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5)
055 각성
결국 우진택과 최현아가 기소됐다.
우진택은 업무상 횡령ㆍ배임, 배임 중재, 특수 협박, 업무 방해 혐의로, 최현아는 업무상 횡령ㆍ배임으로 말이다.
부부라는 이유로 최현아가 주범에서 빠져 버린 것이 못내 아쉽지만, 아직 재판이 남아 있다. 기소대로 유죄가 확정되면, 실형이 ‘어서 옵쇼’ 하며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것이다.
신속한 방역 활동에 매진하느라, 회사 일에 소홀했다.
이제 회사 일에 매진하자.
조금 섭섭했다. 사장인 내가 딴 데 정신 팔고 있는데도, 공장이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니! 자금이 살짝 아쉬운 상황이지만, 딱 두 달만 버티면 된다.
백지원 봉숙 원장에게 부탁한 신입 직원 채용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10명을 추가 고용했는데, 백지원 출신 4명과 타 보육원 출신 6명이 들어왔다. 보육원 출신끼리 파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직까지는 문제없이 서로 어울리는 것을 보니 안심해도 될 듯하다.
역시 노래방 기기가 효과가 컸다. 편의 시설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이 허허벌판에서 젊음을 만끽하라고 기숙사 휴게실을 주점처럼 만들어 줬더니 저들끼리 흥청망청 잘 놀고 있다.
“너네들 일 끝나고 안 심심하니?”
“죽겠어요. 진짜 야근이라도 시켜 주세요.”
“일 못해서 안달이 났네, 아주. 지금 하는 건 일도 아니야. 나중에 곡소리 나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말어.”
“사장님! 강당에 헬스장 만들어 주신다면서요!”
“기다려 봐. 내년엔 무조건 너네들 근육 돼지로 만들어 줄게.”
“사장님, 근데 우리는 야유회 이런 거 안 가요?”
“야유회라, 그거 좋네. 8월 입찰 끝나면 상황 봐서 영산강에 나룻배라도 띄워 보자고.”
“어휴. 사장님은 다 좋은데 말하는 게 너무 올드해요.”
미안하다 이것들아. 내가 어려서부터 없이 살아서 우물물 뜨고 지게 메고 나무 하느라 이리됐다고!
“사장님! 노래방 기기 업데이트 좀 후딱 해 주세요. 이왕이면 최신곡을 불러 줘야 어디 가서 써먹기라도 하죠!”
노래방 기기에 최신곡 업데이트 빼먹지 말아야겠네.
놀 곳이 없으니, 돈 벌면 PC방이라도 그럴싸하게 차려 줘야겠다. 스타 대회라도 열어 볼까? 아니다. 30대 티 내지 말자. 요즘 애들은 스타 안 한다잖아. 안 그래도 노인네라고 구박 받는데 말이야.
말 나온 김에 진짜 노인 만나러 가야겠군.
공장이 문제없이 잘 돌아가서 나를 섭섭하게 한 공장장을 찾았다.
“이거 누구신가?”
“하하. 왜 또 그러십니까? 그래도 현장 종종 들렀잖아요.”
“오는 폼을 보니까 딱 답 나왔네. 부싱체결기 보러 왔지?”
“제가 귀신을 어찌 속이겠습니까. 하하. 어때요? 윤곽이 좀 나왔습니까?”
“그것도 참 물건이네. 재준이한테 가 보자고. 아마 거의 다 돼서 시운전 정도는 될 거네.”
유재준 부장이 관할하는 설비제작동은 전투기 조립하는 군수 공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버렸다. 온갖 것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다 무한동력 발전기도 나올 지경이다.
“공장장님! 이거 사장님이랑 같이 온 것 보니까 또 나 쪼려고 왔구만!”
이 공장에 귀신이 두 명이나 있었네.
“우리 사장님 왔으니까 부싱체결기 좀 보자구.”
