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4)
054 새로운 질서
모처럼 수도권 나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체투지하며 올라가고 싶었다.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로 합류하자 차들이 넘실거렸다. 나의 성공적인 방역을 환영하는 인파처럼 느껴진다.
성공이라고 하긴 아직 멀었지.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가서 최현아의 고백을 담은 녹음 파일을 건네고 나서도 갈 길이 멀다.
구속 기소가 되면 판결이 비교적 빨리 나온다는 것이 위안을 안겨 주지만, 대법원까지 가면 확정 판결까지 얼마나 걸릴지 감도 안 온다. 제발 양심이 있다면 항소 포기하고 죗값 달게 받아라. 나도 속편하게 사업에 전념해 보자.
안산지청 방문이 오후라 느지막하게 올라가려고 했지만, 또 다른 방역을 위해서 새벽부터 차를 몰았다. 조합도 냄새가 역하니 소독약 정도는 뿌려 줘야 한다.
“지 사장! 이거 서울에서 보니 또 느낌이 다르네.”
“잘 지내셨습니까? 안 그래도 저 보고 싶으실 것 같아서 서둘러 올라왔습니다.”
“하하. 내가 자네 공장 갔다 와서는 잠이 안 오더라고. 자네야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았겠지만, 나는 그 자동권선기 생각밖에 안 나더라니까. 하하하.”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자동권선기로 뿅 가 버린 상태라 이미 둘도 없는 내 편이다. 강 사장 파워 덕분에 최철민 그 자식 회사도 변압기 수급이 어려워져 휘청거린다고 하니 음식 나오기 전부터 배가 불러 버렸다.
“사장님! 하하. 늦어서 죄송해요. 차가 좀 막혔어요.”
“어서 와. 이거 나날이 미모가 빛을 발하네. 하하.”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도 빠질 수 없지! 이 정도는 모여 줘야 조합이 풍겨 내는 썩은 내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이 여름에 이열치열이라고, 추어탕이다. 강 사장의 적극적인 추천. 하여간 탕 좋아하는 민족답다.
“지 사장, 일 치르느라 욕 봤네.”
“감사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막 검찰 넘어갔는데요, 뭐.”
“태양전기는 언젠가 그럴 줄 알았는데, 저는 최현아 남편이 더하단 것에 깜짝 놀랐어요.”
태양전기 최 씨 가문에 이를 갈고 있던 박 사장이 최현아가 아닌 우진택이 구속됐다는 것에 약간 실망한 눈치이다. 뭐 어쩌겠나. 우진택의 눈물 나는 러브스토리라는데.
“뭐 끼리끼리 만나는 것 아닌가? 하하. 최홍집 그놈 때문에 겪은 것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는데, 여기 우리 지 사장 덕분에 기분이 풀려 버렸네. 하하.”
“사장님만 이 가셨나요? 저희 아버지 어찌 되셨는지 잘 아시잖아요? 저 진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정호는 몸이 좀 어떤가?”
“많이 좋아지셨는데요. 아직도 움직이는 것과 말씀이 많이 불편하세요. 계속 재활 치료 받고 계시니까 좋아지실 거예요.”
태양전기 창업주랑 민수 변압기 시장 놓고 치열하게 싸우던 와중에 쓰러져 버린 금성전기 창업자 박정호. 딸인 박준희 사장이 태양전기에 얼마나 이를 갈 것인지 안 봐도 뻔하다.
혜성처럼 나타난 내가 일거에 처리해 줬으니 이 갈다 임플란트 할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나? 이쯤 되면 박 사장도 내 편이라고 만방에 선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거 주인공 놔두고 우리만 얘기를 하고 있었네. 하하. 그래, 지 사장. 그래서 조합을 새로 만들어 보겠다고?”
웬일로 대화가 이리 빨리 진행되나 싶네. 태양전기 몰락으로 한참 얘기하다 추어탕으로 또 한참 얘기할 줄 알았더니만.
