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2)
052 기억과 망각
날파리를 향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15톤 장축 트럭 5대가 싣고 온 변압기는 마당 한편에 예쁘장하게 자리 잡고는 증거품 딱지가 붙었다. 증거품을 볼 때마다 실소가 나온다. 어디 겁도 없이 변압기를 들이밀어!
이제 나주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 홍성규 형사가 전해 주는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들으면 된다.
“사장님! 가온전기 압수수색하고 최철민 소환 조사했는데, 이거 영 악질이네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면서 잡아떼요. 혐의 부인해 봐야 뭐 뻔하죠. 하하. 이건 뭐 100프로 구속 영장 발부됩니다.”
“검찰이 바로 구속 영장 청구했습니다. 계속 부인하고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바로 구속이죠. 구치소 들어가면 정신이 바짝 들 겁니다. 공범도 곧 밝혀질 것이니까 며칠 더 기다려 보시죠.”
연일 성공적인 방역 소식이 전해졌다. 한 이닝에 만루 홈런 두 방을 쳤을 정도로 호쾌한 타격전이다.
“우리 지 사장, 뭐가 그리 좋아서 넋 나간 사람처럼 히죽거리나?”
기분 좋게 공장 마당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는데, 공장장과 눈이 마주쳤다.
“공장장님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요? 하하.”
“우진택이 확실한 거지?”
“우진택이 맞다에 손모가지 발모가지 다 걸겠습니다.”
“못된 놈. 어찌 사람이 그리 못된 짓을 할 수가 있냐. 그러고도 편히 잠이 올까?”
“제 딴엔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겠죠. 아시잖아요? 그 확신에 찬 이글거리는 눈빛. 요 손가락으로 확 찌르게 하고 싶은 눈빛 말이에요.”
“그나저나 최현아 걔도 참…….”
“공장장님, 지금 최현아 걱정하시는 겁니까? 태양전기에서 자존심 구겨질 정도로 그렇게 당하고도 최현아 걱정이 되십니까?”
이 착해 빠진 공장장. 그런 생각 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고깃집에서 도원결의하면서 회사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세운 우리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사람이라구요!
“아니 뭐, 걱정은 아니고. 현아 애기 걱정도 들고 말이야. 돌잔치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애 키우는 부모면 더더욱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살면서 자식한테 커서 훌륭한 사람 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건 애증이다. 공장장은 최 씨 일가에 홀대 당했다는 분함과 함께 청춘을 바쳤던 추억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추억의 고리를 끊어 줘야 한다.
“어쩌겠나? 이러나저러나 내가 24년을 몸담았던 곳인데, 마음이 쓰이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구만.”
“24년요? 공장장님! 그러면 여기서 25년 몸담으세요! 제가 태양전기에서 당했던 상처 따위 싹 씻겨 드릴게요!”
“이 사람아! 날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그러나. 벽에 똥칠할 때까지 데리고 있을라고? 하하.”
격정적이었던 대화가 왜 이렇게 흘러가지? 걱정 마시죠, 공장장님. 간병인 붙여 드릴 테니까 딱 90세까지만 같이 일하십시다!
공장장에게 90세 미션을 안겨 주고 사무실에 올라오니 덕준이가 출근길 9호선 직통 열차에서 급똥 신호가 온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한 과장! 너 무슨 일 있지?”
“아, 진짜 미쳐 버리겠네. 올라가서 족칠 수도 없고. 아오.”
“외함 맞지? 태진기업에서 물건 늦게 내려 보내는 거지?”
“어. 우리 사장님 지리산 처녀보살급이네. 이거 미치겠어.”
“민수 외함은 잘 들어오지?”
“거기는 아주 좋아. 문제는 태진기업이야.”
태진기업과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제조업에서 납기는 생명인데, 매번 외함 납품이 늦어진다. 이러다 단가 올려 달라고 할 것이 뻔하다.
“납품이 자꾸 밀리네. 태진기업에 계속 전화하는데 뭐 물량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만 하니까 아주 돌아 버리겠어. 포터 끌고 김포까지 매번 찾아가서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이야 대한전력 입찰 앞두고 재고 생산 중이라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입찰 끝나고 물량 몇 천 대씩 터지고 납기일 다가오는데 이러면 내 복장도 터질 것이 뻔하다. 알면서 당할 이유는 없지.
대한전력 납품까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외함 자체 제작도 빨리 서둘러야겠다. 설비 구입, 직원 채용, 공장 배치 등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부지런히 뛰어다녀야겠구만.
근데 덕준이 이 자식은 내가 준 똥차 놔두고 왜 포터를 끌고 다녀?
“웬 포터? 내가 준 붕붕이 있잖아?”
