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97)
297 복권 두 장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아,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 앞에서 마주하고 손을 맞잡았습니다.”
TV에서 남북 정상의 만남이 생중계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핵 쏘고 미사일 쏘고 그 난리치면서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미국이 북한 공격하겠다고 난리를 쳤으니, 오죽했겠나. 듣기로야 예상된 도발이라고 했지만, 두 또라이가 부딪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살짝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결국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부제가 달린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같이 생중계를 지켜보던 사무직들은 박수를 치며 당장 개마고원 트래킹을 가겠다는 부품 꿈들을 표출했다.
개마고원도 좋지.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최소 5조짜리라는 전력지원사업으로 가득 찼다.
옆에 앉은 최윤근 상무가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가 머릿속 가득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대한전력은 대북전력지원사업을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었고, 사업을 뒷받침할 남북협력기금도 14조원이나 쌓여 있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겠지만, 또 모를 일이다. 두 정상의 대화가 술술 풀려 평화를 위한 여정을 가겠다고 합의할 수도 있다. 제발. 정은아, 돈 좀 벌게 해 다오.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다 같이 모여 TV를 보는데, 두 정상이 만나고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텐션이 슬슬 떨어져 갔다. 새로 들어오는 소식이 없으니, 중계하는 아나운서는 똑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눈치게임 시작이다. 누군가 이제 일하자고 말해야 한다. 그러자니 이 역사적인 만남에 초를 치는 것 같고. 별 걸로 다 걱정이다. 역시 최 상무가 입을 열었다.
“자, 이따 뉴스로 확인하고 이제 일들 하러 갑시다. 현장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요.”
최 상무가 방청객을 해산시키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왠지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하하.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한 번 만나는 것 가지고는 성과가 나오긴 어렵겠죠.”
“전에 했던 정상회담이 임기 막판에 성사됐는데, 이번에는 임기 1년도 안 돼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이번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올해 끝나기 전에는 가시적인 움직임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준비를 잘해 놔야겠습니다. 혹시나 전력지원사업 들어가면…… 역시 관건은 전력용 변압기겠죠?”
“그렇죠. 배전용 변압기야 어차피 조합으로 들어갈 테니까요. 345변압기 개발도 서둘러야 합니다. 혹시 765변압기도 준비하실 생각이십니까?”
대박을 이룰 꿈만 꾸고 있으면 안 된다. 대박도 준비된 자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니.
대한전력에서 채택해 사용하고 있는 전력용 변압기는 3종류다. 154, 345, 765kV 변압기.
가장 많이 쓰이는 154kV 변압기는 개발 완료 후 납품까지 무사히 끝냈다.
기간송전망에 들어가는 345kV 변압기도 설계가 막바지이다. 이욱현 부장이 주특기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럼 걱정 안 해야지.
남은 건 765kV 변압기이다. 진짜 빌딩만 한 크기의 괴물이자, 1대당 100억 가까이하는 변압기 끝판왕이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상무님. 765는 결론을 못 내리겠습니다. 개발하는 것이 맞는 겁니까? 개발비도 개발비지만, 2년 넘게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765변압기 개발한 업체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 게,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겠죠. 근데 회장님께서 이렇게 자신없어하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하하. 자신없다기보다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있는 것이죠. 의지만으로 역량을 넘어서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회장님께서 하겠다고 결정하셨으면 어떻게든 해 볼 생각이긴 했는데, 솔직히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허허. 그리고 개발해도 수요가 많지 않은 것도 걸리고 말이죠.”
765kV 송전이 ‘전력수송의 고속도로’로 꼽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니가 가라 하와이’ 신세다. 1998년 시작된 이후에 크게 늘어날 것 같았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고작 변전소 5개만 설치됐다.
초고압 송전탑 때문이다. 송전탑 건설계획 발표되면 해당 지역들 난리 난다. 마을 사람 다 죽는다며 삭발식은 기본이고, 지원금 받겠다며 찬성하는 사람들하고 대판 싸우며 느와르무비 찍기도 한다.