“네. 여기 박 사장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것이긴 한데요, 새로운 조합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야 조합 회원사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수수료로 3프로나 가져가면서 하는 일도 없지 않습니까?”
“사장님, 이거 제 아이디언데 무상으로 가져가시는 것 아니에요? 호호.”
원작자 앞이라 저작권을 밝혔구만 굳이 확인 사살까지 하다니. 자, 판 깔아 드렸으니까 어디 원작자께서 새 조합 설립 시나리오 읊어 보셔.
“강 사장님, 제가 말씀드릴게요. 우리 회사 포함해서 내년 초에 4개 사가 나주에 내려가거든요. 우선 배정 때문이긴 한데, 슬쩍 물어보니까 조합에 불만들이 많더라구요. 우선 배정이 천년만년도 아니고, 그거 끝나면 나주 쪽 업체끼리 조합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더라구요.”
“지 사장이 저번에 대한전력 본부장 만나서 한 소리가 이거로구나.”
슬쩍 박 사장 눈치를 봤다. 역시나다. 아이디어 무단 도용해서 대한전력 본부장 앞에서 재미 좀 봤냐는 매서운 기운을 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젊은 사장들이 확실히 패기가 넘쳐. 아주 보기 좋아. 그런데 말이야. 조합 만들 생각이 있으면 당장 만들어야지 않겠어? 우선 배정 끝날 때까지 뜸 들일 필요가 뭐 있어? 기다리면서 조합에 수수료 뜯길 필요가 뭐 있냔 말이야.”
패기는 강 사장님이 더 넘치는 것 아닙니까? 강 사장 말이 맞다. 물이 끓었으면 라면을 넣어야 하고, 진통이 왔으면 출산을 해야지.
“역시 사장님이시네요. 사장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당장이라도 못 만들 이유는 없죠.”
박 사장의 조합 설립 계획이 빠르게 추진되지 않은 것은 참여 숫자 때문일 것이다. 파워가 있는 강 사장이 힘을 쓴다면 새 조합에 참여하겠다는 회사가 많아지지 않을까?
“솔직히 조합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 나주 때문에 우왕좌왕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이사장이었으면, 대한전력에서 혜택 준다고 했을 때 서둘러 내려가라고 독려했을 거예요.”
이거 나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질하는 뉘앙스네. 올해 나 혼자 20퍼센트 독식한다고 배가 아픈가?
“우리 준희 이제 사업가 다 됐네. 꼬맹이 때부터 똘망똘망하더니…… 이제 어지간한 사장들 저리 가라야. 하하.”
우리 준희. 박 사장도 가족입니까? 그나저나 나도 말 좀 하자! 박 사장이 다시 치고 들어온다. 에잇, 추어탕이나 먹자.
“말 나온 김에 당장 추진하죠. 어느 정도 준비는 다 마쳤고, 바로 설립하면 될 것 같아요. 우리 회사 이 상무님이 이제 퇴직하시는데, 조합 일 맡겨서 바로 진행할게요. 사장님, 적극 도와주실 거죠?”
“이 상무면 이호영이? 호영이가 벌써 퇴직할 때가 됐어? 호영이면 믿고 맡길 만하지. 내가 괜찮은 업체들로 연락 돌리면 되나? 이거 변압기 바닥 관심 끊은 지 한참인데, 다시 나서려니까 쑥스럽구만. 하하.”
웃을 때가 치고 들어갈 때이다. 예능도 그렇지만, 사업가들 간의 대화에서도 적절하게 치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저도 적극 돕겠습니다. 저야 뭐 당분간 조합 필요 없지만, 제 일처럼 도와야죠.”
“지 사장이 빠지면 안 되지. 뭐 실무적인 것은 젊은 사장들끼리 잘 얘기해 보고, 추어탕이나 들자고. 이거 다 식어 버렸네. 끌끌.”
식어서 비린내가 날 줄 알았는데. 추어탕, 아직은 괜찮네. 듬뿍 던진 들깨 가루와 아주 살짝 들어간 산초 가루 덕분이다. 추어탕은 들깨와 산초 가루를 얼마나 잘 조합하느냐가 중요하지. 암 그렇고말고.
