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76)
276 두 중역
갓 지어 고슬고슬한 상태 그대로인 새 공장에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전력용 변압기 만들겠다고 돈 좀 들인 이 공장. 바닥에 칠한 녹색 에폭시 페인트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배치된 생산설비는 윤활유에게 안부를 전하며 사람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수 있게 됐다. 공장 짓고 설비 사들이느라 무려 250억 원이 들어갔다. 본전 뽑으려면 바닥 페인트 다 까질 정도로 빡세게 돌려야 한다.
그 첫 작품으로 삼미건설에 들어갈 8,000kVA짜리 1호기 제작이 들어갔다.
모처럼 돼지머리 하나 올렸다. 우리 회사, 프라임일렉트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이니 유세차 기똥차게 해 줘야지.
“유세차 정유년 칠월 스무나흘 날. 프라임일렉트릭이…….”
공장장이 지방을 불태우는 것으로 조촐한 고사가 끝났다. 박수 소리도 조촐했다. 처음 인천 남동공단 임대 공장에 자리 잡았을 때 치렀던 고사가 연상된다. 그때 모였던 7명. 지금도 7명.
만들어야 할 변압기가 집채만 하지만, 사람은 5명으로 충분했다.
권선이야 자동권선기가 알아서 뽑아 주고, 코아공장에서 넘어온 코아에 권선 끼우면 끝이다. 조립이 지랄 같긴 한데, 베테랑 중에 베테랑 3명을 붙여 놨으니 걱정이 없다.
“회장님, 잘되겠지? 아휴, 난 어제 잠이 안 오더라고.”
우리 회사에서 밤잠 설치기로는 최고봉에 오른 공장장이 삼년고개에서 넘어졌기라도 한 듯이, 진한 걱정 한 그릇 내놨다.
“하하. 우리 공장장님 늘 이렇게 변함이 없어서 참 좋아요. 공장장님이 걱정 안 하면 누가 걱정하겠습니까?”
“솔직히 8천짜리는 처음 해 보는 거잖아. 기껏 만들었는데 성능 제대로 안 나와 봐. 그때부터 고생길 열리는 거야.”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된다. 철손, 동손은 기본이고 내전압유도, 임피던스 등등 온갖 것을 다 테스트하는데, 하나라도 기준치 안에 안 들어오면 환장한다.
왜 그런지 며느리도 모르는 판이니, 변압기 뜯어서 꺼내고 집어넣고 그 지랄하기 시작하면 이 깔끔한 공장이 유전 터진 딥워터호라이즌호가 되는 것이다. 기름바다 안 되게 부디 잘 나오길!
“초고압도 아니고 22.9짜리잖아요. 늘 만들던 것이 크기만 커졌다고 생각하시면 되죠.”
“그건 그런데, 변압기란 놈이 워낙 예민해야지 말이야. 그리고 배선은 우리가 못해. 그건 기술자 불러야 해.”
“그건 금성전기에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공장장 얼굴에 야시꾸리한 표정이 감돌았다. 아무나 못하는 배전반 배선 작업을 베테랑이 알려 준다는 것보다 금성전기에서 도와준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 표정이다.
최봉숙 원장으로 몇 번 놀려 먹은 게 이렇게 되갚음되는구나.
“아, 그래? 흐흐. 박 사장이 그걸 그냥 알려 주겠다고 했단 말이지? 박 사장이 참 사람이 됐어. 가만있자. 오늘 점심 메뉴가 국수라던데, 우리 회장님 생각하면서 국수 한 그릇 말아 먹어야겠어. 국수 좋지. 국수가 좋아아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더니 타령까지 한 소설 뽑아낸다. 정체불명의 멜로디로 만들어 부르는 저 근본 없는 노래에 심금이 오지게 저려 온다. 방송사에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트로트 오디션 생기면 공장장 꼭 보내리라.
“하하, 공장장님. 이러실 겁니까? 공장장님이 이렇게 나오면 저도 가만 안 있습니다.”
“허허허. 내가 한 부장한테 그 소식 듣고 두 번이나 환호성을 질렀다고. 우리 회장님이 이제야 사람 구실 하는구나, 그것도 박 사장이랑! 얼마나 좋아! 하하.”
“아이, 진짜. 제가 언제는 사람 구실 못했습니까?”
“황 사장 말 못 들었어? 자네 같은 사람이 연애도 안 하고 그러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허허. 아무튼 잘됐어. 둘이 서로 배려하면서 지내라고. 자기주장대로 끌고 가려고 하면 그때부터 틈이 생기는 거야. 틈이 한 번 생기면 절대 안 없어져. 오케이?”
