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20)
220. 1336
2016년. 그 어느 해보다 다이내믹하다고 느꼈지만, 연말이 되니까 정말 다이내믹했음을 깨닫게 된다.
4대 성인조차 우리나라를 굽어 살피지 않았다. 12월 달력을 보고서야 알았다. 석가탄신일이 토요일이더니, 크리스마스까지 일요일이다.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마저 이 나라를 피해 가다니!
월급 아까워하는 사장들은 나무아미타불, 할렐루야를 외칠지도 모른다. 난 그렇게 살지 않겠다. 직원들 어쩌다 쉬는 건데 돈 따져 가며 성불하겠다는 짓은 하면 안 되지.
사업을 대국적으로 하는 나는 금요일을 대체 휴일로 정했다. 강 같은 평화가 넘치게 해 줘야지.
대체 휴일에 앞서 대대적인 선물 증정식도 있을 예정이다. 우리 회사를 단박에 이 바닥 제일 좋은 회사로 소문나게 만든 성과급 말이다.
작년에야 반신반의했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직원들 이마에 성과급 문신이 박힐 정도로 기대가 컸다. 그 기대를 가뿐히 넘어 줘야 짜릿한 법이지.
“김 대리님. 요청한 자료 준비됐으면 제 방으로 와 주세요.”
김지연 대리가 회계사무소에서 받아 온 잠정 실적 자료를 들고 왔다. 회사가 커지니 세무사에 기장 업무 맡기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졌다. 회사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서비스 업종도 먹고살아야겠지.
“여기 있습니다.”
“브리핑해 주세요. 저번처럼 떨면서 요들송 부르지 말고요.”
“후아. 전 아무래도 무대 공포증이 있나 봐요.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떨리는지 원.”
무대 공포증 있다는 사람이 창립기념일 행사 때 연단에 나가 그렇게 춤추고 노래 불렀냐고 되묻고 싶지만 참았다. 배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면 히말라야 14좌 등반 정도는 가뿐하다.
“이게 연결, 개별인지에 따라 좀 달라지는데요,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주셨어요. 내부 거래까지 포함하면 더 커지는데, 암튼 이게 복잡하더라고요.”
“그래서 회계사 아무나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국제회계기준이니 K-IFRS니 머리 아프니까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돈과 관련된 일은 항상 복잡하다. 어쩔 때는 맘 편하게 시키는 일이나 하는 것이 맘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은행들은 바젤3 노래를 부르고, 기업들은 IFRS 노래 부르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장할 것도 아니고 돈만 잘 벌면 되지 싶은데, 이래저래 요구하는 것이 많다.
“일단 프라임일렉트릭은 민수로 148억 원 매출 올렸고, 관수는 11월 2차 발주까지 들어가서 매출이 808억 3천만 원이에요. 외함이 150억 원, 설비로 300억 원 매출 올렸습니다.”
“수출도 있죠?”
“맞다. 수출도 일단 납품 나간 것까지 매출로 잡아서 223억 천만 원이에요.”
아주 좋다. 미친 실적이 이거 하나뿐이면 섭섭하지.
“오디아이랑 태인산업은요?”
“오디아이는 SPRD가 364억 원, 코아가 516억 원이고 태인산업은 부싱으로 63억 원 매출 올렸어요. 다 합치면 2,572억 원인데, 몇십억 정도는 시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잠정이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으라고 하네요.”
매출은 예상대로 2,500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 시무식 때 신년사로 매출 1,300억 원을 얘기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다. 1,300억도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는데, 그 곱절을 했다! 시무식 때 좀 더 세게 말할 걸 그랬다.
자재로 확 터트린 것과 수출 시작한 것이 아주 효자 노릇을 했다.
우리 준희 누나를 좀 더 예뻐해 줘야겠다.
억지로 짜맞추자면, 누나가 아니었다면 이런 미친 실적은 어려웠을 것이다. 누나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변압기혁신조합이 빨리 만들어져서, 자재와 설비 사업이 아주 장날 대목 엿장수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수출은 또 어떻고? 누나가 하청 맡긴 500대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기에 중국발 물량 공세도 거뜬히 이겨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누나가 소개해 준 에이전트 케이 덕에 수출이 금 뱉어 내는 가오나시 역할을 해 주지 않았나.
누나 업고 어깨춤 한번 춰야겠다. 우리 누나만을 위한 선물도 생각해 봐야겠군.
“자, 자, 매출은 아주 좋고, 영업이익도 장난 아니죠?”
“네, 맞아요. 대충 예상은 했는데도 진짜 깜짝 놀랐어요. 민수가 48억 8,000만 원이고.”
“대충은 아니까 토털로 얘기해 주세요. 저는 대리님 놀라는 모습이 궁금해서 그러는 거니까요. 하하.”
