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9)
029 봄을 기다리며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린다. 내 애마였던 말티즈에서는 맛보기 힘든 스테레오감이다. 전화 벨소리조차 교향곡같이 들리다니! 역시 차는 크고 비싸고 봐야 하는 법이다.
“어? 이 과장인데요? 시험 잘 끝났나 봅니다.”
다들 든든히 먹고 인천으로 복귀하는 길에 이규철 과장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이규철입니다.”
“시험 끝났나요?”
“네. 다 마무리됐습니다. 다섯 가지 모두 다 합격입니다. 성적서는 다음 주쯤에 나온다고 합니다.”
“너무 잘됐네요! 고생했습니다! 시간 다 됐으니까 회사 다시 올 필요 없고 바로 퇴근하세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변압기는 화물로 먼저 출발시켰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역시 우리 꼴통 이 과장. 말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참 좋다.
“공장장님, 상무님! 들으셨죠? 다 합격이래요!”
3년간 대한전력 20퍼센트 우선 배정이 확정이다. 나주 혁신산단 입주 기업이 늘어나면 줄어들겠지만, 일단 800억 매출 찍고 시작하자!
창업한 지 반년도 안 된 회사가 단박에 매출 800억을 찍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또 한 해가 가면 천억을 가뿐히 넘어 버릴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제가 해냈습니다! 문자님! 감사합니다! 알라뷰소마치!
“축하하네, 지 사장. 뚝심 있게 밀어붙이더니 결국 여기까지 왔구만.”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나주 공장 삐까번쩍하게 세우고 화끈하게 돈 벌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 시작은 미약해도 끝은 완전 창대하지 않겠습니까!”
“자동권선기 있으니 생산 걱정도 덜고, 속이 아주 편안하구만. 김 상무야, 니 덕분이다야.”
“공장장님, 갑자기 뭔 소리야? 나야 변압기 팔고 다니는 것 말고 더 있어?”
“야 인마. 네가 나 제대로 안 꼬드겼으면 이런 기쁨을 어찌 누리겠냐? 솔직히 처음에는 우리 사장이 사업한다고 했을 때 이놈이 정신이 나갔다 싶었거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 이제는 뼈를 묻어도 될 것 같어.”
“공장장님! 아직도 뼈 안 묻었어? 난 진즉 묻었어! 하, 진짜 너무하네. 하하하.”
두 사람 아주 틈만 나면 티키타카 못해서 안달이다. 내 오피스와이프가 덕준이라면, 공장장은 단연코 상무일 것이다.
“공장장님, 상무님. 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꾸 똑같은 말씀만 드리는 것 같은데, 진짜로! 몇 달만 더 고생하십시다. 내년에 단풍 지면 진짜 우리 훨훨 날아다닐 것입니다.”
울적하고 심각한 분위기로 출발했지만, 돌아올 때는 화사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만 남았다. 그래, 이런 생태탕 같은 개운한 맛이 있어야지!
* * *
모든 것이 더없이 순탄하다. 날이 추워지면서 비수기가 도래했지만 꽤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꾸준히 두세 대씩 출하되고 있다. 이 정도면 월 매출 3억도 가능할 것 같다.
창업 3개월이 갓 지난 회사가 이 정도 인력으로 이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 어디인가! 순조롭다. 여기서 매출이 조금만 더 나온다면 그 상태로만 가도 먹고살 만큼은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지!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지. 대기업은 어려울지 몰라도 중견 기업까지는 올라가 봐야지 않겠나. 문자님의 가호가 있는데 꿈 한번 크게 꿔 보자! 나도 요거트 껍데기 핥지 않고 버릴 수 있다! 1+1에 혹하지 않고 단품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이게 다 직원들 덕이다.
상무는 부지런히 변압기 팔러 다녔고, 공장장은 정신없이 변압기를 뽑아냈다. 유재준 부장도 게임체인저 자동권선기를 생각보다 빠르게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에 그리 고생을 하더니 이제는 손에 익었는지 벌써 3호기 째다. 순탄 그 자체다.
덕준이는 이런저런 잡무를 시원하게 처리해 주고 있다. 중소기업에 주는 각종 지원과 혜택을 박씨 물어 오는 제비처럼 물어 왔다. 소소한 혜택이지만 은근히 꿀맛이다.
덕준이가 각종 서류 업무를 해결해 주었기에 대한전력 실사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자신했지만, 대한전력 실사관들의 꼬장꼬장함에 말문이 막혀 버린 상황이었다. 무슨 계열사라도 되는 모양으로 발톱에 낀 때까지 점검하고 나서니, 꽤 당황했었다.
“사장님! 공장 청결 관리 일지는 있는데, 사무실 일지는 없네요? 이거 감점 요인입니다.”
사무실 청결 관리랑 대한전력 납품 변압기 품질하고 무슨 관련이 있어? 품질 관리 점검표에도 그냥 현장 청결 유지에 대한 관리 여부라고만 나와 있구만. 이거 트집 잡기 같은데…….
