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6)
056 동심동력
덕준이가 눈에 밟힌다. 미안하다, 덕준아.
“한 과장님아. 외함 제작기 캐드로 다 옮겼어? 미안한데, 자재 목록 보고 자재 발주부터 먼저 하자.”
“사장님, 공장장님 진짜 캐드 배울 생각 없다고 하면 설계 인력 좀 뽑자.”
“사랑한다 친구야. 사랑한다고 이 자식아!”
황미연 대리 입사 이후로 일을 어느 정도 넘기긴 했지만, 덕준이가 맡은 일이 너무 많긴 하다. 자재 관리 만으로도 벅찰 텐데, 늘어난 인력 관리부터 온갖 행정 업무까지 도맡고 있으니 말이다.
직원이 30명을 넘기면서 처리해야 할 행정 규제가 많아져 버렸다. 회사 키우는 데 욕심 없는 회사들이 직원 수를 29명에서 늘리지 않는 이유이다. 나는 마구 키울 생각이었으니 겪어야 할 일이지만, 그걸 덕준이가 다 떠안는 것이 영 미안했다.
솔직히 회사에서 제일 티 안 나는 일이 관리 업무이다. 기술직이 아니라 딱히 경력을 인정받을 것도 없고, 일이란 것이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덤프트럭으로 퍼먹는다.
직원들이 덕준이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내가 친구 불러다 놓고 고생만 시키는 것이 아닌지 신경이 쓰인다.
아직 회사가 자리 잡지 못해서 월급은 내년에야 올릴 계획이니, 덕준이만 혼자 올려 주기도 뭐하고. 그래! 차나 빨리 뽑아 주자. 나도 뭐 월급 받아서 쓸데도 딱히 없고, 사 주기로 했으니 빨리 사 줘야지.
“한 과장님?”
“왜 또!”
심술 난 덕준이 고생이 많다.
“차 골랐어?”
“응? 차 뽑아 준다는 거 진짜였어? 난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빨랑 골라. 5년 할부로 뽑아 줄게.”
“사랑한다, 친구야! 사랑한다고, 이 자식아!”
“그런 의미에서 이거 빨리 캐드로 옮기자. 이번엔 서둘러야 해.”
대한전력 물량 맞추기 미션에서 제일 우려 사항이었던 외함이 예상대로 계속 문제다. 민수 변압기 외함은 업체가 워낙 많아 수급에 문제가 없는데, 관수변압기 외함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서 툭하면 문제다.
대한전력 납품 시 핵심 자재로 지정돼 있어 바꾸려면 시험비 400만 원 정도 내다버려야 한다. 시험이 원데이투데이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외함 업체들도 그걸 알고 완성품 업체에 갑질 아닌 갑질을 부리기 일쑤다. 몇 개 안 되는 업체들끼리 똘똘 뭉쳐 있어서, 소문 잘못 나면 외함 자체를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회사 세우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외함 업체인 태진기업부터 쪼르르 달려간 것도 일단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정 때문이었다.
외함 업체 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뭐 바쁘기야 하겠지. 우리야 당장 대한전력 납품하는 것이 아니니,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을 것이다. 이해가 이성의 영역이라면 태진기업 김근배 사장 태도는 감정의 영역이다.
거만하기로는 가온차트 상위권에 랭크될 만한 김근배 사장이 기어코 배짱을 부리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더 심할지 안 봐도 블루레이 아닐까?
대한전력 입찰 끝나면 물량 미친 듯이 많아지니까 준비 단단히 하라고 그리 강조했건만. 나주 오면서 운반비 부담된다고 우는소리 하길래 단가 3천 원씩 올려 줬건만. 벌써부터 꼴통 짓을 하겠다면 계획을 빨리 이행하는 수밖에 없지.
“사장님아. 머리가 산만해서 일이 안 되네.”
“무슨 걱정이 우리 한 과장을 힘들게 하는고?”
“사람 문제가 계속 걸리네? 변압기야 거의 절반은 자동화돼서 문제가 없는데, 외함은 이거 다 사람이 자르고 용접하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서?”
“우리 물량 때려 맞추려면 사람 엄청 필요하겠는데? 태진기업도 봐 봐. 한 달에 3천 대 만든다고 하는데, 사람 열댓 명 넘잖아?”
덕준이의 회사 걱정이 날이 갈수록 심오해지고 있다. 걱정 없이 세상 편히 살던 한량이었던 덕준이가 기름밥 1년 가까이 먹더니, 회사 걱정이 며느리 집 나가게 하는 시어머니만큼 늘었다. 고무적이다.
더 고무적인 것은 내가 걱정할 것을 알고 다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하.
“말 잘했어. 그래서 외함 제작기 설계로 빨리 설비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한 달에 외함 5천 대 만들려면 못해도 20명이 밤낮 없이 굴러야 하거든? 내가 보니까 저거 만들면 5명이면 충분해. 장난 아니지? 그러니까 걱정 말고 얼렁 캐드 좀 옮겨 주셈요.”