“지 사장! 계속 추어탕만 먹고 있을 텐가?”
추어탕 먹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하하. 자동권선기 때문에 그러시죠? 제가 먼저 꺼내자니 욕심 부리는 것 같아서 마냥 기다렸습니다.”
“허허. 이 사람 이거, 은근히 사람 맘 졸이게 하는 데 뭐 있다니까. 하하. 얼마면 되나?”
“사장님! 사장님도 보셨어요?”
박 사장이 3개월짜리 어음 만기가 다 됐다는 듯이 나를 슬쩍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공장 세운 지 벌써 3개월이 다 돼 가네.
“그걸 봤으니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걸 보고 나서는 잠이 안 오더라니까.”
“하하. 맞아요. 저도 지 사장님한테 빨리 팔라고 성환데 이거 뭐 함흥차사도 아니고.”
둘 다 공장에 자동권선기 갖출 생각에 행복했었나 보구나. 음…… 추어탕 국물 맛이 좋네. 이제 슬슬 노래를 부르니 먹잇감이나 던져 주지 뭐.
“중역들 반대가 워낙 심해서 설득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희 쓸 것도 아직 다 못 만들기도 했고. 그래도 판매하기로 결론 났으니까 빠르면 올해 말부터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올해 말? 아이구야. 기다리다가 복장 터지겠네. 일단 그렇다 치고, 얼마면 되나?”
“가격이 좀 높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지 사장! 지금 나를 놀리는 겐가? 내가 그깟 돈 몇 푼에 벌벌 떨 사람으로 보이나! 말만 해!”
이래서 성격 화통한 사람과는 대화할 때 늘 조심해야 한다. 혓바닥 잘못 놀렸다가는 머리 위에 미꾸라지 몇 마리가 헤엄칠지도 모를 일이다.
“대당 6억 원입니다.”
옆에 앉은 박 사장 허벅지를 살짝 찔렀다. 뭔 말인지 알지? 근데 허벅지 탄력 좋네.
박 사장이 제시한 조건과 같은 가격이니 6억 발언에 오해하지 말았으면 했다.
안성파워는 취급 품목이 많아 로열티 받기가 애매해서 그냥 통으로 불렀을 뿐이니까. 박 사장이 매출 1퍼센트 조건을 걸었으니까 별 차이는 없다고. 수출 선물은 내가 차차 보답할 테니, 이번엔 서로 공평하게 가자고.
역시나 보통내기가 아닌 박 사장은 찰나에 계산을 마친 모양이다. 자신도 그 조건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강 사장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확실히 무서운 사업가야.
“6억? 하하. 내가 말조심했어야 했구만. 하하하.”
“생각보다 많이 비싸죠? 그래서 저도 판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작 단가가 워낙 높아서 어쩔 수 없더라구요.”
“지 사장님. 강 사장님께 자동권선기 파시더라도 저희가 먼저인 것 아시죠? 저 진짜 오래 기다렸잖아요?”
“6억이라…….”
“강 사장님. 제가 자동권선기 돌아가는 것을 봤는데, 2년이면 뽑고도 남아요. 저도 5대나 예약 걸어 놨어요.”
이 사람 봐라? 이제 판촉까지 해 주시네. 이게 당신이 말한 서로 돕고 살자는 뜻이지? 후훗.
“그래, 좋다. 사업하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는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지. 나주 공장이 내년 4월에 완공이니까 그때까지 5대로 하겠네. 30억! 착수금으로 절반 주면 되겠나?”
와! 이걸 받다니. 가격 가지고 협상 과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받아 버리네? 이거 추어탕이 너무 차가워 이가 시릴 정도네. 자동권선기의 가치를 정확하게 아시는 강 사장님. 당신을 진정한 사업가로 인정하는 바입니다.
“안 그래도 설비 제작 부서 인원도 충원하면서 판매 준비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거 서둘러야겠네요. 준비되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 사장님! 제가 먼저라니까요?”