“잠깐만요. 바로 찾아서 가져오겠습니다.”
덕준이 이 자식! 설마 준비가 된 것이야?
덕준이가 혜성처럼 나타나 서류를 척 내밀었다. 정말 트집 잡기였던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시험관 눈빛이 예술이었다. 결국 80점 이상 합격에 무려 95점이라는 고득점으로 실사를 통과했다.
“제가 좀 과하게 요구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준비된 회사는 처음이네요. 90점만 넘어도 만점이나 마찬가지예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한전력 시험관의 인정. 역시 잡기의 화신 한덕준! 싸랑한다 덕준아!
사업이 궤도에 올라타면서 나주 일에 올인할 수 있게 됐다. 나주 공장 설계도 공장장의 꼼꼼한 요구를 다 반영하며 무사히 모습을 드러냈다.
* * *
띠룽 띠룽 띠루루룽
“네, 지정수입니다.”
“사장님. 저 유아란입니다.”
“유아란요?”
“유 대리요. 혁신산단!”
놀래라. 역시 일로 알게 된 사이는 이름보다는 직책이 더 익숙하다.
“아, 네. 대리님, 무슨 일이에요?”
“혹시 공장 착공일 잡으셨나요? 착공식 준비를 해야 해서요.”
“착공식요?”
“네, 산단 첫 착공이니까 착공식 없이 지나갈 수 없죠. 준비가 좀 걸리니까 대략이라도 잡혔으면 알려 주세요.”
“그러니까 흰 장갑 끼고 삽으로 흙 파고 박수 치는 그런 것 한다는 거죠?”
“네, 커팅식이랑 시삽식 맞아요.”
커팅식은 익히 하는데, 시삽식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보네. 이제 공장 착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시점이 됐구나.
“공단 준공이 1월 5일라고 해서 그 주엔 공사 들어가려고 합니다. 일단 계획은 그렇게 잡고 있어요.”
“어머. 그렇게 빨리요?”
유 대리 말로는 첫 착공식이니만큼 도지사와 광주광역시장, 나주시장, 대한전력 사장이 필히 올 것이란다. 당연히 방송사와 신문사에 보도 자료도 뿌리고 기자들 초청도 한단다.
당당하게 받아들이자. 최대한 나이 들게 코디하고서는 거물들 사이에서 삽질하고, 악수하고…… 생각만 해도 어색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생각지 못하게 막대한 돈이 생겼고, 그렇게 사장이 된 지 반년이 됐다. 가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30년간 가난과 싸워 오며 몸에 익어 버린 삶을 바꿔 가며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수많은 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당당함과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래, 지정수!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거하게 연말 회식하면서 직원들에게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자. 다들 잘해 주고 있다!
* * *
연말 회식을 앞두고 창업 공신 셋을 데리고 인천에서 제일 크다는 백화점에 갔다. 몇 달 안 됐지만, 고생에 대한 보답을 해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공장 기공식 하면 VIP들이 바글바글할 텐데 번듯한 양복 하나씩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상무님, 좀 부끄럽지 않아요?”
마냥 신 나 있는 공장장 사이로 덕준이가 몹시 부끄러운 표정이다.
“그르게. 우중충한 남자 넷이서 백화점이라니…… 공장장님! 표정 관리 좀 해. 뭐가 그리 신 나서 정신을 못 차려.”
“인마. 우리 사장이 양복 하나 빼 준다는데 억지로라도 웃어야지! 난 양복 필요 없는데 우리 사장 눈치 보여서 웃고 있는 것이여. 회사 잠바가 젤 좋지, 따뜻하고 편하고 얼마나 좋아? 안 그래?”
“우리 공장장 엄청 신 났나 보다. 난 우리 공장장 저렇게 신 나 하는 모습은 또 처음이네. 아주 사춘기 소년이야. 푸하하.”
“우리 공장장님 회춘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장장님도 아직 한창 때인데 좋은 분 만나셔야죠?”
“에이, 나이 먹고 뭐 좋다고 결혼을 또 해? 지금도 뭐 산에 올라가면 할망구들이 줄을 서는데 아쉬울 게 뭐 있어? 허허.”
“대자연 나이트라더니 우리 공장장 아주 행복한가 봐.”
부끄럽다더니 서로 만담들을 펼치네. 다들 신이 났다.
남자 네 명이서, 발음하기도 어려운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한바탕 패션쇼를 펼쳤다. 역시 옷이 날개구나! 사람이 이리 달라 보일 수가 있다니!
“사장님요. 나이트 삐끼 같고 멋있네. 가슴팍에 찬호박 명찰 하나 달면 딱이겠네.”
“이거 괜찮지 않냐? 딱 내 스타일인데?”
“양복 몇 번이나 입어 봤다고 스타일이야. 우리 지정수 사장님은요, 그냥 기름 덕지덕지 붙은 작업복 입었을 때가 제일이야. 그래! 참신하게 작업복 입고 가면 되겠네.”
덕준이 이 새끼…….
