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77)
277 구경꾼
“박 형! 아 진짜, 이런 거 하나 못하면서 무슨 공장장 하겠다고 그래? 하하.”
공장장 갈구는 소리가 공장에 울려 퍼졌다. 공장이 휑해서 그런지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삼미건설 8,000kVA 변압기 조립을 돕겠다고 금성전기에서 베테랑 2명이 찾아왔다. 준희 누나의 아름다운 배려다.
“몇 번 해 봤다고 유세 떨기는. 잔말 말고 있는 거 다 꺼내 놓고 가라고!”
금성전기 직원들과 친분이 있는 공장장이 갈굼에 지지 않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구찌 놓는 강도가 강할수록 친하다는 증표로 여기는 남자들의 강박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대화이다.
“내 기술이 얼마짜린지나 알고나 하는 소리여? 그래서 이따 진하게 한잔 살텨? 어설프게 살 거면 입도 뻥긋 안 하고.”
“아따, 싸구리가 비싸게 구네. 허허. 내가 대접 제대로 할라니까 일단 한번 풀어 봐.”
몇 차례 티격태격 끝에 노하우 전수비는 홍탁으로 결정 났다. 돈 백만 원을 줘도 모자랄 노하우를 전수해 주겠다고 한 금성전기 공장장이나, 이걸 홍탁으로 퉁 쳐 버린 공장장이나. 멋진 사람들일세.
“누나, 고마워요.”
베테랑 직원과 함께 찾아온 누나에게 진심 그대로를 말했다.
“뭐 이 정도 도움 가지고 그래요. 저거 비싼 기술이에요. 비싼 선물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하하.”
도움이란 말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자본주의적 마인드로는 견적이 안 나오는 거래 말이다.
순수하게 인간적인 감정으로 돕겠다고 생각한 순간 손해와 이득을 따지지 않게 된다. 나도 그렇게 누나를 많이 도왔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로의 도움이 서로의 회사를 키우는 든든한 거름이 됐다.
“우리 사이에 이런 비싼 선물…… 아주 좋죠. 자주 좀 쏴 줘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요. 다 해 줄게요. 하하.”
허세 섞인 대답을 내놓은 누나에게 ‘필요한 건 누나뿐이다’는 쌈마이 멘트를 날리려다 간신히 참았다. 자칭 연애 고수들이라면서 진기명기 조언을 쏟아 내는 직원들 때문에 내 연애 세포가 심하게 오염됐나 싶네.
“제 덕에 고효율아몰퍼스 개발 성공했으니까 쌤쌤으로 치죠.”
“아! 진짜 고무패킹 하나로 소음이 그렇게 줄어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수 씨는 그걸 어떻게 생각해 낸 거예요?”
금성전기는 6월까지도 고효율아몰퍼스 변압기를 개발하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소음이 걸림돌이었는데, 내가 슬쩍 알려 준 힌트 덕에 결국 개발을 끝내고 얼마 전 성적서까지 무사히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긴요. 아직도 저를 평범한 사람으로 보시다니, 좀 실망입니다요.”
“하하. 신내림 받은 사람인 거 잘 알죠!”
한껏 거만하게 얘기했지만, 실제로도 거만이 맞다.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어쩔 땐 호구 같기도 하고 얼빵하기도 하고. 능력도 보잘것없다.
문자님의 은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치트키가 없었다면, 허황된 꿈만 꾸면서 ‘내일 출근하기 싫다’를 되뇌었을 것이다. 처음엔 나에게 왜 이런 축복이 왔냐며 감격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 기억 그대로 가지고 환생이라도 한다면, 그땐 문자님의 은총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문자님께 받은 것은 믿을 수 없는 대박이 아니라, 나같이 평범한 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지금처럼 사기에 가까운 대박은 아니겠지. 그래도 성공 그 자체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잡을 수 있는 미지의 것이 아님은 확실히 알게 됐다.
엄혹한 현실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쭈글거렸던 내가 자신감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문자님과의 만남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오로지 자신감 하나로, 문자님 도움 없이 지금 이뤄지는 이 일을 성공시킬 것이다.
속마음을 읽었기라도 한 듯 공장장이 큰 소리를 외치며 변압기 조립에 들어갔다.
뜨끈뜨끈하게 잘 건조된 중신이 집채만 한 외함에 들어가 기름을 데우고 있다. 공조 장치가 가동되고 있지만, 외함은 열기를 뽐내며 작업자들 땀을 뽑아 가는 중이다.
“자, 자. 뚜껑 가져와!”
“아이고, 형님. 뚜껑은 나중에 해도 돼. 일단 액세서리부터 달아야 한다니까.”
“아니, 일단 뚜껑 올려놓고 와꾸를 잡아야지.”
