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91)
291 수출 드라이브
계절이 가을로 바뀌자 빠르게 식어 가는 온도만큼 시간도 빨리 흘렀다.
덕준이 장가보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일이 지났다. 응?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덕준이와 달리, 창립기념일 휴가를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니 일이 쏟아졌다.
“회장님, 전력용 변압기 출하합니다.”
“가는 동안 문제 생기지는 않겠죠?”
“저도 저렇게 큰 건 처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고박 잘했다고 하니까 믿어야죠. 제가 뒤따라가면서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이규철 부장이 전력용 변압기 시제품 출하를 알렸다. 전기연구원 창원본부에서 지지고 볶으며 제 성능을 발휘하러 가는 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변압기는 의왕본부에서 시험을 받았다. 고작 대당 150만 원짜리 변압기 말이다. 한 대에 9억짜리 전력용 변압기는 대전력시험설비가 갖춰진 창원으로 간다.
창원까지 가는 동안 사고라도 나거나 크게 흔들려 자체 시험에서 확인한 성능이 제대로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 한 가득이 됐다. 트레일러에 단단히 고정했어도, 자식 떠나보내는 부모 심정이 편안할 수 없는 법이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10월 중에는 국가 공인 시험성적서가 나올 것이다.
그것만 나오면 다 죽었어! 중소기업 최초로 전력용 변압기 생산이라는 역사를 만들 테다! 첫 납품분 출하할 때는 플래카드 기똥차게 만들어서 걸어 놓고 사진 한 방 찍어야지.
“회장님, 소감이 어떠십니까?”
시제품을 실은 트레일러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윤근 상무가 슬쩍 다가와 소감을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덕준이와 담배 피우면서 바라봤을 광경일 텐데, 최 상무가 대신하는구나.
“저게 시험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진짜 출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허허. 아무 이상 없이 합격할 겁니다. 제가 혹시나 해서 전기연구원 채 실장한테 전화해 놨습니다. 자체 시험성적서 보여 주니까 깜짝 놀라더군요.”
“불합격인데 눈감아 주고 그런 건 아니죠? 전 실력으로 평가 받았으면 합니다.”
“그럼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럽니까? 허허. 창원본부가 시험이 많아서 한번 일정 밀리면 하세월이라, 스케줄 잘 잡아 달라고 했지요. 빠르면 다음 달 초엔 시험 끝날 겁니다.”
대기업들은 이 바닥의 얽히고설킨 좁은 관계망을 이용해 어거지로 합격을 받아 내기도 한다. 성능에 조금 문제가 있어도 성적서만 있으면 대한전력이 무조건 사 주니 말이다.
난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50년 가까이 공고하게 유지한 독점의 높은 벽을 깨부수리라.
“참, 상무님. 오후에 별다른 일정 없으시죠?”
“오후에 손님 오는 것 때문에 그러시죠?”
“하하. 우리 회사에 귀신들 많은데, 상무님도 귀신 대열에 합류하신 것 같습니다. 민희 혼자서도 잘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전문가가 옆에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솔직히 요즘은 할 일도 별로 없습니다. 허허.”
할 일 없다는 최 상무의 고백.
다른 회사 같았으면 난리 날 발언이지만, 최 상무가 얘기하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시스템이 제대로 잡혔고, 일이 워낙 술술 잘 풀리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계획한 대로 올해도 매출이 아주 시원시원하게 치솟고 있다. 잘게 쪼개진 회사들을 합치면 이미 매출 3천억의 벽은 돌파했다. 이 추세면 목표 매출인 3,500억 원은 거뜬히 넘길 것이다.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40퍼센트 이상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투자가 많아서 현금 흐름이 악화되긴 했지만, 쌓인 돈이 여전히 어마어마하다. 어림짐작, 대충 계산만으로도 입이 귀에 걸린다.
“회장님, 뭐가 그리 좋으십니까?”
“작년에 발표한 사업 계획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오네요. 진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긴 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까 기분이 좋네요.”
“허허. 저희가 현실 가능한 계획을 짰으니 그러지 않겠습니까? 내년에는 더 치고 올라가야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따 수출 상담 잘 좀 챙겨 주세요.”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캄보디아 전력지원사업 맡았던 후배 녀석한테 어드바이스 좀 받아 놨습니다.”
대체 최 상무, 이 사람의 인맥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감이 안 온다. 척하면 알아서 여기저기 전화 돌려 조언 들으면서 준비를 해 놓는다. 이 양반도 내년에 돈 벼락 좀 맞게 해 줘야겠구만.
오늘은 캄보디아 크메르트랜스에서 공장 시찰 겸 수출 계약을 위해 오기로 한 날이다.
