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8)
058 소화 불량
운명의 8월이 찾아왔다. 이 맹렬한 더위만큼 우리 회사에 뜨거운 열기가 찾아올 것이다.
“한덕준 주주님아. 이달 중순쯤에 대한전력 입찰 공고 뜨니까 귀찮더라도 대한전력 사이트 자주 들어가 봐야 해? 알았어. 나도 자주 들어가 본다고.”
이제 20일만 있으면 대한전력 입찰이 끝나고 본격적인 돈벌이가 시작된다. 인천 임대 공장 구해서 고사 지낸지 딱 1년이 되는 날. 돈벼락이 내리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음 달이면 회사 창립일이네. 한참 일 많을 때라 쉬기도 뭐한데. 1주년인데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또 고민거리가 늘었네.
뭔가 고민에 빠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전화가 걸려 온다. 생각할 시간을 안 주네 이거.
“네, 프라임일레트릭 지정수입니다.”
“사장님, 조합 설립 신고했어요. 이제 출자금 내고 등기 받으면 돼요.”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냈다. 이름이 유치한 감이 있지만, 변압기혁신협동조합. 뭐 익숙해지니 그럭저럭 괜찮네.
당초 나주 이전을 계획한 4개 사에 불과했던 참여 기업이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의 참전으로 14개사로 늘어 버렸다. 공교롭게도 중전기조합 신년회 때 불참했던 회사들이었다. 새로 창업한 2곳도 새 조합에 가입 신청서를 냈다. 강 사장 빠워!
기존 조합 38개 회원사의 1/3이 빠져 버린 것이니, 중전기조합 체면은 연애편지 쓰다 구겨서 던져 버린 편지지 신세가 됐다. 작은 하마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군. 후훗.
“저번 주에 창립총회 했는데 빨리도 하셨네요. 사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뭘요. 강 사장님 덕분이죠. 강 사장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추진하는 건 꿈도 못 꿨을 거예요.”
“그나저나 이사장 못해서 아쉽겠습니다.”
“아휴. 저 감투 욕심 하나도 없어요. 당연히 강 사장님이 이사장 맡는 것이 맞죠.”
“이제 나주 내려올 일만 남았네요? 나주 언제 오시려구요? 분양부터 빨리 받으셔야죠?”
“곧 내려갑니다. 조합 만드느라 정작 회사 일을 못했네요. 하하. 내려가는 날 잡히면 전화드릴게요.”
산고 끝에 낳은 우리 핏덩이가 아직 젖도 떼지 못했는데, 분유에 수면제를 타 찾아온 잡것 날파리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카시아꿀잼이다.
그 연놈들 재판은 언제 열리려나? 증인 심문하러 가려면 지금부터 오체투지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사장님! 사장님아! 입찰 공고 떴어!”
“그래? 오케바리!”
대한전력 배전용 변압기 연간 단가 계약 입찰 공고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핏덩이를 무럭무럭 크게 만들 투뿔 한우로 만든 이유식이 도착한 것이야!
“짜잔! 내가 후다닥 정리해 왔지.”
“어휴야. 이게 얼마냐?”
“자, 브리핑할 테니까 잘 들어 보십시오. 대박 난 사장님아.”
33개로 이뤄진 총 4.113억 원짜리 대형 입찰!
“일반형 주상변압기가 3.083억 원인데, 지역 배정으로 613.5억 원에 6만 1,350대! 아몰퍼스 주상변압기가 421억 원에 지역 배정 82.2억 원으로 6,850대! 내염형 주상변압기는 121억 원에 지역 배정 24.1억 원으로 2,008대! 마지막으로 지상 설치형 변압기가 488억 원에 지역 배정 97.1억 원으로 970대! 계산기 어디 있냐! 다 더하면 816억9천만 원에 총 7만 1,178대네!”
대박!
빛으로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만드시는 우리 대한전력께서 817억 원을 싸 들고 오셨다.
많이 잡아야 800억 원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을 넘어 버렸다. 지역 배정을 받는 업체가 오로지 우리 회사 하나뿐이니, 817억 원 독식이 확정이다!
우리 회사가 상장이라도 했다면 주가 조작 혐의로 2박 3일은 밤샘 조사를 받았을 일이다. 누군가는 판타지 소설 쓰는 소리 한다면서 헛소리로 치부할지 모른다. 내가 창업 1년 만에 817억 원을 받았다고!