“우리 붕붕이 이제 보내 줘야 할 때가 된 것 같어.”
내 첫 차. 거금 350만 원을 주고 산 내 첫 차! 회사 공용 차 수준으로 막 굴렸더니 요단강 건너려고 뱃사공 기다리는 신세가 됐구나. 이제 보내 줄 때가 됐네. 잘 가! 내 첫 차 우리 붕붕아!
“그걸 왜 이제 얘기하냐? 자재 업체도 가고 관공서니 여기저기 다닐 때 많잖아? 그때마다 포터 끌고 다녔어?”
“어. 아무래도 붕붕이로는 안 되겠더라고. 뭐 어때? 포터는 차 아니야?”
“자재 업체 가는데 뽀대가 나야지! 포터 끌고 가면 우습게 볼 것 아니냐! 안 되겠다. 일단 밖에 나갈 일 있으면 내 차 끌고 다녀. 차키야 항상 책상 여기에 있으니까 알아서 챙겨 가고. 내가 급한 대로 차 알아볼게.”
“사장님아. 지금 돈 엄청 들어가잖아. 사람도 더 뽑아야 하고 생산량도 더 늘려야 해. 관수는 물량이 한 번에 터진다면서. 이 정도는 어림도 없지 않겠어?”
“내 돈으로라도 차 사 줄 테니까 걱정 말어. 그깟 차 얼마나 한다고!”
설마 벤틀리 사 달라고는 하지 않겠지?
덕준이라면 내 돈으로 차 사 줘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애를 부여잡고 나주 내려간 것이 근 1년 전이다.
그 후로 덕준이의 성장은 눈부시다. 덕분에 우리 회사도 데굴데굴 잘 굴러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덕일수록 높이 평가해야 하는 법이다. 티 나지 않는 일 열심히 해 준 덕준이한테 그깟 차 따위가 대수랴.
“원하는 차 있으면 고르고 있어 봐. 어, 전화 왔네. 잠깐만 전화 좀 받고. 네,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입니다.”
홍 형사? 제발 희소식을 다오!
“사장님! 태양전기 최현아 사장이랑 우진택 부사장 아는 사람입니까?”
됐다!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우진택이 벌인 짓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최현아도 손잡고 함께한 짓이야? 이거 월척이로구나!
“공범이 밝혀졌습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구속되면 정신 바짝 들 것이라고. 최철민이 구속되고 나니까 아주 술술 다 부네요.”
수사 중이라 구체적인 것까지 얘기할 수 없다면서 은근슬쩍 잘도 얘기해 준다. 이러나저러나 고마운 사람이네. 나중에 비타300 한 상자 들고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다.
게임 끝난 것 같지만, 아직 방심하고 마음 놓을 때는 아니다. 최철민 같은 잡범이야 신경 쓸 것도 없지만, 최현아 우진택 이 연놈 부부는 이제 시작이다. 시나리오가 탄탄할수록 영화가 흥행할 수 있는 법!
그래도 기분이 너무 좋다. 기분 좋을 때는 일단 다 접어놓고 만끽하자!
“덕준아! 게임이 끝판까지 왔다!”
“왜왜왜! 뭔데 그래!”
“태양전기 그 연놈이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래! 최철민이 다 불어서 시흥경찰서로 사건 이첩했단다야. 이제 그 연놈들 잡혀 들어가는 거야!”
“우키키키. 경사 났네! 이제 그 새끼들 콩밥 먹는 거냐? 딴 놈은 몰라도 우진택 그놈은 꼭 콩밥 먹어야 해! 삼시세끼 무료 급식 받아 처먹어야 한다고!”
“아! 배가 너무 허하다. 오늘 회식이다!”
띠링.
누군데 이 기분 좋은 순간을 방해하는가! 누가 문자 소리를 내었는가! 어? 문자?
-동심동력.
문자님!
근데 이건 뭔 소리라냐? 아이쿠야, 첨부 문서! 외함 제작기? 와탕카! 문자님 사랑합니다!
희소식이 넝쿨째 마구 굴러온다. 이건 한 이닝에 만루 홈런 네 방이다.
통쾌한 마음을 가득 담아 덕준이를 쳐다봤다.
“응? 왜? 무슨 문잔데 그래? 설마…….”
“응. 그 설마가 맞아. 빨리 캐드로 옮기고 특허부터 때리자.”
덕준아, 미안하다. 오늘 회식에서 많이 먹어라.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회식이었다. 특히 태양전기 출신 멤버들은 과하게 신이 났다.
그들도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고생하며 회사를 키워 놨는데,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뭐 훔쳐 간 것은 없는지 의심 받으면서 퇴사해야 했던 기억. 그 쓰라린 기억에서 해방된 기쁨이었을 것이다.
