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0)
030 기공식
이제 돈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한 해가 시작됐다.
앞으로는 돈을 펑펑 쓰며 살 생각이다. 사장으로서 적극적인 투자로 회사를 아주 크게 키워 갈 것이고, 버는 만큼 직원들 등 따시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요거트 뚜껑 그냥 버릴 것이다!
총 65억 원의 투자.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 이제 궤도에 올라탔다.
망할 사업이 결코 아니지만, 절대 망해서도 안 될 사업이다. 내가 망한다면, 나를 믿고 따라 준 이들이 쪽박을 차는 것은 물론이고, 태양전기같이 욕 나오게 하는 회사들이 얼마나 비웃겠나? 난 반드시 성공해서 그놈들 코를 다리미로 지져 줄 것이다.
오기의 화신 지정수! 무조건 성공이다!
각오를 다지자마자 한참 내리던 눈이 그쳤다. 나주 공장 기공식을 앞둔 날임을 어찌 알고! 이런 신의 가호가, 아니지. 문자님의 돌보심이!
창업 공신들과 나주로 내려갔다. 맘 같아서는 버스 대절해서 전 직원 다 데려가고 싶었지만, 상무의 맹활약 영업 덕분에 하루도 쉬기 어려운 형편이다. 주문이 늘어나니까 맘 편히 쉬지도 못하겠구만.
나주 내려가는 차 안 분위기는 거의 뭐 ‘웃지마관광버스’ 수준이다. 너무 들떠서 자기부상차를 타는 기분이다.
“지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도지사님. 덕분에 이렇게 착공식까지 성대하게 열게 됐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하. 제가 뭐 한 것이 있습니까? 사장님께서 큰 결정을 하셨고, 저희는 행정적으로 도와 드린 것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지역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사업하시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지극히 사교적인 대화였지만, 톤 자체는 차갑지 않았다. 도움을 받은 만큼 대가를 요구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무런 요구도 없었다. 내가 정치인들을 너무 색안경 끼고 바라본 것이 아닌지 잠시 반성했다.
이윽고 광주광역시장, 나주시장, 대한전력 사장을 비롯한 지역 내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과도 의례적인 인사와 덕담 몇 마디를 나누며 눈도장을 찍었다. 분명히 기억도 못하겠지만, 나중에라도 만날 일이 생기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는 소재가 될 것이다.
혁신산단 1호 투자기업 타이틀은 안성파워에 넘겼지만, 내가 가장 먼저 공장 착공에 들어간 덕분에 온갖 사람이 다 몰려왔다.
저기 우리 산파 최대근 사장이 보이네. 아주 따뜻한 악수 한번 해 줘야겠군.
“아이고,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무궁한 발전이 있길 기원하겠습니다. 하하하.”
“최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사장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나야 뭐 계약대로 돈 받고 공장 짓는 것인디 뭐 은혜랄 것이 있소? 다 서로 돕자고 하는 일이지라.”
최대근 사장은 신이 났는지 사투리가 양껏 튀어나왔다. 신이 나겠지. 이 기공식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동네 공천에 절대적인 힘을 끼치는 VIP들 앞에서 한껏 으스댈 수 있으니 신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최 사장 덕에 나도 신 난다. 최 사장이 아니었더라면 공장 짓는 것이 마냥 늦어졌을 것이다. 설계 바꾸고 이것저것 추가하다 보니 공사비가 45억 원으로 늘어났다. 최 사장이 어려운 자금사정을 알고서는 대뜸 잔금 절반을 연말에 받겠다고 제안했다. 20억 원을 대출해 주겠다는 것이다.
시중보다 비싼 연이자 8프로를 요구했지만, 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현 상황에서 최 사장의 시혜는 변비에 유산균 같은 역할임이 확실했다. 한 달 이자만 1,300만 원이나 되지만, 이게 어딘가! 큰돈이 들어올 때까지 몇 달 공백이 있었는데, 공백을 말끔히 메워 줬으니 은인이야 은인!
“행사도 화려하게 해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내가 뭐 한 것이 있습니까. 지 사장님 덕분에 내일부터 기사가 쏟아질 것인디, 내가 오히려 고마워해야지라. 인자 앞으로가 진짠께 화이팅하소.”
최 사장은 말을 황급히 끊고 VIP들한테 달려갔다.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던 사람이 이렇게 짧게 얘기하고 간 것을 보니 선거 앞두고 몸이 달았구나 싶다.
* * *
기공식장은 돈 꽤 쓴 흔적이 역력했다. 애드벌룬도 하나 띄웠고, 대형 천막도 두 동이나 세웠다. 주차장으로 마련된 자리에는 시커멓고 커다란 차들이 즐비했고, 방송 차량도 두 대나 주차돼 있었다.
