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3)
053 안 돼 안 바꿔 줘
우진택 구속 이후로 전화가 빗발친다.
최현아 씨! 이제 와서 아쉬운 소리 하겠다고? 어림없지. 넌 수신 차단.
“사장님! 태양전기에서 계속 전화 오는데요? 사장님 안 계신다고 하는데도 계속 전화예요. 아휴, 이거 일을 못할 지경이네.”
“대리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수고스럽더라도 저 없다고 해 주세요.”
최현아가 집요하게 통화를 시도한다. 이것도 업무 방해 아닌가? 고소할까? 이 정도로 방역했는데도 날파리가 박멸이 안 되네.
“사장님…….”
“대리님 무슨 일이에요?”
“잠깐 나와 보세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최현아 그 사람이 찾아왔어요.”
아후, 담배 당겨. 그 면상 볼 생각을 하니 담배부터 아른거린다.
내가 담배를 못 끊게 만든 주범 최현아! 내 폐를 혹사시킨 최현아!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과를 찾아볼까 고민까지 하게 만든 최현아!
그 최현아가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오냐, 잘 왔다. 내가 너를 무너트려 주마. 나에게 했던 그대로 되갚아 줄게.
“최현아 씨, 무슨 일입니까?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왔습니까?”
꼴에 좁쌀만 한 염치라도 있었던지 비타300 한 박스는 들고 왔네. 고작 만 원짜리 비타300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 보겠다? 투자 한번 기똥차게 하는구만.
“사장님, 우리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우리 남편이 구치소에 있을 사람이 아니잖아요? 네?”
뭐? 와서 대뜸 하는 소리가 남편 살려 달라고?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하여간 사람 감정 끓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야.
죄송하다고 고개부터 숙이는 것이 먼저 아닌가? 난 그렇게 안 배웠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한다고 배웠다고. 초등학교 바른생활에 나온 것이야.
넌 대체 뭘 배운 거니? 나한테는 보자마자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 고래고래 질렀던 것 생각 안 나니? 어이가 없네 진짜.
웬일로 사장님 소리를 하냐고 놀래기도 전에 뚜껑부터 열려 버렸다.
“오자마자 처음 하는 소리가 고작 그것입니까?”
“우리 남편이 지금 구치소에 들어갔어요. 제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이년 이거 죽어도 잘못했다는 소리는 안 하네. 사람 빡 돌게 하는 탁월한 능력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황금종려상이라도 받아라.
“그래서 뭘 어떻게 해 달라는 얘기입니까?”
최현아가 주저앉듯이 의자에 앉더니 눈물을 짜기 시작했다. 아오, 이 시점에 눈물이 등장해? 대본치고는 너무 빤한 대본 아니야? 허락도 없이 의자에 앉아서 눈물부터 짜는 이 뻔한 클리세. 진부하다, 진부해.
“사장님, 부탁이에요. 검찰 가서 얘기 잘해 주면 되잖아요! 제발 다 없던 일로 해 주세요. 앞으로 사장님 앞에는 얼씬도 안 할게요.”
당신 입에서 나올 소리는 ‘죄송합니다’ 이 다섯 글자라고 생각하는데? 무릎 꿇고 삭발까지 하면서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없던 일로 해 달라고? 진짜 누가 이 광경을 보면 내가 잘못한 줄 알겠네.
“최현아 씨. 제가 봤을 때는 우선순위가 틀린 것 같습니다. 저 보자마자 하실 건 남편 풀려나게 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성해도 부족할 것 같은데요.”
이미 뚜껑이 열려 사무실이 습식 사우나로 바뀌었지만, 흥분하며 처참하게 짓밟아 줄 순 없다. 당장의 기쁨을 위해서 그간의 고통을 한 방에 차 버릴 수는 없다.
“죄…… 송합니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아! 진짜 참기 힘들다. 악의가 없었으면 뭐 선의로 그딴 짓을 했단 말이냐? 사과의 정석부터 가르쳐야 할 참이네.