이름 부르기도 힘들고 돈 벌이도 별로 안 되는 사람들 말이다. 돈은 안 되지만, 영문 브로셔에 한 줄 새겨 넣으려면 만나야 할 사람이다.
이제는 우리 회사 직원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회장님, 곧 있으면 도착합니다.”
열일하는 우리 김 사장. 캄보디아 수출도 맡겨만 달라며 저리 열성이다. 환승해서 김해공항까지 온 손님을 태워서 직접 데리고 오는 수고로움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흔히 포워더는 하주만 잘 만나면 성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 같은 하주가 보기에, 김 사장 같은 포워더라면 없는 일도 만들어서 맡길 것 같다.
절연지 수입하겠다고 이어진 인연이 서로에게 기쁨과 돈을 안겨 주며 두터워지니, 참 좋은 인연일세.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사장 차가 도착했다.
찾아온 손님은 사장과 영어 통역. 직원 포함해서 서너 명 데리고 오겠다는 걸 겨우 막았다. 체재비를 우리가 부담하는 조건이라고 아주 뽕을 뽑을 기세더라.
“반갑습니다. 로켓트랜스퍼 대표 지정수입니다.”
회사가 많아지니 소개하는 것도 헷갈린다. 빨리 회사를 확 키워서 다시 프라임일렉트릭으로 합치든지 해야지 원.
“이분은 크메르트랜스퍼 대표 뜨러꼴 삐썯 깐냐입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름만 부르니까 삐썯 깐냐라고 하시면 됩니다.”
사장, 통역, 민희로 이어지는 쓰리쿠션 전달로 소개를 받았다. 삐썯 깐냐, 부르기 참 힘들다.
나는 인사만 하고 뒤로 빠졌다. 최 상무와 민희가 잘하리라 믿는다.
“김 사장님, 오랜만인데 담배 한 대 태우시죠?”
“하하. 저번 주에 봤으니 아주 오랜만이죠.”
최 상무 인솔하에 공장 둘러보라고 보내 놓고, 김상진 사장을 붙잡았다. 할 얘기도 많고, 얘기할수록 돈벌이가 되는 사람이니.
“우리 3주년 행사 때 영업 성과 좀 있으십니까?”
“아이고, 아주 대박이었지요. 수출해 보겠다는 사장님들이 번호표 뽑고 대기할 정도였습니다. 하하.”
“중국 전문인 줄 알았더니 이제 오대양 육대주를 다 휘젓고 다니시겠습니다? 은하무역 커져서 이제 사장님 얼굴 보기도 힘들어지겠네요.”
“아휴, 무슨 말씀을요. 아무리 바빠도 우리 회장님 일이라면 바로 달려와야지요. 하하.”
나와 인연을 맺은 이후의 은하무역 성장도 아주 눈부셨다.
김 사장 포함 3명뿐이었던 직원은 20명으로 늘어났다. 우리 회사가 수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하자, 직원을 더 뽑아서 대비에 나서기까지 했다.
“수출은 뭐 사장님 계시니까 걱정할 것 없고, 전기공사 쪽은 어떻습니까? 실적 좀 쌓으셨습니까?”
“지금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막 받아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규모가 좀 있는 회사를 인수해서 그런지, 잘 돌아갑니다.”
“우리 회사가 내년부터 전력용 변압기 들어가면 관급 시장도 뚫을 생각입니다. 사장님께서 고생 좀 해 주셔야 합니다.”
“아이고, 그럼요. 그거 하겠다고 큰돈 들여서 뛰어들었는데요. 맡겨만 주십시오. 하하.”
대한전력이나 발전 자회사들은 자재와 공사 입찰을 따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변압기만 잘 만들어서 낙찰받으면 그만이다.
반면에 조달청 입찰은 변압기 구매를 전기공사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정가 15억짜리 철도라인 변압기 구매입찰이 뜨면, 전기공사업체가 변압기업체와 손잡고 들어가는 식이다. 우리야 변압기만 팔면 되지만, 전기공사업체는 계산기도 두들겨야 하고 서류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다.
그걸 김 사장이 맡겠다고 나선 것이니 나로서는 땡큐 베리마치지. 변압기 값 후려치려는 공사업체가 태반인 상황에서 더더욱.
“빠르면 다음 달 중으로 성적서 나오니까 그때부터 시작해 보시죠. 우리 화끈하게 벌어 보자구요.”
“제가 회장님하고 같이 일 시작한 이후로 손만 댔다 하면 아주 좋습니다. 이번 것도 아주 잘될 겁니다. 하하.”
허세면 어떻고, 아부면 어떠리. 지금까지 결과가 좋았으니 앞으로도 결과가 좋을 것이다.
김 사장과 웃고 떠드는 사이에 공장시찰단이 나왔다. 역시나 충격의 도가니탕에 빠진 표정이다.
