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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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247화>247 키다리총각
준희 누나와 술자리, 각 일 병씩 해치웠다.
소주 네 잔이 치사량이었던 내가 어느새 한 병도 거뜬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무엇보다도 중전기조합의 그 죽일 놈들을 죽여야 할 명분이 또 생겼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누나! 제가 총대 메고 그놈들 깡그리 밟아 줄게요. 그놈들 짓밟아 버리면서 개꼰대짓 하면 큰일 난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치겠습니다. 저 한다면 하는 놈인 거 알죠?”
“그럼요. 그거 아니까 뭐라도 도와주려고 하는 거죠. 어? 술잔 비었네?”
공공의 적을 안주 삼아 홀짝거렸더니 취하지도 않는다. 고깃집에서 나와 찬 바람 쐬니까 술 마신 것 같지도 않다.
“누나! 잘 먹었습니다!”
“하하. 뭘 새삼스럽게 그래요. 명절 혼자 보내서 쓸쓸할 텐데 같이 보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은 말 한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같이 거문고 타고 싶을 정도다.
“저는 혼자서도 잘 놉니다. 하하. 인천 언제 올라가요?”
“내일 아침에요. 근데 벌써 인사하려고요? 아직 9시밖에 안 됐어요!”
“어휴, 당연히 이차 가야죠. 저는 누나랑 오래오래 있는 게 좋습니다. 하하.”
누나의 적극성이 예전과 양상이 달라졌다. 예전의 누나는 일적으로는 적극적이었어도, 사적으로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친하긴 해도 경계를 넘기 어려웠던 동네 누나 같은 느낌?
지금은 사적인 감정에서도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보가 허물어진 것 같다. 보에 난 구멍으로 조금씩 물이 새어 나오다 어느 순간 봇물이 터져 버린 느낌. 네덜란드 소년이 와도 터진 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오늘은 정수 씨네 집에 가 볼까요? 집 구경시켜 줄 때도 됐잖아요?”
“제가 뭘 믿고 누나를 집에 데리고 갑니까?”
“하하. 안 잡아먹을 테니까 걱정 말아요.”
누나가 팔짱을 진하게 끼면서 드라이브를 과감하게 걸었다.
사귀자는 고백을 넘어 청혼을 해도 바로 들어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난 이 감정을 더 즐기고 싶다. 사귀기 전의 애틋한 감정.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만끽하겠나!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며 마트 앞에서 한참을 실랑이하던 누나를 억지로 끌고 집으로 데려왔다.
보일러를 틀어 놔서 늘 훈훈한 집. 예전 같았으면 얼음장 같은 집에서 부들부들 떨다가 잘 때쯤에야 온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부유한 삶이 안겨 주는 소소한 행복이다.
“구조는 똑같죠? 뭐 특별한 것 없습니다. 나름 청소도 부지런히 하고 깔끔하게 삽니다. 하하.”
누나가 집 여기저기를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흠 잡을 데가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깔끔하게 해 놓고 사네요. 혼자서 뭐 하고 사나 궁금했는데, 회사에서 일만 하고 사나 봐요? 하하.”
“청소도 열심히 합니다!”
피지컬을 지배하는 것이 멘탈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태양전기 다닐 땐 피곤에 절어서 집에 오면 자기 바빴다. 청소는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사장과 꼰대들 욕하면서 내일은 어떻게 보내나며 한숨 쉬는 것이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다.
지금도 바쁜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삶의 질이 달라졌다. 청소도 부지런히 하고 있고, 책을 펴고 몇 줄이라도 읽다가 잠이 든다.
직원들에게 스트레스 주는 사장. 대체 그렇게 해서 얻는 이익이 뭔지 모르겠다.
하긴 이등병이 PX 갔다고 집합 걸어 지랄하던 상병의 마음을 누가 이해하랴. 그 상병이 결국 영창을 가듯이, 그런 사장도 파산 신청하러 법원을 가야 한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요? 집 구경 다 했으니까 뭐라도 내와 봐요.”
누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니, 아차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맥주라도 사다 둘걸. 대접할 것이라고는 캡슐커피밖에 없네.
“제가 술을 잘 안 해서 집에 그 흔한 맥주도 없네요. 커피로 위안을 삼으시죠?”
“하하. 바른 생활 사나이도 아니고. 혼술도 안 하나 봐요?”
치열하게 일하고 퇴근해서 샤워하고 와서는 맥주 한 캔 까면 그리 좋다고들 하더라. 시도해 봤는데, 몸에 열이 나서 잠을 못 자겠더라.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알코올 분해 속도도 제각각이다.