“아따, 참말로. 그러면 이중으로 일을 한다니까! 내 말대로 해. 그래야 나중에 고생을 안 해.”
금성전기 공장장의 윽박지름에 공장장이 순한 양으로 바뀌었다. 역시 우리 공장장. 곤조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말은 참 잘 들어.
누나도 두 공장장의 사랑싸움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소감을 내뱉었다.
“박호연 공장장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에요. 저 연세에 저렇게 고분고분하기 쉽지 않은데…….”
“우리 공장장님이 스펀지 같은 분 아닙니까? 금성전기 공장장님도 뭐 대단하시긴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우리 공장장님이 처음에는 저랑 말도 안 했어요. 사장 소리도 한참 뒤에 했다니까요.”
“그렇게 인정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원래 공장 바닥은 공장장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예요.”
서로 공장장을 칭찬하며 조립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평온했다. 일반적이었다면 곡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을 것이다.
외함 안으로 들어가서 펄펄 끓는 기름 위에서 무식하게 큰 너트를 이가 갈릴 정도로 조이다 보면 ‘은나아’ 소리가 절로 난다. 힘쓰다가 발이라도 삐끗하면 기름온천에서 묵은 때를 불릴 수도 있다.
우리 회사는 그럴 필요가 없다. 리프트에 붙여 만든 대형 부싱체결기가 시원하게 조여 줬기 때문이다. 중전기조합 죽인다고 그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직원들 채찍질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어머나. 부싱체결기를 저렇게 키운 거예요?”
이어지는 누나의 감탄사. 반년 동안 저것만 만들고 있었다우.
“돈 벌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저것도 탐나죠?”
“하하. 탐만 내려구요. 저거 사겠다고 해도 내년이나 가능할 것 아니에요? 그냥 설비 욕심 안 내는 게 맘이 편해요.”
기다림에 지쳐 버린 우리 누나. 자동권선기부터 부싱체결기까지, 그리고 연애마저.
기본은 반년씩 기다려야 했으니, 저 새끈한 설비를 사겠다는 소리조차 하지 않는다. 금성전기가 전력용 변압기 시작한다고 하면 내 돈으로 선물해야겠군.
“설비는 됐고, 고무패킹 같은 힌트라도 자주 알려 주세요. 진짜 고무패킹은 대박이에요. 어떻게 그걸로 소음 잡을 생각을 했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불과 10분 전에 했던 얘기를 또 꺼냈다. 아몰퍼스 변압기의 고질병인 소음을 고작 고무패킹 끼워 넣는 걸로 죽여 버린 것이 엄청난 감명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깟 고무패킹이 그리 돈이 될 줄 말이다.
설계 자문으로 고효율아몰퍼스 개발에 성공한 우리 조합 회원사들로부터 자문료로 3, 4천만 원씩 받은 것뿐만 아니라, 로열티로 1대당 5천 원씩을 받기로 했다. 얼마 안 되는 푼돈이지만, 쌓이면 연간 2억에 가까운 돈이다. 문자님께 큰절 한 번!
“발상의 전환이 곧 기술이죠. 쉽게 풀릴 문제도 어렵게 생각하면 안 풀릴 때가 있잖아요.”
문자님의 은총 때문이지만, 내가 생각해 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말을 꾸며 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내가 뭔가를 생각해 내 보리다!
“근데, 우리도 티너트 감싸는 방식으로 했는데도 정수 씨네만큼 안 내려가던데요? 합격 기준 안으로 넉넉하게 들어왔으니 상관없긴 한데, 궁금하네요. 그거 말고 또 뭔가가 있어요?”
“그럼요. 고무패킹 하나로도 충분하긴 한데, 소음이라는 것이 갑자기 확 커질 때가 있잖아요? 그거까지 감안하면 기준치보다 훨씬 낮춰야죠. 고무패킹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긴 한데, 금성전기 자존심 지켜 주기 위해서 안 알려 주려구요.”
“하하.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죠? 뭔가 또 있다라…… 어디 두고 봐요. 어떻게든 찾아낼 테니까.”
이게 과연 연인과의 대화인가 싶다. 각자 사업체를 이끄는 사장으로 만나 연인이 된 우리. 대화 한번 신선하니 좋네.
“그것도 어려운 게 아니니까 잘 찾아보세요. 안성파워 보세요. 저한테 도와 달란 소리 한 번을 안 하고도 개발 끝냈잖아요. 누나도 할 수 있어요!”
“저도 정수 씨한테 도와 달라고 한 적 없어요! 먼저 힌트 준 거잖아요.”
“아니, 그리 간절한 표정 지어 놓고, 이제 와서 발뺌입니까? 하하. 그나저나 하위용량 양산도 끝냈어요?”
