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7)
057 원팀
눈치 빠른 덕준이 덕분에 회의가 빠르게 본론에 들어갔다.
“하하. 맞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가도 되는데, 직원들 고생 덜 하려면 피치를 높여야 하는 시점이죠. 그런데 그러기엔 자금이 달리긴 합니다.”
공장장이 뭔가 계산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으니 계급장 떼고 그냥 어른이 한마디 한다고 생각하게.”
어른의 한마디.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사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태양전기 처음부터 함께해 오지 않았나? 사업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내가 모르지 않아. 자네야 경험이 많지 않으니 어려움이 더 많을 것이야.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잘해 주고 있네.”
“고맙습니다.”
“난 그렇게 생각하네. 사장인 자네가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해 주고 함께 고민하자고 하는 것만으로도 사장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우리야 월급 받는 직원이지만, 사장님의 걱정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되지. 사장이 이리 진솔하게 얘기를 해 주는데, 직원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다해야지 않겠나?”
아 신발. 눈물이…….
“사장님, 약조 하나 하게.”
“무슨 약조 말씀이십니까?”
“우리 아들 직장 잃으면 여기서 일하게 해 주겠다는 거 말여. 하하하.”
저 지극한 아들 사랑. 멀쩡히 회사 잘 다니는 아들 걱정은 왜 그리 많이 하는지 원.
“아이고 공장장님. 저는 한 번 말하면 무조건 지킵니다. 저번에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약조부터 하십니까?”
“내가 나이 먹고 돈 쓸 일도 없고 말이야. 내가 돈이 좀 있네. 내가 빌려 주겠네. 아니지. 돈 빌려 줘 봐야 이자 내느라 허덕일 테니까 투자하는 걸로 하지.”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다들 말문이 막혔을 것이 분명하다.
차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던 그 생각을 서슴없이 꺼내 버린 공장장.
“예?”
“내가 투자를 하겠다고. 왜 이래? 나 돈 있어!”
상무가 바로 정신을 차리고 공장장에게 진의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공장장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 투자를 해?”
“허허. 이놈은 나를 뭘로 보고. 퇴직금 고스란히 있잖아! 그리고 이건 좀 부끄러운데, 애들이 비리비리해서 집 살 때 보태 줄라고 야금야금 모아 둔 것이 좀 있어.”
“에이, 왜 그래? 내가 공장장님 사정 뻔히 아는데? 아니, 형수님 간호하느라 고생 많이 했잖아? 말이 암 투병이지. 공장장님 힘들어한 것 나만큼 잘 아는 사람 있어?”
“허허. 이놈은 믿지를 않네. 인마. 요새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아? 의료보험에서 어지간한 건 다 보장해 줘. 그리고 마누라 보험금도 한 푼도 안 썼어. 내가 그걸 어떻게 써. 못 쓰지.”
“그럼 애들 줘야지! 며느리랑 사위 생각은 안 해?”
영혼의 단짝 간의 티키타카 같지만, 아니다. 저건 상무가 진심으로 공장장을 걱정하는 것이다. 가족보다 더 진득한 관계. 정말 부럽다.
“아직 뭐 먹고살 만한지 아쉬운 소리 안 하는데, 내가 선뜻 돈 내밀 수 있나. 그냥 은행에 묶어 놨는데, 은행 이자라고 해 봐야 쥐꼬리만 하잖아? 나도 투자해서 대박 좀 쳐 보자!”
“이거 알고 보니 공장장님 완전 알부자였네? 으윽.”
황미연 대리가 상무를 진정시켰다. 분명 테이블 밑에서 허벅지를 심하게 꼬집은 모양이다.
“저기, 공장장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시는데, 저희라고 그냥 있으면 안 될 것 같네요. 남편이 명색이 상무인데 뭐라도 해야지 않겠어요?”
아이고야. 황 대리까지 다들 왜 이러십니까. 솥단지 한가득 감동의 도가니탕이라도 끓이시렵니까!
“우리 모아 둔 돈이 있어?”
“아휴,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일거에 제압돼 아무 말 못하는 상무님. 행복하시죠?
“저희도 퇴직금에다가 이번에 나주 숙소로 이사해서 전세금이 그대로 있어요. 지금 조금 좁긴 하지만 회사에서 숙소 마련해 줬으니까 어디 쓸데도 없고…….”
상무 표정이 밝아졌다. 이건 가오가 산다는 뜻이렷다. 황 대리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간다.
“솔직히 큰애가 고등학생이고, 작은애도 내년에 고등학교 올라가서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 많이는 힘들어요. 대학 등록금 생각도 해야 해서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난 이미 감정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단 말입니다!
