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96)
296 일감 쌓기
네 번째 새해가 밝았다.
악랄한 직원들 혼구녕을 낼 것이라고 벼르고 벼른 만큼, 엄중한 표정으로 시무식을 맞이했다.
목표 매출 5,300억 원 발표한 순간 잠시 술렁임이 있었지만 이내 잠잠해졌고, 오히려 열기가 끓어올랐다. 해 볼 만하다 이거지? 악랄한 것들, 돈벼락 좀 맞아 봐라.
최윤근 상무와 상의 끝에 올해는 성과급을 줄이고 급여를 크게 올리기로 했다. 어차피 줄 돈이니 미리 주자는 것이었다.
조삼모사이긴 한데, 나에게는 남다를 의미로 다가왔다.
성과급이야 안 주면 그만이지만, 급여는 고정적으로 나간다는 부담이 있다. 그 부담을 이겨 낼 정도로 사업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이다. 많이 벌고 많이 줄 수 있는 안정적인 사업체. 그저 기쁜 일이다.
시무식이 끝나고 중역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돈벼락 맞을 중역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하하. 성과급으로 뭐 하셨길래 다들 얼굴이 기름집니까? 일거리 많이 물어 와서 기름기 좀 짜악 빼 드려야겠습니다.”
혼구녕 내 주는 자리이니 초장부터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눈이 더 초롱초롱 빛났다.
“우리 올해는 작년보다 더 빡세게 일해야 해! 5천억 매출 찍어야 하니까 날마다 철야 하자고. 하하.”
제일 크게 혼나야 할 공장장이 참회의 발언을 했다. 우리 공장장인 박호연 전무. 아주 크게 혼낼 것이다.
“자, 공지 전에 간략하게 말씀드리죠. 아시다시피 작년에도 우리 회사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자리도 굳건히 잡았고요. 회사가 컸고, 자리를 잡았으면 뭘 해야 하겠습니까?”
“하하. 기분 좋을 준비 하고 있으니까 얼른 얘기해!”
공장장 다음으로 혼날 희철 사장이 죄를 달게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하. 기대하셨으니 기대에 부응해야지요. 올해부터는 성과급을 많이 줄일 겁니다. 지급도 분기별로 나눠서 할 것이구요. 그 대신에 급여를 크게 올리기로 했습니다. 공장장님!”
공장장이 체념한 듯 환하게 웃었다.
“우리 회사 유일무이한 전무는 올해 5억 받으시죠. 저 어떻게든 본전 뽑아내는 것 아시죠? 죽었다 생각하고 뼈 빠지게 일해 주세요.”
공장장에게 내려진 돈벼락에 중역들이 위로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더 주고 싶었고, 더 줘도 된다. 직책이야 프라임일렉트릭 공장장이지만, 모든 공장 다 관리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에게 1년에 5억이면 정말 싸게 부려 먹는 것이다.
그래도 겨우 참았다. 아흔 살까지 같이 일할 거니까 천천히 올리자고.
그 뒤로도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억은 우스울 정도로 풍족하게 올라 버린 급여에 대한 박수가 아니었다. 죽을 듯이 고생한 서로에 대한 격려로 느껴졌다. 이를 어쩐담. 올해는 더 고생해야 할 텐데…….
“신입 연봉이 6천이면 전국에서 뽑아 달라고 난리나겠네. 하하. 공장장님! 직원들 농땡이 안 부리게 잘 쪼여. 우리 회장님 본전 못 뽑으면 속상하잖아.”
3억 연봉자로 올라선 희철 사장이 강한 돈벼락에 주춤했다가 이내 폼을 되찾으며 총평을 내놨다. 과장만 달아도 1억이니 난리 날 만하다.
“연말연시면 그렇긴 하지만, 우리 회사는 유독 더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습니다. 일 설렁설렁하게 하고 기강 흐트러트리는 직원들은 엄하게 징계하겠습니다. 회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월급 많이 주면 그만큼 뽑아내는 게 당연한 겁니다. 다들 힘써 주세요.”
진심으로 엄포를 놨다. 작년까지야 눈감아 주기도 하고, 모른 척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얄짤 없다. 징계위원장 최 상무가 가만 안 둘 것이니까.
“또 하나 더. 아주 중요한 겁니다. 올해도 단 한 건의 안전사고가 없도록 신경 써 주세요. 사고 난 뒤에 징계한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심해 주세요.”
“네!”
간만에 잔소리 좀 했다.
등 따순고 배부르면 긴장이 풀어지는 법이다. 회사가 확 치고 올라가야 할 타이밍이니만큼 이제는 우황청심환보다는 케겔운동이 필요하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강조 한 번 더 했다.