도수 높은 기쁨에 마냥 취해 있을 수 없지. 낙찰이 확정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전력이 제시한 817억 원은 예상 단가일 뿐이다. 우선 배정은 입찰 참여 없이 대한전력으로부터 바로 받지만, 일반 입찰 결과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일반 입찰 결과에 연동돼 계약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한전력이 ‘이 가격 즈음 해서 살 테니 어디 노래 불러 봐’ 하면 조합이 달려가 적당히 눈치 보면서 응찰하는 것이니, 입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윌파인듀 아윌킬유’라고 대놓고 말하고 다니던 중전기조합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저가로 입찰에 응했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겠다고 큰소리 펑펑 치던 조합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카드이다.
그래 봐야 10퍼센트 이상은 어려울 것이다. 낙찰가가 예상가 대비 90퍼센트를 찍어도 난 충분히 이익을 낼 자신이 있다. 그래도 아프긴 하겠지.
그러나! 안성파워와 금성전기라는 아군 덕에 새로운 ‘변압기혁신조합’이 생겨났으니, 단가 하락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한전력은 입찰 독식을 막기 위해 입찰에 부친 물량을 대략 100억 원씩 자른다. 총 4,113억 원에서 지역 우선 배정을 빼면 3,300억 원이니 입찰 공고가 33개가 뜬다.
중전기조합이 아무리 똥값으로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친들 입찰 33개를 다 먹을 수는 없다. 저들이 깡패도 아니고 명색이 회사 경영하는 것들이니, 고작 나 하나 죽이겠다고 막대한 손해를 감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거기에 새로 생긴 변압기혁신조합이 높은 값으로 입찰 몇 개 먹으면 평균값이 높아진다. 중전기조합이 지랄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에게는 아주 땡큐인 상황이다.
이제는 두 조합이 얼마나 잘 협상해서 높은 가격에 잘 나눠 먹느냐만을 기다리면 된다.
당장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압기혁신조합 이사장이자 우리 따거!
“어이, 지 사장! 축하하네!”
전화 받기 무섭게 축하 인사부터 건넨다. 많이 부러울 것이다. 공장 착공을 반년만 당겼더라도 저 거액을 반반 갈라 먹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하. 감사합니다. 올해는 염치없게 제가 혼자 먹지만, 내년부터는 사이좋게 나누겠습니다.”
“에이, 내년에 변압기 회사 많이 늘어날 텐데 뭘 둘이 나눠 먹나! 하하. 돈도 돈이지만, 연체 안 먹게 생산 잘하라고. 대한전력 연체가 한 번 걸리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주체를 못하는 법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이면 나도 해당하는 일이니, 내가 지 사장 아주 잘 지켜보겠어.”
앞으로 관심사는 내가 저 많은 물량을 연체 없이 잘 납품하느냐로 쏠리겠지. 대한전력이 쏟아 내는 물량을 잘 소화하는 일. 그것에 매진할 때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연체 먹으면서 망신당해서는 안 되지.
“하하. 심려 안 끼치도록 연체 없이 잘 납품하겠습니다. 참, 자동권선기는 부지런히 만들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래그래. 우리 것 들어가면 바로 연락 달라고. 말로만 사겠다고 하면 안 되지. 내가 착수금을 던져 줘야 자네가 부담이 없지 않겠나. 하하.”
“그나저나 어제 대한전력 입찰 공고 올라왔는데 보셨습니까?”
“얘기만 들었네. 뭐 내가 굳이 볼 필요까지 없지 않은가? 자네, 조합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지?”
“하하. 사장님 앞에서는 둘러대질 못하겠습니다. 낙찰 결과에 따라 우선 배정 단가가 결정되는 판이라서요.”
어미새 대한전력 앞에서 배고프다고 입 벌리고 있는 회사가 총 42개이다.
중전기조합이 26개 회원사로 여전히 힘이 세지만, 새로 생긴 변압기혁신조합도 16개 회원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서로 싸우기 애매한 상황이다. 서로 출혈해 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것이 가장 나을 것이다.
나 같았으면 10퍼센트까지도 떨어진다 생각하고 과감히 베팅해서 전부 다 먹겠지만.
“그게 고민이야. 맘 같아서는 33개 입찰 다 먹고 싶단 말이지. 중전기조합 죽어 봐라 하고 입찰가 낮추면 되지 않겠나? 그런데 회원사들이 무리하지 말자고 해서 말이네.”
