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63)
063 영역을 넓혀라
“아이고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영성기업 박민창 부장이 찾아왔다.
이 먼 데까지 그냥은 안 왔을 테지. 자, 읊어 보시게.
“어서 오세요!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담배부터 한 대 피우시죠.”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과 통화하느라 피우지도 못한 담배에 서둘러 불을 붙였다. 그래, 이 맛이야. 이 좋은 걸 왜 끊을 생각을 했나 싶다.
“오는 길에 한 과장님 전화 받았는데 발주 엄청 하셨더라구요? 저희 며칠 밤새워야 할 듯싶네요. 하하.”
“대한전력 납품 시작했잖아요. 물량이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네요.”
“몇 대나 나왔나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놀라지 마세요. 이번 납기만 5,200대입니다.”
어? 안 놀라네. 저 경건한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표정은 뭔가.
“역시 많긴 하네요. 사장님 말씀이 진짜였네요. 사장님, 저 결심했습니다.”
정말 다들 왜 이러는 거야? 다들 입만 열면 절단 신공인가! 무슨 결심!
“결심요? 혹시 독립하시려구요?”
“네, 사장님께서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그거 믿고 한번 시작해 보려구요.”
“잘 생각하셨어요! 이왕 결심하신 거 빨리 하셨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시잖아요. 월급쟁이가 그런 결심 하는 거 쉽지 않잖아요.”
“돈은 제가 빌려 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고, 월 5천 대 분량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해 주세요. 제가 적극 도와 드릴게요.”
정말 잘됐다. 이제 내가 박 부장을 도울 차례다.
박 부장, 나보다 열 살 많지만 태양전기 시절 맘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정말 나를 많이 도와준 사람이었다. 최현아의 무리한 단가 인하 요구에도 나를 도와주겠다는 뜻으로 최대한 맞춰 줬을 정도다.
우리는 서로의 회사가 개떡 같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욕심 많은 창업주와 무능력하고 성질 더러운 딸이 뒤를 이어 사장 자리에 앉았다는 공통점이 서로를 강하게 이끌었다.
돈만 있다면 서로 ‘진짜 더러워서 회사 차리고 만다’를 입에 달고 다녔었다. 그렇게 함께 피웠던 담배가 몇 보루였나!
“안 그래도 자금 때문에 걱정 많아서 사장님 뵈러 왔는데, 어찌 알고 바로 말씀해 주시네요.”
“사업이야 돈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까! 하하. 한 달에 변압기 5천 대 만들 수 있는 규모로 세운다면 자금 얼마 정도 필요하십니까?”
“원자재 매입이 핵심이라 자본금이 많이 들어가긴 하죠. 초기 투자로 30억 정도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어휴 담배 삼켜 버릴 뻔했네. 30억 원이면 세네. 나랑 회사에서 얼마 정도를 투자해 줘야 하려나. 경영권 가질 생각은 없으니까 15억 원 투자하고 지분 49퍼센트 먹으면 되려나.
“그럼 제가 5억, 회사에서 10억 해서 15억 투자하겠습니다. 지분은 49프로 주시구요. 어떻습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더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돈 다 끌어모아도 5억밖에 안 돼서…….”
박 부장 그동안 정말 고민이 많았다 싶다. 회사 뛰쳐나와서 독립할 맘은 굴뚝같은데 돈이 발목을 잡고 있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맘을 먹고도 처자식 걱정에 안절부절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더 안타깝다.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마음껏 도와주고 싶다.
“그럼 15억 투자에 10억 원을 빌려 드리는 것으로 하죠. 회사 경영권은 부장님이 가지고 계셔야죠. 어때요? 해 보시겠습니까?”
담배 연기가 눈에 들어갔나? 40대 가장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꿈을 현실이 되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가히 눈물을 흘리게 할 일이다. 박민창 부장! 내가 당신의 문자님이 돼 주겠어!
영성기업 박민창 부장은 누가 울었냐고 시치미를 뗐다. 그래, 그게 가장의 가오이지.
그러고 보니 내 우는 모습 촬영한 덕준이 핸드폰을 빨리 압수수색 해야 할 텐데. 이거 두고두고 내 복숭아뼈를 잡을 것이라고!
“정말 염치없는 부탁 같아서 많이 망설였는데, 이렇게 선뜻 도와주신다고 하시니 이 은혜를 어지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도와주는 것 아닙니다. 우리 회사 잘되라고, 돈 많이 벌겠다고 이러는 것이니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대신 우리 회사 자재 공급 확실하게 책임져 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사장님 직원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사장님이 왜 제 직원입니까? 하하. 이제 부장님도 사장님 되셨으니 당당한 모습 보여 주세요!”
박 부장은 최대한 빨리 회사를 세우겠다고 다짐했고, 나 역시 이번 납품 대금 들어오면 투자금 마련해 줄 테니 한 달만 참으라고 약조했다. 나야 은혜 갚아서 좋고, 자재 수급 확실해지니, 이거 너무 남는 장사이다.
자재 직접 소화. 변압기 회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그려 왔던 이 구상을 본격적으로 실현할 때이다.
변압기에는 많은 자재가 들어간다.
철로 만든 코아와 외함, 코아크램프가 있고, 구리나 알루미늄으로 만든 시트와 선이 있다. 절연물로 광유와 레진처리가 된 절연지가 있고, 부싱도 있다.
