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21)
221 크고 아름다워
회사에 있는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깨질 정도로 엄청난 데시벨의 환호성이 터졌다. 이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면서 연말 분위기 낼 일만 남았다.
18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회식 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대목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운빨이 좋았는지, 혁신도시에 갓 개장한 씨푸드 뷔페를 잡았다.
우리 직원들이 운동부였다면 거절당했을 텐데, 회사 연말회식이라고 하니 아주 좋아하며 대관을 허락해 줬다. 회사 식당 직원들이 신병교육대 취사병 수준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면 대관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직원들아, 미친 듯이 먹어라!
씨푸드 뷔페를 작살낼 1진을 먼저 보내고 슬슬 이동하려는데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와야 할 귀한 손님이 있는데, 6시가 다 되도록 소식이 없다.
전화! 전화가 왔다!
“김 사장님!”
“사장님, 저는 방금 막 도착했습니다. 탁송차도 곧 도착할 겁니다.”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찾아왔다. 안 와도 되는데, 굳이 직접 건네주겠다며 부산에서 부지런히 달려왔다. 무엇을? 내 차! 태평양을 건너 곧 이곳에 도착할 내 새 차 말이다.
“아이고, 사장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연말이고 하니까 겸사겸사 왔지요. 제가 탁송기사한테 차 아주 조심조심 몰고 오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래서 좀 도착이 늦나 봅니다.”
“뒷처리까지 다 해 주시고 아주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하하. 제가 영맨 된 줄 알았습니다. 사장님을 위한 소소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시죠.”
회식 2진으로 출발하려고 대기 중인 사무실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방역차 따라가는 애들도 아니고 뭐.
“먼저 가 계세요. 전 차 확인하고 갈게요. 오래 안 걸리니까 먼저 가서 먹고 계세요.”
“사장님! 새 차 같이 타고 가면 안 돼요?”
배가 고파서인지 신경이 예민해진 김지연 대리와 달리 유민희와 박아름 대리는 나를 스크린 삼아 찬 바람을 막아 내며 버텼다.
“너네 안 가? 아휴, 몰라. 알아서 와. 난 배고파서 안 되겠다. 사장님! 전 먼저 가 있을게요.”
지지친 김 대리가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김 사장은 안면 있는 민희와 대화 삼매경에 빠졌고, 박 대리만 멀뚱히 서 있다.
“새 차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촌스럽게 이럴 거냐?”
“네 뭐. 민희가 사장님 새 차가 장난 아니라고 해서요. 그런 말 들으면 구경하고 싶어지잖아요.”
“너 직속 후배 진아는 먼저 갔어?”
“네. 배고프다고 아까 다 같이 갈 때 갔어요.”
순간 민희가 믿을 만한 박 대리만 남겨 놓고 경쟁자들을 미리 내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착각도 유분수지. 내가 새 차 온다고 너무 들떴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탁송차가 도착했다. 차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답다. 아, 크고 아름다워!
차에 별 관심 없었던 내가 봐도 살짝 지릴 것 같다. 빨간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사장의 품위 때문에 솔리드 블랙을 택한 것이 아쉽긴 하다.
오늘 회식이고 나발이고 차와 함께 이 밤을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다.
“자,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맘에 드시죠? 이거 최신 모델입니다. 구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진짜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 사장이 크고 아름다운 차에 감동한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했다.
좀 무례할 수 있는 부탁이었는데, 신경 써서 10월에 나왔다는 새 모델까지 구해서, 그것도 번호판까지 완벽하게 달아서 직접 갖다 주기까지 했으니 충분히 의기양양해할 만하다.
“어휴, 번호까지 황금 넘버네요?”
“제가 신경 좀 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장님 부탁인데 이 정도는 거뜬히 해 드려야죠. 충전까지 풀로 해 놨으니까 바로 몰면 됩니다.”
정작 신 나야 할 사람은 난데, 구경꾼들이 더 신 났다.
“아, 아깝다. 오늘 회식만 아니면 드라이브 시켜 달라고 했을 건데요.”
“좋아, 기분이다! 다음에 드라이브 제대로 시켜 줄게.”
늘 무덤덤해하던 박 대리까지 신 난 표정이다. 민희는 말할 것도 없고. 무려 2억 가까운 금액을 치르고 데리고 온 차가 간지 폭발하는 자태를 자랑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타 보고 싶을 것이다.
