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23)
223 기쁨과 사랑
크리스마스이브를 이틀 앞둔 오늘. 난 돈 보따리 두둑하게 풀었다. 이제 큼지막한 칭찬 보따리 들고 다니면서 수거할 일만 남았다. 슬슬 순회공연하면서 돈 쓴 보람 좀 느껴 볼까?
연말회식 장소로 간택된 씨푸드 뷔페를 작살내고 있는 테이블로 발길을 돌렸다.
저쪽 테이블에 박태영이가 신 나서 데시벨을 높이고 있다. 우리 회사 육상 꿈나무이자 22명으로 늘어난 화정보육원 출신의 ‘오야봉’이다.
“태영이 너, 기분 엄청 좋은가 보다?”
“하하. 사장님! 사랑합니다.”
보자마자 사랑 타령부터 날리니 민망하군. 돈 두둑하게 받은 기쁨이 사랑으로 돌아오니, 민망해도 기쁘다.
“한몫 두둑하게 챙겼다고 회사 때려치우지 말고 잘 다녀라. 알았지?”
“걱정 마세요, 사장님. 돈까지 잘 주는데 미쳤다고 때려치웁니까?”
태영이 말대로 누가 회사를 나가겠냐마는 과감히 사표를 내는 직원도 있긴 했다.
지금까지 7명. 180명이라는 인원에 비하면 아주 소수에 불과하지만, 우리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 자체가 몹시 마음에 걸렸다.
숱한 설득에도 어림이 없더라. 회사와 안 맞다고 생각하거나, 돈보다 꿈을 찾아가겠다는 이들에게 설득은 무용지물이었다.
역시 삶에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 지난 2년이 직원들 풍족하게 살게 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내 집 같은 회사, 꿈도 실현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갈 생각 말고 부지런히 다녀. 내년에 공장 확장하면 편의시설 대폭 만들어 줄 테니까. PC방, 노래방은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들고, 합주실도 몇 개 만들 거야. 어때? 솔깃하지?”
“사장님! 야구장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이왕이면 돔구장으로요!”
이 새끼가…… 오냐, 내가 쌈빡하게 돔구장 하나 지어 주마. 까짓것.
“스크린 야구장 하나 만들어 줄게. 야구장은 좀 후달린다야. 인마, 너도 이번에 돈 많이 받았잖아? 야구장 짓게 기부나 해.”
“크크크. 사장님, 저 이번에 3등급이라고 1억 3천 받았거든요? 욱진이는 4등급이에요. 제가 제쳤어요. 크크.”
싱글벙글한 태영이를 보고 있자니 사소한 걱정이 찾아왔다. 괜한 오지랖인가 싶지만, 20대 초반에 억 단위 돈을 만지는 것이 괜찮을지 말이다.
성인이고 힘들게 번 만큼 헛되게 쓰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지만, 주변에 사기꾼들이 좀 많나. 내년엔 재무 컨설턴트 불러다 교육도 시키고, 돈의 소중함을 알게 하도록 일을 더 빡세게 시켜야겠다. 응?
“그래. 너도 고생 많이 했지. 내년엔 더 고생하게 만들어 줄게. 그나저나 이제 욱진이랑 안 싸우지?”
딱 1년 전이었다. 즐겁게 크리스마스이브 보내고 회사로 돌아왔더니 쌈박질하던 태영이와 욱진이. 잘 마무리 지었지만, 내심 서로 앙금이 쌓인 것이 아닌지 우려됐다.
“에이, 제가 무슨 앱니까, 쌈박질이나 하게요? 서로 개새끼 소새끼 해도 나름 잘 지낸당께요.”
“그래, 인마. 이제 그만 싸우고 착실하게 좀 살어. 안 그래도 욱진이 내년에 군대 간다고 울적해하는데 위로 좀 잘해 주고.”
“네, 알아요. 그래서 나름 잘해 주고 있어요. 저 요새 진짜 욱진이 신경 안 건드리려고 애쓰고 있어요.”
보호종료아동은 군대 안 가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군 면제조건에 해당 안 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욱진이는 보육원 양육 기간이 3년밖에 안 된 터라 얄짤 없이 영장이 나왔다.
사실 고아라고 해서 천애고아인 애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부모가 생존해 있지 않더라도 부양의무자는 분명 존재한다. 부양의무자이지만, 내 새끼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보육원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
가족관계증명서상으로는 부모가 없지만, 생존해 있는 경우도 꽤 있다. 보육원 출신 우리 직원들이 돈 좀 만진다는 소문이 돌면 난데없이 부모가 나타나는 일도 생길 것 같다.
사는 게 뭔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딱히 좋은 생각은 안 들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뭐.
