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36)
036 명절 보내기
3억 고비에서 간당간당하던 월 매출이 3억 원을 넘어섰다.
민수 변압기 매출로 연 35억 원을 계획했는데, 이대로라면 목표 조기 달성이다. 경쟁사보다 만 원 싼 가격, 빠른 납품, 확실한 품질이 맞아떨어지면서 탄력이 쭉쭉 붙고 있다.
이번 설에는 조금이나마 상여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의미의 상여금 말이다.
회사에 부담이 가긴 하지만, 상여금을 따로 책정하지 않고 월급으로 녹여 버렸다. 가장들 얘기 들어 보면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돼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티다가 상여금 받아서 메우는 식이 많았다. 어차피 줄 돈은 바로 주는 게 맞지.
흔히 기본급의 200퍼센트, 300퍼센트 이렇게 해 놓고 명절 때 나눠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게 참 조삼모사이다.
그냥 편하게 연봉 나누기 12 해서 주면 될 것을 명절 기분 내라고 굳이 따로 준다. 예전에야 시간외 수당 적게 주려고 기본급을 최저 임금으로 맞춰 놨으니까 상여금으로 부족분을 보전해 준다는 의미라도 있었다.
지금은 정기 상여금이 통상 임금으로 인정되니, 기본급 낮추기가 의미가 없다. 말이 상여금이지 회사 부담 줄이겠다고 월급 일부를 나중에 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지랄 같던 수습이 끝나고 태양전기 월급 받았을 때 느꼈던 충격과 공포가 다시 떠오른다.
연봉 2천이라고 했으니 한 달에 이것저것 제하면 150은 나오겠구나 생각했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급여이지만, 우중충한 남자 놈 하나가 살기에는 크게 어렵지 않겠다 생각했었다.
월급 명세서는 예상과 다르게 120 정도가 찍혀 있었다. 보자마자 씨발 소리가 절로 났다. 이게 뭐냐고 따졌더니, 상여금 포함 2천이니까 월 수령액은 이거란다. 그나마 양심적으로 퇴직금은 연봉에 포함 안 시켰단다. 양심적? 퇴직금은 원래 따로 계산하는 거잖아!
몇 달 정도 지나니 그 급여에 익숙해져 버렸다. 상여금 나오는 달은 괜히 공돈 받는 기분이었다.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야지, 꿈에 부풀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거 원래 내가 받을 돈이잖아! 에잇. 그렇게 노예가 되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상여금이 말 그대로 보너스 개념이다. 회사가 돈 좀 벌면 일부 나눠 주고, 돈 못 벌면 말고 말이다.
계산해 봐야겠지만, 이번 설은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돈 없으면 내 돈으로라도 주자! 나 돈 많은 사람이야! 이거 사장님 만세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구만.
“사장님! 곧 있으면 설인데, 거래처 한번 돌아야지?”
상무가 미션을 하나 던져 준다. 명절엔 적어도 거래처 돌면서 눈도장 찍어야 하는 미션. 이러니저러니 해도 평판이 중요한 곳이니 얼굴 정도는 비춰 줘야지.
“명절이니까 인사 한번 하러 가긴 해야죠. 뭐 따로 준비하긴 해야겠죠?”
“봉투는 너무 노골적이니까 그냥 백화점 상품권 2장 정도씩 돌리면 되지 않겠어? 변압기 한 대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그렇게까지 줘야 하나 싶긴 한데…….”
“그렇게 해 왔는데, 회사 새로 차렸다고 쌩 까면 그것도 좀 그러네요. 그런데 업체 다 돌 필요는 없죠? 서른 개가 넘는데, 20만 원씩 준다고 하면 600만 원이 넘으니 부담이 크네요.”
“메인만 몇 군데 돌자고. 열 군데 정도 빼고는 어쩌다 한두 번씩 주문하는 곳이니까, 굳이 챙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오케바리. 슬슬 돌아 봅시다.”
명절은 누구에게나 풍성한 시기이다. 설을 앞두고 회사 앞으로 사과며 배 등등이 도착하는 것을 보면 그러했다.
받는 만큼 줘야 한다. 명절 선물이라는 명분으로 뇌물을 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이라는 개념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뭐 깊이 고민할 것도 없지. 그냥 하던 대로 하자.
첫 타자는 가장 가까운 최철민 사장네 회사 가온전기이다. 지들이 잘못해 놓고 우리보고 불량이라고 생떼 부리던 곤조통 사장 말이다.