“지 사장. 사장이니까 좀 중후한 걸로 입어. 안 그래도 나이 어리다고 여기저기서 무시당할 건데 최대한 나이 좀 들어 보이는 것이 낫지 않겠어?”
“그래, 사장님. 나도 영업하러 다니다 보니까 확실히 중후하게 입고 다녀야 낫더라고. 안에 조끼도 받쳐 입고, 요거, 요거 좋네. 자고로 정장은 쓰리버튼이지.”
“에이 진짜!”
동네 미용실에 모인 아줌마 4인방처럼 한바탕 수다 떨면서 희희낙락거리다 결국 매장 직원이 권해 준 걸로 하나씩 챙겨 입게 됐다.
“지 사장, 고마워. 잘 입겠네. 난 큰 애 장가보낼 때 양복 하나 맞춰서 안 사 줘도 되는데. 허허.”
“하여간 공장장님. 좋으면서 꼭 저런다니까. 사장님! 난 우리 애 장가보낼 때 이거 입을래. 이거 가보로 간직해야지.”
양복 네 벌에 380만 원이 날라 갔다. 매장 직원 할인까지 적용한 것이 저 가격이다. 카드 내미는데 손이 살짝 떨렸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기분이 좋아서 멋있게 일시불이라고 외쳤다. 내가 언제 친구들을 위해 이렇게 거금을 쓴 적이 있었나. 나도 이제 돈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이왕 돈 쓴 김에 연말 회식은 소고기 파티다!
“사장님! 이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야?”
오래 익히면 안 된다면서 핏물 질질 흘리는 고기를 막 우겨 넣던 상무가 예의상 한마디 던져 준다. 옆에서 황미연 대리도 상무한테 그만 좀 먹으라고 타박을 주고는 말을 건넨다.
“아니, 회사 회식을 왜 사비로 하세요? 회사 돈으로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다들 너무 고마워서 그냥 제가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돈 많습니다! 이왕 쏘는 것이니 화끈하게 소고기 먹으면서 한 해를 마무리해야지요. 마음껏 드십시오. 하하하.”
여전히 가난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투뿔 소고기가 영 어색했지만, 나도 간만에 양껏 먹었다. 맛있기는 더럽게 맛있다.
“자, 자. 주목! 배 적당히 채웠으면 이제 우리 먹여 살릴 사장님 한 말씀 들어야지?”
공장장이 마이크랍시고 빈 맥주병을 건네자 직원들 환호성이 식당을 가득 메웠다. 독채라 다른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다. 무슨 소리를 저리 지르냐. 고기 먹었다고 힘들이 넘쳐 나는군.
“오늘 제 사비로 쏘는 것이니까 허리띠 풀지 말고 조금만 드세요.”
“푸하하하. 난 이미 허리띠 풀었어!”
“이모. 일단 여기 5인분 추가!”
“오늘 같은 날은 밥 먹는 것 아닙니다. 공깃밥 일절 금지! 아셨죠?”
덕준이 이 새끼…….
“하하. 마음껏 드세요. 제가 대리비까지 싹 드릴 테니까 1인당 한 짝씩 들이마셔야 합니다!”
“좋다! 오늘 다들 죽자!”
분위기 참 좋다. 나까지 총 12명이 똘똘 뭉쳤다. 아니구나. 이때가 기회라고 무지막지하게 고기 우겨넣고 있는 이규철 과장은 예외로 하자. 토토로 몸매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군.
“지루하겠지만, 아주 잠깐만 얘기를 하겠습니다.”
“사장님! 벌써부터 졸려요!”
덕준이 이 새끼…….
“이제 열흘 뒤면 나주 공장을 짓습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새 공장에서 다 같이 미친 듯이 일하게 됩니다. 기분 좋으시죠?”
“우우우.”
“하하. 긴말 않겠습니다. 내년에 직원이 아주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간부로서 새로 들어올 직원들 잘 보살펴 주면서 아주 흥이 넘치는 회사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모두 쌀밥에 고깃국 배터지게 먹게 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 뭐야! 정말 30대 맞아?”
“복고가 유행한다 하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레트로 감성입니다.”
“아휴, 복고가 아닌 것 같어. 말에서 왜 이렇게 쉰내가 나!”
입이 귀에 걸린 공장장이 맥주잔에 소주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를 가득 담아 일어났다. 뭐 할라고 저러지? 이거 무서운데.
“우리 사장님이 쌀밥에 고깃국 먹게 해 주겠다는데 무슨 말들이 이리 많아! 다들 술잔 가득 채워! 자. 자, 크게 외치자고! 일은!”
“빡시게!”
“놀 때는!”
“화끈하게!”
“보상은!”
“두둑하게!”
“와!”
그렇게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한 해가 마무리됐다. 아직도 문자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를 도와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허황된 생각으로 재벌 한번 돼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있지만, 그것 때문에 그랬을 리는 만무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황금알을 낳는 오리임이 분명하니 일단 믿고 잘 따라보자.
이제 발기찬! 아니 활기찬 새해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