“그리고 보육원 출신끼리 몰려다니지 좀 말고. 화정보육원 인원 늘었다고 요새 아주 기세등등해!”
“잘 지내고 있당께요. 같이 살던 애들이라 몰려다니는 거지, 딴 애들이랑도 잘 놀아요. 아, 진짜 인자 안 싸워요! 저도 내년이면 대학생입니다. 대학생이 싸우면 되겠습니까? 하하.”
“너 소문난 돌대가리인데, 수업 잘 들을 수 있겠냐? 내가 너만 보면 걱정돼서 밤에 잠이 안 온다야.”
“아, 진짜!”
역시 우리 애들은 까야 제맛이다. 축구할 때마다 공 한번 제대로 못 차게 하는 나쁜 놈들.
우리 회사에서 가장 골칫덩어리, 욱하는 성질 때문에 거친 쌈닭이었던 태영이가 이제는 믿음직한 직원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젊으니까 가능한 행동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 줬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싸웠다는 얘기가 한참 동안 들리지 않는다.
일만큼은 잔머리 안 쓰고 성실하게 하는 애가 싸움도 안 하니,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내가 부모도 아니고, 잘하고 있으니 과하게 간섭하지 말자고. 난 월급만 잘 주면 된다.
다른 테이블로 이동하려고 주위를 돌아보니, 보육원 출신 직원들 총대장인 홍철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23살이지만, 안 해 본 일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 다 했던 홍철이. 우리 회사 들어온 뒤로 얼굴에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홍철아. 그만 먹고 담배나 한 대 피우러 나가자.”
“넵. 사장님!”
홍철이가 씨푸드로 가득한 묵직한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누가 봐도 무지막지하게 먹은 모습이다. 이 가게 사장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싶다.
건물 옥상에 마련된 흡연구역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겨울바람에 라이터가 금방 꺼져 버린다.
“사장님, 여기요.”
20대 라이터의 화력이란…….
“사장님 고맙습니다.”
말도 꺼내기 전에 홍철이가 선수를 치고 나왔다. 한 살 어린 혜정이와 결혼하겠다고 부지런히 돈 모으겠다는 녀석에게 목돈을 마련해 줬으니 무지하게 고마울 것이다.
“뭐 혜정이랑 당장이라도 결혼할 것처럼 그러냐?”
“헤헤. 원래는 우리끼리 모은 돈이랑, 내년에 3년 차 되잖아요? 회사에서 들어 준 적금 나오면 그 돈 모아서 내후년이나 결혼하려고 했는데, 당장 해도 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사장님한테 주례 부탁하려고 했는데…….”
아휴, 신발. 서른세 살짜리가 무슨 주례냐! 생각만 해도 임플란트 하러 치과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놈이 나를 노땅 취급하려고 하네. 내가 주례하는 게 말이냐 되냐! 당연히 너네 최 원장님한테 부탁드려야지!”
“아! 그러네요. 하하.”
2등급을 받은 홍철이와 4등급을 받은 혜정이가 이번에 받은 돈만 2억 6천만 원이다. 젊은 애들의 흔한 결혼 걱정 따위는 전혀 안 해도 될 돈이다.
내가 이렇게 사랑의 결실을 맺어 주는 히메나에오스로 등극하는구나. 주례 얘기만 하지 말아 다오.
“근데 너 서둘러야 해. 잘못하면 우리 회사 1호 결혼 타이틀 빼앗길 수 있다.”
“네? 누가 또 결혼해요? 제가 알기론 없는데요?”
“한 부장 말이야. 지금 분위기로는 내년에 식 올릴 것 같은데?”
“한 부장님요? 와! 저한테는 그런 얘기 전혀 안 하더니, 완전 배신이네.”
얼마 전 덕준이가 넌지시 얘기를 했었다. 아무래도 내년엔 결혼해야겠다고 말이다.
연애 기간은 고작 반년이 넘은 정도지만,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났더니 압박이 장난 아니더란 말과 함께. 결혼은 당사자 간의 일이 아니라 양 집안의 일이라고 하더니만…….
“아직 아니지만, 축하하고, 준비 잘해. 돈 들어갈 데 많아서 정신 안 차리면 돈 쭉쭉 빠진다고 하더라. 관혼상제할 때 사기 치려는 놈들 많으니까 조심하고.”
“관혼상제요? 그게 뭐예요?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결혼식 같은 큰일을 말하는 거야. 너 진짜 일 끝나면 애들이랑 게임만 하지 말고 책 좀 읽어라. 책 읽기 싫으면 웹소설이라도 읽어!”
