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49)
249 포섭
궁지에 몰린 적은 너무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것이 군자의 도리일 것이다. 궁지에 몰린 동아일렉트릭 이석균 사장을 부추기는 것은 사업가의 도리이다.
회사가 망할 때가 돼서야 중전기조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이 사장에게 쇼당을 걸었다.
“사장님, 중전기조합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하. 우리 같은 회사가 조합에 안 있으면 어떻게 먹고삽니까? 민수야 하나 마나고 관수로 겨우 먹고사는데, 조합 나오면 길이 없죠.”
“이사장 투표할 때 숫자에서 밀린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구도가 어떻게 됩니까?”
중전기조합 최웅민 이사장은 독재자답게 ‘디바이드 앤 룰’을 잘 써 왔다. 지지세력이 과반을 넘지 않자, 지금은 변압기혁신조합으로 이주한 업체들을 갈구면서 힘을 키웠다.
조합이 떨어져 나가자, 대놓고 폭정에 나섰다. 지지세력만으로 과반이 넘으니 잔챙이들에게 떡고물 나눠 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조합 회원사가 서른네 곳이죠. 문 닫은 회사 빼면 스물아홉 곳입니다. 최 이사장 편이 열일곱이라 내가 반발한들 바뀌질 않죠.”
“그럼 나머지 열두 곳은 최 이사장한테 반기를 드는 곳이라고 봐도 됩니까?”
“글쎄요.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같은 조합이라고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이 다라서요.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제가 사장님 도와 드리려고 그럽니다.”
이 사장이 도와준다는 말에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를 도와준다니요?”
“숫자에 밀려서 중전기조합 어떻게 하기 어려우면, 새로 하나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참에 하나 만들고 중전기조합 없애는 데 같이 힘을 합쳐 보시죠.”
“허허. 조합이라…….”
골치 아픈 표정. 이유를 알 것 같다.
중소기업 가장 큰 단점이 페이퍼워크에 약하다는 것이다. 조합 설립에 들어갈 각종 서류 만들고, 연락 돌리고, 총회하고. 사무실 직원 한 명 있는 회사가 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뭐 동조해 주는 업체가 있으면 얼마든지 해야죠. 근데 출자금도 그렇고,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거 할 시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한번 해 보시죠. 지금 준비하셔야 올해 입찰 전에 마무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새 조합 생기면 제가 적극 도와 드리겠습니다.”
“근데 사장님께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게,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이 사장은 그게 궁금했을 것이다. 도움 받을 일이 딱히 없으니 말이다. 나도 이참에 돈 좀 벌어 보자.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우리 조합 회원사들에게 자재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들 기존보다 10프로가량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변압기에서 10프로면 어느 정도인지 잘 아시죠?”
“그래서 제가 회원사들 끌고 나와서 조합 새로 꾸리면 자재 싸게 공급해 주겠다는 것이죠?”
“그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그것뿐이면 말도 안 꺼냈습니다.”
“뭐가 또 있습니까?”
당연하지! 자동권선기 한 대씩 팔아도 얼만데! 살 수 있는 능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자동권선기 보고 나면 신장이라도 팔아서 사고 싶을 것이야.
“우리 회사 생산원가가 다른 회사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공정이 자동화돼 있어서 그런데, 제가 권선 자동으로 감는 설비 판매하겠습니다. 언제 우리 회사 한번 오시죠. 보고 나면 어떤 건지 아실 겁니다.”
“자동권선기요? 그거 다 있는 거 아닙니까?”
5천만 원짜리 허접한 거 말고 6억짜리!
“하하. 조만간 한번 오시죠. 그리고 우리 조합 세울 때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님께서 도맡으셨으니까, 내려오신 김에 박 사장님 만나서 조언도 듣고 말이죠.”
이 사장이 고민에 빠진 얼굴이다. 고민하게 한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잠자코 있던 덕준이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아까 조합 이사장 편이 열일곱 곳이라고 하셨죠? 혹시 명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일도 아니죠. 잠시만요. 조합 명부가 어디 있더라.”
제때 잘 끼어들었다. 나도 중전기조합 회원사들이 어떻게 갈렸는지 궁금하던 차였으니.
이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서 종이 쪼가리를 뒤적거렸다. 서류 하나 찾으려면 하루 종일 걸리는 중소기업 위엄에 걸맞은 행동이다. 그래도 이 회사는 입구에 누렁이는 없더라.
