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22)
222 흥청망청
연산군은 조선 팔도에 채홍사를 파견했다. 채홍사가 뽑은 여성들은 관기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이들을 흥청이라고 했다. 연산군이 경회루에서 흥청들과 노느라 나라가 거덜 났다.
오늘 이 회식 자리도 그야말로 흥청망청이다. 거덜 나는 흥청망청이 아니라 다가올 새해를 기대하게 만드는 흥청망청이다. 매년 찾아오는 새해가 지나간 해보다 더 나은 해가 될 것이다.
올해 같은 무더위도 내년엔 찾아오지 않으리라. 가만있자. 혹시 올여름보다 내년이, 내후년이 더 뜨겁진 않겠지? 인간적으론 그건 아니다 진짜. 제발 그러지 않기를.
회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양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젊은 직원들은 여전히 무지막지한 식성을 자랑하며 음식이 채워지기 무섭게 퍼 날라 흡입했다. 나이 좀 먹은 직원들은 위장 채우기보다 갈증 달래기에 주력하며 맥주를 거덜 내기 시작했다.
양상이 달라져도 흥청망청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
가볍게 배를 채우고 나니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이럴 때 돈벌이가 생각나더라니, 여지없다. 두 김 사장의 만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김 사장님, 식사 좀 하셨습니까? 제가 인사시켜 드릴 분이 있는데요.”
“아휴, 얘기 잘하고 있는데 왜 데려가세요!”
김상진 사장 데리고 가려는 내 손길을 황미연 사장이 막고 나섰다.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잘나가는 ODI보다 상대적으로 실적이 저조한 태인산업이 아픈 손가락이란 말이오!
“다른 김 사장님 만나게 해 주려고요. 우리 김 사장님 잠시만 빌려 주세요.”
“제가 일만 한다고 김 사장님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했어요. 그래도 오늘 여기까지 와 주셔서 대접 좀 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데려가기 있어요?”
“김 사장님이 VIP라 여기저기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 참, 코아 수출 얘기는 시작도 못했는데…….”
내가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는 연예인이고, 다른 한 명은 황 사장이다. 올해 엄청난 실적을 냈는데도 만족하지 않고 코아 수출까지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다.
“코아 수출도 해 보시려고요?”
“그럼요. 계산기 두들겨 보세요. 아몰퍼스코아야 안 되겠지만, 방향성코아는 중국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습니다. 변압기도 그렇게 재미 보면서 수출하는데, 코아라고 왜 못하겠어요?”
김 사장 귀가 움찔움찔한다. 우리 회사 해외영업 담당이 민희가 아니라 김 사장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김 사장이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지 사장님이 갑 중에 갑 아닙니까? 제가 힘이 없습니다. 하하. 잠깐 갔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코아 수출 얘기는 이따 마저 하시죠. 제가 아주 중국 전문갑니다. 맡겨만 주세요. 하하.”
“일단 하던 얘기 마무리하면, 부산에 괜찮은 아가씨 있는지 꼭 알아봐 주세요. 난 진짜 우리 사장님 저렇게 사는 게 안쓰러워 죽겠어요. 아셨죠? 김 사장님, 이따 꼭 다시 오셔야 합니다?”
“물론이지요. 하하.”
중요한 사업 얘기 하는 줄 알았더니만 그건 시작도 안 했고, 내 앞가림 걱정을 하고 있었군. 황 사장 저러다가 결혼식 올리면, 한복 입고 와서 혼주석에서 눈물 흘리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가만 보면, 김지연 대리가 툭하면 나한테 와서 연애 언제 하냐고 들들 볶는 것도 황 사장의 미션 같다. 잔소리하는 큰누나 같은 황 사장 때문에라도 내년엔 연애 좀 하고 살자.
“전에도 느꼈지만, 다들 한 가족 같습니다. 가좆 같은 거 말고 진짜 가족요. 하하. 매번 느끼지만, 회사 분위기 참 좋습니다.”
황 사장에게서 풀려난 김 사장이 소회를 밝혔다.
“오늘 성과급 나온 날이라 그러겠죠. 사실 제가 가족이 없어서 가족처럼 대하려고도 하지만, 다들 진짜 가족처럼 서로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이 마냥 부럽다는 표정이다. 월급 올려 달라고 할 때 ‘내가 널 가족처럼 대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니까 더 챙겨 줘야지’라는 진짜 가족을 보는 듯한 눈빛이다.