“설비는 이걸로 다 될까? 추가로 사야 할 건 없을까?”
이 자식 왜 이리 걱정이 많아진 거지? 작전주같이 계속 잘나가기만 하니까 그러나?
“내가 태양전기 다닐 때 툭하면 외함 입고 늦어져서 밥 먹듯이 외함집 다녔거든. 외함집이야 마찌꼬바들이라 설비랄 것도 없지만, 거기서 봤던 설비들 다 담겨 있어. 이제 걱정 다 하셨습니까?”
“예썰! 아니 솔직히 빚은 몽창인데, 들어오는 돈은 민수 매출 말고는 없잖아. 근데 일만 자꾸 벌리니까 좀 후달리더라.”
“천하의 한덕준 씨. 남들 10년 고생할 짓을 내가 3년 만에 다 해 버린 놈이야.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한겨울에도 반팔 입게 해 줄게!”
“응? 나 집에서 맨날 반팔에 반바지 입고 다녔는데?”
“부르주아 자식. 부럽다.”
나라고 왜 회사 걱정을 안 하겠냐. 30명이 넘는 직원들 생계를 책임지는데 하루 종일 걱정해도 모자랄 판이겠지.
사장이라 직원들 앞에서 태연한 척하는 것도 있지만, 왠지 걱정이 안 된다. 아직 미래가 그려지지 않지만, 잘될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머니, 버들잎으로 피리 부는 한가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일이나 하자.
“공장장님! 기흥기업 사람들 어떻게 됐습니까?”
“내 정신 좀 봐라. 그거 얘기한다는 것 깜박했네. 거기 직원이 5명인데 2명은 다른 데 취직했고, 3명이 놀고 있다고 하더라. 다 전화해 봤는데 2명만 솔깃해하더라고. 한 명은 멀어서 싫대.”
“솔깃해한다는 것은 여기 오겠다는 뜻이겠죠?”
“걱정 마. 내가 주말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올 테니까. 그놈들 숙소나 알아봐 줘. 회사 기숙사 방이 남았긴 한데, 아무래도 스무 살 새파란 것들이랑 같이 있으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어?”
그깟 숙소 비용이야 얼마든지 내어 드리지요.
“좋습니다. 외함 제작기는 바로 작업 들어가죠?”
“설계가 워낙 많아서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 해 봐야지. 못해도 8월부터는 짝짝 뽑아야 하니까.”
“수고 좀 해 주세요. 외함 제작동은 생산 5동으로 했고, 설비 배치도랑 다 짜 놨으니까 설비 만들어지는 족족 배치해 주세요.”
“그래야지. 설비 만들어질 때마다 바로 배치해서 시험 가동해 봐야지. 라인 다 잡고 한 번에 가동하는 것이 좋긴 한데, 시간이 촉박하니 우선 되는대로 돌릴 생각이네.”
이러니 내가 회사 걱정할 일이 있나.
사실 걱정이 있긴 하다.
민수 변압기 판매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한전력 납품을 대비해 뽑은 인력과 생산량을 커버하기는 많이 모자라다. 그걸 감안해서 대출을 풀로 받았지만, 간당간당한 것이 영 불안하다.
대출 넉넉하게 받았다고 생각해서 재고 생산량을 조금 늘렸더니 돈이 쪽쪽 빨린다. 대한전력 납품 전에 월 5천 대 생산을 해 봤으면 싶은데, 돈이 아쉽군.
계산상으로는 지금 수준으로 9월까지 버틸 수 있으니, 10월에 대한전력 납품 대금 들어오면 탄탄대로이다. 그래도 살짝 불안하다. 10억 정도만 더 있으면 비데 쾌변 기능처럼 시원할 텐데 말이야.
문자님의 문자가 생각났다.
-동심동력.
‘마음을 같이하여 힘을 합쳐라’.
외함 제작기 설계가 들어 있는 문자라 힘 합쳐서 외함 잘 만들란 뜻이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왠지 그게 아닌 것 같다.
문자님께서 워낙 시크하셔서 불쑥 내뱉고 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들을 용케 알고 솔루션을 주셨던 것 아닌가? 혹시 지금 이 걱정을 미리 알고 보내 주신 것은 아닐까?
골몰하느라 업소용 대형 참치 캔에 꽁초가 하나둘 늘어 갔다. 직원들한테 투자를 받거나 돈을 빌리란 뜻인가?
공장장이랑 상무야 퇴직금도 꽤 받았을 테니까 한번 물어나 볼까? 아니지. 아무 걱정 없이 신 나게 일하게 해 주겠다고 큰소리쳐 놨는데, 그건 아니지.
덕준이? 그놈이 무슨 돈이 있겠어? 이날 평생을 백수로 산 놈한테 돈 빌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예의가 아니다. 친구 간에 돈거래 하는 것도 우습다.