“저기,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 대표님이시죠?”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KJBC 김승진 기자입니다. 시간 되시면 잠깐 인터뷰 가능하겠습니까?”
시작됐군. 보나 마나 간단한 기공식 스케치 기사에 구색 맞추기로 집어넣으려고 화면 찍겠다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방송에 데뷔하게 생겼군. 화면 캡처돼서 사무실에 액자로 걸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군.
“여기가 좋겠네요. 간단한 회사 소개와 혁신산단 1호 착공 기업 소감, 포부를 밝혀 주시면 됩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시죠? 아 참! 혹시 회사 잠바 있으십니까? 회사 잠바 입으시는 것이 더 나아 보일 것 같은데요.”
이 새끼야. 이거 비싸게 주고 산 양복이라고!
“이거 어쩌나요. 따로 안 챙겨 왔는데요. 그냥 하시죠?”
“네. 어쩔 수 없죠.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나름 자연스럽게 한다고 했는데, 두 번이나 다시 찍었다. 방송이 쉽지 않구만.
방송사 기자가 카메라 돌리니 냄새 맡은 기자들이 하나둘 몰려왔다. 명함이 제법 쌓이자, 뻔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혁신산단 투자가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는데, 앞장서서 나선 이유가 있으십니까?”
“투자 규모와 고용 인력은 어떻게 됩니까?”
“상반기 준공 예정이었던 혁신산단이 대표님을 위해서 1월로 당겨졌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뭐? 뭐라고? 이 새끼가! 뻔한 질문 사이로 칼이 듬뿍 담긴 질문 하나가 헤집고 들어왔다. 이 새끼 뭐야? 내가 뭐 뇌물이라도 줬단 소리냐?
욱해서 표정 관리에 실패할 뻔했다. 이래서는 안 되지. 웃자 웃어. 사장 노릇이 참 쉽지 않군.
* * *
“사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정용 과장이다. 그 험난한 길에서 이 과장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 과장님! 진짜 최고 은인이십니다.”
“저야 뭐 시키는 대로만 했죠. 고생은 사장님께서 다 하셨죠. 사장님 덕분에 제가 일한 보람이 팍팍 생깁니다. 참! 공장 착공 들어갔으니까 지원금도 조만간에 결정 날 것입니다. 아마 겨울 따뜻하게 보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이 과장님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습니다. 오늘 뷔페 세 접시 드세요!”
“하하. 세 접시 꼭 먹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많이 오실 줄 생각을 못했네요. 음식 넉넉하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좀 걱정이네요.”
“혹시 오늘 세 접시 못 드시면 제가 맛있는 것 사 드리겠습니다. 언제든 콜하세요.”
나갈 뻔한 넋이 이정용 과장을 만나니 다시 돌아왔다. 낯이 익은 사람 앞이니 확실히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어색한 인사와 친근한 인사들 두루 거치고 나서야 행사 시작을 알리는 마이크 소리가 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프라임일렉트릭의 나주혁신산단 공장 기공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나운서로 보임 직한 사회자의 멘트가 끝나자 유치찬란한 음악이 터져 나왔다. 언제 적 야니냐. 반젤리스 아니면 야니 음악이 나올 것 같았는데 역시나. 이 공무원스러운 감성!
“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무대에 있는 국기를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VIP들이 오는 행사이다 보니 국민의례가 제대로다. 애국가를 부르는데 박자 맞추기가 참 쉽지 않더라. 애국가는 왜 이리 템포가 느린 것이야! 돌림노래가 됐잖아!
애국가의 엄청나게 느린 템포에 맞춰 부르기, 어머니 마음 부르다가 스승의 은혜로 빠지지 않기, 졸업식 때 작별 부르다가 옆에서 우는 놈 때문에 괜히 눈시울 붉어지는 상황에서 끝까지 완창하기. 정말 쉽지 않은 미션들이다.
“다음 순서에 앞서 추운 날씨에도 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 주신 내빈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간략하게라는 말이 무색하게 내빈 소개가 한참을 이어졌다. 도지사와 광역시장이 왔으니, 지역 유지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총선이 아직 1년하고 3개월이나 남았지만, 지역 정가는 벌써부터 바삐 돌아가는구나 싶다.
시의원까지는 꾹 참고 이해했으나, 각종 단체 회장 소개에 들어서서는 슬슬 화가 났다. 겨울이라고! 날씨가 춥다고!
“정말 많은 분들이 프라임일렉트릭 나주 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의 앞날에 희망이 가득하길 염원하며 참석해 주신 귀빈분들을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짜 많이 오긴 했다. 지금이야 VIP들 보러 왔겠지만, 나중에는 이 기공식에 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것이야. 어디 가서 내 이름 팔고 다니지나 말아라.
