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8)
028 곤조통
최종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함을 부지런히 키웠다. 업소용 참치 캔으로 만들어 둔 재떨이에 담배가 쌓여 갔다. 공장장도 일이 손에 안 잡히는지 괜히 내 옆에서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함에 힘을 실어 준다.
“공장장님, 많이 걱정되시죠?”
“내 새끼들 어디 가서 문제 일으킬 놈들은 아니니 뭐 걱정 안 하지만서도, 결과 나올 때까지 맘 졸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봐.”
“사장님! 사장님!”
상무의 긴박한 목소리가 공장에 울려 퍼졌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상무님, 무슨 일이에요?”
“아니, 뭐 큰일은 아니고, 어제 납품 나간 것 중에 하나가 기름이 샌다네.”
“누유? 그게 왜 큰일이 아니야! 김 상무! 물건을 책임지고 파는 사람이 그렇게 말씀하면 어떡해!”
깜짝이야. 공장장이 저리 화내는 모습은 또 처음이다. 마냥 인자한 아버지로만 생각했는데, 의외의 모습도 있군. 나도 화가 났지만, 화내서는 안 될 상황 같다. 사장이란 모름지기 직원을 달래 주면서 사태를 수습할 사람이지, 화내는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수용가에 설치된 거랍니까?”
“아니, 다행히 거래처에서 재고로 가지고 있으려고 주문한 거래. 조립이 잘못된 것 같다고 그러네. 최 사장 그놈 어찌나 소리를 지르던지 원.”
“거기가 어디예요? 일단 공장장님이랑 다 같이 가시죠.”
“시화니까 1시간이면 되겠지. 서둘러 갑시다.”
그나마 누유라 다행이다. 성능 문제였으면 아주 골치 아팠을 것이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말이다.
변압기 수리만큼 지랄맞은 것도 없다. 외함 안에 기름이 가득 담겨 있으니, 수리 한 번 하려면 아주 기름 범벅이 된다.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 불량 원인 찾는 것은 또 좀 쉬운가? 그 덩어리가 ‘나 어디 아프요’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불량 제로를 꿈꾸며 품질에 신경 써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벌써부터 불량이라니! 화가 나지만, 화낸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수습되는 것도 아니니 참자.
난 그냥 거래처 가서 죄송합니다 하고 머리만 조아리자. 이런 매는 얼마든지 맞아도 좋다. 맞아야 맷집이 강해지지!
급히 시화로 내려가는데, 차 안 분위기가 냉랭하다. 공장장은 자기가 물건 잘못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상무는 물건을 잘못 팔았다는 자괴감을 품어 내고 있었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이럴 때 격려해 줘야지. 사장 하는 일이 문제 생기면 달려가서 머리 조아리고, 직원들한테는 괜찮다고 격려해 주는 것 아닌가?
“뭐 물건 만들다 보면 불량 나올 수 있죠. 앞으로 반복되지 않게 조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네. 조립을 어떻게 했길래 기름이 새는지 원.”
“공장장님.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검사까지 다 마친 건데, 이 과장이 허투루 검사할 사람도 아니고 말입니다. 출하 전까지 아무 문제 없다가 왜 갑자기 기름이 샌답니까?”
“변압기라는 것이 그래.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문제 생기는 것이 변압기야. 20년 넘게 기름밥 먹어 왔어도 변압기라는 놈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사장님. 억지로 공장장님 위로하려고 하지 마. 공장장님 불량에 엄청 예민한 분이니까 어지간해서는 안 풀릴 거야. 뭐 내가 제일 잘못했지. 제대로 확인하고 팔았어야 하는데…….”
다시 차에 정적이 흘렀다.
* * *
거래처에 도착했다. 유통상이라고 하면 되려나? 변압기 회사에서 물건 떼다가 마진 붙여서 수용가에 넘기는 자들이다. 변압기 회사가 수용가와 직접 거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리점이라고 부르는 유통상이 전기 공사를 같이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렇게 판매한다.
