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98)
298 양순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라니!
남북정상회담 열린 뒤 한 달 만에, 2차 회담이 깜짝쇼로 열렸을 때부터 낌새가 심상치 않다 싶었다.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미국 도널드 대통령의 발표를 들으며, 내 돈 날아가는 듯한 쓰라림을 느껴야 했다. 그럼 그렇지 하며 담배 한 대 피우고 말았다.
그러나 복권을 아직 긁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더니, 결국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확정이 됐다. 날아간 줄 알았던 내 돈이 마늘밭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거 뭐, 경마장 중계도 아니고 진짜 다이내믹하네.”
“그러게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뉴스들이 쏟아지네요. 제발 술술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잘 풀려야지. 북미정상회담만 잘되면 개성공단 바로 다시 연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거기 재개하려면 손봐야 할 것이 많대. 변압기도 꽤 들어가지 않을까?”
폴리머 부싱의 중국 수출을 다시 시도하겠다며 출장 다녀온 희철 사장과 소감을 주고받았다. 중국 출장 결과를 얘기하러 온 희철 사장에게도 북미정상회담 확정 소식이 쇼킹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차지한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어도, 수요가 많아지는 것은 기쁜 일이죠.”
“배전용 변압기는 조합으로 들어가기로 결정된 거지?”
“독식하고 싶은데,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욕먹을 짓 하면 안 되죠.”
“그래, 잘 생각했어. 생각해 보면 조합 체제로 있을 때가 안정적이고 단가도 더 좋잖아.”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대북전력지원사업이 진행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처음에야 비밀 유지가 잘됐지만, 정보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공연연한 비밀이 됐다.
소문이 퍼졌다는 것은 역으로 사업준비가 꽤 진척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최윤근 상무 말로는 대한전력 TFT의 진행사항 보고가 여러 차례 이뤄졌다고 하니, 이제 남은 것은 북에 있는 대빵이 다 내려놓는 것뿐이다.
북한에 전력망 구축사업을 할 것이라는 풍문이 돌면서 우리 조합도 준비에 들어갔다. 딱히 준비랄 것도 없었다. 사장들 모아 놓고 조합입찰 참여의사를 물어본 정도다.
입찰이 열린다면 조합으로 들어갈 것이냐는 물음은 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맘먹으면 입찰 독식이 가능하기에, 내 결정이 가장 중요했다.
난 경쟁보다 공존을 택했다. 희철 사장 말대로 조합에 있을 때가 더 짭짤하게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도 돈 벌고, 저래도 돈 벌 수 있다면, 욕 안 먹으면서 돈 버는 것이 최고지.
“정상회담은 정상회담이고, 중국 출장은 어땠습니까?”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이제 겨우 본론에 들어갔다. 조 단위 돈이 아른거리니 푼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도 컸다. 지정수, 진짜 많이 컸다.
“내 표정 봐 봐. 결과가 좋았으니까 이렇게 밝지 않겠어? 하하.”
1전 2기의 늠름한 표정이다. 사연이나 들어 보자.
“폴리머 부싱 채택한 업체가 나온 것인가요?”
“이번에 공급계약 체결한 업체들 쭉 돌고 왔는데, 난퉁전기 양 사장 진짜 상 줘야 해. 부지런히 뛰어다녔더라고.”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 첫 수출 시도가 실패로 끝난 이후 희철 사장은 난퉁전기의 힘을 빌리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난퉁전기는 총판 역할을 하면서 패키지로 변압기 자재를 공급하는 방식을 만들어 냈다. 그 덕이 다소 비싼 폴리머 부싱의 중국 수출이 첫발을 딛게 됐다. 우리가 난퉁전기로부터 수입하는 막대한 양의 자재에 대한 양푸첸 종징리의 선물일 것이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네요. 수출량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뭐 아직은 푼돈이지. 우리 제품 쓰겠다는 업체가 2곳밖에 안 돼서, 잘해야 한 달에 2억 정도 나올라나? 그래도 그게 어디야. 점점 늘려 가야지.”
그렇지. 시작은 뚫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한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능이 있으니, 이제 입소문 나면 주문 폭발할 것이다. 문득 우리 회사의 시작이 생각났다.
“형님, 우리 처음 기억하죠? 우리 첫 매출이 200만 원이었잖아요. 고작 변압기 1대. 솔직히 그것도 겨우 판 거죠.”
“하하. 그거 진짜 나 때문에 판 거야. 거래처들 말로야 내가 독립하면 다 사 줄 것처럼 하더니, 막상 사 달라고 하니까 딴소리 하고 그러더라고. 내가 진짜 억지로 밀어 넣었지 뭐.”