“여기 있네요. 어디 봅시다.”
이 사장이 다시 소파로 돌아와 회원 명단을 놓고 하나씩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건 네 편, 이건 내 편.
“역시나 제 예상이 맞았네요.”
“뭐가 말입니까?”
덕준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 사장의 궁금함을 받아 냈다.
“제가 재고품 사겠다면서 업체들 한참 돌아다니고 있잖습니까? 사장님께서 이사장 편이라고 체크해 준 업체만 안 갔습니다. 제가 돌아다닌 곳이 세원, 지파워, 영진, 국제 뭐 이렇게인데, 하나같이 빠져 있지 않습니까?”
“이제 확실해졌네요. 최 이사장이 김익환 사장 시켜서 자기 편 아닌 회사한테만 재고품 만들게 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답이 나왔는데, 중전기조합에 계속 붙어 있으면 안 되죠.”
결정타를 날렸다. 명분도 있고, 실리도 있다. 거기에 자존심까지 건드렸으니 나올 대답은 하나뿐일 것이다.
“하아. 이 새끼들을 진짜. 저도요,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탈퇴하고 조합 새로 만들고 싶지요.”
“사장님! 제가 어차피 영업한다고 계속 돌아다니니까 이 업체들 들러서 대신 설득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조합만 만들면 우리 사장님께서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덕준이까지 결정타를 날렸다. 이 사장이 결심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그게 당연한 것이야. 당신도 먹고살아야지.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지 사장님께서 당장 망하게 생긴 우리 회사 살려 주셨는데, 저도 뭐라도 해야죠.”
“생각 잘하셨습니다. 최웅민 패거리는 없어져야 합니다. 제가 그 패거리 밟아 주려고 하는데, 사장님 같은 분까지 피해를 입으면 제가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덕준이가 슬쩍 허벅지를 찔렀다. 왜? 가증스럽다고? 이 정도 연기는 기본 아니겠어?
“하하.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요, 조합 신년회에 처음 왔을 때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생각했어요. 사업 저렇게 하다가 망하겠구나 싶었는데, 하하. 내가 이리 사람 볼 줄을 모릅니다.”
사귀자는 고백도 아니고 낯 간지러워서 못 들어 주겠네.
원래 목표는 너네 다 죽인다는 것이었어. 내가 그나마 아량을 베풀어서 일부는 살려 주기로 했으니까, 고맙게 생각하며 우리 자재 부지런히 사라고.
“참. 우리 사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또 있는데, 제가 대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마무리되는 분위기이다 싶으니 덕준이가 치고 나왔다. 알아서 얘기하셔. 회장님이라고 안 불러서 고맙고.
“중전기조합이 대한전력 고발하면서 우리 회사도 피해를 입은 거 알고 계시죠?”
“아, 맞다. 얘기 들었습니다. 나도 조합회원인데, 그걸 건너 건너 들었습니다. 나 참.”
“우리 회사가 가만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멀쩡히 일 잘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뺨을 한 대 맞았는데요.”
“그래서 뭐 경찰서도 가고 그러셨습니까?”
“경찰서요? 아이고, 그 정도면 말도 안 하죠. 압수수색받고 검찰 가서 조사받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덕준이가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당한 사람은 난데, 마치 자기가 당한 것처럼 리얼하다. 난 음료수나 마시며 경청하자고.
“아이고,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저도 벌금 몇 번 맞긴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사람 진이 빠지던데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사장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지금 평온한 척하셔도 속은 부글부글하실 겁니다. 사장님 그렇죠?”
“커억, 컥. 하하. 사업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지만, 이번 것은 좀 황당하더군요.”
음료수 마시다 사레 들 뻔했다. 둘이 담소 나누는 것 듣고 있으려니, 덕준이가 굳이 대화에 끼워 넣었다. 말한 김에 몇 마디 더 해 주지 뭐.
“그래서 이 사단 일으킨 업체들에게 잘못 건드렸음을 확실히 보여 줄 참입니다.”
“좋죠. 진짜, 이건 사장님께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재고 변압기 만든다고 날린 돈 생각하면 이가 갈려요, 이가.
복수심에 불타올라 임플란트 시술을 고민하는 이 사장이 뭐든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1년 빡세게 해야 겨우 벌 돈을 한 방에 날려 버렸으니, 잠은 올까 싶다.