약간 진하게 내린 따뜻한 커피 한 잔. 그 커피가 식을 때까지 우리는 대화에만 열중했다. 물론 사업 얘기도 빠지지 않았지만, 개인에 대한 대화 비중이 더 높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슬슬 일어나야겠어요.”
“시간 빨리 가죠? 여기가 정신과 시간의 방입니다.”
“네? 그건 뭐예요?”
누나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아차 싶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그 시절에 레드문과 바사라에 빠졌을 것이니 말이다. 향유했던 문화의 차이. 그걸 극복하는 과정도 즐거울 것이니라.
“하하. 일단 가시죠. 데려다줄게요.”
“됐습니다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얘기니까 나올 필요 없어요. 집까지 금방인데 뭘.”
“누나랑 더 있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가시죠.”
“아주 말은…… 전이랑 많이 달라진 것 같네? 하하.”
전과 많이 달라졌지. 이성애자 남녀가 서로 만나면 육체적인 친밀함을 키우려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정서적 교감이 주는 쾌락도 아주 좋다.
누나를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줬다. 당연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벼운 포옹 정도야 아무 일도 아니지 뭐.
이제 설 명절의 5일 연휴가 시작됐다. 늘 변함없는 혼자만의 명절이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아서 쓸쓸하지 않다.
고맙게도 덕준이가 일찍 내려와 나를 찾았다. 덕준이와 오윤경 기자 커플에게 저녁 대접하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잘됐다.
일찌감치 약속 장소인 영산포 유일의 참치집으로 갔다. 예전에 여기서 만났었던 강호원 교수가 생각났다. 한 달 뒤면 개강인데, 17학번으로 들어가는 우리 직원들, 전기 박사로 만들어 주길.
입학 선물로 뭘 해 줄지 고민하는데 방문이 열렸다.
“일찍 왔네?”
“안녕하세요, 오빠.”
잘 어울리는 커플이 등장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다. 친구 사이에 그런 얘기 하면 안 친한 것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와 덕준이는 그런 삶을 살았으니 뭐.
“제수씨, 어서 오세요.”
“제수씨라니! 내가 너보다 형인데 형수님이라고 해야지!”
빠른이 어디서 형 타령이야! 괜한 걸로 벌이는 신경전. 우리는 친구 사이. 나와 덕준이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빈속을 달래 줄 죽을 시작으로 기름진 참치회를 흡입했다. 적어도 3회차까지는 1회차 같은 퀄리티가 유지되는 이 집, 마음에 든다.
근황 토크로 분위기가 달궈졌으니, 오 기자의 힘을 빌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
“윤경 씨. 대한전력 얘기 알고 있죠?”
오 기자가 참치회를 한입 가득 씹다가 놀라서 꿀꺽 삼켜 버렸다. 말 걸 때는 타이밍을 잘 맞췄어야 한다. 난데없이 하임리히법 시행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럼요. 덕준 오빠한테 다 들었어요.”
“그 전부터 알았던 건 아니고요? 기사 검색해도 단신 정도로만 몇 개 나오고 말던데, 별 이슈가 안 됐던 모양이죠?”
“대한전력 출입하는 선배한테 넌지시 듣긴 했는데, 그런 일이 있더라 정도가 다였어요. 중앙지나 경제지 쪽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쪽은 아무래도 기사 쓰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기삿거리가 안 된다는 것인지, 대한전력 눈치 보느라 그랬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확실한 건 대한전력 커뮤니케이션실이 열일했다는 것이다. 기사 자체가 나오는 것까지 어찌 못했지만, 대부분 단신으로 처리될 정도였다.
오히려 대한전력이 혁신산단 입주기업을 위한 지원펀드를 2천억 규모로 확대한다는 기사만 가득했다. 기사로 기사 밀어내기. 역시 거대 기업 홍보팀답다.
“덕준 오빠가 반격하겠다고 그랬는데, 제가 뭐 도와 드릴 일이라도 있어요?”
오 기자가 제 발로 먼저 도움 손길을 내밀었다. 옆에 앉은 덕준이가 사발 많이 풀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덕준이 녀석, 1894년에 태어났으면 사발통문 꽤 돌렸을 것이다.
“도와줄 일은 많은데, 부탁하기가 그래서 그렇죠.”
“이보게, 지정수 회장님. 내가 이미 다 얘기해 놨어. 윤경이도 우리 대의에 동참하기로 했으니까, 그냥 얘기하시라고요.”
