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95)
295 새해맞이
12월 29일.
종무식이 열렸다. 모든 직원이 기다리는 그날이다.
전날, 공장장과 최윤근 상무를 한자리로 모았다. 성과급은 공장장이 결정한다는 유구한 전통, 올해도 변함없다.
“이제 최 상무한테 맡기자고. 난 손이 떨려서 못하겠어.”
“허허. 공장장님이 우리 회사 큰어른 아닙니까? 공장장님이 하셔야 탈이 없지요.”
성과급 분배안을 들고 와서 엄살을 부리는 공장장을 최 상무가 정중하게 달래 준다.
환갑 지난 사람들끼리 2살 차이면 친구 먹어도 되겠건만, 최 상무는 공장장에 대해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선비도 저런 선비가 없다. 잘 때도 흐트러지지 않겠다며 칼을 품고 잤다는 남명 조식도 한 수 접을 정도다.
남명 선생이 부연 설명에 들어갔다.
“평가지표가 있어서 어려운 건 없었습니다. 공장장님께서 매주 꼼꼼하게 체크해 두셔서 더 수월했지요.”
“최 상무! 또 시작이야. 고생은 자네가 다 해 놓고, 나한테 공을 돌리면 되나! 여기서는 안 그래도 된다니까 그러네.”
그럼요. 최 상무가 겸손을 양껏 떨어도, 내가 다 알고 있다우. 공장장이 허저라면, 최 상무는 순욱이랄까? 내가 빈 그릇을 보낼 리는 없으니, 둘 다 아흔 살까지만 같이합시다.
“좋네요. 잘 배분하셨네요. 근데 공장장님이랑 상무님은 3등급이네요?”
올해도 시원하게 벌었다. 매출은 목표로 잡았던 3,500억 원을 넘어 3,58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제할 것 다 제하고도 843억이 떨어졌다.
대대적인 설비 투자로 돈 꽤 썼지만,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매출원가 덕분에 올해도 아주 달콤짭짤하게 남았다. 역시 사업은 단짠이 최고지!
성과급도 달달하게 200억이 결정됐다. 공장장과 최 상무는 머리를 쥐어짜면서 성과급을 배분했다. 작년처럼 등급을 나눠 2억부터 1억까지! 근데 왜! 두 사람은 3등급인데?
“작년보다 직원이 많아졌잖아. 골고루 나누려면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좀 양보해야지. 안 그래?”
“양보 좋죠. 그래도 말 그대로 성과급 아닙니까? 일한 만큼 받아 가야죠. 그리고 저는 왜 또 이렇게 많이 받습니까?”
저 고집불통 영감. 이쯤 됐으면 내가 얼마나 버는지 대충이라도 알 텐데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퍼 주기 고집을 꺾지 않는다. 태양전기 시절 우울했던 인상이 참 오래도 간다. 돈을 더 펑펑 쓰고 살아야겠구만.
“회장님. 나한테 다 맡긴다고 해 놓고 자꾸 이러면 다음부터는 안 할 거야! 직원들이 챙겨 주면 고맙습니다 하면 그만이지 말이야.”
공장장의 귀여운 협박에 그냥 웃었다. 사장 협박하는 못된 직원 같으니.
“그럼 이렇게 하시죠. 아니, 그냥 제가 지시할게요. 배분은 이렇게 가고, 저한테 주기로 한 10억 중에서 5억 떼서 두 분이서 2억 5천씩 받아 가세요. 저도 양보할게요. 반대 의견은 안 받겠습니다. 이상!”
“아니…….”
“쉿!”
그렇게 성과급이 결정됐다.
나는 고작 5억만 받지만, 늘 그렇듯 화끈한 배당으로 두둑하게 챙길 것이다.
배당 성향이 높으면 회사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건 상장사 얘기다. 상장은 생각도 없고, 90퍼센트 절대대주주인 내가 챙겨 간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냐. 자본주의의 단물을 마음껏 마시자고.
형 부대, 오빠 부대의 열렬한 환호성을 한 귀로 흘리며 종무식을 마쳤다.
시원하게 뿌린 돈에 군침 흘리는 은행과 증권사 직원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올 초에 나주에 하나뿐이었던 증권사 지점이 또 하나 생겼다.
혁신도시 때문이겠지만, 우리 회사 직원들이 부자라는 소문 때문이 아닐까도 싶었다. 역시나 그 지점에서 자산관리 교육을 해 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직원교육 일환으로 강의 두어 번 하게 해 줬더니, 지점장이 허리가 접힐 정도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 펀드 가입실적이 전국 상위권으로 올라섰으니 큰절을 해도 모자랄 판일 것이다. 똘똘한 PB 하나가 노후를 따땃하게 해 주는 법이다.
연말 전체 회식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연말이 실감났다. 회사 세우고 맞이하는 네 번째 연말이다.