우리 공장 보고 나서 덤덤한 사람은 변압기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고, 충격에 빠지면 최소 변압기 학사 정도이다. 저 어려운 이름 가진 양반, 변압기 석사 정도는 되겠군.
“삐썯 깐냐 사장님. 우리 공장 둘러보니까 어떻습니까?”
“러어 나흐.”
삐썯 깐냐가 충격에서 벗어난 얼굴로 당연히 못 알아먹을 소리를 냈다. 저건 뭔 소리고?
“베리 굿.”
1차 통역만으로 충분하다. 그럼그럼, 당연히 좋아야지. 자, 이제 협상을 해 볼까?
“사무실로 들어가서 얘기 나누시죠. 상무님, 안내 부탁드립니다.”
일행들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난 내 방에 들어가 망중한을 즐겼다. 많아야 한 달에 1억짜리 계약이니 신경 쓸 것도 없다. 알아서 잘하겠지 뭐.
고작 1시간쯤 지났으려나? 노크 소리가 났다.
“회장님, 얘기 다 끝났습니다. 바로 계약하자고 하는데, 계약서 검토 좀 해 주세요.”
민희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표정 보니까 협상이 잘됐나 봐?”
“상무님 진짜 짱이에요. 헤헤. 일단 가시죠.”
우리 복덩이 최 상무가 또 무슨 성과를 냈기에 저러는지 궁금하다. 역시 짬밥과 인맥이라는 조합은 시너지가 죽여준다.
회의실로 들어가니, 최 상무가 계약서를 들고 와서 설명을 시작했다.
“단가는 원체 좋았으니까 따로 건드릴 것이 없습니다. 관건은 리베이트랑 물품 인도 방식인데, 만족하실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CIF로 하기로 했네요. 이거야 뭐 어쩔 수 없죠. 김 사장 잘 좀 부탁드립니다.”
김 사장이 말없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우리 부담이 조금 늘긴 해도 수입하는 쪽이 FOB를 할 리가 없으니 넘어가자고.
“리베이트 4프로? 무조건 7프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던데,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리베이트를 이렇게 후려칠 줄은 몰랐다. 아따, 최 상무, 협상 한번 씨게 했네.
“딱 절반으로 하자고 했는데, 안 된다고 사정사정해서 4프로로 결론 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나 욕먹지, 캄보디아에서는 대한전력하면 알아줍니다. 허허.”
“민희 말로는 리베이트만큼은 아주 강경하게 나왔다고 하더니, 이거 참. 대단하십니다.”
최 상무가 가까이 다가와 귓말을 건넸다.
“대한전력이 캄보디아에서 프로젝트 꽤 진행하고 있지요. 내년 초에 큰 거 하나 추진한다고 하는데, 도움 좀 주기로 했습니다. 도움이라 해 봐야 뭐 별건 없습니다. 허허.”
뭐든 좋다. 몇 푼 안 되지만, 우리 수익이 늘어나니 좋고 말고. 바로 계약서에 사인 휘갈겼다.
“캄보디아의 경제 성장을 기원하겠습니다.”
삐썯 깐냐와 묵직하게 악수를 나눴다. 부디 경제 좀 잘 풀려서 우리 변압기 많이 좀 사딸라. 폴 포트 같은 미치광이 또 나오게 하지 말고.
한정식으로 저녁 대접까지 잘 끝내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하루에 10억씩 매출을 올리는데, 한 달에 고작 1억 더 벌겠다고 하루를 날렸다. 나도 배가 참 많이 불렀네.
김 사장이 손님들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김 사장님, 이분들 또 부산까지 모시고 가는 겁니까?”
“우리나라 왔는데 돼지국밥 한 그릇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내일 부산 여기저기 관광 좀 시켜 주고, 센텀시티 가서 쇼핑도 하게 해 주고, 아주 바쁩니다. 제가 출국까지 책임지고 서비스하겠습니다.”
“제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괜히 번거롭게 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저한테는 일상입니다.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그래도 맘에 걸리면 다음 주 필리핀 수출도 성사시켜 주시죠. 하하.”
“하하. 오자마자 바로 계약서 쓰겠습니다.”
말이 씨가 됐다.
일주일 뒤 회사로 찾아온 필리핀 에이전트와도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한 달에 컨테이너 4개 정도 내보내는 계약. 조건은 캄보디아 건에 비해 박하긴 했지만, 그래도 25퍼센트 정도는 떨어지니 짭짤함은 변함이 없다.
손해만 안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성과가 꽤 좋다. 이제 우리 회사 마크 박힌 변압기 부지런히 내보내면서 인지도 올리다, 대형 계약 하나만 터트리면 된다.
그때부터는 시원하게 벌 것이야. 내년엔 꼭 ‘1억불 수출의 탑’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