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94)
294 다섯 장
“회장님, 그럼 입력하겠습니다.”
11월의 마지막 날. 수촌, 동시화, 남음성 변전소 3곳의 154kV 60MVA 변압기 교체 입찰이 열렸다. 총 4대로 예정가는 50억 5천만 원. 경쟁은 5 대 1.
기존 제조사인 대기업 4곳은 우리 제품의 극악무도한 성능을 알면서도 이길 자신이 있는지, 입찰 당일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가격으로 후려칠 계산이라고 짐작했다. 86.995퍼센트라는 낙찰하한율이 걸려 있는 데다, 손해다 싶으면 하청 주면 그만이니 말이다.
우리 역시 자신만만했다. 여러 차례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예정가의 95퍼센트에 들어가면 무조건 먹는다는 계산을 뽑았기 때문이다.
TOC평가라는 효율평가 구매제도 덕분이다. 변압기 사용 연한 16년 동안 발생하는 운전비용을 응찰가에 반영하는 입찰 방식이다.
경쟁사들이 최저가로 들어가도 우리는 높은 가격으로 받아먹을 수 있다. 압도적으로 낮은 손실이 보여 주는 위력이 그렇게 대단하다.
첫 타자는 높은 응찰가를 써 넣기로 했다. 경쟁사가 처음부터 최저가로 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에 방심한 틈을 타서 재미 좀 보자는 전략이다.
최윤근 상무가 응찰가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쳤다. 이제 담배 한 대 피울 정도의 시간이면 결과가 나온다.
“허허. 낙찰받았습니다!”
지켜보던 모든 중역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박수 받을 일이지. 중소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대한전력에 전력용 변압기를 수주했으니 말이다.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올리고, 베를린에 붉은 깃발을 올린 것 같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렇게 12억 3,578만 원 벌었다. 아직 배가 너무 고프다. 나머지 3대도 먹어야겠다.
박수를 세 번 더 받았다. 총 48억 8,753만 원을 벌었다. 간이 이제야 기별이 왔으니 더 안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더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다. 두 글자로 ‘독식’이라고 하지. 후훗.
“하하. 이거 뭐, 시작했다 하면 대박이네. 우리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공장장이 놀라운 척 연기하며 소감을 토해 냈다. 다 먹을 것 알았으면서…….
“기쁘고 축하할 일인 건 맞지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납기가 넉넉하기 않아요. 첫 납품부터 연체 먹으면 망신인 것 아시죠? 사장님들은 자재 바로 준비해 주시고, 공장장님은 전력용 변압기 쪽에 배정된 인원이 많지 않으니까, 일정 관리 잘하시면서 생산 들어가 주세요.”
“좋아, 좋아. 오늘부터 변압기 다 나올 때까지 철야야. 아주 빡세게 해서 후딱 만들어 줄게.”
희철 사장이 공장장의 과한 기쁨 표현에 태클을 걸고 나섰다.
“공장장님, 오바 좀 하지 말어. 대체 사춘기는 언제 끝나는 거야?”
“이놈시끼 봐라? 돈 벌어서 기분 좋다는데, 티 좀 내면 어디 덧나냐? 내가 먹인 술이 몇 말인데…… 꼭 저렇게 초를 친다니까.”
“오늘 말고 내일부터 철야 하라 이 말이야. 오늘은 술 마셔야지. 안 그래?”
“그런 거였어? 하하. 오늘은 네가 사는 거지?”
모든 축하는 술로 마무리하는 증류주 소비량 세계 1위 나라답다. 154kV 변압기 입찰 종료 소감은 자연스럽게 술자리 약속을 잡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래, 오늘도 마시고 죽자.
로타리클럽 이민정 형님의 홍어집으로 집결했다. 오랜만에 찾아와서 그런지 이민정 형님이 로맨스 형을 보는 것처럼 반갑게 맞이했다.
“지 사장! 뭐가 그리 바빴어? 매상 올려 달라고 안 할 테니까 자주자주 좀 보자고.”
“저도 한가하고 싶네요. 하하.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뭐 좀 하다 보면 하루가 가 버리고 그러네요.”
“바쁘다면서 돈은 아주 펑펑 잘 써! 이제 나주 바닥에서 지 사장만 한 사람이 없어. 시장 선거 나가면 백 프로 당선이야! 하하.”
창립 주년 숫자만큼 기부하겠다는 약속. 창립 3주년이라고 3억 원으로 나주 일대에서 빛이 안 드는 곳에 고루 뿌렸다. 그 덕에 나주에서만큼은 스웩 넘치는 만수르 대접을 받고 있다.
처음엔 농담처럼 선거 나가라고들 말했지만, 언젠가부터는 진심이 담겨 귀로 들어왔다. 얼마 못 버는 공무원해서 뭐 한다고. 사업가는 사업만 잘하면 된다. 사업가가 정치한다고 나와서 나라 망치는 꼴 충분히 봤으면 됐지 뭐.
