손을 들었다. 검사 일로 바빠서 회의에 잘 오지도 않지만, 참석해도 조용히 앉아만 있다 가는 사람이라 이목이 집중됐다.
“네, 부장님. 말씀하세요.”
“네, 뭐. 별건 아니고요. 전력용 변압기까지 하려면 지금 시험설비로는 안 됩니다. 대용량으로 다시 세팅해야 하고, 기존 설비도 많이 부족합니다. 생산량은 많아졌는데, 시험설비 때문에 검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생산설비 확충에 맞춰서 시험설비도 대폭 늘렸어야 하는데, 소홀한 감이 있습니다. 내년에 해결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 주세요.”
최 상무가 내 말을 이어받았다.
“제가 추가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기존 설비 추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금방 해결됩니다. 대용량 설비들은 검토가 필요해서 제 나름대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마 수입을 해야 해서 시간이 꽤 걸리니 검토 끝나는 대로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 상무는 이미 전력용 변압기 진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사업계획 구상해 보라고 운만 띄웠는데, 벌써 밭을 갈고 있었네.
이 부장이 회의 때 말을 했다는 것이 다른 참석자들을 자극시켰다. 저마다 한마디씩 쏟아 내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검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들이다.
“좋습니다. 우리 회사가 해가 갈수록 바빠지는 것은 숙명 아니겠습니까? 하하. 각자 부지런히 준비해 주시고, 상무님은 컨트롤타워 역할 잘해 주시길 바랍니다.”
회사 창립 3년 만에 전력용 변압기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미친 선언이 이렇게 결론이 났다.
이제 좀 후련하다. 이번엔 나와 직원들의 힘만으로 이뤄 내 보리라. 문자님께는 미안하지만, 잠시 쉬고 계셔도 됩니다.
최 상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할 얘기가 많은 눈치다. 뭐든 얘기하셔. 다 들어줄 테니까!
“사장님. 이참에 회사 분사계획 말씀하시죠? 사무실 직원들 고생해서 계획 잘 짰으니까 다 모인 김에 설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본인이 다 해 놓고 주안상을 차려 나에게 갖다 바친다. 회계사, 세무사 다 만나고 다니고, 나주시청, 혁신산단 지원센터, 건설회사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려 놓고 말이다. 겪으면 겪을수록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야.
김지연 대리를 단장으로 한 TFT가 최 상무 영입 이후 최 상무의 마사지를 받으며 숙성됐다. 대기업 보고서 양식에 맞춰 정리된 계획안. 가독성이 아주 좋다. 내용도 업그레이드가 됐다. 수영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대한전력 32년 짬밥이 괜한 것이 아니다.
“좋지요. 이건 김 대리님이 고생하셨으니까 직접 발표하시죠?”
“하하. 제가요? 아휴, 민망한데.”
주안상을 나 혼자 즐길 수 있나? 고생한 김 대리도 겸상해야지.
쑥스러워하는 김지연 대리에게서 아마존 여전사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황미연 사장은 아주 그냥 똑소리 나게 했었는데, 정말 똑같은 사람 없다는 말이 맞군.
김 대리가 국어책 읽는 요들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예. 그 사장님 말씀이 회사가 너무 커지면 여러 가지, 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요. 네.”
다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요들송을 음미한다. 목소리 떨림이 임병수도 울고 갈 정도야.
결론은 쪼갤 수 있는 사업부는 다 쪼갠다는 것이다.
설비제작부와 외함제작부는 당연히 독립이고, 변압기 사업부도 민수, 관수, 수출을 나누기로 했다. 자회사 ODI도 코아 제작부와 SPRD 제작부를 분리한다.
공장 배치도 동선을 고려해 잘 짜 놨다. 허물 건 허물고, 새로 지을 건 새로 짓고. 내년에도 돈 들어갈 일이 잔뜩이지만, 투자를 아까워할 순 없지. 화끈하게 쓰고 화끈하게 벌면 된다.
“그거 좋지. 중소기업 혜택 줄 때 잘 받아야지. 그러다 나중에 더 크면 다시 하나로 합치면 그만이고. 그렇지?”
“맞습니다. 공장장님. 우리가 아직 대한전력 우산을 뿌리칠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뭐 회사 분사해도 다 한 회사나 마찬가지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직원들에게 잘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선장은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어차피 한 회사인데 사장이 여럿일 필요 없지 않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직원들한테 맡기는 것도 좋지만, 효율성을 생각해 보면 변압기 쪽은 사장님께서 다 맡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공장장과 최 상무가 한목소리를 낸다. 최소한 변압기와 외함은 내가 맡아야 한다고 공장장이 고집을 부리더니, 최 상무도 어느새 한통속이 됐다.
“전 솔직히 내키지 않습니다. 회사에 인재도 많은데 맡기는 게 좋죠. 제가 다 맡아 봐야 제대로 하지도 못 합니다.”
“아니, 다 맡기는 뭘 다 맡아? 설비는 유 이사가 맡고, 코아는 김 이사가 맡잖아? 오디아이랑 태인산업도 그대로 가는데, 엄살은 아주. 직원들은 그렇게 굴려 놓고 정작 본인은 편하게 하겠다고 되나! 하하.”
공장장이 무섭게 협박하고 나섰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사장 명부에 이름 올려놓고 월급이라도 더 받아 가라는 배려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일 좀 줄이겠다고 그리 얘기했건만, 노는 꼴 못 보겠다는 악질 직원들.
대체 골프는 언제 배워서 필드 나가냐고 호통 치는 강호창 사장이 떠올랐다. 전 그 팔자가 못 되나 봅니다. 이 징글징글한 직원들 때문에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요.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니 일단 미뤄 놓고, 돈 신 나게 쓸 생각이나 하자고. 올해도 그랬지만, 내년에도 아주 기똥차게 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