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5)
035 커피 한 잔의 여유
조합의 방해질은 예상했던 바이니 신경 쓸 것도 없다. 아직 공장도 안 세웠는데, 미리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아직 반년 넘게 남은 일이니 당분간은 신경 쓰지 말고 회사 일에나 매진하자.
그러나 목소리 높이던 몇몇 사장은 언제가 됐든 손을 봐줄 필요가 있겠다.
양보? 그렇게 윽박질러서 우선 배정 포기시킨 적이 있으니, 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나 본데, 어림도 없지. 나를 아직도 태양전기 지정수 과장으로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도 처음 회사 맡았을 때 꼰대 사장들의 꼰대질이 가관도 아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었다. 박 사장이야 아버지가 창업주니까 덜했을 뿐, 어리다 싶으면 하대부터 하는 습성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바닥 꼰대들 정말 명불허전이다.
기분 더럽게 밥 먹었으니, 소화되라고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
회사 일찍 들어가기도 뭐해서 흡연 가능한 카페에 들어가 담배 좀 피우고 있는데, 박준희 사장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사장님, 회사 들어가셨어요?”
“아니요. 카페에서 혼자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거기 어디예요? 저도 커피 한 잔 사 주시죠!”
이 여자 왜 자꾸 따라붙지? 아군 같아서 좋긴 한데 좀 부담스럽기도 하구만. 어차피 돈 벌겠다고 사업하는 것인 이상,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겠지. 당장은 아군인 것 같아도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겠군.
박 사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미모에 커피숍 여기저기서 눈알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거 살짝 뿌듯하구만.
“신년회는 금방 끝났나 봅니다?”
“뭐 파투 났죠. 대낮부터 술 마시러 간다고 해서 먼저 나왔어요.”
“사장님은 왜 술 드시러 안 가셨어요?”
“어휴. 노인네들 노는 데 따라가 봐야 뭐 해요. 여자 끼고 놀 것 뻔한데. 그나저나 아까 말 잘하시데요? 얼굴 살짝 떨리는 것 같긴 했지만.”
“하하. 솔직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그냥 기분 불쾌했다는 것만 남았네요. 무슨 다구리도 아니고 참.”
“전 동참 안 했어요.”
내 편이란 소리인가? 아군이 되겠다는 선언이야? 확인이 필요하겠군.
“사장님도 제가 20프로 양보 안 하면 많이 손해 보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대충 계산해 보니까 20억 정도 매출 떨어지는 것인데, 꽤 크죠. 그런데 관수는 재미없어요. 앞으로 업체 계속 늘어날 건데, 그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되죠. 저희야 관수 쪽은 포션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 크게 개의치 않아요. 어차피 떨어질 매출인데 좀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하죠.”
“역시 사장님은 생각하시는 것이 남다르네요.”
“관수야 매출 안정적이고 대금 바로 들어오는 것은 좋은데요, 나눠 먹기라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안 돼요. 사장님도 너무 올인하지 마세요. 지금이야 우선 배정 있으니까 좋을지 몰라도, 나주 입주 업체 늘어나면 또 나눠 먹어야 하잖아요? 그것도 3년밖에 안 한다고 하던데, 그거 끝나면 쉽지 않을 거예요.”
걱정해 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만, 우선 배정 끝나고도 또 있습니다. 최소한 4년은 거뜬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나가고 나서 별 얘기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김 사장님은 열 받았는지 가발을 집어 던지더라니까요. 푸하하하. 웃음 참느라 혼났네.”
“그분이 저한테 제일 적대적이던데, 누구예요?”
“김 사장님요? 동서변압기 사장님이에요. 조합 이사장님 아시죠? 최웅민 사장님요. 그분이랑 동서 간이에요. 최 사장님 광진변압기에서 독립해 차린 회사이니까 한 회사나 마찬가지이죠. 최 사장님이야 이사장이니까 별 얘기 안 했지, 아마 김 사장님보다 더했을 거예요.”
“아하. 그래서 회사 이름이 동서변압기예요?”
“예? 아! 네에. 참 재미있네요…….”
동서 사이라고 해서 동서변압기라고 이름 지었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개그로 받아들였나 보다. 내가 아재개그나 할 사람으로 보였나 보구나. 쳇.
“아무튼 올해 입찰은 흥미진진할 것 같아요. 아까도 우선 배정하는 법 개정시켜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뭐 법이 포스트잇 뗏다 붙였다도 아니고 소리 지른다고 바뀌겠습니까? 지금도 국회에 밀린 법안이 얼마나 많은데…….”