예의상 한 번 뺏더니, 덕준이가 바로 활시위를 당긴다. 우리 사이에 예의 차릴 필요 없다는 뜻일지리라.
“아, 맞다!”
덕준이가 쏜 화살에 맞아 바로 입을 열려고 했는데, 오 기자가 탄성을 내뱉었다. 왜!
“덕준 오빠한테 들었는데, 축하가 늦었네요. 회장 승진 축하드립니다. 하하. 근데 좀 그래요.”
“우리 회장님이 어때서! 우리 정수가 30대라도 아주 올드해서 회장 직함이 딱이야. 저번엔 릴레함메르를 얘기하더라니까. 언제 적 릴레함메르야 대체.”
“응? 그게 뭐야?”
얘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다. 7 대 3으로 가르마 타고 근엄하게 앉아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이래서 회장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는데…… 직원들에게 당한 기분이야.
“아이고, 회장님. 잡담 죄송합니다. 한 말씀 하시죠.”
덕준이 저놈이 주범이야. 정신 차리고 할 얘기나 마저 하자.
“회장은 저도 좀 그래요. 하하. 암튼 하던 얘기 하자면, 부당한 청탁 같아서 껄끄럽긴 한데요, 그래도 수도권 기업들의 지방 중소기업 죽이기를 이대로 지켜볼 수가 없죠.”
“하하하. 오빠! 그냥 편하게 얘기하셔도 돼요. 그래서 제가 혁신산단 기업들하고 수도권 기업들 비교하는 기사 쓰면 되죠? 이를테면 혁신산단 이름에 걸맞게 이 지역 기업들이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고 있다, 뭐 이런 거요?”
“아주 좋지. 거기에 수도권 기업들의 관행처럼 이뤄진 여러 불법행위들 고발해 주고. 이제 관행으로 포장된 불법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어때? 그럴싸하지?”
오 기자와 덕준이가 북 치고 장구를 쳤다. 그럼 난 상모만 돌리면 되는 것인가!
“좋네요. 우리 회사랑 안성파워, 금성전기만 취재해서 소개해 주면 딱 비교가 될 겁니다. 진짜 정도경영 하는 회사들입니다.”
“그렇지. 그건 내가 보증하지. 아니면 우리 조합이랑 중전기조합 비교하는 식으로 그려도 괜찮을 것 같고.”
덕준이가 왔다 갔다 하며 장구 치느라 바쁘다. 오 기자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청탁이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경제부 생활하면서 우리나라 기업 문화나 악습들 고발하는 기사 쓰고 싶었거든요.”
“쓰면 되지 않나요?”
“지방지라 기회가 없긴 했어요. 우리 사장님이야 말로는 권력과 돈에 굴하지 말고 정론직필 하라고 하는데, 속내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신문사가 대주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광고 아니면 유지하기 힘들잖아요. 은근히 눈치 줘요.”
언론사뿐이겠나. 지방은 뭐든 다 힘들겠지. 광주에 있는 대기업 공장과 나주에 있는 우리 회사 말고.
“그럼 혹시 나중에 구독이나 광고 요청이 들어올 수도 있겠네요?”
오 기자가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영업부에서 연락이 갈 수도 있어요. 저번처럼요. 돈 받고 기사 파는 것 같아서 창피하긴 한데, 전 기회 왔을 때 쓰고 싶네요. 솔직히 다들 알면서도 중소기업 힘들다고 하니까 쉬쉬했잖아요? 이제 혁신산단에 공장도 꽤 늘었고, 한번 써도 될 것 같아요.”
“까 보면 혁신산단 입주한 회사들도 더러운 짓 많이 할 거야. 근데 기사 나오고 이슈 좀 되면 지들도 최소한 아닌 척이라도 하겠지. 회장님, 안 그렇습니까?”
좋지, 아주 좋지. 훌륭한 일 해 준다는데 신문 몇백 부 사 주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지.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이참에 광주시민일보에 투자 좀 할까요? 거기 자본금이 50억이던데, 한 10억 정도 투자하면 지분 얼마나 줍니까? 경영 불간섭, 편집권 독립보장. 어떻습니까?”
“하하하. 정수 오빠도 가만 보면 생뚱맞게 웃길 때가 있어요. 다 의도한 거죠?”
웃을 때 같이 웃어 주자. 오 기자가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지역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해 준다면 흔들리지 않도록 키다리아저씨 해 주겠다는 건 진심이다.
돈 넘쳐 나는데 그쯤이야. 후훗. 이왕이면 키다리아저씨 말고 키다리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