“지금까지 아무 소리 없길래 무슨 대단한 배짱인가 했는데, 이렇게 마지못해서 죄송하단 소리 하는 것 보니 정말 대단하네요.”
“잘못 인정하니까 제발 남편 풀려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할 수 있잖아요? 검찰 가서 잘 얘기하면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뭐 길게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제 손을 다 떠났으니 검찰 가서 하소연하세요.”
“사장님! 제발요. 직원이었을 때 제가 잘해 준 걸 생각해서라도요. 제발요.”
와! 순간 쌍욕이 나갈 뻔했다. 안 되지, 안 돼. 모욕죄로 끌려갈 수는 없지. 정말 사람 뚜껑 열리게 하는 데 따라올 자가 없다. 이건 가히 전설의 레전드네.
나한테 잘해 줬다고? 정말? 담배가 미친 듯이 당겼다.
* * *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은 것은 태양전기 입사 이후였다. 화장실에서 똥 눌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터라, 휴식 시간이라도 챙기려면 담배를 다시 태울 수밖에 없었다.
묘한 것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별말을 안 한다. 담배 한 대 태우는 시간이나 똥 누는 시간이나 차이도 없는데도 말이다.
단 몇 분이라도 쉬기 위해서 다시 찾았던 담배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바뀌었다. 바로 최현아가 원인이었다.
처음에는 존대하며 친절하게 굴기에 권위주의 없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저 가면이었다.
“지 과장님. 이 자재는 왜 여기다 발주하죠? 다른 업체도 있지 않나요?”
대놓고 얘기하지 않고, 저렇게 돌려서 얘기한다. 얼핏 들으면 직원들 의견을 묻는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했다가는 호되게 당한다. 저 말인즉, 다른 업체에 자재를 발주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또 아닐 수 있다. 다른 업체에 발주하면, 왜 그렇게 했냐고 따져 묻는다. 이게 사람 미치게 만든다. 나중엔 해석을 포기해 버린다. 그냥 지랄하면 지랄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속 편할 때가 많다.
사장이면 분명하게 지시를 내려야 하는데, 꼭 빙빙 돌려서 알 듯 말 듯한 소리만 한다. 그래 놓고 나중에 왜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느냐고 지랄을 한다. 어떻게 하라고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지랄을 받아 버리면 더 큰 지랄로 정신병 걸리게 하는 지랄술사.
“단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kg당 30원씩 저렴합니다. 그래서 저렴한 곳에 발주 넣고 있습니다.”
“자재 업체 하나에 발주 밀어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재 발주의 기본인데, 회사 생활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런 구체적인 지시도 무려 세 번 만에 나왔다. 잊을 만하면 왜 그렇게 하냐고 묻기를 세 번 만에 단가 높은 업체에 자재 발주하라고 지시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했으면 똑같은 대답을 세 번이나 할 필요가 없잖아!
백마진. 다 알고 있다. 단가가 비싼 이유는 백마진 말고는 없다. 다 아는데도 착한 척하느라 빙빙 돌려 얘기하면서 사람 미치게 만들어 버린다.
내가 잘못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정신 고문 잔뜩 시키고는 나중에 지랄까지 하면 데미지가 가중된다. 지랄하지 말고 그냥 때려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러니 담배를 찾지 않을 수가 있겠냐.
영업 때문에 매일 회의를 해야 했던 상무도 참다 참다 폭발한 적이 있었다.
“사장님! 얘기를 확실하게 해 줘야 직원들이 일하기가 편하지. 아니 매번 성질 못 참고 소리만 지를 거야? 성질머리 그렇게 부리면 소문 다 나요. 지시 사항이 있으면 딱 부러지게 얘기를 하세요. 빙빙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한두 번도 아니고 대체 왜 그래?”
“뭐라구요? 지금 말 다 했어요? 그게 지금 직원이 사장한테 할 소리입니까!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나가아!”
정말 징글징글했다. 그렇게 담배가 한 대 두 대 늘어났다. 퇴사 즈음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에 한 갑은 거뜬히 넘어 버렸다.