마음을 같이하여 힘을 합치라 했으니 회의라도 해 보자. 이럴 때 집단 지성의 힘을 믿어 보는 것이지.
창업 공신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우리 회사 살림꾼 황미연 대리도 빠져서는 안 되지.
“사장님, 뭐 할 얘기 있어? 회의라면 질색하면서 이렇게 부른 것 보니까 중요한 얘기하려나 보네?”
현재 우리 회사의 유일한 돈벌이를 책임지는 상무. 나주 내려와서 거래처 다니기가 꽤 힘들어졌지만, 아무 내색도 안 한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것으로 내색 충분히 하고 있지만.
“상무님 덕분에 매출도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서 격려 차원에서 서로 얘기나 하려고요. 하하.”
“뭐 나 때문인가? 품질 좋고 딴 데보다 천 원이라도 싼데 누가 안 사겠어? 나야 드라이브하면서 맛있는 것이나 먹고 다니지 뭐.”
확실히 사람이 긍정적이고 털털하다. 타고난 영업쟁이지.
“우리 사장님. 무슨 일 있어? 같이 일한 것이 4년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이 지지고 볶던 사이 아닌가? 얼굴에 그늘이 보여. 얼굴만 봐도 무슨 일 있다고 쓰여 있는데, 뭘 아닌 척하나?”
공장장은 여전히 귀신같은 눈치를 자랑한다. 태양전기 때부터 거의 매일같이 붙어 있었으니 내 겨드랑이 털이 몇 가닥인지까지 다 알겠지. 이거 공장장 앞에서는 연기가 안 되겠네.
“하하. 제 얼굴에 뭐라고 쓰여 있던가요?”
“사장님은 딱 보면 보여. 그게 우리 사장님 매력이고 말이야. 자네가 사장이지만, 사실상 우리도 동업자나 마찬가지 아닌가.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편하게 얘기하게.”
“공장장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맘이 울컥한 것이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왔지만, 하나뿐인 아들놈 소풍이라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굳은살이 가득 박인 뭉뚝한 손으로 김밥을 말아 주던 아빠가 생각났다.
“사장님! 왜 울려 그래요? 진정하고 회의하시죠. 자, 이번 회의는 안건이 뭡니까?”
감동을 말끔히 깨부수는 덕준이 이 자식. 그래야 친구지.
“여기 황 대리님도 잘 아시겠지만, 9월까지 버틸 자금은 마련됐는데 여유가 너무 없어서 괜찮을까 싶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창업 공신들 얘기를 들어 볼까 합니다.”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다. 직원들이 나를 믿고 열심히 일하는데, 나 역시 직원들을 믿고 있는 그대로 얘기해야지.
“제가 얘기해도 될까요?”
“황 대리님. 회의는 계급장 떼고 얘기하는 자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완벽한 살림꾼 전사 황 대리는 꼭 회의 때만 되면 수줍어한다.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상무 아내라고 해서 직원들한테 거들먹거리지 않는 것은 참 좋은데 말이야. 이리 수줍음이 많은데, 상무는 왜 그리 무서워하나 몰라.
“사장님께서 10월 중순에는 대한전력 납품 대금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9월 말 결제까지로 계산해 보면, 많이 빠듯해요.”
“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급여로만 한 달에 2억 약간 안 되게 나가구요. 자재비가 지금 5억 내외로 나가는데, 들어 보니까 생산량을 더 늘려야 한다면서요? 지금 남은 자금이랑 민수 변압기 판매 대금으로는 생산 더 늘리기 어려워요.”
아휴. 수줍음 많다는 건 취소. 정말 똑부러지네. 상무 꼬드김에 빠져 결혼하고 회사 그만둔다고 했을 때 직원들이 얼마나 통곡을 했을지 훤하다.
“음. 이제 슬슬 생산량 늘려야 할 때이긴 한데 말이야. 대한전력에서 입찰 끝나고 초반에 물량 많이 쏟아 내지 않나? 안 그래도 양이 많은데 대한전력 물량질에 당하진 말아야 하지 않겠나? 지금처럼 월 육칠백 대 생산으로는 안 되지. 현장도 물량 빼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공장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단순 나눠서 월 4천 대지만, 연말까지는 거의 두 배는 나온다고 생각해야죠. 태양전기 때처럼 알고도 당하는 일 안 만들려면 이제 생산량 늘릴 때이긴 합니다.”
대한전력 첫 납품까지 석 달 남았으니까, 지금부터 못해도 월 2~3천 대씩은 뽑아 줘야 할 타이밍이다. 자재비가 엄청 깨지겠네.
덕준이가 지금 대화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들어 보니까, 우리 사장님 핵심을 얘기 안 하는 것 같네요. 대출까지 다 끝냈는데, 고지 앞두고 자금이 살짝 아쉽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 같은데…… 사장님, 돈이 필요하십니까?”
이 회사는 눈치 빠른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