대한전력 개발은 성적서 나왔다고 끝이 아니다. 대표규격으로 개발 성공해도 하위용량들 개발 못하면 연체의 늪에 허덕이니 말이다. 고효율아몰퍼스가 10, 20, 33, 50, 75, 100, 167kVA로 7개 용량이라, 부지런히 철판 두들길 때이다.
누나가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받아 냈다.
“그럼요. 모든 준비 끝! 이제 입찰만 잘 끝내면 됩니다. 정수 씨 말대로 33키로가 좀 힘들긴 했는데, 우리 회사 짬바 알잖아요? 하하.”
“짬바? 짬밥 아니에요?”
“어휴, 이러니 아재 소리를 듣죠! 제가 이런 것까지 교육시켜 줘야 해요?”
“짬바라고 뭐 또 생겼어요? 하하. 앞으로 신조어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 여사님.”
30대의 비극이다. 마음은 여전히 20대인데, 머리와 몸은 30대라는 비극.
마음만으로는 20대들과도 잘 어울릴 것 같지만, 현실은 아재를 향해 달려가는 슬픔. 생소한 단어가 나와도 되묻지 말자.
“자, 뚜껑 씌우자고!”
누나와 잡담하며 노는 사이에 8,000kVA 변압기 1호기가 완성을 향해 달려갔다.
“세상에. 무슨 조립이 이렇게 빨리 끝나요?”
못해도 반나절은 걸릴 작업이 1시간 만에 끝났다. 집채만 한 변압기가 커버까지 씌워지니 그럴싸한 모습이 됐다. 저만한 변압기가 들어가는 공장은 대체 얼마나 클까?
“누나 덕분에 시간 꽤 줄였네요. 조립이야 금방이고, 진짜는 이제부터죠.”
“맞아요. 후반 작업이 사람 미치게 하죠. 그래서 제가 우리 공장장님 데리고 왔잖아요. 이제부터 진짜 고마워하세요. 하하.”
작업자들이 후반 작업을 위해 바삐 움직였다. 냉장고만 한 쿨링팬과 대문짝만 한 배전반 붙이기.
쿨링팬이야 갖다 붙이면 끝인데, 배전반은 불어터져 엉켜 버린 짜장 면발 같은 선들을 아름답게 정리해야 하는 속 터지는 작업이다. 일당 백만 원은 줘야 하는 기술자를 데려온 누나가 무척이나 고마운 순간이다.
“회장님! 이제 시간 좀 걸리니까 사무실에 들어가서 좀 쉬고 있어.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 좀 보내고 있으라고. 하하.”
걸리적거리지 말고 어디 짱 박혀 있으라는 공장장의 타박이 나왔다. 고맙습니다.
“우리 박 사장님? 안에 들어가서 담소나 나누시죠?”
“맛있는 커피라도 대접해 주게요?”
“이태리 장인이 만든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제대로 내려 보겠습니다.”
“오호. 커피 머신도 장만했어요? 어디 한번 잘 내려 봐요. 역시 커피는 남자가 타야 제맛이죠. 하하.”
중소기업 공장 하면 떠오르는 암울하고 칙칙한 이미지를 없애려고 돈 좀 썼다.
대한전력 시험관 대접하겠다고 들여 놓은 커피 머신 반응이 좋아 공장마다 한 대씩 기부!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배변 활동에 지장이 생긴다는 일부 직원들을 빼고는 줄 서서 마실 정도다.
날마다 진수성찬으로 나오는 구내식당에서 밥 먹고 커피 한 잔 내려 마신다. 오후에 몸이 찌뿌둥하다 싶으면 스포츠마사지 개운하게 받고. 누가 들으면 판교에 잘 나가는 IT회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소기업도 사장 하기 나름이지. 후훗.
공장에 딸린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누나와 대놓고 농땡이를 쳤다.
회장님 소리는 너무 구리지 않냐는 구박과, 연인이 됐는데도 격식 차리면서 얘기해야 하냐는 철학적 질문도 오갔다. 미래지향적이고 심도 있는 대화였다. 대놓고 놀기 뭐한데 이렇게라도 포장해야지 뭐.
퇴근 시간이 다 됐을 무렵, 공장장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서로 뭐 그리 떨어져 앉아 있어? 허허.”
“뭐 쎄쎄쎄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습니까? 하하. 완성됐나요?”
“그랬으니까 들어왔지. 박 사장님 덕분에 아주 수월하게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장장이 누나에게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능글맞게 웃는 것이 어째 나 놀리겠다고 이러는 것 같은데?
“이웃사촌끼리 서로 도우며 지내야죠. 아마 이번 한 번으로는 어려울 테니까 다음 번 조립 잡히면 얘기해 주세요.”
“허허.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회장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자, 자. 완성품 보러 갑시다!”
전력용 변압기로 넘어가기 직전 단계인 저 변압기. 잘 태어났나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