“하하. 준희가 아주 몸이 달았구나!”
응? 몸이 달아? 아, 제발 쓸데없는 연상 작용 좀 죽이자. 박 사장에게 야만스러운 생각 따위 좀 하지 말자.
바로 정신 차리고 계산기를 두들겼다. 유재준 부장과 휘하 2명이 이제 제법 손에 익었는지 한 대 만드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작 원가는 넉넉잡아 5천만 원. 얼마나 남는 거야? 이거 호재로구나!
자동권선기를 함부로 팔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돈 된다고 마구 팔았다가는 우리 회사 경쟁력이 없어져 버린다. 내 편임이 확실한 사람에게만 적당히 팔아야 한다. 황금알 낳는 오리 배를 난도질할 필요는 없지.
“자네, 검찰은 언제 가는 건가?”
“네, 4시까지 가면 됩니다. 경찰에서 수사를 워낙 잘해 놔서 검찰이 뭐 딱히 할 것은 없고, 기소 때문에 간단하게 진술만 하면 된다고 하네요.”
“그럼 그놈들은 어찌 되는 거야?”
“최철민은 재판 들어갔으니까 곧 판결 나올 겁니다. 법조계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실형은 확실한데, 기소된 혐의가 여러 개라도 가장 센 걸로 판결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라 5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덕준아, 확실하지? 죄는 밉지만 사람도 미우니까 5년 실형 확실하겠지?
“5년이면 꽤 센 처벌 아닌가?”
“혐의가 많고 태양전기한테 받아먹은 액수가 커서 그렇다고 하네요.”
“그럼 최현아나 우진택은 더 크게 처벌 받을 가능성이 크겠구만.”
“주범이라 그럴 것입니다. 우진택은 중형이 불가피하고 최현아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부부를 다 처벌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집행 유예 정도 나올 것 같다고 합니다.”
“그 최 씨네는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오겠구만. 나 참.”
“사장님, 사장님께서 저한테 그러셨죠? 부지런히 회사 키우는 것이 최가네한테 되갚는 것이라구요. 전 이제 제 사업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어림없는 소리지. 태양전기 폐업 신고까지 보고 말 테다. 이리 연기하기가 힘들어서야 원.
“내가 자네를 몇 번 본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너무 좋아도 안 되네. 회사 명운을 걸었을 때는 확실하게 승부를 걸어야 나중에 뒤탈이 없는 법이야. 사업의 세계는 냉정해.”
그럼요. 잘 알고 있습지요. 전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으니 걱정 마시지요.
“아직 사업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사장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박 사장님도요.”
“네? 저요? 하하. 제가 뭐 아는 것이 있나요? 저는 그저 부지런히 벌어서 직원들 월급 주고 투자하고 그게 다예요.”
“준희 너. 이제 사업가가 다 됐어. 아주 진짜배기 사업가야. 네가 말한 것이 제일 어려운 것 아니냐. 하하.”
이제 보니 박 사장이 강 사장한테 많이 배웠구나 싶다. 첫 만남에서 강 사장이 했던 얘기를 그대로 하는 것을 보니, 강 사장 말대로 부지런히 벌어서 직원들 월급 주고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 사람들 나랑 마음이 아주 척척 잘 들어맞네.
“지 사장, 검찰 잘 다녀오고. 내 조만간에 나주 내려갈 일이 있으니 육회비빔밥 한 그릇 하자고. 그 집 참 음식 잘한단 말이야.”
“저도 곧 나주 내려가는데, 저도 껴 주시죠?”
“오늘 봤으면 됐지, 또 봐? 하하.”
이런 늦었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싶더니 안산지청까지 서둘러야 할 판이네.
검찰 참고인 진술은 뭐 특별할 것도 없었다. 내가 녹음 파일을 건네기 전까지 말이다.
경찰이 밝혀내지 못한 것을 검사가 알게 됐으니, 우리 검사님 얼마나 기분이 좋으시겠나!
영감님, 처벌 제대로 롸끈하게 해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