역시 강 사장은 나와 한마음 한뜻이군. 본때를 보여 줘야 할 때는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 맞다고! 그래도 회원사 사장들 말이 맞을 것이다. 충분히 승산이 있어도 대응에 감정이 섞이면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법. 무리하지 않는 것이 맞겠지.
“저야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니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이럴 텐가? 단가 높게 받아서 재미 좀 보게 해 달라고 왜 얘기를 못하나? 하하. 아마 두 조합이서 서로 나눠 먹는 걸로 결론이 날 걸세. 사업을 감정적으로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공장장도 그러더니, 강 사장도 내 생각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기라도 하나?
오랜 경력을 가진 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나 자신이 사업가로서 손색이 없다는 자신감이 비 온 뒤 죽순 올라오듯 솟아오른다. 초심만 잃지 말자.
조합 문제는 윤곽이 나왔으니 이쯤 해 두고,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참이다.
대한전력이 꺼내 놓은 817억 원은 입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7만 1,178대라는 물량은 변동이 없다. 우리가 계획한 생산량을 훨씬 웃도는 물량이다.
또 회의다. 회의가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꼭 회의를 해야 하는 사안이다.
“상무님은 영업 나가셨으니까 대리님이 상무님이다 생각하고 기탄없이 얘기해 주세요.”
“아휴. 알겠어요.”
저 수줍어하는 황미연 대리가 회의 시작하면 얼마나 MG50이라도 쏘듯 말을 쏟아 낼지 기대되는구만.
“낙찰까지 아직 3주 남았는데, 물량이 우리 예상보다 많습니다. 태양전기 있었을 때 3년 동안 낙찰과 실제 발주 물량 비교를 해 봤는데, 평균 108프로였습니다. 100프로는 확실하다고 봐야겠죠? 7만 1천 대면 한 달에 5,900대씩 뽑아야 하니까 우리가 계획했던 5천 대를 뛰어넘습니다.”
“설비며 인원이며 다 늘려야겠구만. 뭐 넉넉하게 늘리면 좋지만, 다 돈이랑 직결된 문제 아닌가?”
“맞습니다, 공장장님. 게다가 대한전력 아시잖아요? 내년 1분기까지 미친 듯이 발주 내놓는 거. 그거 맞추려면 연말까지는 월 8,000대 정도는 뽑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8,000대라…….”
공장장이 고민에 빠진 표정이다. 고민거리이자 걱정거리가 분명하다. 월 5천 대 생산을 목표로 설비와 인력을 준비하고 있다. 혹시나 해서 공장 준공하자마자 재고 생산에 들어갔지만, 4천 대도 만들지 못했다. 이러다 한 방에 1만 대 이렇게 나와 버리면 골치가 아프다.
“패드변압기는 총 몇 대지?”
“970대입니다. 패드는 만들기 까다로우니까 주상이랑 같은 수로 보면 안 되겠죠?”
“그렇지. 패드는 3상이니까 1대당 주상 2대나 3대는 잡아야지. 이거 만들 물량이 더 늘어난 격이네. 허허.”
“공장장님, 사업이 쉽지가 않네요. 그쵸?”
나름 공장장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소화 불량에 걸릴지도 모르는 마당에 생산을 총괄 책임지는 공장장은 전신에 담이 잔뜩 걸렸을 것이니.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가만 앉아 있으면 누가 알아서 돈 갖다 주나? 남의 돈 벌어먹기가 그리 어려운 것이야.”
공장장이 대뜸 화를 낸다.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괜스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을 보니 생산 걱정에 스트레스 좀 쌓였나 보군.
“사장님, 벌써부터 나약한 생각 하면 안 돼. 아직 갈 길이 구만 리인데,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네. 힘들수록 더 힘을 내서 이겨 내야지. 자네가 사장인데, 사장이 축 처져 있으면 직원들이 기운이 나겠나? 걱정이 많겠지만, 사장은 늘 당당해야 해.”
“저 힘 하나도 안 빠졌습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힘 빠지면 됩니까? 저 그렇게 나약한 사람 아닙니다. 하하.”
“사장님, 내가 아무 문제없게 대안을 짜 오겠네. 이게 내년 농사 성패인데 어떻게든 문제없도록 할 테니까 걱정 말게.”
이거 딱 보니 자신에게 할 소리를 괜히 나한테 쏟아 내는 것이로군. 공장장이 저리 걱정할 정도면 곧 벌어질 물량전이 쉽지는 않겠네.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 내가 뚜벅뚜벅 걸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