회사 세운 지 벌써 3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말도 안 되는 행운들의 연속이었다. 자동권선기? 그 말도 안 되는 설비를 누군들 상상이라도 했겠나?
문자님께서 안겨 준 기상천외한 행운이 회사의 발아와 성장이었다면, 지금은 나와 직원들의 땀이 잎이 무성한 나무로 만들었다. 내가 요행만 바라는 사람이 아니란 걸 입증한 것이 뿌듯하다. 그래도 문자님! 사랑합니다!
프라임일렉트릭이란 나무가 풍성한 이파리를 자랑할 수 있었던 데는 조력자의 존재도 컸다. 연말 회식의 후유증이 채 풀리지 않은 다음 날, 삼총사가 모였다.
“올 한 해 다들 고생 많았어. 내년에도 회사 열심히 끌고 나가자고. 하하.”
포르토스 강호창 사장의 건배사가 메아리쳤다.
“사장님 능력은 진짜 하늘도 놀랄 지경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니, 굼벵이가 내 앞에 있는데, 내가 주름 잡게 생겼나? 하하.”
안성파워도 무지막지하게 성장했다. ESS설비 최강자로 등극하며 올해 3천억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이것만으로도 중소기업 신화로 등극할 정도인데, 우리 회사의 폭풍 성장에 가려진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나주 내려온 것도 그렇지만, 사장님 뵙게 된 것이 저에게 큰 복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박준희 사장님도 그렇구요.”
“하하. 뭐 자네만 복인가? 생각해 봐. 자네가 처음 나한테 연락하고 나서 말이야. 지금까지 매출이 두 배로 뛰어올랐어. 이건 그냥 우연이 아니야. 준희, 안 그래?”
아라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우리 회사도 두 배 성장했어요. 나주 와서 좋은 일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 회사와 안성파워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금성전기도 2차 성징에 들어가며 질주하고 있다. 며칠 전 환하게 웃으며 올해 매출 900억 넘어섰다고 좋아했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준희야. 너도 말이야, 수출에 힘 좀 실으면 쭉쭉 성장할 것 같은데, 욕심 좀 부려 봐.”
“뭐 저도 욕심내고 싶죠. 캐파만 늘리면 되는 것이니까요. 근데 아시잖아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요. 지금처럼 천천히 가도 충분할 것 같아요.”
강 사장의 조언에 누나는 단호하게 벽을 쳤다.
누나는 우리 회사 다음가는 생산 능력을 갖췄지만, 그 이상 늘리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부족한 자금은 기꺼이 투자하겠다는 제안도 마다할 정도로 말이다.
다 잘 맞지만, 사업에 대한 관점은 나와 달랐다. 변압기 시장에서 더 이상 크기 어려우니 무리할 필요 없다는 누나와 아직도 무궁무진하기에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나. 둘 다 정답이니 서로 생각을 강요할 필요는 없지.
“그러고 보면, 둘이 아주 잘 만났어. 한 명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고 나가고, 한 명은 차근차근 올라가고. 그래, 서로 그렇게 보완을 해 줘야 시너지가 나는 법이야.”
“하하. 사장님, 주례사 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내가 너네들 결혼할 때는 아주 짧게 할게. 정말이야!”
떡도 안 줬는데 동치미 국물을 항아리째 마시고 있는 강 사장에게 뭐라고 얘기를 한담.
“역시 어른들 말씀 하나 틀릴 게 없어요.”
누나가 맥락 없어 보이는 말을 던졌다. 어른인 강 사장이 궁금함 가득한 얼굴로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솔로일 때는 언제 연애하냐고 그러시고, 연애하면 결혼 언제할 거냐고 그러시고. 어른들 잔소리는 평생 간다고 하잖아요. 하하.”
“두말하면 잔소리지. 결혼해서 애 둘 낳기 전까지는 절대 안 끝나! 하하.”
결혼에 대한 압박. 내년에는 한 살 더 먹었다고 더 심해지겠지?
둘 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때가 언제인지 둘 다 모르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혹시 모를 결혼을 대비해 집도 장만해 놨다.
“지 회장. 완공이 언제야?”
“4월 말입니다.”
“얼마나 좋게 짓길래 그렇게 오래 걸려?”
“평생 살 집인데 신경 좀 써야죠. 하하.”
나주호 전원주택단지에 돈을 풀었다.
호숫가 택지를 분양 받았으니, 아이언맨이 살던 집 정도는 지어 줘야지. 남향과 레이크뷰의 위력을 발휘하는 설계를 받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제 발망치 악마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구나!
내년 봄, 그림 같은 집을 지으니,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면 될 것이다. 이제 내 나이도 서른다섯이니, 딱 15년만 더 고생하자. 지천명이 되는 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은퇴하리라.
