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7)
027 박씨 물고 온 제비
어깨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힘이 사라지자 몸이 더없이 가벼워졌다. 혁신산단 사무실에 올라가는 계단도 가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바로 사장님 방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장님 어제 장난 아니셨나 봅니다. 아침부터 도에서 연말연시 공직 기강 확립을 위한 감찰 활동에 나선다는 팩스가 왔어요!”
이정용 과장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다. 세상엔 이리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똑똑.
사장실 안의 들뜬 기운이 밖에서까지 느껴진다. 뭐 좋은 일이 있나 보구만.
“아따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자주 좀 들러 주시지요. 우리 첫 고객이신데 자주 안 오시니까 섭섭합디다. 하하하. 사장님 덕분에 제가 이리 웃고 삽니다. 그리 서 계시지 말고 여그 앉으시죠.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이따 곰탕 한 그릇 자시고 가시지요. 나주 왔으믄 곰탕은 필히 잡수여야 합니다. 하하.”
덕준이 침 삼키는 소리가 사장실에 울려 퍼졌다. 아침이라도 먹이고 올 것을 그랬나. 아침 안 먹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실 줄 알고 아침도 안 먹고 왔습니다.”
“그래요? 제가 사장님 덕분에 위신이 높아졌는데 특에다가 곱빼기로 시켜 드려야겠구만요.”
“제가 한 일이라고는 돈 내고 땅 산 것밖에 없는데요.”
위신이 높아졌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내가 도움 준 것이 없는데 말이지.
“도지사님께서 아침에 직접 전화를 주십디다. 요즘 보기 드문 청년 사업가라면서 어찌나 칭찬이 자자하시던지요. 덕분에 산단 입주 예정 기업들한테 권한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으니, 내가 아주 어깨춤을 춰도 모자랄 판이요. 사장님 같은 귀인을 만난 것이 복이지라. 하하하.”
“저야 뭐 돈 버는 것이 우선인 사업가 아닙니까? 좋은 일 하면서 돈 벌자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사장님이 도지사님과 면담하셔서 공단 물꼬를 터 주신 것이 얼마나 큰 공인 줄 아십니까? 아침부터 전화 오고 난리도 아닙니다. 아실랑가 모르겠지만, 여기 혁신산단이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돈은 돈대로 들었는데 사업은 지지부진하지, 행여나 뒤집어쓸까 봐 누구 하나 총대 메고 나설 사람은 없지, 아이고야.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여기 사장으로 오고 나니까 사장님께서 계약 딱 해 주시고, 그 뒤로 분양 문의가 줄을 이었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적당히 끊고 추임새 넣어 주자. 최 사장도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사투리가 너무 심해 알아먹기 힘들 정도다.
“뭐 그게 제 덕분이겠습니까? 사장님께서 열심히 뛰어다니시면서 세일즈한 결과겠지요.”
“여기 지역 정가가 보통 아싸리판이 아니여라. 지금 다들 공천 받을라고 눈에 불을 켜고 벼르고 있단 말이지요. 아이고, 내가 참 별 얘기를 다 한다.”
“아닙니다. 흥미진진합니다.”
“내가 여기 사장 됐는데 산단을 확 일으켜 봐. 경쟁자들이 어쩌겠어요? 특혜를 줬느니 마느니 난리치면서 투서는 기본이고 고소 고발에 난리도 아니었을 것인디, 사장님께서 일거에 해결해 버리셨다니까요.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준공 늦추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합디다. 드러운 놈들.”
의도치 않았지만, 내 덕에 내후년 총선 때 공천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결론이군.
최 사장은 지지부진했던 혁신산단을 궤도에 올린 능력자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우리 같은 일반인이야 모르겠지만, 총선이 1년 반밖에 남지 않았으니 경쟁이 장난 아닐 것 같긴 하다. 이 지역은 공천이 곧 당선이나 마찬가지이니, 오죽하겠나.
이렇게 본의 아니게 정계랑 연결이 돼 버렸다. 도지사도 그렇고, 총선 출마자까지 끈이 만들어져 버렸다. 잘 다루면 사업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호되게 당할 것이다. 이런 걸 두고 양날의 검이라고 하나?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군.
“그나저나 제가 공장 지을 회사를 알아보고자 합니다만…….”
“아따 나를 진즉 찾아와서 말씀하셨어야지. 내가 뭐 크진 않지만,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힘 좀 쓰는 회사 꾸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다른 데로 가면 나가 가오가 안 살지요. 하하.”