“이미 놀라서 더 안 놀랄걸요? 호호. 다 하면 1,146억 원이에요. 장난 아니죠?”
안 놀란다고 하면서 액수를 말하며 자연스럽게 놀랜다. 놀랠 수밖에 없는 금액이니까!
1,146억 원! 영업이익률이 무려 46퍼센트에 달한다! 이런 회사가 또 있을까? 지구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문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박민창 사장이 이끄는 도연테크도 이젠 자회사나 마찬가지이지만, 열외로 두자. 거기도 올해 매출 200억은 거뜬히 넘겼을 것이라 합치면 더 짭짤해지지만, 박 사장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지 뭐. 배당이나 잘해 주셔.
이제 모든 이의 관심사는 성과급을 얼마나 지급하느냐일 것이다. 김 대리도 궁금해 죽겠는지 내 입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회의 때도 이렇게 잘 얘기 좀 하세요.”
“끝인가요? 뭐 하실 말씀 없으세요?”
“없는데요.”
이벤트를 김새게 만들면 쓰나. 이벤트는 이벤트답게 해야지. 궁금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의 김 대리를 뒤로하고 공장장을 찾아 나섰다.
공장 사무실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공장장을 깨웠다. 또 뭘 하려고 저리 깊은 생각에 잠기셨나?
“공장장님! 왜 이렇게 멍 때리고 계십니까?”
“어, 사장님 왔어? 아니, 뭐. 또 뭐 개발할 만한 것이 있나 이것저것 쳐다보는데, 뭔가 딱 나오는 게 없네. 괜히 일도 안 하고 현장만 어슬렁거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컴팩트형 패드변압기와 각진 코아 개발 이후에 내놓은 것이 없으니 초조한 모양이다. 아이디어만 내도 설계부가 척척 만들어 내니 뭐라도 쥐어짜 보겠다는 심산 같은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이고, 공장장님.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어슬렁거리기만 하셔도 됩니다. 앞으로 3년간 물량 걱정 없는데, 뭘 벌써부터 고민이십니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해 보겠다고 저러니 공장장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네도 나이 먹어 봐. 하루 종일 걱정만 하느라 잠이 안 와.”
“공장장님이 빈둥빈둥 놀고 있어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걱정은 찬찬히 하시고, 저랑 성과급 얘기나 하시죠?”
“그렇지, 그렇지. 안 그래도 다들 기대가 장난 아니야. 이게 말이야, 많이 주는 것도 그렇고, 적게 주자니 다들 고생했는데 그것도 안 되고. 맘 같아서야 넉넉하게 줬으면 좋겠다 싶지만, 돈 있다고 펑펑 쓰면 되나. 앞으로 돈 들어갈 일도 많잖아? 우리 사장님이 고민이 많겠어.”
공장장이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상모까지 돌린다. 난 크게 고민 안 한다. 돈은 있을 때 쓰고, 없으면 부지런히 일해서 벌면 되니까 말이다.
“올해 빵 터트렸으니까 시원하게 주려고요. 총액 200억입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괜찮죠?”
“200억?”
공장장이 잇몸 건강이 좋지 않아 임플란트를 못하고 틀니를 했다면, 나는 바닥에 떨어진 틀니를 주워다 물로 헹궈야 했을 것이다. 직원들의 놀란 표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재미로 사업하는 것 아니겠나!
“작년 성과급이 월급 한 번 더였다면, 올해 성과급은 연봉 한 번 더입니다. 쏠 때 화끈하게 쏴야죠.”
“아휴야. 우리 회사가 돈을 많이 벌긴 벌었구만. 아따, 허벌라브요잉.”
공장장의 어색한 사투리가 작렬한다. 이거 뭐 이 동네에 전라도 표준어 공부 열풍이라도 불었나?
“올해도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공장장님에게 맡길게요. 공평하게 잘 나눠 주세요.”
“이거 잘못하면 욕만 바가지로 먹게 생겼네. 아휴, 난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부턴 안 해야겠어. 말이 200억이지, 무서워서 뭐 하겠나. 하하.”
엄살이 잔뜩이지만, 얼굴은 텔레토비 햇빛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돈 주는데 마다할 사람 없고, 그 돈 나누라고 하는데도 마다할 사람 없다.
“작년에야 입사일로 책정했는데, 올해는 고민 좀 해 봐야겠어. 고생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돈 주고도 욕먹으면 안 되잖아?”
“다 좋은데, 작년처럼 저한테 몽땅 배정하면 안 됩니다. 아시죠? 저는 배당으로 많이 버니까 빼셔도 됩니다.”
“아니, 언제는 나보고 알아서 하라더니, 뭐 이리 간섭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무 말 말고 결재나 해 줘.”