희철 사장이 없었다면, 우리 회사가 이렇게 빠르게 자리 잡았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회사 창업하고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역시나 창업 초기였다.
말도 안 되는 도움으로 대한전력으로부터 800억짜리 계약을 받게 됐지만, 말 그대로 희망 고문이었다. 돈은 아른거리는데, 정작 돈 들어올 날은 멀었고 나갈 돈은 많고.
희철 사장이 영업 최전선에서 맹활약하며 한 달에 1~2억씩 벌어 오지 않았다면, 희망고문 치사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희철 사장도 아흔 살까지 일하셔.
“근데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야?”
“우리 회사 지금 매출 보세요. 중국 수출도 그렇게 확 튀어 오를 테니까 맘 편히 생각하세요.”
“아이, 그럼그럼. 난 우리 회장님처럼 한 방에 빵 터트리고, 그런 능력 없어. 하하. 천천히 부지런히 하다 보면 매출도 차근차근 올라가겠지.”
“역시 형님입니다. 혹시나 했죠. 김 사장님은 코아 잘 팔고 있는데, 부싱 안 팔린다고 풀 죽지 않을까 해서요.”
희철 사장과 같이 중국 수출길에 나섰던 김신우 사장은 밀려오는 오더에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난퉁전기 양 종의 도움으로 직원 2명짜리 현지 법인까지 세울 정도로 말이다.
올해 우리가 매출 5천억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김 사장의 역할이 아마 2할3푼6리 정도 될 것이다.
“하하. 배는 아프지. 그래도 어쩌겠어. 코아야 품질도 좋고, 일단 가격이 너무 착하잖아. 부싱은 가격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중국도 부싱 깨지는 것 때문에 골치 아파 한다고 했으니까, 머지않아서 폴리머 부싱 찾는 손길이 많아질 겁니다. 중국 수출 쭉쭉 늘려 가서, 형님 덕분에 우리도 유니콘 기업 돼 보자구요.”
“당연히 그래야지. 근데 유니콘 기업이 뭐야?”
“하…… 하.”
기업 가치 1조. 이미 유니콘 기업이 됐을지도 모른다. 굳이 투자를 받을 이유가 없어 기업 가치 평가를 맡긴 적이 없으니, 회사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를 뿐이다.
한편으로는 투자 크게 받은 다음에 상장해서 한몫 크게 당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니 있었다. 다다익선이라고,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믿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1년에 4백억은 거뜬히 버는 지금 생각해 보니까, 부질없다는 생각이 더 크다. 1년 내내 펑펑 써도 버는 돈의 10퍼센트도 쓰기 어렵더라.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놈으로 차도 한 대 더 뽑았고, 옷이며 액세서리며 돈 생각 안 하고 맘에 들면 바로 살 정도가 됐어도, 돈이 줄지를 않는다. 부자들이 왜 땅과 집, 미술품을 사 재끼는지 알 것 같더라.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할 돈이니 무리하면서 벌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회사 창업 3년 만에 찾아온 수많은 변화 중 하나였다.
돈보다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겠지. 그렇게 사람답게 살기 위해 선택한 전원주택이 5개월이 넘는 공사 끝에 완공됐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자마자 기존에 살던 아파트 천장에 우퍼스피커 달았다. 우울한 북유럽 정서가 가득 묻어 나오는 블랙메탈 메들리로 선곡해서 틀어 버렸다.
“윗집에서 연락 왔어?”
“몇 시간 안 돼서 바로 연락 오더라. 개새끼들이지. 발망치는 괜찮고, 지들 피해 받는 건 못 참는다 이거지.”
새집 집들이에 참석한 덕준이의 관심은 새집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악마 같은 윗집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원래 남한테 피해 주는 새끼들이 그렇지 뭐. 그래서 뭐라 그랬어?”
“실수로 음악 틀어 놓고 나온 것 같다고 했지. 출장 와서 바로 못 가니까 3일만 참으라고 했어.”
“이거 악랄한 놈일세.”
“악랄하긴. 내가 지금까지 당한 게 몇 달인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라고. 자기가 가서 끌 테니까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난리였는데, 그냥 끊었지. 후훗.”
“근데 우퍼스피커 걸리면 처벌 받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
“경찰 부르라고 해. 까짓것 벌금 좀 내고 말지. 그 새끼들 칼로 안 쑤시고 이 정도로 한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윗집 주민 잘못 만난 아파트 거주민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바이다.