마당에 놓인 변압기 주변에 기름 자국이 완연하다. 저거 닦아 내려면 퐁퐁 엄청 뿌려야겠구만, 끌끌.
“어이, 김 상무 왔어? 아니 대체 변압기를 어떻게 만들었길래 이 모양이야! 기름 범벅이야 아주!”
“최 사장님, 변압기 장사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 그러지 마. AS 확실하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마셔.”
“내가 김 상무 믿고 거래 텄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사업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안녕하세요. 사장 지정수입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허리를 너무 수그리면 없어 보이고, 덜 숙이면 거만해 보인다. 가장 적당한 각도로 허리를 굽혀 사과부터 했다.
“네에. 최철민이오. 젊은 사장이라고 하더니 진짜 젊어 뵈네. 그나저나 젊은 사장님이 물건을 그렇게 만들면 쓰나. 나니까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지, 다른 곳에서 그랬으면 아주 난리 난다고!”
아주 제철 만난 듯하는구나. 우리가 만들어 판 제품 불량이라니 어쩌겠나,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지.
“변압기 불량은 저희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당연히 책임져야지. 그나저나 우리도 손해가 만만치 않은데…….”
상무가 이 바닥 관례라면서 봉투 준비하라고 해서 50만 원을 급히 꺼내 봉투 하나 마련해 놨는데, 역시나구나. 불량품 교체는 당연하고, 소문 내지 않을 테니 돈으로 자신을 입막음하라는 뜻이 분명하다. 우리 잘못이 확실하면 어쩔 수 없지만, 돈이면 다 무마되는 세태가 참 맘에 들지 않는다.
“공장장입니다. 기름 새는 것이 저거입니까?”
“저 기름 범벅된 것 좀 봐요. 어휴 진짜. 마당까지 다 청소해 놓고 가야 합니다. 맨날 청소하면 뭐 해. 저렇게 기름 한 번 새면 난리가 나는데! 나 원 참.”
신생 업체 길들이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아무리 불량이래도 저 새끼 너무 거만한 것 아니야? 거참.
“공장장님. 참으세요.”
공장장한테 조용히 속삭였다. 아마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 뻔했다.
“이 바닥 곤조통들이 다 그렇지 뭐. 일단 가자고.”
변압기는 천 보루로 덕지덕지 쌓여 있었다. 공장장이 보루를 걷어 내니 기름이 졸졸 흘러나왔다.
“내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왜요?”
“이거 봐. 방열기에서 새는 거잖아. 김 상무 여기 사진 좀 찍어 줘. 외함집 이 새끼들 진짜.”
다행이다. 조립 잘못이 아니었다. 외함에 붙은 방열기 용접 부위에서 기름이 새는 것이었다.
“잠깐만. 공장장님 이것 좀 봐 봐. 여기 여기.”
“기다려 봐 봐, 안경 좀 쓰고. 어라? 이 새끼들 봐라, 이거.”
나도 보인다. 어딘가 부딪혀 찌그러진 부위 말이다. 아닌 척하려고 망치로 두들긴 흔적도 확연하다. 딱 보니 지게차로 변압기 옮기다가 지게 발에 찍힌 흔적이다. 나도 예전에 지게차 운전하면서 두어 번 해먹었으니 아주 잘 알고 말고.
저들이 잘못해 놓고 우리한테 덤터기 씌우겠다는 것이 확인되니, 뚜껑에 스팀이 돌기 시작했다. 이 새끼 이거 악질이네? 마음 가는 대로 지랄을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우리 회사 물건 제일 많이 사 가는 거래처라 몸이 움찔움찔하네. 참을 인 세 번은 국룰이니까, 일단 지켜보자.
억지로 참고 있는데, 성격이 시원시원한 상무가 가만있지 않는다.
“최 사장요! 여기 좀 와 봐요. 에이, 진짜 이건 아니지.”