보아하니 사장이랍시고 성과급 엄청 때려 넣을 분위기다. 나 생각해 주는 공장장의 마음씨는 고맙지만, 몇억 정도는 이제 푼돈 수준이다.
배당으로 300억 가까이 받을 텐데, 몇억이 눈에 들어오겠나! 세금 왕창 떼고, 또 투자로 왕창 밀어 넣겠지만, 마음은 이미 워렌 버핏이다.
크리스마스 대체휴일 전날 공장장이 골머리를 쥐어짠 결과물을 가져왔다. 연말회식 날 맞춰서 좋은 선물을 들고 오셨군.
“어때요? 골머리 좀 앓으셨죠?”
“허허.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라도 제대로 나올 걸 그랬지 뭔가.”
“일단 저한테 얼마 배정했는지부터 얘기해 주시죠.”
“에이, 김새게 그러지 마. 일단 들어 봐 봐. 내가 공정하게 평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1년 동안 본 것도 있고, 이놈저놈 물어보면서 등급을 나눴어.”
“오호. 전 공장장님이 고민하다 결국 입사일로 나눌 줄 알았는데, 이번엔 신경 좀 쓰셨네요?”
돈 액수가 커지면 여러 가지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일은 내가 더 했는데, 먼저 입사했다고 돈 더 받아 간다는 불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혹은 일 진짜 열심히 했는데, 내가 왜 이 등급이냐는 불만도 있겠지.
달리 생각해 보면 어떻게 분배해도 불만 가질 사람은 불만이 생길 것이다. 공장장이 나름 공평하게 평가했다니 믿고 따르자. 우리 회사의 관습헌법과도 같은 공장장이 결정했다는데 뭐라 할 사람 없겠지.
“입사일도 고려하긴 했지. 이것저것 따지니까 아주 골치가 아파 오는데, 최 상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어. 나야 그냥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데, 최 상무가 딱딱 점수 매겨서 쫘악 뽑아내더라고. 하여간 그 사람도 난 사람이야.”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분배하기로 하셨습니까?”
“응. 1등급부터 4등급까지 나눴는데, 1등급이 2억이고 4등급은 1억 원이야. 몇몇 놈들은 이렇게 많이 줘도 되나 싶은데, 그래도 고생한 건 고생한 거니까. 그리고 특등급으로 3억 주기로 했는데, 누군지 알겠지?”
“유 이사님요?”
“그래. 재준이는 그 정도 받아도 돼. 재준이보다 더 많이 고생한 사람 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지.”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 돈 받아서 피부숍 좀 가라고 하세요. 만날 구리스 범벅인데, 피부가 버티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입사한 지 1년이 안 된 직원들만 연봉 수준으로 받고, 나머지 직원들은 억 단위 성과급을 받기로 했다.
돈을 너무 많이 줘서 일 그만둔다고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이다. 도박 중독은 1336, 알코올 중독은 080-993-0002로 전화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쇼핑 중독은 상담센터가 없다.
억 소리 나는 돈잔치로 흥청망청해도 회사에서만큼은 공장장 휘하 베테랑들이 확실하게 군기를 잡아 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되겠지? 근데 나는 얼마를 받나?
“공장장님. 그래서 저한테는 얼마 주기로 했습니까?”
“하하. 재준이가 아무리 그 고생을 했다고 해도 우리 사장님만 하겠어? 이렇게 회사가 돈 많이 번 것이 누구 덕이야? 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사장님 덕분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돼.”
“그래서 얼마로 하셨어요?”
공장장이 결재판에서 결재란만 살짝 보이게 서류를 꺼내 보였다.
“일단 잔말 말고 사인이나 해. 사인하면 보여 줄게.”
이 악질 직원들은 이제 사장을 협박까지 하네? 이거 또 몇 번을 실랑이를 해야 하는 것인가!
“아 쫌. 그러지 마세요. 딱 보니까 큼직하게 써 넣은 것 같은데, 저 그러면 욕먹어요.”
“아니, 누가 우리 사장님을 욕해? 사장님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회사 이렇게 키웠는데 누가 욕하냐고!”
“결재를 하려면 제가 봐야 할 것 아닙니까?”
“사인 전에는 안 돼. 못 보여 줘.”
저 똥고집을 누가 꺾으랴. 에라, 모르겠다. 일필휘지.
“하하. 잘했어. 자넨 그냥 모른 척해. 직원들이 우리 사장님 생각해서 이러는 거니까. 알았지?”
내 성과급 10억 원. 나 혼자 과식하며 욕심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번 만큼 직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건만, 올해도 배불러 소화제를 먹게 생겼네.
공장장이 뒤도 안 돌아보고 사장실을 냅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를 뒤엎을 정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도박중독은 1336에 전화해야 한다. 노력의 대가이니 가치 있는 곳에 잘 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