“다음으로 프라임일렉트릭 김희철 상무의 사업 경과 보고가 있겠습니다.”
상무님! 멋지게 읽고 빨리 끝내자! 덜덜덜 떨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색한 미소들을 짓고 있지만, 하나같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행사라는 것이 그토록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다.
지역 유지들이야 VIP들 온다니까 눈도장 찍기 위해 참고 있는 것이겠지? 딱 봐도 공짜로 뷔페 먹으려고 왔을 것이 뻔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저렇게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진짜 의지의 한국인이다.
“이제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 대표의 기념사가 있겠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대표님을 향해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 단상에 올라갔다. 나의 역사적인 데뷔 무대. 화려하게 장식해 주겠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저희 프라임일렉트릭의 희망찬 앞날을 축하해 주러 오신 귀빈분들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참석자분들의 열기로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희 프라임일렉트릭도 추위 없이 번영할 수 있도록 헌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신록이 푸르른 유월 같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들로 가득한 기념사를 읽어 나갔다. 지극히 공무원스러워야 한다는 유아란 대리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인 결과다. 너무 올드하다고 깔깔대던 덕준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도 맘에 안 들었다고!
“다음으로 내빈분들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먼저…….”
다른 천막에서 흘러나오는 뷔페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접시에 음식 가득 담아 우걱우걱 먹을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있는 척하려면 풀떼기 몇 개 담고서 먹는 둥 마는 둥 해야겠지? 이제는 밥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장의 자격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 나주 공장 기공을 축하하는 테이프 커팅과 시삽식이 있겠습니다. 호명되는 내빈께서는 앞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삽을 든 채 포즈를 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님들 다 찍으셨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사회자 구령에 맞춰 흙을 던져 주시면 됩니다. 하나! 두울! 셋!”
펑펑! 반젤리스의 웅장한 음악과 함께 축포가 터졌다. 우리 회사도 이렇게 빵빵 터질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야!
* * *
행사를 무사히 끝내고 밥이나 먹어 볼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메뚜기 떼 지나가듯 사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김치와 샐러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점심 먹긴 글렀군. 쩝.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불룩 나온 공장장과 상무를 찾아 차에 태웠다. 짱 박혀서 담배 피우고 있던 덕준이도 뒷덜미를 잡아끌어 차에 밀어 넣었다.
“전라도라 그런지 뷔페 음식도 아주 기가 막히구만.”
“공장장님, 홍어 먹었어? 전라도는 잔치 상에 홍어 빠지면 난리 난다더만, 홍어회가 나올지는 생각도 못했네.”
“사람들이 어찌나 쓸어 담던지 몇 점 먹지도 못했어. 칠레산이 아니고 진짜 흑산도산인 것 같던데, 아쉽네 아쉬워.”
“아휴. 차에서 무슨 냄새인가 했더니 홍어 냄새였네요! 몇 점이 아니라 몇 마리는 드신 것 같은데요?”
“꺼억. 아이고 막걸리 마셨더니 트림이 막 나오네.”
“덕준아. 공장장님 껌 하나 드려라. 냄새 땜에 맨 정신으로는 못 올라가겠다야.”
“하하하. 알딸딸하니 딱 좋구만. 꺼억.”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다니, 정말 대단하다. 덕분에 배고픔이 싹 가셨다. 홍어가 어떤 맛일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도전하고 싶지 않다. 냄새만으로도 도전 의지를 무참히 꺾을 지경이다.
“공장장님, 귀찮으시겠지만 종종 내려와서 공사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 좀 해 주세요.”
“…….”
“사장님. 공장장님 뻗었다. 기분 좋다고 넙죽넙죽 들이켜더니만. 혼자 재미 다 보고 트림만 잔뜩 하더니 저리 팔자 좋게 주무시네.”
“상무님도 추운 데서 고생하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좀 주무세요.”
“아까 내빈 소개하는데 진짜 사회자 때리고 싶더라. 추워 죽겠는데 대충 하고 말지.”
“저는 오죽했겠어요. 높으신 분들 사이에 껴서 꿈쩍도 못했습니다. 하하.”
“앞에 난로라도 있었잖아. 뒤에는 얼마나 추웠다고. 이러다 감기 한번 호되게 걸리는 거 아닌가 몰라.”
“몸조리 잘하세요. 따뜻하게 한숨 푸욱 주무십시오.”
뽕이 가득 차올랐던지 잠도 안 온다. 덕준이도 웬일로 조용하다. 이 고요함 속에서 가득 찬 뽕을 만끽하고 싶다. 아! 뽕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