오늘도 연애의 기술 하나 습득했네.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연애 고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이거 아주 죽겠다. 책 한 권 내도 될 것 같아.
“허허. 권선기 안 돌리고 무슨 고담준론을 그리 나누십니까?”
뒤늦게 찾아온 최윤근 상무가 잡담 그만하라며 회초리질을 시작했다. 그래, 고사 끝났으면 자동권선기 돌려야지!
“최 상무 왔어? 뭐가 그리 바빠서 고사 지내도록 안 온 거야? 와서 봉투 두둑하게 밀어 넣어야지 말이야. 허허.”
좀 전만 해도 걱정이 가득했던 공장장이 어느 순간부터 싱글벙글한 청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두 살 터울의 술친구 등장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대한전력에 유자격자 신청 마무리 좀 하느라 그랬습니다.”
“상무님, 신청은 잘됐죠?”
“신청이야 서류만 갖추면 되는 거니까 문제 될 것도 없지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전력용 변압기 시장 진출. 출발은 당연히 대한전력 입찰이다.
기존에 하던 변압기가 22.9kV라, 새로 154kV 규격에 대한 생산 자격을 받아야 한다. 실사 받고, 시제품 만들어서 전기연구원 성적서 받는 과정에 진입했다는 의미이다.
시제품 제대로 만들어 모든 절차를 통과하면 내년 봄에는 대당 8~9억짜리 변압기 파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살 것이다. 그러고 나면, 345kV짜리, 진짜 빌라 건물만 한 변압기까지! 휴우, 떨린다.
“자, 이제 자동권선기 가동하시죠! 공장장님! 스타트 버튼 잘 누르세요!”
전력용 변압기 제작을 위해서 새롭게 만든 대형 자동권선기가 정식 가동에 들어갔다. 기존 설비를 크게 키운 것이지만, 최형택 부장과 유재준 사장이 동거를 할 정도로 몇 달을 끙끙거려 낳은 옥동자이다.
테스트까지 마친 설비라 아무 이상 없는 것 알면서도 괜히 설레고 떨린다. 몇 안 되는 전 직원이 모여 자동권선기 가동을 지켜봤던 2년 반 전이 생각났다.
밑도 끝도 없이 두툼한 설계 하나 던져 주고는, 겁도 없이 재준이 형님한테 만들어 달라고 했었지. 유 사장이 그 덕에 과장에서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했지만, 고생길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던 그 설비.
문자님이 주신 수많은 선물 중 단연 으뜸인 자동권선기 선물. 기대한 대로 이 업계 게임체인저로 군림하며 나와 우리 직원을 부자로 만들어 줬다. 우리 문자님, 요즘은 뭐 하고 지내시나…… 요새 통 안부를 전하지 않으시네.
여하튼, 문자님의 최고 선물 자동권선기가 낳은 우량 옥동자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힘을 내기 시작했다. 유압기 움직이는 것과 에어 들어가고 빠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뭐 보나 마나지. 크기만 커졌지, 기능은 똑같잖아. 아주 척척 뽑아낼 거야.”
공장장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형 자동권선기에 대한 믿음을 선사했다. 4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1번 권선이 툭 하고 나왔다. 레일 위로 안정적인 착지까지!
“허허. 이거 권선 이쁘게 나온 것 좀 봐. 아주 맘에 들어!”
우량 옥동자가 내놓은 첫 작품에 대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공장장님, 바로 코아에 집어넣죠? 이거 보니까 오늘 건조까지 들어가겠네요.”
“그렇지, 그렇지.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 부장! 자, 시작하자고!”
코아 자회사인 원코아에서 넘어온 4톤짜리 코아가 빨리 권선 꽂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나스탸샤를 부르짖게 해 주마!
대형 변압기는 덩치가 크고 조립이 힘들어서 그렇지, 중신까지 제작 공정은 식은 죽을 들이마시는 것보다 쉽다.
불사파 표식처럼 제작된 코아에 권선 하나씩 세 개 끼우고 철과 스텐판으로 고정해 주면 그만이다. 대신 무지막지하게 무거워 사람이 하려면 헐크 정도는 돼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자, 자, 잘 확인했어? 이거 떨어지면 아까 지낸 고사가 제사 되는 거야. 아차하면 뒤지는 거니까 잘 확인해!”
공장장의 엄포를 신호음 삼아 270kg짜리 권선 하나가 호이스트에 끌려 공중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구녕 잘 봐! 손 조심하고!”
공장장의 고함과 작업자들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공장을 가득 메웠다.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하고 있는데, 최 상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공장장님은 참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굳이 직접 안 하셔도 될 텐데요.”