사장은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해 주길 바란다. 직원들은 사장이 말로만 가족 타령하지 말고 진짜 가족 대하는 듯한 좋은 대우가 먼저라고 주장한다. 창과 방패 같은 대립. 좁히기가 쉽지 않다.
나는 먼저 대접하는 길을 택했다. 몇몇은 그러면 직원들이 이용해 먹는다고, 그것들은 잘해 주면 기어오른다며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경험담이었다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먼저 대접한 적도 없이, 그저 도시 전설처럼 구전되는 말이 진리인 양 믿는 사람이 하는 말에 불과했다. 해 보지도 않았고, 실상은 돈이 아까워서 그러면서 대단한 노하우인 양 설파하는 놈들.
솔직히 나도 직원들이 잘 따라와 줄 것이란 굳은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받은 만큼은 해 주겠지 정도랄까? 다행히 직원들은 헌신적으로 내 일처럼 일했고, 보상을 고마워했다. 이런 게 인복일 것이다.
“저도 돈 많이 벌어서 남부럽지 않게 직원들 대접 좀 해 줘야겠습니다.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하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없는 살림에 대접해 주면 더 효과가 좋지 않을까요?”
“하하. 그게 알면서도 막상 실행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사장님이 부럽고, 이 회사가 부럽습니다.”
생각조차 없는 사람보다 생각이라도 있는 것이 낫다. 그런 점에서 김 사장은 좋은 사람이다. 적극 밀어줄 테니 지금보다 더 좋은 사장이 되길.
몇 마디 주고받으며 김희철 사장이 있는 테이블에 도착했다. 시장통 전집에라도 온 것처럼 아재들의 거친 입담과 술 냄새가 진동한다.
“김 사장님! 술 좀 그만 자세요.”
“어, 사장님! 어서 와. 뭐 좀 먹었어? 뭐 회식 날까지 그리 바뻐? 회식 때는 딴생각 말고 죽어라 마셔 줘야 해.”
“제가 술 마셔 봐야 얼마나 마시겠습니까? 하하. 그나저나 올해 진짜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뭐. 매출도 쥐똥만큼밖에 못했구만. 내년에 어디 보라고. 내년에 아주 제대로 해 버릴 테니까. 내가 못해도 오디아이한테만큼은 질 수 없지.”
김희철 사장이 선장으로 있는 태인산업은 반년 반짝해서 60억 넘는 매출을 올렸다.
아주 훌륭한 성적이지만, 다른 사업부서에 비해 많이 초라하다. 민수변압기 시장에서 탁월한 영업쟁이로 활약했던 우리 김 사장이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반면, 부인인 황미연 사장이 이끄는 ODI는 올해 무려 880억 매출을 올렸다. 엄청난 격차가 부부 간의 경쟁에 불을 붙인 것 같다.
집에서도 쭈구리로 사는데 밖에서도 그리될 수 없다는 김 사장의 포부. 내 적극 응원하리라!
“하하. 저도 힘 좀 써 보겠습니다. 여기 인사 나누시죠.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님이라고, 우리 회사 많이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회식한다고 부산에서 여기까지 찾아주셨네요.”
“하하. 본의 아니게 회식에 끼게 됐습니다. 저번에 창립기념 행사 때 얼핏 인사드렸는데,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은하무역 김상진입니다.”
“김희철입니다.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가족들 데리고 와서 술 한잔 제대로 못했네요. 얘기 들어 보니까 술 좀 하신다던데, 오늘 달려도 되겠지요?”
“하하. 각오하고 왔습니다. 이래 봬도 제가 마, 부산 싸나이 아니겠습니까?”
술독 퍼붓기 전에 운이나 띄워 놓고 가자.
김희철 사장과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 두 김 사장을 위한 새로운 돈벌이가 생각났다. 황 사장이 먼저 냄새를 맡고 코아 수출을 계획하고 있으니, 김희철 사장도 뒤처지게 둘 순 없다.
품질 좋은데 가격까지 착한 폴리머부싱으로 이 바닥을 슬슬 평정하고 있는데, 고작 이 바닥으로 만족할 생각은 아니었다. 중국도 평정해야지!
올해 태인산업이 생산체제 구축하며 국내 영업에 힘썼다면, 내년엔 해외로 뻗어 나가게 해 주고 싶다.