“제가 제 앞가림만 하느라 미처 몰랐습니다. 진작 찾아왔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이따 점심 자실 때 우리 회사 상무도 오라고 했으니까 편하게들 얘기하시요. 나야 뭐 이름만 걸고 있고 우리 상무가 일을 다 하니까.”
“이렇게까지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뭐 챙겨 주고 말고가 어디 있다요. 나야 공사 수주해서 좋고, 사장님도 마음 편히 믿고 맡길 수 있어서 좋은 것 아니겄습니까? 비용은 걱정 마시고, 솔직히 너무 헐값에 해 줘 블믄 그것도 말 나오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해서 딱 깔끔하게 해 드리지요.”
추임새만 살짝 넣었을 뿐인데, 알아서 결론까지 딱 내 버린다. 나름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던 덕준이도 그냥 멍 때리고 있을 뿐이다.
“몇 군데 알아봤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얘기하더라구요. 저희가 나름 조사해 보니까, 한 과장, 평당 얼마 정도로 책정했지?”
멍 때리며 졸음과 싸우고 있는 덕준이를 부르며 엔터키를 쳤다.
“네! 최대 평당 150만 원입니다.”
오케이. 거기까지.
“네, 그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 봐도 뻔합니다. 업체들 기본으로 평당 200 이상은 불렀을 것이요. 그러고는 온갖 생색 다 내면서 쥐똥만큼 깎아 주겠지라. 우리 사장님 완전히 바가지 쓰셨을 겁니다. 내가 상무한테 얘기해서 마진 최소한으로 하고, 추잡시럽게 자재에다 몇 푼 붙이는 짓꺼리 안 하고 해 드릴께라. 걱정 마시쇼.”
“고맙습니다, 사장님. 저야 저렴하게 하면 좋긴 한데, 사장님께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니, 누가 손해 보면서 해 드린답니까? 하하하. 그래도 다 충분히 남겨 먹으니까 걱정 마시라니까. 나도 사업하는 사람인데, 왜 손해를 봅니까? 아따 몇 마디 안 했는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 브렀네요. 곰탕 한 그릇씩 하러 가십시다. 어이 이 과장, 유 대리! 자네들도 같이 가지?”
* * *
이 집 곰탕 정말 맛있다. 허름한 외관에 입구부터 온갖 방송 출연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가게 같다. 그런데! 맛은 리얼이다.
얼핏 보면 허연 뭇국인지 갈비탕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무슨 곰탕이 이러냐고 무시할 수 있다. 첫 숟갈 맛 봤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계속 음미하다 보면 구수하고 담백한 맛에 사람이 미쳐 버린다. 별도로 시킨 수육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적당히 국물 맛을 즐기다가 깍두기 국물이나 양념장 살짝 친 다음 밥을 말면 그냥 절로 욕이 나온다. 나랑 덕준이 둘만 있었다면 서로 ‘존나 맛있다’를 연발하며 게걸스럽게 퍼먹었을 맛이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몰라야 하는데, 최 사장의 쉴 새 없는 네버엔딩스토리에 누군가 죽으면 반드시 알아차릴 것 같다. 정치하겠다는 사람답게 말이 아주 청산유수였다.
구연동화 같은 인생 역경 스토리를 듣느라 결국 최 사장네 회사 상무랑 말도 제대로 나눠 보지 못했다. 밥 먹으면서 편하게 얘기하라더니…….
다 먹고 주차장에서 가진 잠깐의 담배 타임에서야 상무에게 겨우 말을 건넸다.
“상무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께서 신신당부했응께 걱정 마시소. 바로 설계부터 뽑아야 하니까 저희 직원 올려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사비 얼개라도 알고 싶은데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너무 속물처럼 보이잖아!
아니지! 내 사업 하는데,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닌데 꼼꼼하게 따져야지! 아직도 예전의 찌질함을 버리지 못했나 싶다. 정신 좀 바짝 차리자!
“아직 설계도 안 나와서 이르긴 한데, 대략 얼마 정도 예상하십니까?”
“정확한 것은 설계가 나와 봐야 알겄지만, 3천 평이라고 하셨지요? 평당 150 언더로 충분하니까 다 해도 40억은 안 넘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엄청 싸게 해 주는 것처럼 굴면서 70억을 부른 업자 놈 생각에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순식간에 코 베어 가는 세상이야!
나주만 오면 이리 좋은 일이 생긴다. 아니지, 저번에 대한전력 갔을 때……. 그래, 잊자. 좋게 마무리됐잖아. 아주 강남 간 제비가 떼로 지어 박씨를 물고 온 것 같다.