역시 우리 중역들은 급여 상승의 기쁨보다 높고 무거워진 책임감에 무게추를 뒀다. 돈벼락으로 혼구녕이 나고도 저러다니, 내년엔 얼마를 더 올려 줘야 하는 걸까…….
티타임을 끝내고 내 방에 들어와 핸드폰을 꺼내 보니 문자와 부재중 전화로 난리가 났다. 형형색색 현란한 문자들. 50대 산악회 감성을 맛보는 것도 새해 인사의 묘미다.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고, 김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하. 회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회사도 번영하길 바라겠습니다.”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의 전화다. 흔한 의례적인 새해 인사 전화는 아닐 것이다.
“사장님, 입찰 모레죠?”
“네, 맞습니다. 낙찰받을 수 있게 기도 좀 해 주십시오. 하하.”
새해 첫 이벤트이다.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열리는 보성-임성 철도공사 변압기 구매 입찰 말이다. 3년간 총 21억짜리 입찰인데, 4억짜리 변압기 2대가 들어간다.
그거 하겠다고 연말에 좀 바빴다. 철도공사 규격에 맞춰 설계 뽑고, 품질 관련 서류도 만들고, 며칠을 지지고 볶았다. 이제 그 노력의 성과를 기다릴 때다.
“준비 잘했고, 분석도 충분히 했으니까 잘될 겁니다.”
“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잘되겠죠. 하하. 결과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제 입찰이 살길이다. 대한전력 입찰에 이어 나라장터 입찰까지. 나오는 족족 해 먹어야 한다.
그 핵심은 철도 변압기이다. 대한전력 만큼은 아니지만, 코레일과 지하철공사들은 변압기 시장의 큰손이다.
역마다, 기차마다 돈 꽤 나가는 변압기가 들어가고, 철도용 변전소에는 비싸고 묵직한 놈으로 들어간다. 특히 우리나라 전철은 AT급전 방식이라 12km마다 단권변압기 1대씩 들어가니, 아주 짭짤한 시장이다.
때맞춰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잦은 고장으로 전철이 멈춰 서는 일이 빈번해진 상황에서 작년 여름, 전철에 설치된 변압기가 터져 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코레일은 부랴부랴 사고 재발 대책을 발표했다. 변압기 사용연한 25년을 20년으로 줄여, 노후 변압기 전량을 교체하겠다는 것이었다.
운때 한번 기가 막히다. 뭐 하겠다고 하면 알아서 수요가 빵빵 터져 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곡하는 귀신 찾고 있는데,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어, 누나. 시무식 잘했어?”
“우리야 조용조용하게 끝났지. 거기는 어땠어? 직원들 놀랐을 것 같은데?”
“뭐 다들 죽어 나겠다는 표정이지. 아휴, 시끄러워라.”
누나와 통화를 방해하는 함성이 귀에 들어왔다. 급여 인상 공지가 붙은 모양이군. 그래, 오늘만이라도 기쁨의 소리 질러라. 내일부터는 곡소리 나게 해 줄 테니까.
“왜 그래? 뭐 사고 났어?”
“하하. 연봉 대폭 올려 준다는 얘기 퍼졌나 봐. 이놈들은 무슨 소리를 이리 질러 대는지 원.”
“월급쟁이한테 월급 오르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나도 올해 꽤 올려 줬는데, 정수 씨네 회사 근처도 못 가겠어. 우리 직원 빼 가면 안 돼. 알았지?”
“내 마음이나 뺏어 가지 마세요.”
씨발. 이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내 자신에게 거침없이 욕을 보낸다. 누나가 연상이기에 가능한 잔망함일 것이다. 애용하지만 말자고.
“하하. 비싸서 사기 어려우니까 뺏기라도 해야지. 그나저나 입찰공고 봤지?”
노련한 건지 부끄러운 건지, 누나가 테마를 재빨리 바꿨다.
해가 바뀌니 입찰이 속속 정체를 드러냈다. 이번엔 안산선과 과천선에 들어갈 단권변압기 4대짜리이다. 총 8억 원!
철도용 변압기 입찰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누나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다. 이미 꽤 꿀 빨고 있었던 경험자로서 입찰 A to Z를 하나도 남김없이 전수 받았다. 금성전기가 발 담그고 있는 중소형 시장은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대가로 말이다.
“누나가 많이 도와줬는데 꼭 먹어야지.”
“그래. 겁먹을 거 없고 내가 얘기해 준 대로만 들어가면 못해도 절반 이상은 성공할 거야. 우리 관수에 비하면 낙찰률이 말도 못할 수준이긴 해도 충분히 남을 거야.”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꼬?”
“마음이나 내놔. 푸하하.”