난 아직 멀었다. 죄가 확정될 때까지 기쁨을 누리되 만끽하지 않을 것이다.
나주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 홍성규 형사가 강남을 다녀왔는지 자꾸 박씨를 물어다 준다.
박씨를 쪼개 열어 보니, 쫌생이 곤조통 최철민은 업무 방해, 특수 협박, 배임수증재 등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제 또 검찰을 들락날락해야겠지만, 이 정도 노고는 삼 보 일 배 하면서 갈 수 있다. 아니지, 오체투지도 못할쏘냐!
단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켜 내야 할 우리 전통 문화 멍석말이가 번호표 뽑고 대기 중이었다.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이 멍석말이 총대를 멨다.
“지 사장! 내가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받아서 참을 수가 없네. 내가 최철민이 그 자식이랑 거래하는 업체랑은 상대를 안 하겠다고 엄포를 놨어. 아니 변압기 회사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그딴 짓을 한단 말인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는 조합한테 휘둘리지 말고 내 돈이나 잘 지키게!”
당장 골프부터 배워야겠다. 강 사장은 이미 훌륭한 아군이 돼 버렸으니, 필드 나가서 카트라도 운전해 줘야 할 판이다.
태양전기 최현아와 우진택은 시흥경찰서로 사건이 이첩돼 박씨 전달이 꽤 늦어졌지만, 역시나 박씨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흥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사장님, 이거 아주 큰 건이네요. 시흥서로 넘긴 것이 너무 아쉽단 말이지요.”
“진상이 드러났습니까?”
“우진택은 검찰이 영장 신청 받아서 구속 영장 청구했고, 최현아는 뭐…… 아시잖아요? 부부를 다 잡아넣지 않아요. 거기다가 우진택이 자기가 다 한 일이라고 그러니, 최현아야 뭐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가겠죠.”
이 아름다운 부부애에 눈물이 난다.
우진택이 사실상 사장이나 마찬가지이니 자기가 다 꾸민 일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밖에서 보면 아내를 지키기 위해 죄를 뒤집어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러브스토리라고 하지 않겠나. 눈물 난다 눈물 나. 우진택 이 자식, 삭발했으니 감방 가서 머리 자를 일은 없겠네.
“사장님, 아니 그 사람들이랑 무슨 악연이길래 그렇습니까? 아주 꼼꼼하게도 했더만요. 뇌물액이 커서, 이건 장담하건대 무조건 실형입니다.”
“저를 그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구요. 설마 그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할까 했는데, 씁쓸하네요.”
씁쓸하다니! 나란 놈 연기 쩌네! 하하. 좋아 죽겠다고 마구 웃어 재낄 수 없잖아? 최대한 안타까운 척, 씁쓸한 척해야지 별수 있나!
“직접 건넨 돈은 천만 원인데, 사례로 변압기 가격 10퍼센트씩 낮춰 주기로 했다니 이거 뭐 무섭습디다. 무슨 한을 그리 품었는지 원. 웃긴 것이 최철민이랑 서로 못 믿었던지 계약서까지 썼다잖습니까. 이거 뭐 대놓고 나 잡아가쇼도 아니고.”
그 멍청한 놈들이 원래 그렇습니다. 직원들 월급 주기는 아까워해도 경쟁 업체 죽이겠다고 맘먹으면 몇 억 날아가는 것에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놈들이죠. 멍청한 것들이 사업을 그리 감정적으로 하니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입이 근질근질하네!
“형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뭐 은혜랄 것이 있습니다. 경찰이 월급 받으면서 하는 일 했을 뿐인데요. 저도 뭐 사장님 덕분에 고과 점수 좀 땄으니까 서로 도운 거죠. 하하.”
결국 우진택은 구속 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된 채로 검찰로 송치됐다.
고소장 접수부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 민중의 지팡이 경찰님께서 엄청 후련하게 조져 주셨다.
내가 회사 사장이 아니었다면, 여러 유력자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후련하면서도 입가에 씁쓸한 맛이 섞여 버렸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검찰 가서 진술할 일이 남아 있지만, 귓가에서 윙윙거리며 신경 건드리던 날파리 소리가 안 나니 개비스콘을 박스째 들이부은 기분이다. 있지도 않은 식도염이 말끔히 나은 기분이다.
이제 그간의 악연을 끊어 내고 내 사업에 몰두할 때인 듯싶다.
아니지. 아직 태양전기가 안 망했잖아!
내 20대 후반 3년의 금쪽같은 시간을 노예로 보내게 만들었던 태양전기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고 말 일은 아니지.
끝장을 봐야 한다. 나도 그 쓰라린 기억에서 해방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