멀찌감치 떨어져 담배 피우고 있던 최철민 사장이 귀찮게 한다는 듯이 느릿느릿 걸어왔다.
“뭔데 그래?”
“이거 봐. 이거 찍혀서 용접 뜯어진 거잖아.”
“무슨 소리야! 납품 받은 그대로 놓고 손도 안 댔어!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뒤집어씌울라고 하네?”
“에이 진짜 왜 그래. 이거 봐 봐. 딱 봐도 변압기 옮기다가 찍힌 자국이구만. 페인트 까진 자국 봐 봐. 망치질해서 피려고 그런 거구만.”
상무가 모션까지 취해 가며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었다. 이 상황에서 감히 누가 발뺌을 하리요. 이 어처구니없는 곤조통 놈아! 사업 좀 양심적으로 하자! 아오 진짜!
최 사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지켜보자. 뻔뻔하게 굴다가 발 빼는 것도 중요한 노하우일 수 있다.
“이거 뭐야? 이거 누가 그런 거지? 야! 김 과장 일루 와 봐!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뭐 딱히 배울 것도 없다. 애먼 직원한테 뒤집어씌우기. 에라이 하꼬방 사장아!
“사장님 이거요, 제가 지게차로 옮기다가 지게 발에 아주 살짝 찍혔는데, 이게 이렇게 됐네요. 진짜 아주 살짝 찍혔는데…….”
“아니! 그걸 이제 얘기하면 어떡해! 이 사람들 인천에서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말이야! 어?”
“제가 어제…… 아니, 이게 진짜 살짝 찍힌 거거든요. 상식적으로 살짝 그랬는데 이렇게 터지는 건 말이 안 되죠.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사장에 그 직원이다. 씨발 아름다운 회사 사랑이다 정말.
“사장님, 이거 그냥 용접 다시 해서 후끼질하면 감쪽같으니까 그렇게 해 줄게.”
“아니, 우리 잘못이라고 쳐. 그래도 기름이 줄줄 새는데 외함이라도 갈아 줘야지!”
“최 사장 진짜 너무 그러지 마. 우리 잘못도 아니지만, 우리 제품이니까 티 안 나게 수리해 주겠다는데 말이야. 너무 인정머리 없게 그러지 말라고. 뭐 외함은 공짜로 갈아 주나?”
“에이 몰라. 알아서 해. 변압기 좀 튼튼하게 만들라고!”
최 사장은 병법의 정석 줄행랑을 택했다.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저 곤조를 어찌해야 하려나. 잘못이 확인됐으면 사과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될 일을 곤조 부린다고 끝까지 저러고 있다. 대체 이 나라를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공장장은 구시렁거리면서 뒤처리에 나섰다. 변압기를 비스듬히 세워 기름을 한쪽으로 몬 다음 용접기로 깔끔하게 때웠다. 베테랑의 용접! 아름답다.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후끼통을 마구 흔든 다음 용접 부위에 살살 뿌렸다. 몇달 전까지 숱하게 하던 일이니 나도 나름 베테랑이다.
“사장님, 수리 다 끝났습니다. 앞으로 걱정 끼쳐 드리지 않게 튼튼하게 잘 만들겠습니다만, 사장님께서도 무리한 요구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알이 꼬이지만, 이 정도면 많이 참았다. 맘 같아서는 너 같은 놈하고는 거래 안 하겠다고 냅다 지르고 싶지만, 사장은 모름지기 맘에 없는 소리 하면서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내가 너 꼭 기억하겠다. 데스노트에 적어 뒀어, 기대해.
“뭐 덕분에 지 사장 얼굴도 보고 좋구만. 난 회사 차렸다고 해서 같이 밥이나 한 끄니 할라고 그랬는데, 이거 원 얼굴 보기 힘들어서.”
“제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그래. 요 옆에 죽이는 생태탕집 있으니까 언제 점심이나 하자구요.”
저 새끼 죽어도 밥 산단 소리는 안 하는구만. 에라이 하꼬방 사장아!