“맞아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무슨 힘이 있다고 법까지 바꾸겠어요. 매년 입찰할 때마다 제대로 뭉치지도 못해서 그 난리잖아요.”
로비력이 뛰어나도 어려운 판에 로비력도 없는 중전기조합이 꿈틀한들 지렁이밖에 안 된다. 하나도 겁나지 않지만, 나름 신경 써 주는 박 사장은 고맙군.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꾸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제가 뭐라도 보답을 해야 할 것 같네요.”
“뭐 서로 도우면서 사업하는 것이죠. 아까 얘기가 관수가 아니고 민수였으면 저도 가발 집어 던지고 그랬을 것 같아요.”
역시나구나. 민수 쪽에서는 자기 나와바리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군. 나를 확실하게 경쟁자로 인식하다니 정말 대단히 놀라운 안목이다!
“제가 관수 20프로 먹으면, 관수 하던 회사들이 죄다 민수 쪽 뛰어들지 않을까요?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긴 하네요.”
“민수 시장이 개판이라도 아무나 와서 거저먹는 시장은 아니죠. 사장님이 관수로 재미 보고 저는 민수로 재미 보면 딱 좋겠네요. 호호.”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웃음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다. 호탕하게 웃을 때랑 약간 억지스럽게 웃을 때의 뉘앙스가 꽤 다르다.
그러나 어쩌지? 나도 민수 쪽 포기할 생각은 없는데? 당신이 더 호의를 보여 준다면 서로 협력할 생각은 있어. 지켜보겠어.
“당분간은 관수 하느라 바쁘기도 해서, 민수 쪽은 사장님한테 피해 안 가도록 영업하겠습니다. 저희 같은 하꼬방도 먹고살아야죠. 하하.”
은연중에 암묵적으로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박 사장이 우리를 다크호스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아직은 싸울 의사가 없음을 전하는 것이 좋겠다 싶다.
“그런데 관수 20프로면 물량이 엄청날 텐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기다렸다는 듯이 이뤄지는 화제 전환. 여기까지 나를 쫓아온 것이 이것 때문인가? 우리가 그 많은 양을 어떻게 소화할지가 궁금하겠지.
“대략 계산해 보니까 한 달에 4천 대 정도 생산하면 될 것 같더라구요. 뭐 꾸역꾸역 만들어야죠.”
“한 달에 천 대 만들기도 힘든데, 4천 대요? 가능해요?”
“제가 무식하게 사업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일단 사람 충분히 뽑아야죠. 못해도 50명 정도는 뽑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공정 상당수가 자동화돼 있어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50명이 충분하다구요? 자동화는 또 무슨 소리예요?”
박 사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늘 배시시한 표정이라 반달 같은 눈만 보다 토끼 같은 눈을 보니 색다르기도 하네. 그러고 보면 나이치곤 꽤 동안이긴 해. 몸매도 음……, 나쁘진 않군. 에잇, 물러나라 음란마귀야!
“저희는 연구 개발 아주 많이 하는 회사입니다. 나주 공장 완공되면 한번 놀러 오세요.”
그래, 박 사장이라면 내가 자동권선기 한두 대 정도는 싸게 팔 수 있어. 대당 3억 정도에, 로열티까지. 나한테 더 호의를 보이라구, 내가 아군한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자동권선기는 생각보다 더 대박이었다. 당초 10프로 정도 원가 절감이 예상됐는데, 실물을 보고 다시 계산해 보니 13프로는 족히 가능했다. 규모가 커질수록 절감액이 더 커질 것이다.
옥동자 하나가 못해도 네 사람 몫을 해 버리니, 보면 볼수록 매력덩어리다. 사랑한다, 이 자식아!
이 옥동자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 업계 분위기를 확 바꿔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오리이니 나 혼자 감싸 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두기엔 너무 아깝다. 좋은 돈벌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하자고.
“사장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아…… 네. 회사 꾸려 가는 것만으로 신경 쓸 것이 많은데, 조합까지 저리니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네요.”
“그러시겠죠.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은 해 왔는데, 오늘 확고해졌어요. 그래서 사장님 뵙자고 여기까지 온 것이구요.”
대충 둘러댔는데, 맞장구치면서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던지는 박 사장.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 조합 하나 새로 만들 생각이에요. 지금 조합은 솔직히 돈만 받아먹지 하는 일도 없어요. 왜 전에 젊은 사장들 모임 있다고 했잖아요? 거기서 몇몇 변압기 사장님들한테 넌지시 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진짜 추진할까 봐요.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 아무리 봐도 내 편 같다. 조합이 새로 생긴다면 중전기조합이 입찰 단가로 장난칠 여지가 확 줄어들지 않나! 이거 호재로다.