공장장이 힘쓰는 통에 작업자 두 명이 할 일이 없어서 멀뚱멀뚱 서 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 예리한 최 상무.
“하하. 공장장님 고질병이에요. 30년 넘게 저렇게 일하시던 분이라 힘이 남으면 퇴근을 못하시겠답니다.”
“회장님하고 똑같으십니다. 허허. 연세도 있으신데 저러다 병날까 걱정입니다.”
“공장장님 체력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쉬면 병난다고 휴가도 안 가시는 분이에요. 저랑 아흔 살 될 때까지 일하기로 단디 약속하셨죠. 하하.”
“허허. 그래도 저렇게 필드에서 직접 뛰는 것보다 직원들 일 잘하는지 지켜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조심스럽게 빙빙 돌렸지만, 뼈 있는 말로 귀에 꽂혔다. 회사 생각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걸 표출하는 방법은 백가쟁명이다.
우리 회사 넘버투인 공장장이 팔 걷어붙이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최 상무의 지적대로 그 위치에 맞는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 직위나 직책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최 상무의 논리. 그 말도 맞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사장은 황희 정승이 되기도, 솔로몬이 되기도 해야 한다. 공장장과 최 상무가 괜한 걸로 신경전 벌이지 않도록 잘 지켜봐야겠네.
잠시 멍 때리는 사이에 첫 번째 권선이 삼지창 코아의 첫 번째 기둥에 쑤욱 하고 들어갔다. 아나스타샤!
“아따, 권선이 무거워서 그런가 집어넣기가 쉽지가 않네.”
땀 한 바가지 흘린 공장장이 구경꾼들에게 소감 한마디를 전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처음이니까 힘들지 자꾸 하다 보면 나아지겠죠. 권선 쉽게 집어넣을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차차 나아지겄지 뭐. 근데 이거 건조 돌리기 전에 중간 검사하러 온다고 하지 않았나?”
“원래는 삼미건설에서 직접 나와서 테스트 결과 보고 간다고 했는데, 그냥 자체 테스트 성적 보내는 걸로 바꿨습니다.”
삼미건설 놈들, 시작은 창대했다. 공정마다 와서 엄중하게 테스트할 것처럼 굴더니, 완성품 검사 때 보자고 전화 걸어왔다. 8천만 원짜리 변압기 하나 때문에 매번 나주 오고 가는 게 몹시 귀찮았겠지. 이것이 나주의 힘이다!
“허허. 그놈들 처음에는 하나하나 다 볼 것처럼 하더니 막상 귀찮았나 봐?”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죠 뭐. 하하. 자체 검사로 위임했으니까 테스트 제대로 해야죠.”
“그래그래. 어차피 중간 검사 제대로 안 나오면 만들어 봐야 소용도 없고. 일단 이거 마저 집어넣자고.”
두 번째 권선이 나오자 공장장이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코아로 달려갔다. 잡아서 말릴까 하다가 말았다. 안 만들어 본 변압기 만든다고 텐션 올라가 있는데 힘 빠지게 하지 말아야지.
“상무님, 우리 공장장님 못 말리시겠죠?”
“허허. 그러니까 공장장님 아닙니까? 저렇게 하셔도 현장은 확 휘어잡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단하신 분이죠.”
“회사 처음 세웠을 때는 설계도 다 하셨어요. 우리 공장장님 고생 많이 하셨죠.”
노잣돈까지 끌어서 5억 원 투자한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공장장이 나 생각한다고, 우리 회사 잘되라고 그 거금을 내놓기로 했던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한다. 그렇게 투자해서 몇 곱절로 받아 갔으니 만족해야지.
“회장님. 제가 아까 얘기한 것은 공장장님 걱정해서 한 소리입니다. 연세가 예순다섯이신데, 건강 생각하실 때 아닙니까? 아까 제가 괜히 오해하게 얘기하지 않았나 싶네요.”
공장장과 최 상무가 행여나 갈등을 빚을까 걱정했던 것은 완벽한 기우였다. 최 상무가 권력욕 부리면서 누굴 견제할 사람은 아니지.
“안 그래도 이번 건 잘 마무리하면 강제로 해외 보내려구요. 하하. 억지로라도 쉬게 만들어야죠. 근속 2년마다 해외여행 보낼 생각이니까, 상무님도 딱 1년만 더 기다려 주시죠.”
“허허. 그거 좋죠. 성과급 많이 주는 것도 좋지만, 세금도 많이 빼 가지 않습니까? 성과급 조금 줄이고 다른 쪽으로 쓰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 생각해 주는 이들의 한결같은 마음. 덕분에 오늘도 청각이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내 너희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벌로 내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