아휴, 불끈, 아니 화끈거려. 낼모레 불혹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무슨 경천동지할 발언들인가!
그렇게 연초부터 화끈한 새해 인사를 나누고 나서 일상으로 복귀했다.
새해라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공장들은 쏟아지는 물량을 처리하기 바빴고, 영업팀은 여기저기 쏘다니며 주문을 받아 왔다. 해외영업도 동남아 곳곳에 이메일을 보내며 시장 개척에 힘을 쏟았다.
다들 저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나라장터 이벤트 데이를 맞았다. 그 첫날, 철도용 변압기 4대 입찰창이 열렸다.
“이 대리, 긴장하다 숫자 잘못 누르지 말고. 오케이?”
“네. 휴우.”
덕준이 부사수로 들어온 이혜원 대리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털어 냈다.
영업하러 들어왔다가 씁쓸함을 맛본 이 대리다. 남성성 가득한 이 바닥에서 여성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바닥이 유독 꼰대가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업하겠다고 오면 단란한 곳에서 술 한잔 사길 바라는 몸부림이 진하다. 덕준이도 그것 때문에 힘들어할 정도였는데, 이 대리는 말해 뭣하랴.
그래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속상해했던 이 대리에게 조달청 입찰 업무를 맡겼다. 일 못한다고 갈구고 닦달하는 것보다, 일 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장의 역할일 것이다.
“앞으로 입찰 줄줄이 뜰 거니까 이번 입찰로 감 제대로 익혀 놔야 해.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입력하겠습니다.”
이 대리가 조심스럽게 숫자 패드를 눌렀다. 대한전력 입찰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만큼 공부했다. 중소기업만 들어갈 수 있는데, 경쟁자들이 거의 사라진 상태니 쫄릴 것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하핫. 낙찰받았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뭐 별거 없지? 앞으로도 잘해 보자고.”
기뻐하는 이 대리를 격려하겠다고 어깨를 두드리려다 아차 하는 마음에 머쓱하게 내 머리를 만지작하고 말았다. 격려는 오로지 말로만 해야 해.
입찰 성공으로 7억 4백만 원을 받았다. 기초금액 설정으로 3퍼센트가 빠지고, 거기서 낙찰하한율에 근접한 88.9퍼센트로 들어갔으니 1억 가까이 날아갔다.
낙찰하한율 없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덤핑이 난무했다고 하니,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지 뭐. 아무리 죽을 써도 95퍼센트 이상으로 받아먹는 대한전력 입찰이 천국이었구나 싶다. 빛으로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대한전력 만세다.
다음 날, 은하무역 김 사장이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 영상통화 하는 것처럼 기쁨 가득한 표정이 눈에 선했다.
“회장님! 물건 받아 왔습니다. 하하.”
“하하. 연초부터 기쁜 소식이 쏟아집니다. 단가는 짭짤하게 받으셨습니까?”
“낙찰하한율이죠 뭐. 그래도 충분히 남습니다. 변압기 제 가격에 납품해 주셔도 됩니다. 하하.”
21억이 18억으로 줄었는데도 기분 좋다고 하니 기분 맞춰 줘야지 뭐.
“고생하셨습니다. 단가가 아쉽지만, 서로 손해 보지 않도록 잘 조율하시죠. 사장님, 충분히 이득 안 보면 앞으로 같이 안 하겠습니다. 하하.”
“하하. 저 생각해 주는 분은 회장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일거리 부지런히 물어 오겠습니다.”
김 사장의 말이 씨가 됐다.
박씨 물고 온 제비처럼 일감을 척척 가져왔다. 이 대리도 나라장터 부지런히 뒤지면서 일감창고에 차곡차곡 저장해 놨다.
이렇게만 꾸준히 가면 매출 목표는 충분히 달성하겠지 싶다. 5,300억 원. 비현실적인 꿈은 아니다. 1월에 이런 생각 하는 건 약간 오버이긴 하지만…….
일감창고에 일이 쌓이면 생산개미들이 부지런히 처리하고, 창고가 비면 또 일이 쌓이기를 반복하다 보니, 날이 따뜻해지고 옷이 얇아졌다.
벚꽃 피는 봄이 왔구나.
“회장님아! 속보다, 속보!”
덕준이가 출근길에 급똥이 찾아온 사람처럼 내 방에 쳐들어왔다.
“왜 그래, 또?”
“뉴스 좀 봐 봐, 뉴스!”
덕준이 호들갑에 인터넷 창을 열었다.
“뭐야…… 남북정상회담 한다고?”
“그래! 다음 달에 판문점에서 만나기로 했대.”
아따 마. 5조짜리 사업이 진짜로 열리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