지금이야 민수 매출 말고는 수입이 없으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아쉬울 것 없어지면 너 따위랑은 거래 안 한다. 상생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고 오로지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수전노하고는 거래할 생각 없다. 그게 내 회사 방침이다.
“아이고, 지 사장! 오랜만이여.”
“사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생태탕 한 그릇 하려고 왔습니다.”
“생태탕 좋지.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바로 가자고. 거긴 늦게 가면 줄 서야 해.”
추운 겨울엔 뜨끈뜨끈하고 얼큰하면서 상상 이상으로 개운한 생태탕이지! 얼마나 끓여 대는지 가게 유리창이 김 서림으로 뿌옇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구만.
“지 사장. 요새 잘나간다고 소문이 파다하더만.”
“잘나가긴요. 돈만 잘 나갑니다. 어찌나 빨리 나가는지 죽겠습니다.”
“다 벌 재간이 있으니까 돈을 펑펑 쓰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나주로 내려가면 운송비다 뭐다 해서 단가 올리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운송비가 좀 세지긴 하겠지만, 당연히 저희가 부담해야지요. 이 바닥 몇천 원 가지고도 난리인데.”
“자네도 사업하니까 알겠지만, 이 바닥이 좀 짜야 말이지. 앞으로도 계속 싸게만 해 줘. 자, 찌개 끓네. 어서 먹읍시다.”
사실 중소기업의 문제는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기업은 덜하지만, 대기업 하청 받아서 먹고사는 중소기업들은 운영을 위해 박한 마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차, 3차로 내려가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이 당당하게 돌아다닌다.
삼광전자나 미래자동차가 분기에 몇 조씩 영업 이익을 내지만, 저 말단에 자리한 3차, 4차 협력 업체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불법 체류자 고용해 최저 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주며 불법을 안고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소기업 사장들도 우리나라의 굴절된 산업 구조의 피해자이다. 그런데 그것을 악용하는 악덕 사장들도 너무 많다.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가져가잖아! 덜 가져가고 욕 안 먹는 것보다 욕먹더라도 많이 가져가는 것이 낫다는 것인지…….
나는 많이 가져가고 욕도 안 먹을 테다! 많이 벌면 된다!
이 바닥이 얼마나 짠지를 강조한 최 사장은 밥을 다 먹고도 한참을 이를 쑤시며 머뭇거렸다. 아오 짠돌이! 생태찌개 3인분이 얼마나 한다고!
“지 사장, 잘 먹었네.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사려고 했더니, 살 기회를 안 주네. 하하하.”
궁색하면 그냥 조용히 있을 것이지, 꼭 저렇게 한두 마디를 붙이더라? 밥값이 아까워 얻어먹지만 가오는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징글징글하다 진짜.
“다음에는 더 맛있고 좋은 것으로 대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어? 이건 뭐야? 아이고, 지 사장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야. 뭘 이런 것까지.”
어차피 받을 것 그냥 조용히 받아라잉.
“설인데 장이라도 봐야지 않겠습니까. 약소합니다.”
“나는 뭐 주는 것도 없고 받기만 하네. 이래도 되나 몰러, 허허.”
“최 사장! 한두 번도 아니고 뭘 그래. 줄 때마다 잘만 받았으면서. 하여간 진짜.”
역시 우리 상무! 가려운 데가 있으면 절대 참지 않고 빡빡 긁는다. 사람이 이리 시원시원한 맛이 있어야 말이야.
“상무님, 다음은 어딥니까?”
“대전전기. 부지런히 가면 저녁 시간 전 넉넉하게 도착하겠구만. 저기 찍고 광주 갔다가 울산, 부산 찍고 올라오면 되겠네.”
“저 최 사장은 참 맘에 안 들어요. 보자마자 반말에, 저번에 그 난리 치는 것도 그렇고. 생태탕 그거 얼마나 한다고 계산 안 하고 버티는 것 보세요.”
“저 양반 소문난 짠돌이야. 오죽하면 여름에 직원들 옷에 끼는 소금 긁어다 팔 정도라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 물건 많이 사 주니까 일단은 넙죽넙죽해야지.”
“다음에 또 지랄하면 바로 거래 끊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 회사가 얼마나 무서운 회사인지 깨닫게 해 줄 필요가 있겠네요.”
“그거 좋지. 안 그래도 아쉬운 소리를 하도 들어서 좀 짜증이 나는 판이었는데, 나야 대찬성이지!”