“근데 생각보다 마당이 좁네. 잔디도 넓게 깔지 그랬냐?”
100평씩 분양하는 단지 내 택지를 3개나 받았지만, 잔디마당을 넓게 만들지 않았다. 여름에 잔디 깎다 보면 다 뒤집어엎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는 조언을 새겨들었기 때문이다.
“난 군대 있을 때 제초 작업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야.”
“돈 많은 놈이 그걸 걱정하냐. 업체한테 맡기면 되잖아.”
“그래도 내 집인데 내가 직접 관리해야 하지 않겠냐?”
“하하. 그 의지가 얼마나 가는지 지켜볼란다.”
덕준이가 고작 잔디밭 좁다고 트집 잡는 것 보니까 집을 잘 지은 것 같다. 돈 많이 썼으니 잘 지었단 칭찬 들어야 마땅하지. 근데 두 명을 초대했는데, 왜 혼자만 온 거야?
“제수씨는 왜 안 와?”
“형수님? 아니, 선물이 좀 걸려서 먼저 가 있으래. 곧 올 거야.”
“무슨 선물이길래 너 먼저 보낼 정도로 이렇게 기대감을 주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선물이 도착했다. 태어난 지 두 달 됐다는 멍멍이.
“아후, 이 새끼 왜 이렇게 앵기냐! 근데 애기라고 하지 않았어? 다 큰 애 같은데?”
“호호. 스탠다드 푸들이에요. 이게 원래 푸들이고, 작은 푸들은 개량한 거예요. 얘 두어 달만 더 있으면 엄청 커져요.”
오윤경 기자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멍이가 앵겨서 난리를 치는 통에 청각을 유지할 정신이 없었다. 씩씩한 것이 아주 맘에 드네.
“오빠. 대형견들은 뛰면서 놀게 해 줘야 스트레스 안 받아요. 아무리 바빠도 산책 꼭 시켜 주셔야 해요.”
“너 이제 진짜 가족 생긴 거야. 애지중지 잘 키워야 한다.”
덕준이의 말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가족. 15년간 혼자였던 나에게 가족이 생겼구나. 회사 직원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지만, 함께 사는 진짜 가족은 아니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줄 테니 나에게로 와서 가족이 되거라.
“양순아.”
양순이가 반응했다. 혀로 손등을 핥는 것이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가족입회의식으로 부족함이 없다. 가족 됐으니까 이제 그만 핥아 줄래?
“크크. 작명 센스가 왜 그러냐? 너무 충동적으로 지은 거 아니야?”
“얘가 양처럼 순하자나. 그럼 암컷이니까 양순이지 뭐.”
“스탠다들 푸들이 진짜 순해요. 맘에 드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얘 데리고 올 때 마음이 좀 아팠으니까 진짜 가족처럼 잘 대해 주셔야 해요!”
오 기자의 엄포가 계속 이어졌다.
젖 떼자마자 엄마에게서 떨어져 낯선 이의 손에 맡겨진 양순이.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한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인다. 오냐, 내일부터 체력 확실히 방전시켜 주마.
주말 내내 양순이와 씨름하며 보냈더니, 월요일 아침부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이 녀석을 어찌 혼자 두고 출근을 한단 말인가! 우리 엄마는 나를 버리고 갔어도, 난 양순이를 놔두고 갈 수 없지!
회사의 절대 권력자라는 힘을 남용해 양순이를 회사로 데려갔다. 역시나.
“으아! 너무 귀여워!”
“양순아, 이리 온. 어휴, 그래그래.”
사무실 직원들이 난리가 났다. 여자에게 관심 받고 싶으면 개를 끌고 산책하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다. 그렇게 양순이는 회사의 마스코트가 됐다.
양순이 덕인지 모르겠지만, 악마 같은 윗집 놈들한테서 반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피해 주는 일 없도록 하겠다는 사과 연락을 받았다. 좋게 말로 했을 때 조심했으면 얼마나 좋냐, 이 쓰레기들아. 사과 받아 줄 테니 한 이틀만 더 고생하렴.
양순이와 씨름하기를 한 달. 미국과 북한의 두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손을 맞잡았다. 이놈들아, 제발 통 크게 양보하고 합의하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합의문이 발표됐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드럼 롤링 소리처럼 들렸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이거 미국이 북한 공격 안 하고, 북한은 핵 포기하겠다는 소리겠지?
그래, 그렇게 가자. 그래야 내가 돈을 번다고! 5조짜리 프로젝트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