“공장장님처럼 투자는 어렵구요, 2억 정도 대출은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자는 안 받아도 돼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숙소나 좋은 곳으로 해 주세요.”
이건 무슨 소설 같은 시추에이션인가? 내 얼굴에 돈 빌려 달라고 쓰여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직원들이 어디 있어!
“뭐야? 김 상무가 2억을 내겠다고? 내가 질 수 없지. 그럼 난 따블로 가겠네. 4억!”
블루마블도 아니고 이거 원.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이 상황에 감정이 심한 격동에 빠지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를 악물었다. 사장이 직원들 앞에서 나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지.
“다들 고맙습니다. 고지까지 다 올라왔는데 막판에 기름이 떨어질 것 같아서, 이게 참.”
“흑자 내고도 망하는 것이 사업이네. 노다지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고비를 못 넘겨서 망하는 것이 사업이란 말일세. 이런 과정도 있는 것이네. 그러면서 커 가는 것 아니겠나?”
“공장장님 고맙습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긴 합니다만, 이렇게라도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장님요. 나한테는 안 물어봐?”
덕준이 이 자식은 왜 또! 얘기 안 해도 니 맘 다 아니까 그냥 조용히 있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 괜한 생각 말고 돈 부지런히 모아. 너도 이제 결혼하려면 돈 좀 모아야지.”
“아나. 우리 사장님이 한덕준을 무시하시네. 나 재수 한 것 알지? 내가 너보다 형이니까 계급장 떼고 그냥 어른이 한마디 한다고 생각하게.”
이거 낯익은 멘트인데? 기시감이 들어! 그나저나 빠른 연생이 형 타령은, 아나.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고시 공부 한답시고 놀고먹기만 했는데, 그게 다 부모 잘 만난 덕이 아니겠어? 아버지가 옛날에 내 명의로 마포에 집 하나 해 놨는데, 거기가 재개발돼서 이번에 입주를 하네?”
황 대리 눈동자가 커졌다. 왜 그러는데요? 마포에 뭐 있습니까?
“가만가만. 마포에 재개발이면 마래푸 아니에요?”
“네 맞아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어머. 알고 보니까 한 과장님이 제일 부자였네요. 거기 집값 진짜 장난 아닌데?”
“저도 몰랐는데, 어마어마하게 올랐어요. 거기 조합장 구속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새 조합장이 꾸역꾸역 밀어붙여서 결국 완공 짓더라구요.”
“저희도 거기 일반 분양할 때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분양가가 너무 높아서 엄두도 못 냈어요. 정말 부럽다.”
황 대리가 상무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에이, 그러지 말아요. 상무님이 돈을 얼마 못 벌었지만,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 분입니다. 제가 충분히 보상해 줄 테니까 마래푼지 뭔지 부러워 말라구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상무가 핸드폰을 꺼내며 말을 잇는다.
“야. 이거 침 넘어가네. 잠깐만, 얼만지 검색 좀 해 보자. 33평 맞지? 와우 이게 얼마야? 10억이 넘어!”
마래푸가 강남도 아닌데 그리 비싼 아파트였어? 덕준이 이놈 부자였네. 부럽다. 나도 숫자상으로는 부자긴 한데…….
“하하. 제가 쫌 합니다. 저야 당장 살 것도 아니고 해서 전세를 놨는데 대출 일부 상환하고도 5억이 남데요?”
“그래서 너도 공장장님처럼 묻겠다?”
“싸나이 가는 길에 기죽을 것 있습니까? 까짓것 5억 묻죠!”
“뭐? 5억을 묻겠다고? 내가 4억을 묻는데? 그럼 안 되지. 노잣돈까지 다 끌어다가 나도 5억 묻는다!”
안 된다! 눈물이 나면 안 된다고! 아! 눈에 힘 들어가네.
덕준이 저 자식 핸드폰으로 찍고 있는 것 같은데? 안 된다! 안 된다고! 평생 놀림이 확정됐다.
그래. 우리는 원팀이다.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말이 제일 싫었지만, 오늘은 아니다. 이들은 내 가족이다. 내 가족! 내가 평생 책임져야 할 가족 말이다!
함께 고민하자고만 했을 뿐인데, 창업 공신들이 거금을 선뜻 내놓았다.
공장장과 덕준이는 무려 5억 원씩을 투자하기로 했고, 상무와 황 대리는 2억 원을 빌려 주기로 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 그만 울고 은혜 갚을 생각이나 하자.
조건을 두고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상무는 이자 10퍼센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황 대리한테 선수를 뺏긴 것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인지, 무슨 이자냐고 고집이다.