혹시나 해서 준비한 50만 원 아꼈다고 생각하자. 뭐 이렇게 바람 쐬러 나오기도 하고 좋네. 니미. 사업하다보면 숱하게 겪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저런 놈 곤조통 받아주면서까지 사업할 생각은 없다!
“사장님 점심시간 다 돼 가는데, 최 사장이 얘기한 생태탕 집이나 가 볼까?”
“김 상무, 너는 속도 좋다. 나는 입맛이 뚝 떨어졌구만. 저놈 저거 길들이기 하려고 저러는 거야. 내가 한두 번 겪어 봐? 회사 새로 차렸다고 하니까 뺑이 치게 만들겠다는 거지.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가격 후려치겠다는 것 아냐? 저 곤조통 놈들 징글징글해 아주. 김 상무 너도 어련히 잘하겠지만, 저놈들 저러는 거 넙죽 받아 주지 말라고.”
“에이, 공장장님.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그래야 힘내서 일할 것 아니야?”
* * *
역시 생태탕이다. 국물 개운한 것이 동태로는 낼 수 없는 시원함이다. 생태탕 덕분에 다들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다.
“김 상무 넌 운전해야 하니까 술은 나만 하지 뭐. 허허허.”
“상무님 드세요. 제가 운전할게요. 저 어차피 술도 못하는데, 한잔 홀짝일 바엔 안 마시는 게 낫습니다.”
“아이고 사장님, 고맙습니다.”
“김 상무 어때? 저 최 사장 같은 놈들 한둘이 아니지?”
“뭐 대부분 잘해 주는데, 꼭 저렇게 곤조 부리는 놈들이 있더라니까. 그래도 나도 이 바닥 20년찬데 다 구워삶아 놨어.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뭐 문제 생겼단 소리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깨. 불량에 아주 한이 맺힌 사람이여. 근데 이딴 걸로 지랄을 한단 말이여? 나 참 진짜.”
“공장장님. 혈압 관리는 꾸준히 하시죠? 공장장님 안 계시면 우리 회사 큰일 납니다, 진짜.”
한마디 해 줄 타이밍이다. 저런 하꼬방 거래처에 휘둘리는 것은 우리도 하꼬방이라는 부끄러운 고백일 뿐이다. 선을 그어 버리자.
“상무님. 우리 잘못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요. 앞으로 이 지랄하는 거래처는 과감히 잘라 버리겠습니다. 굳이 이 고생하면서 최 사장이랑 거래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요. 아셨죠? 우리 잘못이면 확실하게 책임져 주는 것이 맞지만, 괜히 시비 걸고 곤조 부리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잘라 버리세요.”
“오호. 우리 사장님 박력 넘치는데!”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이 아니잖아요. 가오 제대로 챙기자구요. 최 사장 같은 놈들한테 쓴맛을 보여 줍시다. 아셨죠?”
“오케바리! 사장님이 그렇게 해 주면 나야 좋지. 검사과 꼴통 이 과장이 아주 제대로 검사해서 내보낼 거니까 불량은 걱정할 것 없고.”
“그래. 지 사장 말이 맞아. 우리가 뭐 아쉽다고 저런 놈한테 머리 조아리면서 굽실굽실해! 내가 확실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어디 가서 고개 수그리고 다니지 말어!”
“걱정 마셔. 나중에 민수 물건 안 나온다고 뭐라고 하지나 마셔.”
“으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와 줘야 하는데 말이야.”
“진짜 공장장님. 자꾸 이랬다저랬다 할 거야? 내가 언제 영업 허투루 한 적 봤어? 하여간 진짜.”
두 절친의 티키타카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겠다. 이럴 땐 중립이 최고지.
“공장장님. 국물이 개운하네요. 많이 잡수세요. 아~ 국물 좋다.”
자나 깨나 품질이다. 그나저나 생태탕 국물 진짜 죽이네. 공장에 식당 차리면 여기 주방장 초빙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