“이거 두 분 다 김 사장님이라 부르기가 애매합니다. 하하. 여기 김 사장님이 중국통입니다. 사장님 덕분에 수출 잘하고 있는데, 형님, 부싱도 중국 진출해야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가만있을 수 없지요. 사장님께서 결심만 해 주시면, 제가 중국 바로 날아가서 판로 좀 뚫어 보겠습니다.”
김상진 사장이 반색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기저기서 중국 수출한다고 붙잡고 있으니, 오늘 회식 따라온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흡족해할 것이다.
우리 회사에 연관된 사업에 대해서는 엄청난 의욕을 보이는 김 사장답다. 농담으로 건넨, 우리 회사 직원이 되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면 하는 바람도 있다. 저런 직원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김희철 사장도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래, 이제 생산량도 충분할 만큼 늘렸으니까, 태인산업도 큰물에서 놀아야지. 김 사장님, 어떻게 중국 진출 가능하겠습니까?”
“뭐, 부싱이라고 하셨죠? 저야 부싱이 뭔지도 모르지만, 두들기다 보면 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마, 오늘 여기서 진득하게 얘기 함 해 보입시다.”
“하하. 우리 김 사장님, 사람 화끈해서 좋네. 얘기도 좋지만, 일단 제 술 한 잔 받으시죠.”
“좋지요. 아주 가득 따라 주십쇼.”
두 김 사장이 죽이 잘 맞는 것 같으니, 난 굳이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겠다. 김희철 사장에게 불꽃만 살짝 튀겨 주면 될 것 같다.
“형님, 오디아이도 방향성코아 수출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시죠? 코아는 단가가 세서 수출길 열리면 엄청나요. 이거 이러다 내년에 오디아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 그래? 황 여사 걔는 나한테 암말도 안 하더니만, 아주 나 피 말려 죽일 셈이구만? 내년에는 무조건 오디아이 따라잡을 거니까 많이 좀 도와줘!”
“저 말고 여기 김 사장님이 많이 도와주실 겁니다. 제가 대략 시장 조사해 보니까 코아보다는 부싱이 훨씬 가능성 높습니다.”
“그래? 하하. 그럼 당장이라도 준비해서 중국 날아가야지. 아, 이거 회식 때는 죽어라 마셔 줘야 하는데…….”
민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 애자 시장에는 폴리머가 발을 못 붙이고 있다. 안 깨지고, 기름 안 새는 부싱을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격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제품은 그 벽을 넘을 것 같다. 중국이야 도기애자 생산국이라 가격으로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산 도기애자의 무지막지하게 싼 가격이 무섭긴 하다.
그래도 툭하면 깨져 나가는 중국산에 질려 버린 업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알라스카에 김치냉장고 팔고, 사우디에 온수매트 파는 것이 영업 아닌가! 두 김 사장이 손을 맞잡으면 우리 폴리머부싱의 중국 진출도 문제없을 것 같다.
“김 사장님! 뭐가 걱정이십니까? 죽어라 마시면서 얘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 사장님께서 호텔 잡아 준다고 하셨으니까 밤새 마셔도 됩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또 짠 한번 하시죠.”
두 김 사장이 맥주 한 잔씩 원샷하고 나서는 의기투합한 모습이다. 난 걸리적거리지 말고 둘이 청실홍실 하라고 내버려 두자.
“사장님들, 저는 다른 테이블 순회공연이나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그래. 사장님은 어차피 술 얼마 안 마실 거니까 테이블 돌면서 성과급 준 거 칭찬이나 받으라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하하.”
“내가 우리 김 사장님이랑 잘 얘기해서 결과물 멋들어지게 만들어 볼게. 중국? 중국이고 상국이고 하국이고 간에 어디든 팔아재껴야지. 매출 고작 60억 해서 어디에 명함이라도 내밀겠어? 하하.”
김희철 사장답지 않은 아재 개그에 분위기가 냉랭해질 뻔했다. 10년 전쯤이면 어디선가 아이스맨이 나타났을 것 같다. 추억의 개그 ‘릴레함메르’도 생각난다. 아, 나까지 왜 이런담.
오늘 무려 200억 원을 썼고, 개인적으로도 2억 원을 썼다. 돈 쓰는 재미가 너무 좋아서 과하게 흥분했다. 인간적으로 초딩 때 했던 개그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했어.
운 띄우고, 살짝 불꽃만 튀겨 줬는데도 두 김 사장은 맥주를 물처럼 마시면서 사업 얘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이 분위기, 이 열기. 내년에도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