송년회 대화는 돌고 돌아 다시 사업 얘기로 빠졌다. 사업가 세 명이 모였으니 별수 없지.
“지 회장. 내년엔 얼마나 더 성장할 생각인가? 콩나물시루처럼 쭉쭉 커 버리니 가늠도 안 돼. 하하.”
“뭐 약소하게 매출 5천억만 찍으려구요.”
“하하.”
강 사장이 그냥 웃었다.
어렸을 때 전직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터지며 세상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재벌 회장들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대형 스캔들이었다.
그때 전직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으로 밝힌 비자금 규모가 5천억이었다. 초딩 시절이던 그때는 5천억이 얼마나 큰돈인지 개념조차 없었다.
사업가가 된 지금은 5천억이 얼마나 큰돈인지 아주 잘 안다. 천억 단위를 왜 천문학적이라고 하는지도 아주 잘 안다.
그걸 내가 벌어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영업이익률이 40퍼센트가 넘는 미친 마진으로.
“자네라면 하겠지. 지 회장이 하겠다는데,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 따져 봐야 다 무슨 소용이야. 하하.”
“전력용 변압기가 터져 줘야 가능한 것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해 봐야죠.”
“내년에 변전소 변압기 바꾼다고 하지 않나. 자네는 운때도 참 잘 맞아. 춘배가 아주 좋아하더라고. 보도자료에 힘 들어간 거 봤지? 자넨 이제 술술 풀리는 거야.”
대한전력에 강력한 빨대가 있는 강 사장답게 내년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우리 회사가 잘나갈 것을 예측했다.
대한전력이 시범사업 입찰 끝나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
전력용 변압기 전력손실이 높아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을 치렀지만, 세계 유수 제품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춘 변압기로 교체하는 사업으로, 월드 베스트에 올라설 것이란 자화자찬과 함께 말이다.
우리가 개발한 제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기업들이 생색내듯이 기존보다 23.6퍼센트 개선된 것을 들고 왔는데, 내가 30.8퍼센트 낮춘 것을 내놨으니 말이다.
“정수 씨. 인터뷰 좀 하지 그랬어? 유명인사가 될 기회였는데…….”
누나가 아쉬움 섞은 말로 대화를 이어 갔다.
“나 비싼 사람인 거 알잖아?”
대한전력 보도자료가 뿌려지고 나서 전화도 많이 오고, 회사로 찾아온 기자도 많았다. 오윤경 기자를 제외하고는 인터뷰를 거절하며, 최윤근 상무에게 언론 대응을 맡겨 버렸다.
그림 안 나온다며 사장하고 인터뷰해야 한다고 떼쓰는 기자들은 가차 없이 쫓아냈다. 어디 감히 회장을 오라 가라야. 뉴스로 얼굴 팔려 봐야 좋을 것이 없다. 기자들한테 돈이나 뜯기지.
“그래, 아쉽긴 한데, 잘했어. 기자 놈들 말로야 기사 쓴다고 하면서, 기사 대충 내보내고 광고 달라고 난리잖아. 그냥 돈 뜯기는 거지 뭐. 아휴, 나도 몇 번 당해 보니까 진절머리 나더라고.”
강 사장이 내 마음을 잘 대변해 줬다. B2B 업체들은 나대지 않아야 한다. 상장도 하지 않고 음지에서 조용히 활동하는 것이 꿀 빠는 지름길이다.
내년에도 꿀 쭉쭉 빨자는 건배를 끝으로 삼총사 송년회가 끝났다. 강 사장은 내년엔 좋은 소식 있기를 바란다며 여운 있는 말을 던졌다. 좋은 일……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집으로 복귀하는 길. 누나의 얼굴에 많은 생각이 드러났다.
“누나! 또 나이 생각하는 거지? 내년에 아홉수라고 생각이 너무 많은 거 아냐?”
“하하. 뭐, 이게 느낌이 또 다르네. 서른 즈음일 때는 서른이라는 무게감도 컸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거든. 근데 마흔은 또 달라. 꽃이 지는 느낌이랄까?”
“얼핏 보면 20대로도 보이니까 괜히 멜랑꼴리해 있지 말라고. 그저 숫자의 바뀜 뿐이니까 의미 두지 말자고.”
“얼핏 보면? 요것 봐라.”
어깻죽지 한 대 맞았다. 이따 복수해 줘야겠다. 복수는 복수고, 생각 많은 누나에게 위안이 되고 싶다.
“누나!”
“왜 또!”
“내가 박준희라는 꽃 지게 하지 않을 테니까,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지금처럼 계속 웃으며 지내. 알았어? 내 꽃도 좀 돌봐 주고. 하하.”
맞잡은 손에 힘이 가해졌다. 이 힘을 받아 내년엔 사업도, 연애도 신명나게 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