이자라도 챙겨 주겠다는데 이를 마다하는 직원이 또 있을까? 부모 복은 없어도 사람 복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결국 내 고집이 이겼다. 연 6퍼센트로 매달 이자 100만 원씩 주기로 하고 원금은 1년 후에 상환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봤다. 은행 이자보다 높지만, 더 챙겨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상무님, 대리님.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거 진짜 우리 전 재산이에요. 이제 우리 회사는 절대로 망하면 안 돼요. 아셨죠?”
“그럼요! 이런 직원들 두고 어떻게 망합니까! 하하. 내년에 혁신도시에 아파트 꼭 해 드릴게요!”
투자에 대해서는 한참을 실랑이했다. 지분 20퍼센트씩 떼어 주겠다는 제안에 회사를 날로 먹을 수 없다고 공장장이 고집을 부렸다.
“사장님 말대로 천억 넘게 매출이 나올 회산데, 5억으로 지분 20프로 먹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지. 회사가 어려울 때 돕겠다는 취지지, 내가 이걸로 재미 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사장님, 주려면 한 50프로 떼어 주든가 20프로가 뭐야. 기분 나빠서 안 받을래요. 그냥 2프로로 합시다. 솔직히 5억으로 이 회사 지분 2프로 가져가는 것도 개꿀이지. 나중에 돈 벌면 배당이나 넉넉하게 해 주세요.”
“그래. 2프로 좋다. 뭐든 좋아. 2프로로 하자고.”
덕준이까지 공장장 편을 든다.
“2프로면 제가 너무 거저먹는 것 아닙니까?”
난 욕심쟁이 사장이 되고 싶지 않다고.
잠깐만! 욕심? 머리가 번쩍했다.
그래, 문자님께서 마음을 같이하여 힘을 합치라고 한 것이 이 뜻이구나! 나 혼자 다 꾸역꾸역 먹지 말고 내 식구들과 나눠 먹으란 말씀이구나! 문자님 맞습니까? 역시 대답은 없겠지만…….
“자 자, 사장님. 잘 봐 봐. 우리 회사가 비상장이잖아? 비상장 주식도 가치를 계산하는 법이 있다고.”
“아니, 내가 이만큼 챙겨 주고 싶다니까.”
“조용하고 잘 들어 봐 봐. 비상장 주식 가치는 회사 자산하고 주당 얼마씩 버느냐로 계산해. 우리 사장님 허풍이 엄청 세지만, 말대로 된다고 하면 주당 가치가 30만 원은 족히 나와요. 나랑 공장장님 돈 10억으로 2프로씩 4프로 먹으면 어디 가서 사기꾼 소리 듣는다고요. 오케이?”
덕준이 이 자식, 넌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냐! 2프로도 많다고 저리 손사래를 치는데, 이거 고민이네.
“나는 볼일 다 봤는데, 얼렁 회의 끝내자! 나 바뻐! 거래처 가야 한다고! 그만 실랑이하고 대충 합의 봐 쫌!”
상무의 일갈로 공방전이 마무리됐다.
두 투자자에게 5퍼센트씩 지분 내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내 나름의 스톡옵션이라고 생각했다.
연 매출 1천억 넘게 찍을 회사가 지분 10퍼센트를 10억 원에 넘긴다면 사기당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더 주고 싶어도 직원들 반대로 못 주는 내 심정을 아느냐!
“굶어 죽지 않게 배당이나 제대로 해 줘.”
“공장장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내가 뭐 돈 거저 주나? 하하.”
“덕준아. 너도 진짜 고…….”
“아오, 오글거리게 그러지 말라고. 밥 먹으러 가는데 말이야.”
“한 과장님아. 투자 받으면 이후 절차 좀 부탁해.”
“아휴, 공장장님! 혹시 저승사자 보셨어요?”
“내가 저승사자 보면 큰일 나지!”
“혹시나 보시면 우리 사장님 좀 데려가라고 꼭 좀 말씀해 주세요.”
돈 걱정이 해소되니 몸이 말할 수 없이 가벼워졌다. 좀 고민하느라 안부 인사를 드리지 못한 변기에게도 시원하게 인사를 전했다. 몸이 더 가벼워졌다.
이제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다. 돈이 넉넉하지 않지만, 대한전력 납품 대비용 재고 생산량을 월 1천 대 수준으로 늘렸다. 연일 자재 싣고 오는 트럭으로 공장이 부산해졌다.
돈벌이는 없어도 생산 현장이 바삐 돌아가니 직원들도 힘이 나는지 시원스럽게 뽑아 준다. 자동화 설비로 힘들 일이 줄어든 데다, 공조 장치 덕분에 더위가 찾아와도 땀 흘리기가 힘들어지니 마냥 싱글벙글이다.
그렇게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오며 약속의 달 8월에 당도했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