“사장님들 말씀하시는데 제가 자꾸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하던 얘기는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하하.”
덕준이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말할 기회를 안 주려는 느낌이다.
“제가 요즘 우리 사장님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저희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제가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하하. 그래서 뭘 도와주면 됩니까?”
“제가 뭐라도 들고 와서는 도와 달라고 해야지, 빈손으로 말씀드리면 됩니까? 업체 돌아다니면서 사장님께서 조합 새로 만든다고 약 좀 풀고 나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그래. 한 부장님도 참 열성적이야.”
“월급 받는데, 돈값은 해야죠. 하하.”
뜸 들이는 덕준이의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동아일렉트릭 이 사장과 만남이 종결됐다.
“멀리서 오셨는데 식사도 못하네요. 다음에 오실 때는 제가, 아니다. 제가 조만간 한번 내려가겠습니다. 말로만 듣던 프라임일렉트릭 공장도 보고, 제가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하하. 그러시죠. 언제라도 찾아오세요. 앞으로 서로 협력해야 하는데, 자주 보면 볼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럼요.”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던 인사를 겨우 마무리하고 차로 돌아왔다. 다행히 견인 안 됐더라.
“덕준아. 이 사장이 사람은 괜찮은 거 같네. 그치?”
“그래 봐야 겨 묻은 개지. 저쪽에 똥 묻는 개가 워낙 냄새 나니까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거야.”
“그래도 우리가 물건 사 준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고맙다고 했다면서?”
덕준이가 모르는 소리 말라는 표정이다.
“그것도 다 끝나고 마무리될 때 한 소리야. 나중에 사정 더 어려워지니까 돈 아쉬워서 팔겠다고 한 거지, 처음엔 죽으면 죽었지 그 가격엔 못 판다고 난리였어. 내가 아주 삼고초려를 했다니까.”
“그래도 잘 마무리됐고, 오늘 얘기도 잘됐잖아?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이번에 좋은 역할을 맡을 것 같긴 해.”
“내가 그래서 아까 막판에 무리한 거잖아. 나 알지? 높은 급들끼리 얘기할 때는 꿰다 놓은 보릿자루 되는 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내가 혹시나 우리 계획 얘기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었군. 짜식, 그건 맘에 들지만, 나를 못 믿는 건 실망인데?
“내가 불안했다는 거냐?”
“말하다 보면 실수로라도 나오기 마련이야. 내가 일단 저 사장 몇 번 더 만나면서 믿을 만한 사람인지 검증되면 그때 이용해 먹을 테니까, 맡겨만 놔. 원래 회장님은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고 마는 거 아니냐.”
“결국 내가 불안했다는 거네!”
“아나, 진짜. 근데 내가 얼마 전에 문득 든 생각인데, 우리 회사가 잘나가잖아? 그게 오히려 독일 수도 있어.”
달라진 덕준이에게 적응될 법도 한데, 내 기억의 덕준이는 여전히 3년 전 그 모습뿐이다. 이리 진중한 모습이 어색할 지경이다.
“뭐가 또 걱정되는데?”
“생각해 봐. 우리가 인천에서 시작해서 얼마 안 있고 바로 나주로 내려왔잖아? 나주 왔는데, 죄다 우리 편이야. 거들먹거리던 자재업체도 다 날리고 우리가 직접 하고. 주변에 너 챙겨 주고 추앙하는 사람밖에 없잖아.”
현실은 세렝게티인데, 난 나주라는 사파리에 있다는 뜻인가? 그 말도 맞다. 내 편만 가득한 곳에서 편하게 지내긴 했지.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잖아? 요샌 변압기 회사들도 찌르고 다니고. 진짜 별의별 사람 다 있더라니까. 진상도 엄청 많아. 저런 놈이 어떻게 사장이라고 앉아 있는지 궁금한 놈도 많고.”
“뭔 말인지 알겠어. 늘 사람 조심하며 살아야지. 너무 순탄하니까 나도 모르게 사람을 쉽게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야성을 다시 길러야겠어. 그런 의미에서 이따 저녁은 행담도휴게소에서 젤 비싼 걸로 먹자.”
“아니, 결론이 왜 그렇게 되는데? 조개구이는? 조개구이는!”
덕준이의 괴성을 한 귀로 흘리고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나를 이리 생각해 주는 직원들이 있는데, 내가 걱정할 일이 뭐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