홍어를 메인으로 각종 요리가 상에 가득 차려졌다. 아재들 군침 흘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한 부장 이놈 말이야. 결혼했다고 툭하면 빠져. 그놈 자식도 이제 어른 다 됐어.”
술자리에서 덕준이와 최강 콤비로 분위기 쇄신을 주도했던 이상철 이사가 덕준이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신혼인데 봐줍시다요.
“아휴, 신혼이니까 부지런히 애 만들어야지요. 한 부장 바쁘니까 술 먹자고 부르지 말라구요. 호호.”
“하하. 그리 정성을 들인단 말이여? 우리 때는 번갯불에 콩 볶아도 애 생기고 그랬는데 말이여. 형님 안 그래?”
황미연 사장의 타박을 받은 이 이사가 공장장에게 타박을 넘겼다.
“꼰대 같은 소리 작작 하고, 자, 다들 잔 채우자고. 우리 한 부장 쌍둥이 낳으라고 기도 한번 해야지.”
덕준이가 부지런히 만들고 있을 고단백질같이 영양가 있는 소리로 분위기가 띄워지자, 술이 절로 들어갔다. 코를 찌르는 홍어 냄새를 이겨 내기 위해서는 많이 마시는 것이 답이다.
홍어 한 점에 코가 뻥 뚫려 산소 유입량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김신우 사장이 입을 열었다.
진중한 성격에 입만 열면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모두가 집중했다.
“최 상무님, 사업계획서는 잘 만들어집니까? 작년에 상무님께서 매출 3,500억 목표로 한다고 해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했는데, 귀신같이 딱 맞아떨어졌지 않습니까?”
“허허. 회장님께서 하라는 대로 한 거지, 제가 무슨 점쟁이라서 그랬겠습니까?”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년 사업으로 모아졌다. 올해도 어마어마한 실적을 냈으니, 내년은 무척이나 기대될 것이다. 더군다나 전력용 변압기라는 큰 시장에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여기 용한 점쟁이 있는데, 뭐 건너서 얘기하고 그래? 회장님이 한마디 하셔야지?”
공장장의 한마디에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용한 점괘를 내놓으라는 표정이다.
내년 목표. 이미 머릿속에 있다. 그동안 너무 고성장을 했으니, 내년은 조금 쉬어 갈 생각이다. 3년 동안 쉼 없이 달렸으니, 속도조절할 때가 됐지.
“내년엔 큰 욕심 없습니다. 전력용 변압기가 빵 터져 주면 좋겠지만, 밥도 뜸을 들여야 제맛이죠. 그래서 내년 목표 매출이 얼마일 것 같습니까?”
“이거 이거, 우리한테는 뜸 들인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하하.”
“아니, 홍어도 삭았는데, 말도 삭이면 어쩌자는 거야?”
공장장과 이 이사가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뜸 좀 들였기로서니, 주리를 털 기세네.
딱.
막걸리 한 잔 원샷하고 테이블에 시원하게 내렸다. 자, 집중하라고.
“내년엔 약소하게 5,300억만 하시죠. 별거 없습니다. 그냥 올해 매출 유지하고, 전력용 변압기랑 수출만 계획대로 가면 큰 걸로 다섯 장 나옵니다. 욕심내지 말고 딱 40프로만 더 키우자구요.”
최 상무 빼고 다들 미묘한 표정들을 지었다. 산을 타다가 거의 다 왔다는 소리에 힘내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한참 더 가야 하는 걸 깨달은 표정이랄까?
내년에도 죽었구나라는 체념과 돈 두둑이 벌겠다는 미묘함이 방 안을 가득 메운 상황에서 최 상무가 마이크를 잡았다.
“내년부터 대한전력에서 전력용 변압기 교체 사업을 추진합니다. 154변압기가 대략 2,400대 정도 되는데, 2030년까지 전부 다 교체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토탈 3조짜린데, 회장님께서는 내년에 최소한 천억은 받겠다고 하십니다.”
“허허. 천억이면 몇 대야? 이거 계산도 안 되네.”
“90대 정도 잡으면 됩니다. 5월 납품이 시작이니까 한 달에 12대 정도 만들면 되겠지요?”
“아이고야. 죽어나겠구만.”
공장장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쯤에서 당근 좀 주면 되겠다.
“결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닙니다. 저나 여기 계신 우리 중역들이 잘 이끌고,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 회사 돈 벌면 번 만큼 시원하게 돌려주는 거 알고 계시죠?”
“하하. 이거 참. 이래서 돈이 무서운 거야. 돈맛을 아니까 안 할 수도 없고 말이야.”
“아이, 형님. 죽는소리 좀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뭐 띵가띵가 놀면서 신선놀음이라도 할라고 그랬어? 회장님! 우리가 뼈 빠지게 할라니까 술 사 먹을 돈이나 잘 챙겨 줘.”