몸이라도 편하면 모르지. 몸은 몸대로 힘들어 죽겠는데, 정신까지 피폐해지니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정신과라도 가 볼까 생각했지만, 정신과는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말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애꿎은 담배만 찾을 뿐.
최현아 씨!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너는 절대 모를 것이야. 당한 사람들 심정이 어땠는지. 그 3년간 당한 것을 얘기해 보라고 하면 30년 동안 쉬지 않고 얘기할 수 있어!
이젠 당신이 당할 차례야.
“그래서 뭘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 것입니까? 지금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재판 가서 탄원서 써 주는 정도뿐입니다.”
“검찰 가서 서로 오해가 있었다고 얘기해 주세요. 제발요. 구속 기소만은 막아 주세요. 우리 애를 생각해서라도 제발요. 애가 아빠를 찾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어요.”
애 키우는 부모가 그따위로 살면 안 되지!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단호박 같은 판사가 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아직은 참을 때다. 사악해져야 할 때는 매몰차야 한다. 그래야 확실하게 방역이 된다.
어설픈 인정머리로 동정해 줄 필요 없다. 교화를 기대하고 인정을 베풀었다가는 나중에 또 당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니까.
“저는 태양전기에서 이렇게까지 할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내 나름의 대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최현아, 당신을 옭아맬 대본!
“저는 그래도 태양전기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그런 직원이 독립했으면 축하는 못해 줄망정, 망하라고 저주는 내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아무리 저번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더라도 이건 아니죠.”
“그래서 이렇게 반성하며 잘못을 빌고 있잖아요. 우리 남편만 풀려나게 해 주세요. 이러다 회사까지 망하게 생겼어요. 제발요.”
미안하지만, 그게 내가 바라는 바인데?
“그래서 제가 검찰에 가서 별일 아닌 것처럼 잘 얘기하면 우진택 씨가 풀려날 수 있답니까?”
“네네. 맞아요. 오해가 있었다고 잘 얘기해 주세요. 그렇게 하면 우리 남편 풀려날 수 있어요.”
고장 난 라디오도 아니고 남편 풀려나게 해 달란 소리가 귀에 박힐 정도네. 얼마나 멍청한 변호사를 고용했길래 저러는지 원. 그렇게 우진택이 좋으면 고작 비타300 한 박스로는 안 되지.
“저도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네요. 그래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찌 된 것인지 속 시원하게 얘기를 해 보세요.”
최현아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건의 진상이라고 구질구질 얘기하는 저 주둥이를 당장이라도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얘기인즉, 나를 확실히 죽일 생각이었다. 공작이 성공해서 민수 시장에서도 망하고 관수에서까지 망하면, 이 공장을 먹을 생각까지 했단다.
변압기 제조 공장을 탐내고 있었던 최철민한테는 자신들이 내 공장으로 넘어가면 기존 공장을 팔겠다는 구두 약속까지 했단다. 이렇게까지 악에 차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씁쓸해서 위액이 역류한 기분이었다.
녹음 끝. 경찰도 모르는 귀한 정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래서 감정만 앞서는 멍청한 것들은 사업하면 안 돼.
“저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일단 진정하고 올라가세요. 행여나 원하는 대로 일이 마무리돼도, 제가 입은 피해는 확실하게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럼요. 확실하게 보상할게요. 제발 우리 남편만 풀려나게 해 주세요.”
여전히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 눈물 질질 짜지만, 미안한 기색이 전혀 안 느껴져. 이를 어쩌나. 넌 콩밥을 먹어도 교화가 안 될 것 같은데?
“고민해 보겠다고 말씀드렸으니 이만 가세요. 몹시 언짢긴 하지만, 언제까지 이걸로 시간을 뺏길 수는 없죠. 저도 사업에 매진해야 하니까요. 검찰 가서 잘 얘기할 테니 올라가세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이봐. 잘 얘기하겠다는 말에 안심하지 말라고. 말 그대로 ‘잘’ 얘기한다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니까.
최현아 씨. 인생은요 실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