“지금 중전기조합에 불만이 많으신 듯하네요.”
“불만이 한둘이어야 말이죠. 물량 배분하는 것으로도 장난치고, 말 많아요. 오늘 신년회 때 저러는 것 보니까 지금 상태로는 변압기 업계 정체될 것 같아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잖아요.”
“옳은 말씀입니다. 저야 우선 배정 있어서 조합 가입 안 해도 되지만, 박 사장님 적극 도와 드리겠습니다.”
“우선 배정 있어도 조합 가입했으면 회원사니까 당연히 물량 나눠야죠.”
아휴. 우선 배정 물량만으로도 배 터질 지경인데, 더 먹으라고? 이래도 되나 싶네.
“아휴. 올해는 20프로 소화하기도 벅찰 것 같은데, 제가 또 욕심부리면 되겠습니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올해 입찰은 가 보지 않은 길이라 무리할 생각이 없다. 예상대로 대한전력 입찰로 800억 원이 떨어진다면, 생산량 맞추기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이다. 노하우도 없이 섣불리 덜컥 받아먹지 말자. 이렇게 모양새는 욕심 안 내는 척하면서 점수 좀 따고 말이야.
“오호. 사장님 대단하신데요. 나눠 먹는 물량도 80~90억 원은 될 텐데요. 확실히 사장님은 다른 분들과 다른 점이 있어요. 역시 제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은 것 같네요. 하하.”
“하하. 저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커피숍에서 박 사장과 커피 한 잔 하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을 의식하니 묘한 기분도 든다. 기분 전환했으니 회사 들어가서 빡세게 일하자!
* * *
기분 좋게도 매출은 탄력이 붙고 있다. 게임체인저 자동권선기 덕분에 판매 단가를 아주 조금 내렸을 뿐인데도 여기저기 주문이 들어온다. 단돈 만 원에도 거래처를 바꿀 정도라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하다.
“이야~. 저거 진짜 물건이네.”
“공장장님, 그렇죠? 불량도 없어요. 아휴, 권선 하나 불량 날 때마다 엄청 고생이잖아요?”
권선이 불량 나면 수리하지 않고 고철로 팔아 버린다. 절연지가 붙어 있어 고철 값을 반도 안 쳐주지만 그냥 판다. 몇십 층 감은 것을 일일이 다 풀어서 손봐야 하는데, 그 시간에 권선 하나 더 빼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변압기 회사들은 권선 불량에 극도로 예민하다. 불량 하나에 몇십만 원 그냥 허공에 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자동권선기는 불량 없이 24시간 쉬지 않고 권선을 뽑아낸다. 유재준 부장이 세팅 다시 할 때마다 점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 얼마나 복덩이인가!
“그 쩐주라는 사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이 세상 사람 맞아? 아니, 저 정도 기술이 있으면 직접 해도 떼돈을 벌 텐데 말이야. 참 대단한 사람이네.”
맞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모르니까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은둔의 고수랄까요? 얼굴 드러내기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이라서요. 그냥 그렇게만 알아 두세요. 우리야 돈 많이 벌면 장땡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그래도 조금 분하구만. 나는 왜 저런 것을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저번에 그 고효율주상변압기도 봐 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 생각을 못했단 말이지. 20년 넘게 기름밥을 처먹었어도 다 똥으로만 싼 것 같어. 끌끌.”
“공장장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제가 봤을 때는 공장장님 실력이면 더한 것도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민수 변압기 그 많은 설계 혼자 다 하셨잖아요? 관수도 아직 손볼 것 많은데, 한번 해 보세요. 제가 적극 서포트해 드리겠습니다.”
“민수야 뭐 대충 뚝딱 만들면 그만이지만, 관수는 그랬다간 큰일 나. 함부로 손댈 것이 아니야.”
“에이, 공장장님. 왜 이리 주눅이 드셨습니까! 공장장님 실력을 뻔히 아는데요! 설계 인원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바로 충원하겠습니다. 뭐든 말씀만 해 주세요. 공장장님은 프리패스입니다요.”
나름 최고라고 자부했던 공장장이 문자님이 던져 준 설계 두 개에 의기소침해진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이겨 내도록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난 옆에서 부지런히 서포트해 줄 것이다. 공장장 자존심이면 분명 다시 일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