“하하. 책만 펴면 잠이 와서요. 대신 혜정이가 책 많이 읽어서 괜찮아요.”
아무래도 직원들에게 인문학 강의도 종종 열어 줘야겠다. 회사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전기공학이지만, 상식과 인문학적 소양도 가미되면 더 좋을 것 같다. 내년에는 일에만 쫓기지 말고 여유를 가지며 이것저것 많이 해 보자고.
“그나저나 요즘 애들 어때? 예전처럼 그렇게 싸우지는 않지?”
“그럼요! 그 꼴 보이면 제가 가만히 안 두죠. 근데 확실히 올해는 애들이 덜 싸우긴 했어요.”
“그렇게 서로 부대꼈으면 이제 그만 싸울 때도 됐지.”
“아니요. 그게 아니라 올해 진짜 힘들었잖아요? 숙소 들어오면 피곤에 쩔어서 그런가, 서로 시비도 안 걸어요.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 짜증 나게 하면 막 죽이고 싶잖아요?”
새로운 조직 관리가 이런 건가 싶다. 군대도 빡센 곳은 상대적으로 내무생활이 편한 것처럼 우리 회사도 그렇게 직원 간 화목이 도모되는가 보다. 그렇다면 내년엔!
“그거 좋은 현상이네. 내년에도 더 힘들게 해 줘야겠구나. 내가 일 엄청 물어 올 테니까 기대해.”
“아…… 사장님.”
현장에서는 베테랑들이 잡아 주고 기숙사에서는 홍철이가 잡아 주니 회사가 말썽 없이 잘 굴러간다. 적재적소에 인재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근데 너 결혼해서 기숙사 나가면 어쩐다니? 이인자들이 가만 안 있을 것 같은데?”
“하하. 걱정 마세요. 얼마 전에 형님들 몇 분 들어오셨잖아요? 형님들 눈치 보느라 나대는 애들 없을 거예요. 특히 영석이 형 있잖아요? 포스가 장난 아니에요. 그 형 있어서 애들 찍소리도 안 할 거예요.”
경력자 채용할 때 입사한 이영석이라는 직원. 기숙사의 학생주임이 된 모양이다.
얼굴이 험상궂게 생기긴 했어도 말할 때는 되게 순둥이었다. 소싯적에 좀 놀았는데, 나이 서른 되고 나서는 정신 차리고 산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현장 순시하다가 반팔 입고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밥 로스가 그림을 그립시다를 해 버린 팔뚝. 홍철이 말로는 몸 전체가 도화지라고 하더라.
정말 착실하고, 예의 바르고, 배려심도 쩌는 사람인데, 몸에 그린 그림 몇 개로 쌈박질하는 애들 기선을 제압해 버렸다고 하니, 인복도 이런 인복이 없다.
“영석 씨가 포스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래도 착한 사람이니까 너무 겁먹진 마러. 사람은 지금 착하면 그냥 착한 사람이야.”
“하하. 네. 그 형 되게 좋아요. 근데 애들이 좀 무서워하긴 하더라고요. 요새 여자애들 늘었잖아요? 이 새끼들이 괜히 막 센 척하고 그러는데, 영석이 형이 아무 말 안 하고 쳐다만 봐도 꼬랑지 내린다니까요. 하하하.”
창립기념 행사 때의 절절한 호소가 먹혔는지, 여자 생산직 직원이 꽤 늘었다. 아직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성비 불균형이 아주 약간 해소되긴 했다.
여자 직원이 증가하니 남자 직원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향수 냄새가 구리스와 신나 냄새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홍철이 말처럼 허세 가득한 몸부림을 보였다. 암컷 앞에서 센 척하는 것은 수컷의 본능인가 보다. 서로 연애들 많이 해라.
나날이 새로워지는 모습에 과거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진짜 너네들 처음 들어왔을 때 징글징글했다. 그치?”
“헤헤. 저희들 땜에 사장님이랑 부장님이 고생하시긴 했죠.”
나와 덕준이가 회사에서 살 때 밤중에 수시로 ‘쓰레빠짝’ 끌고 나왔어야 했다. 툭하면 싸우고, 자고 일어나면 한 놈 눈탱이가 밤탱이 돼 있고 말이다.
공장장한테 끌려가면 하루 종일 지속되는 훈화말씀으로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히는 것을 아니, 우리 선에서 해결하자고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싸우고 또 싸우고. 징글징글한 놈들.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이 맞았던 것일까? 그렇게 싸우던 놈들이 이젠 선도부랍시고 새로 들어온 애들한테 사이좋게 지내라며 정신 교육하고 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네놈들이 우리 회사의 미래다. 틀니 할 때까지 오래오래 다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