“김 사장님, 감사합니다. 오신 김에 같이 가서 저녁 드시죠.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아휴, 창립기념행사도 갔는데, 회식까지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이거 뭐 저도 프라임일렉트릭 직원 된 것 같습니다. 하하.”
“제가 호텔 잡아 드릴 테니까 네 발로 기어갈 때까지 마시시죠. 풀코스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차에 탑승했다. 내심 민희가 당돌하게 보조석에 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애가 눈치는 있군.
전기차라 그런지 시동 거는 소리조차 안 들린다. 흥분해서 귀가 안 들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다. 디젤차의 웅장한 흔들림과 소음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제야 느껴졌다.
“이야, 차 좋습니다. 미국에서 아주 잘나가는 차라고 하더니, 좋아 보이네요.”
비싼 금액치고 내부가 좀 빈약한 느낌이 있지만, 뭐 그것 따위가 문젠가!
“꺄악!”
액셀을 살짝 밟았는데도 차가 쭉 나가는 바람에 뒷좌석에 앉은 구경꾼 비명이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어머 신발. 몸에 익기 전까진 긴장하고 타야겠네. 목 디스크 오기 딱 좋겠네.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달리는데 마이 뉴 붕붕이가 나와 한 몸이 된 기분이다. 승차감 좋고, 핸들링 죽인다. 밟으면 쭉쭉 올라가는 속도를 느끼는 재미도 나를 질질 싸게 만든다. 요실금이 걱정될 정도다.
신 나게 달려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고이 모셔 놓았다.
어렸을 때 동네에 차를 애지중지 아끼는 아저씨가 있었다. 날마다 쓸고 닦고 조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바디커버를 꼭 씌우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아저씨. 그 심정이 이해된다. 당장 ‘다있오’에 달려가 차량 바디 커버 없냐고 물어보고 싶다.
차는 그냥 이동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이리 흥분하는데, 차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환장하겠구나 싶다. 이 정도 흥분했으면 충분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연말회식에 집중하자.
회식 장소는 메뚜기 떼가 한 번 휩쓸고 지나간 듯한 처절한 향기를 물씬 풍겼다. 미친 듯이 먹으라는 새 차 뽑은 사장의 미션을 성실히 수행해 주고 있군.
“사장님 오셨습니다. 일동 기립! 뭐 해, 인마! 빨리 일어나.”
누가 먼저 호들갑을 떠나 봤더니 이번엔 덕준이가 한발 늦었다. 술자리에서 캐릭터가 겹치는 이상철 이사가 30년 짬밥의 힘으로 벌떡 일어났다. 민망하게 일동 기립은 또 뭔지 원.
“아휴. 어서 식사들 하세요.”
“자, 자, 사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아휴, 신발. 현웃이 터져 버렸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오늘 결정된 선물의 위력이 이렇게 크다. 근데 좀 창피하다. 민망해하는 직원이 소수일 뿐, 대부분이 이 이사 구령에 맞춰 경례를 했다는 것이 더 부끄럽다.
“하하. 상철이 저놈 하여간 오바도 잘해. 우리 사장님 왔으니까 한마디 하셔야지? 어이쿠야. 김 사장도 왔네? 지난번에 보니까 술 잘 마시더니, 잘 왔어.”
공장장이 이미 몇 잔 들이켠 얼굴로 다가왔다. 오늘도 엄청 달릴 것이란 결연한 각오가 느껴진다. 아쉽지만, 영업시간 10시 반까지입니다, 손님.
빈속이지만 새 차 뽑고 나니 일주일 내내 안 먹어도 거뜬할 것 같다.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직원 여러분들,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덕분에 우리 회사가 올해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성장한 것도 기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 더 기쁩니다.”
“와!”
박수갈채. 크으, 술도 안 마셨는데 취한다.
“제가 사람이 좀 못돼서 일을 아주 고되게 시킵니다.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아마 제 욕 많이 했을 겁니다. 그래도 성과급 받고 나니까 제가 아주 천사처럼 느껴지시죠?”
“사장님! 사랑합니다!”
군대 위문 공연 온 것 같은 이 느낌이 썩 좋지 않다. 홍철아, 꼭 굵직한 목소리로 그런 소리를 해야 했니?