계산기 두들겨 보면 답이 안 나온다.
개발에만 2년 정도는 족히 걸릴 텐데, 워낙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지라 개발이 성공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운 좋게 개발에 성공해도 수요는 한정돼 있다.
수출? 중소기업이 765kV 변압기 수출한다고 하면,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는 소리가 달나라까지 들릴 것이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다. 해외 영업망을 갖춘 대기업이 도와주겠다면 모를까.
곤경에 처했을 때 문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 믿지만, 생각을 말기로 했다. 이번 일은 오로지 나와 직원들의 힘만으로 이뤄 내고 싶다.
“일단 345까지 개발하고, 납품 실적 쌓는 데 집중하죠. 765는 긴 안목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수준으로는 쉽지 않을, 아니 어려울 것 같습니다.”
765kV 변압기 포기 선언에 최 상무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우리 회사의 역량, 아직 멀었다.
“허허. 차마 말씀을 못 드렸는데, 회장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니 맘이 좀 편해집니다. 주제 넘는 얘기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최 상무가 강연을 시작할 것 같아서 살짝 두렵긴 하다. 한 번 털기 시작하면 하세월인데…… 그래도 베테랑의 잔소리는 언제나 새겨들어야지.
“아휴, 제가 언제 언로를 막은 적이 있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허허. 감사합니다. 회장님께서 젊으신 게 우리 회사에는 아주 큰 장점인데, 한편으로는 불안한 점도 있습니다.”
“젊은 혈기 말씀하시는 거죠?”
“네. 허허. 저도 회사 생활 오래 하면서 지켜보면 ‘하면 된다’ 정신으로 밀어붙이다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젊은 혈기로 과감하게 추진하시면서도, 무리하시지는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하면 된다’ 정신이다.
실력도 역량도 안 되는 좆소기업 사장들이 정주영에 빙의돼서 그 지랄하는 것, 극혐이다. 평생 좆소기업을 못 벗어나면서 직원들에게는 어벤져스가 되라고 하니 원.
남들은 나를 무모하다 싶은 것도 아무렇지 않게 밀어붙이는 도박가로 볼지도 모른다. 안 될 것 같은 걸 척척 해내니 말이다. 그건 문자님이라는 희대의 치트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력용 변압기 개발에서는 휴먼들의 힘으로 해 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기에, 무리이겠다 싶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문자님도 그걸 아는지 침묵 대기 중이시다. 그것도 고맙습니다.
포기가 빨라야 편해지는 법이다. 안타깝지만, 우리 실력은 아직 사춘기 소년일 뿐이다. 현실을 항상 냉철하게 봐야지.
“아이고, 너무 과하게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765변압기 개발은 무리이겠다 싶었는데, 회장님께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회사의 미래가 참 밝습니다. 허허.”
“하하. 제가 공장장님께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혹시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저랑 같이 아흔 살까지 일하자는 겁니다. 상무님께서도 더도 말고 딱 30년만 계셔 주세요. 제가 정신 못 차린다 싶을 때 따끔하게 혼도 내주시구요.”
“허허.”
상무에게도 아흔 살 미션이 부여됐다.
노인 일자리 창출로 훈장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회사 키워서 신입직원 많이 뽑고, 기존 직원들은 백골이 진토될 때까지 부려 먹고. 노나는 장사다.
그러고 보니, 본론 전에 가볍게 들어가자고 시작한 정상회담 얘기가 직원들 장기근속 대책으로까지 흘러가 버렸다. 공장장도 그렇지만, 최 상무랑도 얘기 시작하면 배가 강을 건너 산으로 산으로 가 버린다.
“상무님!”
“아, 허허. 입찰 얘기는 뒷전이 돼 버렸네요.”
공교롭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맞춰, 대한전력의 역사적인 154kV 변압기 교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시범사업으로 성과를 확인한 대한전력은 사업공고와 함께 보도자료로 대규모 사업의 서막을 알렸다.
