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6)
026 신문고
“사장님~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요즘 여기저기 분양 문의가 많네요.”
“아닙니다. 벽 바라보면서 멀뚱멀뚱 지루하게 있으니 시간 금방 가네요.”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 이제 확실한 아군이다. 많이 부풀리자면 여기까지 오는 데 이 과장의 적극적인 헌신이 큰 도움이 됐다고 치하하는 바이다. 좋은 사람이야.
“하하. 죄송합니다. 중도금 40프로는 준비해 오셨죠? 여기 임시 사용 신청서 작성해 주시구요. 잔금 40프로에 대한 보증증권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7억 4천이네요. 후우. 1월 공단 준공은 언제 확정됩니까?”
“아직까지 답이 없네요. 저희 사장님께서 노력 많이 하고 계십니다. 그것만은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하아. 쉽지 않네요. 많이 도와주시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풀어 봐야죠. 그나저나 지원금은 어찌 됩니까? 아시다시피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서요.”
“중도금까지 마무리하셨으니 바로 서류 심사 들어갑니다. 국비랑 시비 포함 최대 70프로까지 나올 수 있는데, 그렇게까지는 안 나오니까 큰 기대는 마세요.”
“조금이라도 나오는 것이 어딥니까? 설비 투자 지원금은 공장 착공한 이후에야 되는 것이죠?”
“네. 증빙 자료 첨부하시면 아마 빠르면 완공 전에 처리될 것입니다. 처음이라서 신경 써서 해 드릴 것이니까 걱정은 마세요.”
“제발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바쁘신데 자꾸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물어보실 것 있으면 얼마든지 여쭤 보세요. 그 일 하려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정책 자금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돈 들어갈 곳이 많네요.”
“당연히 알아봐 드려야죠. 한도를 기존보다 늘린다고 했으니까 넉넉하게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용 보증도 있고, 기술 개발 지원도 있고, 대한전력 차원의 지원도 있으니 자금 부족하다는 소리는 안 하셔도 될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용종 같이 자리 잡았던 돈 걱정 하나가 훅 하고 사라진 기분이다.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렇다고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에…….
“제가 필요한 서류 목록이랑 신청 방법 챙겨서 드릴 테니까, 돈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과장님께서 쩐주 같으시네요.”
“제 돈이라고 생각하고 퍼 드리지요. 하하하.”
“참.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혹시 아는 건설 회사 좀 있으십니까? 여기저기 알아보는데, 돈 뜯어먹으려는 승냥이 떼도 아니고, 너무하다 싶을 정도더라구요.”
“건설 회사요? 사장님! 아니 그걸 저한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잘못 말했나? 이 과장이 저리 화들짝 놀라는 모습은 또 처음이네.
“네? 왜요? 뭐 잘못됐나요?”
“저희 사장님이 건설 회사 하시잖아요!”
일이 잘 풀리려니 복이 이렇게도 찾아오는구나.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가 등잔불 밑에 있었다니! 적어도 말 같지도 않은 금액을 부르며 사기 치지는 않을 것이다. 숙변을 뽑아낸 듯 몸이 가벼워졌다.
“아니, 그걸 제가 왜 몰랐을까요? 사장님이 지금까지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아이고, 진즉 알았으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고생 안 했을 건데.”
“이 지역에서야 워낙 유명하니까 으레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지역 분이 아니시네요. 제가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오늘 하루 묵고 가실 거죠? 사장님 오늘 안 나오시니까 내일 오시면 면담 시간 잡아 놓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따 도지사 면담이 있어서 무안에 갔다가 바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하루 더 묵어야겠네요.”
* * *
전남도청이 있는 무안 가는 길이 더없이 쾌적하다. 마냥 기분이 좋다. 일이 너무 술술 잘 풀려서 내심 걱정도 되긴 했지만, 이 기쁨을 즐기자. 이 기분이라면 도지사와 면담도 잘 풀릴 것 같다. 제발!
전남도청에 도착하자 보좌관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이것저것 꼼꼼하게 체크한다.
“죄송하지만, 도지사님 다음 일정이 있으니까 면담은 10분 내로 마무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도지사님 나오십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데, 도지사는 악수하려고 손부터 내민다. 이 어색한 상황.
“반갑습니다. 도지사 이승연입니다.”
“도지사님, 안녕하십니까.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청년 사업가께서 나주에 큰 투자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야 나주가 유망하니까 투자한 것뿐입니다.”
“하하. 우리 젊은 사장님께서 겸손하시군요. 자, 앉으시죠.”
공치사는 이 정도로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시간이 없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9분.
“저희가 도에서 많은 지원을 받은 만큼 지역 밀착형 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여러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인재 채용은 당연히 지역민으로 할 계획인데, 저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성년이 돼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 청년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려고 합니다. 나주뿐만 아니라 광주와 전라남도 전역에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우리 사장님께서 훌륭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좋은 일 하시는데 도에서도 할 일이 있다면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잠시 짬을 내 지역에 자리 잡으려는 사업가와 면담하는 것 정도만으로 여긴 듯했던 도지사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 얘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디테일에 엄청 강해 공무원들이 일하느라 죽어 나간다는 도지사. 그만큼 이 지역에서는 일 잘하기로 확실하게 인정을 받은 행정의 달인 도지사. 이 사람을 감동시켜야 내가 살 수 있다.