“여러분! 내년엔 더 빡세게 굴릴 생각입니다. 우리 회사가 올 한 해 반짝하고 말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빡세게 일해서 회사 더 키우고, 아주 제대로 벌어 봅시다!”
“와!”
10년 전 메탈리카 내한 공연 때 ‘마스터 오브 퍼펫’ 떼창을 했었드랬지. 그 현장에 와 있는 기분이다. 이 심각한 남녀 성비 어떻게 안 될까?
덕준이가 다가온다. 이 이사한테 빼앗긴 선수를 되찾으려는 것일까? 말없이 마이크 달라는 제스처에 뭐에 홀린 듯이 마이크를 건넸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새치기 좀 하겠습니다. 자, 여러분! 사장님 덕분에 이제 우리 엄마, 아빠 임플란트 원 없이 해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사장님 외치면 사랑합니다로 건배 한번 하시죠. 사장니임!”
“싸랑합니다!”
말릴 새도 없었다. 마이크를 건네는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움의 향연이다. 손가락이 너무 오글거려서 들고 있던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래도 이번엔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도 섞여서 들린다. 그래,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아니, 우리 회사 구호는 왜 안 해!”
우리 노인네들이 들고일어났다. 올드한 구호 참 좋아한다.
“하하. 그럼 제가 다시 건배 제의하겠습니다. 제가 만들고도 좀 구리다 싶었는데,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잔들 채우셨죠? 자, 갑니다. 일은!”
“빡세게!”
“놀 때는!”
“화끈하게!”
“보상은!”
“두둑하게! 와!”
이 구호 외칠 때마다 왠지 선악과를 먹어 버린 하와처럼 부끄러워지는 기분이다. 직원들이 좋아하는데 어쩌겠나. 하와와.
“하하. 회사 분위기 참 좋습니다. 성과급 좀 주신 모양입니다?”
김 사장이 마냥 부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이왕 부러워하는 거 더 부럽게 해 줘야겠다.
“다들 억 단위로 받아 갔습니다. 돈 화끈하게 벌어서 푸짐하게 나눠야지요.”
안면 비대칭으로 양악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입을 쩍 벌린다. 역시 예상대로다. 후훗.
“어휴. 저도 회사 접고 프라임일렉트릭 입사하고 싶습니다. 하하.”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제가 부탁드려야지요.”
“어머, 김 사장님!”
부러워하는 김 사장을 데리고 주린 배를 채우려고 하는데, 뒤에서 맑고 영롱하고 화통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황미연 사장이로군.
“아, 네. 안녕하세요. 저, 그.”
누군지 기억을 못하는 김 사장이 당황스러워한다. 창립기념일 행사 때 김희철, 황미연 사장 부부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며 일찍 자리를 떠서 서로 인사할 시간이 없긴 했다.
“오디아이라고 자재 생산하는 자회사 사장님이십니다. 황미연 사장님, 인사 나누시죠.”
“사장님, 반가워요. 제가 저번에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죠?”
“아이고, 제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우리 회사 먹여 살려 주시는 분인데,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김 사장의 은하무역을 통해서 들여온 아몰퍼스 메탈만 연간 8천 톤에 달한다. 그걸 코아로 만들어 신 나게 팔아재낀 ODI의 선전으로 김 사장도 달디단 재미를 봤을 것이다.
“사장님께서 아몰퍼스 메탈 워낙 저렴하게 수입해 줘서 올해는 아주 거저먹은 것 같아요. 호호. 앞으로도 이렇게 기분 좋게 해 주실 거죠? 참, 내 정신 좀 봐라. 저희가 내년에 분사하게 돼서 아몰퍼스 코아 부분은 김신우 이사님이 맡게 됐는데, 같이 가서 인사 나누시죠.”
초대손님 불러 놓고 밥도 안 먹이고 있다.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황 사장을 따라간 김 사장 마음이 이해된다. 사장은 돈 벌 기회가 생기면 배도 안 고픈 법이니까.
문자님과 인연을 맺은 이후 흘러간 2년 반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진상들도 있었고, 소소한 위기도 있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은 화려한 실적과 좋은 사람들뿐이다.
나도 참 사업 쉽게 했다. 문자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연말을 이렇게 흥청망청 보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