최 상무가 미리 파악한 정보대로, 2022년까지 1단계 사업으로 총 668대를 교체하고, 2단계로 2030년까지 나머지 1,800대 전량을 교체하겠다는 단군 이래 300번째쯤 되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총 3조원!
“회장님께서 공고 보셔서 아시겠지만, 핵심은 2단계 사업입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개발한 변압기가 제일 우수하지만, 2단계 사업 들어갈 때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죠. 계속 개선해야죠. 필요하면 설계진들 해외 연수도 보내고, 유능한 설계자들 계속 충원할 생각입니다.”
“2022년까지 시간이 충분하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겠지요. 저도 인맥 총동원해서 실력 있는 인재들 섭외해 보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든든합니다. 역시 상무님도 저랑 아흔 살까지 일하셔야겠습니다. 하하.”
최 상무가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 나와 인연을 맺었으니 도망 갈 수 없을 것이오.
이틀이 흘렀다. 테라스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변압기 하역 작업을 구경하고 있는데, 덕준이의 요란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어서 와. 결국 못 참고 담배를 찾는구나!”
담배 한 대 더 꺼내 덕준이에게 건넸더니, 짐승 보듯이 쳐다본다. 이 좋은 걸 왜!
“너도 이제 끊어라 좀. 그건 그거고, 뉴스 속보 봤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인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는 애매한 표현 때문에 살짝 실망했다. 북한이 핵 포기해서 경제제재 풀려야 내가 돈을 벌 수 있는데!
“뭐 또 나왔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했는데, 북한이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대. 우리 북한 갈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핵 포기가 아니라 핵실험장 폐쇄인 것이 아쉽긴 해도, 첫술치고는 꽤 배부르다. 그래, 그렇게 쭉쭉 가는 거야. 우리 회사 마크 새겨진 변압기가 북한에 설치될 날이 올 것이다.
“좋네. 이제 슬슬 입질이 오겠구만. 우리가 빅4로 가는 길이 보인다야.”
“대한전력도 좀 분주해지는 것 같더라고.”
“그쪽에 빨대 잘 꽂아 놨지? 대한전력 움직임 잘 지켜봐야 해.”
“아이, 그럼. 회장님, 내가 누굽니까?”
유부남 덕준이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 상무 따라 대한전력 꽤 들락거리면서 인맥 전수를 받았다.
최 상무 혼자 커버하기 어려운 대한전력의 공룡 조직에서 씨를 뿌린 지 반년 가까이 지났으니, 이제 결실을 거둘 때가 됐다.
“그래, 좋아. 아주 좋아. 정보 얻으면 바로바로 얘기해 주고. 캐파 또 대폭 늘려야 할 수 있으니까, 미리미리 준비하자고.”
“걱정 마셔. 에휴, 이래 가지고 언제 베이비 생기냐.”
“인마. 일도 열심히 하고, 잉태 작업도 열과 성의를 다해서 하라고. 그래도 제수씨가 바로 애를 가질 생각인가 보네? 일 포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일을 계속할지 말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어.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그만두는 것도 생각하겠대. 나야 뭐 미안하지. 근데 회장님아.”
“응? 또 외근 나가냐?”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님이다.”
“응. 올 때 메로나.”
그로부터 2주 뒤, 대한전력의 154kV 변압기 교체 사업 첫 입찰 공고가 떴다. 보름이라는 시간은 택배를 기다릴 정도로 간절함을 졸이기에 충분했다.
옥천허브에 갇혀 버린 내 택배가 드디어 경비실에 도착했다고! 대북전력지원사업이 긁지 않은 복권이라면, 이건 당첨된 연금복권이다.
“그럼 입찰가 입력하겠습니다.”
입찰가 입력 전문가로 성장 중인 이혜원 대리의 신호를 시작으로 26대짜리 1차 입찰이 시작됐다.
“꺄악! 낙찰받았어요!”
308억 가지고 놀라기는. 후훗.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 자신과 싸움 말이다.
성능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제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 납기 못 맞춰 망신당하는 일이 없도록 생산현장에 채찍을 마구 휘두를 때이다. 미안하다, 직원들아. 돈으로 보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