회사가 자리 잡히면 민수 변압기 가격을 약간 더 낮출 생각이다. 자동권선기 덕에 여력이 너무 많아졌으니, 약간 내려도 문제없다.
짠돌이 최 사장이 낮은 가격을 자랑하는 우리 변압기를 사지 못하면 얼마나 배가 아플까? 다른 업체 닦달해서 가격 낮춰 받을지 모르겠다. 교화가 안 될 사람하고는 상종할 필요가 없다.
“이쪽 업계만 유독 짠돌이들이 많은 것 같네요. 태양전기야 말할 것도 없고.”
“다들 고만고만하니까 그러지. 여기서는 커 봐야 한계가 있잖아.”
“상무님. 우리는 아주 엄청 커 버립시다. 전력용 변압기도 하고 수출도 많이 하면서 크게 키워서 대범하게 삽시다.”
“크으. 우리 사장님 포부가 아주 태평양 바다 같구만. 그래, 나도 영업부서장 하면서 후배들 좀 길러 보자!”
태평양 같은 포부를 밝히기 무섭게 졸음이 몰려왔다. 장거리를 보조석에 앉아서 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할 말이 없어도 쥐어짜 내서라도 계속 말을 걸어 줘야 한다.
생태탕과 함께 흡수한 탄수화물이 혈관을 타고 돌면서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탄수화물과 차량용 히터의 만남은 아주 찰지다. 오기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사장님. 금성전기 박 사장이랑 뭐 있어?”
“박준희 사장요? 아니요. 왜요?”
갑자기 잠이 확 깨네.
“둘이 붙어 다닌다느니 그런 소문들이 있길래. 이 바닥 소문이야 구라가 반이긴 하지만, 뭐가 있으니까 그런 소문이 돌지 않겠어?”
“제가요? 같이 저녁 한번 먹고 조합 신년회 때 얼굴 본 것이 단데, 소문날 일이 뭐가 있어요. 하여간 별의별 얘기가 다 떠도네요.”
“왜, 박 사장 별로야? 사장님보다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엄청 이쁘잖아. 돈도 많고. 최고지.”
“제가 무슨. 그런 쪽으로 전혀 생각도 안 나는데요 뭘. 그리고 연상에는 취미 없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뭘 사람 일은 몰라요예요. 근데 박 사장은 그 나이 먹도록 결혼도 안 하고 뭐 했대요? 여기저기서 선보라고 많이 찔러 봤을 것 같은데…….”
“나야 모르지. 눈이 엄청 높다고는 하더라고. 관심 없다면서 은근히 관심을 보이네? 진짜 뭐가 있는 거야?”
“아오 진짜.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하여간 호사가들. 처녀총각이 있다 싶으면 한시도 가만 놔두질 않는구만. 박준희 사장, 솔직히 인물도 성격도 좋긴 하다. 그런데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돈 벌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여자냐. 일이나 하지 뭐.
“내려온 김에 나주 공장이나 들렀다 가시죠. 내 새끼 잘 크고 있나 보고 와야죠.”
광주 거래처를 들렸다가 차를 나주로 돌렸다. 사막에 도로만 깔린 곳 같았던 산단이 우리 공장 건설로 나름 활기를 띠고 있다. 여전히 황량하기 그지없긴 했지만.
“소장님! 저희 공장 잘되고 있나 구경 왔습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요. 날이 추워서 공사하기 지랄 같긴 한데 그래도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날씨 때문에 쎄맨이 잘 굳을랑가 모르겄네요. 암튼 우리 사장님이 신경 써서 하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시시요.”
“준공 일까지는 문제없죠?”
“그라믄요. 우리가 이런 거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 전문가 일은 전문가한테 맡기시쇼.”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이건 저희 성의입니다. 추운데서 고생하시는데 삼겹살이라도 사서 드시지요.”
“아따 뭐 이런 것까지 주신데요. 안 그래도 오늘 기름기 생각이 간절했는디 사장님 덕분에 목구멍에 기름칠 좀 하게 생겼네요. 고맙습니다요.”
두 달 뒤면 여기에 ‘프라임일렉트릭’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진다 이 말이지? 하루에도 수많은 화물차들이 들락거리며 변압기를 실어 갈 곳이란 말이지? 활기차고 웃음이 끊이지 않은 ‘좋은 회사’라고 소문이 난 곳이란 말이지?
“상무님, 한 군데 들를 곳이 있습니다.”
공장 준공이 가시권에 들어왔으니, 오래 묵혀 뒀던 계획을 실행할 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