“진짜 그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이러실 겁니까?”
“허허. 내가 좀 바빴어.”
“부장님, 부싱체결기 시운전 가능할 것 같다고 하던데, 보여 주시죠.”
만담은 나 나간 다음에 실컷 하시고.
“사장님, 요건 그래도 덩치가 작아서 그런지 자동권선기보단 훨씬 수월하더라고. 설계도 덜 복잡하고.”
유 부장이 부싱체결기를 어깨에 멨다. 앞으로 메니 등에 땀 찰 일은 없겠네.
“자, 보세요. 상판부 패널에서 부싱 사이즈랑 너트 크기 입력하면, 이걸 팔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이게 조정돼요. 그럼 양쪽을 잡고 부싱 붙잡고 스위치 누르면 끝. 아주 간편해요.”
“작업 속도는 엄청 빨라지죠?”
“말도 마요. 큰 너트나 작은 너트나 시간이 차이가 없어. 사장님, 예전에 나랑 많이 해 봤잖아? 아휴, 폴대 잡고 너트 조이려면 보통 일이 아니잖아? 이건 그냥 슝하면 끝이더라니까.”
대박 확정!
나도 이제 사업가 다 됐으니 머릿속에서 급하게 계산기 두들겼다. 생산원가 2~3퍼센트 절감은 충분해 보인다. 원가 절감도 절감이지만, 생산성이 월등히 높아지니 그 누가 대박이 아니라 하겠는가!
“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야, 진짜 이것도 대박인데요?”
“자동권선기를 먼저 봐 버려서 그런지 좀 감흥이 덜 하긴 한데, 이것도 진짜 물건이지.”
“이건 3대 정도만 있어도 넉넉할 것 같네요. 딱 2대만 더…….”
유 부장의 한숨을 애써 외면했다. 지금 만들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니 사람을 더 붙여야겠다. 사람 붙여는 드릴게.
“사장님, 역시 재준이가 인물이지? 사장님 말대로 설비제작부서 만들어서 저렇게 빼놓은 게 아주 딱이야.”
그러고 보니 공장장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지 사장’에서 ‘사장님’으로 바뀌었다. ‘지 사장’이라고 편하게 불러 주는 것이 더 좋았지만, ‘사장님’이라고 하니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공장장님, 요새 바쁘셨어요? 아까 보니까 부장님이 죽는소리하더만요.”
“허허. 내가 뭐 좀 하느라고. 말 나온 김에 현장 사무실 가세. 내가 뭐 보여 줄 것이 있어.”
이 사람은 또 뭘 놀래려고 이러나. 저 눈빛은 사춘기 소년이라고 놀림 받을 때 그 설레는 눈빛 아니야?
“내가 캐드를 못해서 손으로 그린 거라 보기가 불편할 수 있지만, 이거 한번 봐 봐.”
“이건 뭔가요? 패드변압기 같은데요?”
“역시 사장님 짬밥도 무시 못해. 하하. 맞아, 패드변압기.”
전봇대 보기 싫다고 도시권은 전봇대를 없애고 전기 선로를 지하에 매립하는 경우가 많다. 전봇대에 달려서 주상변압기라고 하는데, 지하로 통하는 전기를 변압하는 것은 지상 설치용 변압기이다.
지상에 설치하니 변압기를 한 번 덧씌운다고 해서 패드변압기라고도 부른다. 정식 명칭은 지상 설치용 어쩌고 하던데, 다들 패드라고 하면 아니까 뭐.
패드변압기를 왜? 이미 개발 끝내서 입찰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개발한 거랑 뭐 달라진 것이 있나요? 모양이 똑같은데요?”
사춘기 소년의 설레는 눈빛이 안구에 확 들어와 버렸다. 이거 뭔가 있구나!
“하하. 모양이야 똑같지. 이거 치수를 봐 봐. 기존보다 크기를 확 줄였잖아!”