공장장의 엄살을 이상철 이사가 일거에 제압하고 나서 술잔을 들었다. 원샷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아니 술독에 빠지는 건가.
“자, 원샷 전에 딱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우리 회사도 이제 3살이나 먹었는데, 근속 직원들한테 해외 좀 보내 줘야지 않겠습니까?”
“그거 좋지! 하하.”
“형님! 어디 회장님 말씀하시는데 말을 끊어! 일단 벌주 한 잔 마셔.”
공장장이 이상철 이사에게 두 번째로 제압당하고 말없이 한 잔 비웠다.
“근속 3년 차부터 무조건 내보내겠습니다. 혼자 보내면 서운하니까 가족도 같이 보내야겠죠? 가족 없으면 친구라도 딸려서.”
3년 차에 연차 하루 늘어나고, 이후 2년마다 하루씩 더해지니까 그때마다 내보낼 것이다. 10년 차 되면 안식월 한 달 정도 줘야지.
전제가 있다. 그때까지 회사가 망하지 않아야 한다. 채찍 휘두르면서 들들 볶아야지 뭐.
회사 돈으로 여권에 도장 찍게 해 준다는 얘기에 3년 차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 다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씩 하라고. 일단 막걸리부터 마시고.
막걸리에 대한 쓰라린 경험 때문에 다신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새 까먹고 또 들이부었다.
“하하. 회장님 뭐야? 페이스 조절하는 거야? 내가 업어서라도 집까지 모셔다 줄라니까 맘 놓고 마셔!”
“아우, 형님. 저 죽겠는데요?”
“이래 가지고 무슨 5천억 매출을 한다고 그래!”
이상철 이사의 도발에 또 넘어갔다. 내 정신도 넘어가고, 속은 뒤집혔다. 막걸리는 악마가 만든 술이 분명하다. 아이고, 두야.
그렇게 11월이 숙취와 함께 지나갔고, 겨울이 찾아왔다. 이벤트 시즌인 12월.
중국 업체들과 연간 계약 연장과 대한전력의 애자류 입찰,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성과급 공표식까지.
중국 출장은 일주일짜리로 넉넉하게 다녀왔다. 관광도 하자는 이유도 있었지만,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이 업체 하나를 또 구해 오는 바람에 삼국지의 도시 시안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시안까지는 또 어떻게 알고 섭외하신 겁니까?”
“운이 좋았죠. 원래 이 바닥이 인맥으로 먹고사는 곳 아닙니까? 급하다고 알아봐 달라고 하는데, 급한 거 처리해 줄 사람이 회장님 말고 또 있습니까? 하하.”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에서 김 사장이 큰소리를 펑펑 쳤다. 얻어먹기만 하다가 한 건 했다는 만족감이랄까? 은하무역도 인수해서 옆에 두고 싶다. 저 사람도 참 복덩이야.
“누나도 이참에 캐파 좀 더 늘리지?”
“우리 사정 알면서 그런다? 우리 형편에 욕심 부리다간 큰일 나. 난 관광이나 해야지 뭐.”
시안 수출 건 같이 나눠 먹자는 제안을 마음만 받았다. 연애와 사업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누나의 엄격함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됐다.
이번 출장길에는 예전 출장 때 그랬듯이 서로 눈치만 보며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같이 대륙의 기운을 느껴 보자고.
난퉁전기 방문을 시작으로 창저우트란스퍼, 전장특수변압기, 난징변압기까지 돌며, 내년 농사 입도선매 계약을 시원하게 체결했다.
품질 좋은 변압기를 제때 딱딱 납품해 준 덕에 성장이라는 달콤한 맛을 본 거래업체들이 화끈한 물량으로 보답을 했다. 내가 내뱉은 ‘하오하오’만 몇 번인지 세다가 포기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계약 체결식이었다.
내년에도 중국 수출은 탄탄대로다. 아니, 시안트랜스와도 계약을 맺었으니 최소한 아우토반이다.
휴가 같은 중국 출장에서 복귀하자, 대한전력이 이벤트를 선사했다. 총 442억짜리 애자류 입찰 말이다.
“입찰은 신경 쓸 것 없죠?”
“그럼. 매출이 많이 줄긴 했어도, 낙찰률 높아지니까 좋게 생각해야지 뭐. 푼돈에 연연하지 말자고.”
희철 사장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듯이, 이미 결과는 나왔고, 입찰은 해 보나 마나다.
지역 우선배정으로 44억을 받았고, 나머지 물량으로 진행된 입찰은 약속대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그렇게 86억을 가져와 총 130억을 챙겼다. 작년 220억보다 많이 줄었지만, 낙찰률 98퍼센트로 마진은 좋아졌다.
이제 남은 건 글로리한 2018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빅 이벤트가 즐비한 내년. 아휴, 기대된다, 기대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