“또 있습니다. 채용하면 정착 지원금 마련을 위해서 월급 일부를 적금으로 묶고, 적립금만큼 회사가 별도로 지원할 생각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3년 내지 5년 정도 일하면 자립할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죠. 저희도 직원들이 오래 일할 수 있으니 좋구요.”
“오호. 그래요? 그것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보좌관? 여기 사장님 말씀은 아주 좋은 정책이 될 것 같은데요? 검토를 해 봅시다. 말씀 중에 미안합니다. 그래요. 우리 사장님께서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됐습니까? 저도 정치를 참 오래했지만, 많이 놀랐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젊고 활기찬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입니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면 회사도 그만큼 노력해야지요.”
“청년 사업가라 그런지 생각하시는 것이 남다릅니다. 제가 많이 배웁니다. 하하. 그래요. 공장은 언제 준공하십니까?”
역시 관록 있는 정치인의 노련함을 무시할 수 없다. 알아서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 내가 얘기를 꺼내면 청탁 같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는데 말이다.
“늦어도 4월에는 가동에 들어갈 계획입니다만…….”
차마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아서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도지사가 눈치를 챘는지 허리를 숙이며 관심을 보였다. 역시 관록의 정치인!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공단 준공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계획대로 1월 준공에 맞춰 공장 착공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시끄러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착공을 늦춰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아무래도 시끄럽다니요?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보좌관? 사장님 말씀이 무슨 뜻이지요?”
“…….”
“제가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여기 사장님께서도 뭔가 어려움이 있으니 그런 말씀을 하셨을 텐데요?”
보좌관이 눈치를 보는 것을 보아하니 말하기 곤란한 것이 분명하다. 어공들의 알력을 비밀로 하고 있었군. 그렇다면 내가 치고 나갈 타이밍이다.
“혁신산단 얘기로는 나주시가 도에서 받는 압박 때문에 준공 허가를 미루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착공이 늦춰질까 걱정이 많은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사업을 접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다 있다니요.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챙기지를 못했습니다. 보좌관! 제가 알기로도 혁신산단 준공이 1월 5일로 알고 있는데, 일정엔 이상이 없습니까?”
“그것은 나주시에서 관할하는 문제라서…….”
“그럼 도에서는 나 몰라라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도 예산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챙겨야 할 사안 아닙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면 1월에 준공이 돼서 기업하시는 분들의 애로가 없도록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네요.”
카리스마 작렬이군. 전남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더니, 거저 된 것이 아니로구나.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시간이 없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혁신산단 1호 투자 기업입니다.”
“네? 1호 기업은 안성파워 아닙니까? 제가 투자 협약식에 참여했는데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디테일에 강하다니, 회사 이름까지 다 외우고 있을 줄이야.
“네, 저희랑 안성파워랑 계약 시점이 얼마 차이 안 나긴 한데, 저희 같은 신생 기업보다 업력이 있고 투자 규모가 큰 안성파워를 1호 기업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어서, 제가 양보했습니다.”
“양보라니요. 그건 양보가 아니고 강탈입니다. 누가 알아줄지 몰라도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일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습니까? 누가 그런 제안을 했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공무원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출마 예정자들끼리 알력 다툼이 있는 모양인데, 저같이 이제 막 사업 시작한 사람이 그 속내까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1호 기업 타이틀은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공장 준공이 자꾸 미뤄지는 것은 저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보좌관과 따로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낮지만 단호한 톤의 목소리가 도지사실 문을 타고 넘어왔다. 보좌관을 심하게 추궁하는 모양이다. 그래, 보좌관아, 너네 정무부지사가 그랬다고 다 불어! 호통 소리까지 들린다.
이미 약속한 10분은 넘어 버렸다. 다음 일정이 있다던 도지사는 다시 내 앞에 앉았다. 내 일을 해결하는 것이 다음 일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렷다.
“죄송합니다. 여러모로 사장님께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소상히 파악해서 해결한 다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보좌관! 사장님 가시는 길 잘 모셔 드리구요, 오늘 일정은 다 취소해 주세요.”
10분밖에 못 준다던 면담은 20분이 지나 마무리됐다. 분 단위로 스케줄이 잡히는 도지사한테서 약속보다 10분을 더 받아 낸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분위기 좋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보인다. 썩지 않은 동아줄이다. 동아줄을 잡기 무섭게 전화가 걸려 왔다. 면담을 끝나고 2시간밖에 안 지난 시간이었다.
“도지사 이승연입니다.”
어휴, 놀래라. 도지사가 직접 전화를 걸 줄이야. 이 양반 이거 진국이네.
“네, 도지사님!”
“미숙한 행정으로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 덕분에 도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은 감사드립니다. 혁신산단은 계획대로 1월 5일에 준공될 것입니다. 사장님께서 기업 활동하시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낮은 자세로 살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지역 사회 공헌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번호는 제 직통 전화입니다. 앞으로도 행정상의 문제로 어려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전화 주십시오.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대성공이다! 정치인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일이 꼬인다 싶을 때는 탑다운 방식이 해결책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 신문고를 두들겼더니 도지사가 동아줄을 내려 주었다. 이제 모든 걸림돌이 해소됐다.
이제 나주에서 젖과 꿀을 빨면 된다! 31년의 내 삶에서 이리 일이 술술 풀렸던 적이 있던가? 주눅 들기 바빴고, 고생만 했던 그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고생을 이리 보답 받는구나.
문자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인간 지정수,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도 베풀면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