“착공일 확정되면 바로 연락 주셔야 합니다잉.”
“당연하지요. 산단 준공 떨어지면 바로 시작하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올 연말만큼은 따뜻하게 보낼 것 같다. 올라가서 회식 한번 거하게 하자! 내가 쏜다!
* * *
인천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전력 시험품이 시험에 들어간 지 한 달을 맞이했다. 추운 날에도 뜨끈뜨끈한 열기를 내품던 소중한 내 새끼들. 김 상무가 얘기한 검사 담당자가 들어오자마자 꼼꼼하게 점검한 것이라 잘될 것이라 믿는다.
보름 전, 상무가 토토로와 흡사한 모습을 한 직원 하나를 데리고 왔다.
“지 사장. 내가 저번에 얘기한 검사 직원. 규철아, 인사드려. 우리 사장님이셔.”
“안녕하세요.”
“네, 상무님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꼼꼼하게 검사 잘하신다고.”
“꼼꼼하기는. 속 터지는 놈이지.”
전해 들은 대로 솔직히 꼴통 냄새가 좀 나긴 했다. 검사 담당자로 더없이 적합한 냄새이다. 검사가 나이브하다면 그건 자격이 없는 것이다. 검사 담당자에게 꼴통 같다는 말은 더없는 칭찬이다.
“뭐 면접이랄 것은 없구요. 맡은 일 실수 없이 잘해 주시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네.”
“일단 과장으로 하기로 했는데, 급여 조건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검사 총괄이긴 한데, 저희가 아시다시피 신생이라 처음부터 많이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 버는 만큼 충분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나쁘지 않네요.”
엔지니어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말투가 맘에 든다.
“인마, 뭐가 나쁘지 않아. 전에 회사에서 얼마 받았는지 뻔히 아는데.”
이 업계에서 이만한 급여 주는 회사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 상무가 타박부터 준다.
“그래서 나쁘지 않다고 했잖아요. 사장님, 일은 내일부터 하면 됩니까?”
“그래 주시면 좋죠. 황 대리님! 여기 과장님 사이즈 체크해서 작업복이랑 안전화 주문 좀 해 주세요. 명함도 신청해 주고! 저희가 내년 초에 나주로 이사 가는 것은 아시죠?”
“네, 들었습니다.”
“그래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가도 되죠? 내일 뵙겠습니다.”
이런저런 군소리 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 같아서 괜찮게 봤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새벽같이 고요한 사람이라 간혹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물건을 확실히 추려 내는 것을 보고는 진국이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
“자, 전원 내립니다. 하나 둘 셋!”
“쿠쿵. 우우우웅. 휘이이잉.”
전력 공급 장치가 가동을 멈췄다. 이제 전기 연구원 들고 가서 마지막 단락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 최대 고비이다. 한 달간 가혹한 조건으로 가동되던 변압기가 단락을 맞고도 변형되지 않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많은 회사가 이 단계를 넘지 못하여 시험비 수천만 원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 시험 실패로 모가지가 날아간 이도 적지 않다. 그만큼 중요한 시험이고 넘기 쉽지 않은 장벽이기도 하다.
“이 과장님, 잘 부탁합니다. 유 부장님도 잘 도와주시구요.”
“네. 테스트상으로는 큰 문제 없을 것 같네요.”
5톤 트럭에 내년 장사 밑천인 시험품 여덟 대와 문자님 선물인 개발품 2대를 빼곡히 채워서 먼저 보내고, 검사과 이규철 과장과 보조 역할을 할 우리 회사 만능맨 유재준 부장에게 당부를 했다.
이 시험이 성공해야 내년 800억 원이 확정되니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을 보내고 나서 괜히 공장을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워 댔다.
아무 문제 없던 변압기도 단락 맞고 정신 못 차리는 일이 많으니 초조해질 수밖에……. 직원들도 내 심정을 이해하는지 애써 모른 척 묵묵히 일만 한다.
띠링.
어? 문자다!
-단락 시험 이상 무. 오후에 특성 시험 예정입니다.
에잇. 이규철 과장이구나. 놀래라. 남들은 다 깨톡을 쓰던데, 이 과장은 문자를 고집했다. 우리 문자님이신 줄 알고 엄청 설렜네.
단락은 잘 맞았고, 특성 시험만 통과하면 끝이다! 사람 간 쫄리게 하지 말고 시험 좀 바로 팍팍 끝내 주지. 거참. 초조하다 초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