세상에나! 최근에 현장 사무실에서 뭘 그리하나 했더니, 신제품을 만들었군요!
공장장의 각성.
신제품을 만들었다는 것보다 공장장이 각성하며 자존심을 회복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문자님의 설계로 의기소침해 있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스스로 이겨 냈구나!
“공장장님! 아니 이걸 어떻게 하신 겁니까!”
마구 끌어안고 환희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뭐, 여러 가지로 고민 좀 했지. 그 고효율주상변압기 보니까 이것도 충분히 가능하겠더라고. 대한전력이 주상변압기 개선 끝냈으면 다음은 뭐겠나? 딱 보니까 패드일 것 같아서 착수해 봤지.”
급히 짱구를 굴렸다. 가상 계산기를 마구 두들겼다.
대한전력 패드변압기 물량이 연간 500억 원 정도이다. 공장장이 개발한 신제품이 대한전력 신제품으로 인정받는다면 또 우선 배정 20퍼센트다. 100억씩 3년간 300억 원!
참을 수 없었다. 마음 가는 대로 공장장을 힘껏 껴안아 버렸다.
“공장장님! 싸랑합니다!”
“남사스럽게 왜 그래. 이거 아직 멀었어. 설계도 계속 손봐야 하고 설계대로 제품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잖아. 아직 멀었다고. 아휴, 숨 막혀. 저리 좀 가.”
문자님의 은총 없이 처음으로 일궈 낸 옥동자이다. 그것도 자존심을 회복한 공장장의 작품이다.
그저 공중부양 하는 기분이다. 적당히 기쁘면 기쁨을 주절주절 표현하지만, 극도로 기쁘면 그냥 기쁘다 정도밖에 표현되지 않는 법 아닌가. 가슴이 너무 벅차올라서 젖멍울을 느낄 정도다.
나 역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했다. 내가 과연 사업할 자질을 갖췄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문자님의 하해와 같은 은총이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내 능력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장장의 각성은 내 고민을 해소시켜 준 쾌거이다. 문자님의 은총이 없어도 내가 이끄는 이 회사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네!
“공장장님! 이대로 멈추면 안 됩니다! 어서 하나 더 만들어 주세요!”
개선할 수 있는 품목이 아직 더 있다. 대한전력 우선 배정으로만 먹고살 수 있는 회사를 꿈꿨는데, 공장장이 냉큼 한 걸음 내디뎌 버렸다.
“하하. 이것도 겨우 한 거야! 흰머리 늘어난 것 좀 봐. 이래 가지고 산에 올라가면 할망구들이 쳐다나 보겠어?”
“공장장님! 갑시다. 나주 시내 나가서 미용실 가자구요! 제가 40대 정도로까지는 만들어 드릴게요!”
“뭐? 나주 시내 할망구들 다 후리고 다니라고? 허허.”
늦둥이 봐도 좋으니 이대로만 가십시다. 지금 페이스 아주 좋습니다. 이대로 90세까지 갑시다!
기쁜 마음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트레스 만땅일 때 피우는 담배도 죽이지만, 기쁠 때 피우는 담배는 단당류 범벅인 올리고당이다. 아, 달다.
“진짜 미용실 안 가실 거예요? 제가 풀코스로 치장해 드리겠다니까요?”
“이 허허벌판에서 머리 염색해 봐야 누가 본다고 그래.”
“암튼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제가 시원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허.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리 운을 띄울까?”
“제가 예전에 외함 자체 제작하겠다고 했는데, 기억나시죠? 아무래도 서둘러야겠습니다. 태진기업 이것들하고 거래해서는 백프로 연체 먹습니다. 지금도 공급이 이 모양인데 물량 터지면 감당이 안 됩니다.”
“내가 말했잖아. 김근배 그 자식 목에 깁스하고 다니면서 얼마나 거만하게 굴어? 우리 물량 맞추려면 자기 말고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 지랄 하는 거라니까! 내 당장 기흥 애들 연락해서 여기로 데려오겠네.”
작년에 폐업한 외함 업체 기흥기업에서 일했던 사람들 영입하면 외함 제작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축구장 같은 공장이 남아도니까 외함 자체 제작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 버리자. 서두르면 대한전력 입찰 전까지 초도품 생산이 가능할 것이다.
“확실하게 설득해 주세요.”
“안 그래도 주말에 아들놈 집에 갔다가 걔네들 함 보려고. 고기나 좀 사 먹이면서 납치라도 해 와야지 뭐.”
“법인 카드로 결제하세요. 투자니까 걱정 마시고. 저는 설비를 준비하겠습니다.”
“사장님, 뭐 돈 걱정은 자네가 한다고 했지만서도 걱정이 들긴 하네. 설비도 사야지, 대한전력 등록한 것 변경하려면 그것도 돈깨나 깨지자나.”
“변경 비용은 1,500만 원 정도면 될 것 같구요. 설비는 철판 가공하고 찍고 용접하고 분체 도장까지 하려면 좀 많이 깨지죠. 3억 잡고 있습니다.”
“3억? 고작 그걸로 되겠어? 어림도 없지. 못해도 5억은 족히 들 텐데?”
“그래서 제가 보여 드릴 것이 있는데…….”
“또 뭔가? 우리 사장님 오늘 왜 이렇게 자꾸 운을 띄울까?”
필터가 보이기 직전까지 담배를 태우던 공장장을 끌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화면 보기를 불편해하는 공장장을 위해 미리 출력까지 끝내 둔 외함 제작기 설계. 우리 문자님께서 등이 간지러울 때마다 보내 주시는 효자손 같은 이 설계!
“또 그 쩐주야?”
“네, 맞습니다. 외함 직접 제작하겠다고 하니 이렇게 또 보내 주셨네요.”
“이거 참. 묘하게 경쟁심을 불러일으킨단 말이야. 이거 나보고 공장장이 대체 뭐 하냐고 하는 것 맞지?”
“에이, 설마요. 그분도 공장장님 비롯해서 우리 직원들한테 엄청 고마워하고 있어요.”
있지도 않은 말을 잘도 지어 낸다. 거짓말도 하면 할수록 커지는 법인데, 로또 당첨 안 들키려고 시작한 거짓말이 여기까지 와 버렸네. 덕분에 이 바닥 최고라는 자존심으로 버텼던 공장장이 각성하게 됐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일단 보자구. 내가 외함은 잘 모르는데, 뭐 어쩌겠나. 하나하나 배워야지.”
“저도 마찬가지죠, 뭐. 대충 보니까 주상변압기만 되는 것 같아요. 여기 이게 재단한 철판 돌돌 말아 주는 것 같고. 젤 핵심이 용접인데, 뒤로 가면 여기 있죠? 이게 왔다 갔다 하면서 용접하는 설비예요.”
이 바닥 하이테크놀로지의 결정체라고 부르고 싶다. 그 비싸다던 자동용접기까지 들어 있으니 이거 말 다 했지. 특허 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짜 이 사람은 꼭 한번 만나 보고 싶구만. 아니,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지?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장난 아니죠? 이거 뭐 바로 추진해야겠죠? 이렇게 설계까지 딱 나왔는데, 뭉그적거릴 이유가 없잖아요?”
“이거 설계 양을 보니까 시간 꽤 걸리겠는데?”
“공장장님, 미리 감사드립니다. 유 부장님한테 잘 얘기해 주세요.”
“우리 사장님 아주 사람 부려 먹는 것이 예술이야. 이거 원. 어쩌겠나, 또 부지런히 달려 봐야지.”
공장장이 놀람과 분함, 기쁨과 슬픔이 한데 섞인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자님의 선물에 다시 격한 자극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90세까지 아직 멀었으니까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