창업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외함과 코아크램프는 자체 제작에 들어갔고, 시트와 선은 내 도움으로 독립할 박민창 부장, 아니 박민창 사장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아마 처음에는 수급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박 사장 역량이면 머지않아 우리 필요 물량을 충분히 공급할 것이라 믿는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절연지는 수입상을 통해 원단째로 들어와 사용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됐다. 광유와 부싱은 직접 만들기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니 포기.
가장 중요한 코아, 붕어빵의 앙꼬 같은 존재인 코아는 유재준 부장의 아이디어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며 순항 중이다.
그러나 아직 손볼 것이 많다. 우리가 아무리 싸게 만든다고 해도 코아 원단 가격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생산하는 코아 원단은 포스코 대리점을 통해 들여오면서 유통 단계를 2단계나 줄였다. 웬만한 양이 아니면 대리점이 취급도 안 해 주지만, 이제 자재 관리의 신으로 올라선 덕준이가 며칠 구워삶더니 결국 거래선을 뚫어냈다.
덕준이 덕분에 kg당 2,800원씩으로 타 업체 대비 100원씩 싸게 받고 있지만, 많이 낮추고 싶다. 저저익선 아니겠나.
“한 과장아. 대한전력 물량으로 따져 보면, 우리 연간 코아 사용량이 1,000톤은 넘어갈 것 같은데, 단가 어떻게 조정이 안 될까? 코아 단가만 낮춰도 자재비를 확 줄일 수 있는데 말이야.”
코아 가격이 판매가의 20퍼센트는 먹고 들어가니, kg당 단가를 100~200원만이라도 낮춘다면 마진이 1~2퍼센트 높아진다. 인건비는 오히려 높일 생각이니, 마진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코아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대리점 말고 포스코랑 직거래하는 방법이 있나 알아봤는데, 이 정도 규모는 어림도 없더라고. 결정적으로 직거래보다 대리점 거래가 더 싼 경우가 많아.”
“하여간 우리나라 유통은 요상한 데가 있구만.”
“왜, 핸드폰도 똑같잖아. 판매가 100만 원짜리가 보조금 붙고, 판매 장려금 붙고 이것저것 붙으면 대리점에서 헐값에 팔기도 하고 그러잖아. 내가 다른 대리점이랑 접촉해서 가격 낮출 수 있는지 알아볼게. 구워삶는 거야 내 주특기 아니겠어?”
“서로 적정한 마진 보면서 거래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낮출 여력이 충분하다 싶은 것은 낮추는 것이 맞겠지.”
“자잘하게 일이백 원이 아니라 크게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설마…… 금기의 그것을? 예전에 덕준이랑 술 마시면서 꺼낸 얘기가 있는데, 그것을?
중국이 세계 굴뚝을 자처하며 거의 모든 분야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지만, 코아, 그러니까 방향성전기강판은 여전히 우리나라와 일본이 짱을 먹고 있다. 중국이 툭하면 양국에 반덤핑 관세를 먹이는 것은 코아 시장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무섭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코아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과 거래하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 일본은 갈라파고스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이해 안 되는 짓들을 많이 한다. 내수 기업에 말도 안 되는 특혜들을 많이 주는데, 코아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베이비코아라고 해서 B급 취급하는 코아가 그것이다. 자국 기업에 싸게 주기 위해 B급이라고 포장할 뿐 품질은 양품과 차이가 없다. B급으로 풀리는 양이 워낙 많아서, 일본 내수용 코아 원단을 수입해 재미 보는 업체가 있을 정도이다.
거래선만 잘 트면 kg당 2천 원 초반대로 수급이 가능하니 혹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일제 코아는 포스코보다 비싸지만, 이름만 B급인 내수용 코아는 kg당 500~600원가량 싸다.
이 정도면 마진 5~6퍼센트가 올라가니, 혹하지 않으면 사업가가 아니지. 매출 1,000억에 5퍼센트면 50억이나 더 벌어들일 수 있다.
아주 혹하긴 한데, 그래도 일본은 아니다. 이건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에서 판단할 문제이다.
“일본이라…… 그것만큼 코아 단가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없긴 한데, 좀 그렇지 않아? 이게 머리로는 당연히 그게 낫겠다 싶어도, 가슴이 받아들이지를 않네.”
열렬한 항일 투사는 아니지만, 솔직히 일제를 쓰겠다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우리나라 토종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지.
“나도 좀 꺼려지긴 한데, 단가가 확 낮아지니까 말이야. 뭐 솔직히 포스코는 우리나라 기업인가? 외국인 지분이 절반이 넘는데 뭐. 포스코뿐이야? 돈 좀 번다는 회사들 보면 외인 지분 엄청나잖아.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회사냐 외국 회사냐 구분하기도 쉽지 않잖아?”
“그건 아니지. 외국인 지분 많다고 해도 회사나 공장이 우리나라에 있으면 우리나라에 세금 내고 월급 주고 우리나라 회사 아니겠냐? 그거랑 일본 회사에 돈 주는 것이랑은 다르지.”
설득될 뻔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입하는 것과 돈 벌겠다고 수입하는 것은 다르지.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외국에, 그것도 일본에 돈 보내지는 말자. 난 아직도 IMF 때 아버지가 힘겨워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덕준이도 나름 고민한 결과를 꺼낸 것이지만, 얘기하고도 썩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코아 단가 낮출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얘기하긴 했는데, 말하고 나서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야. 안 그래도 우리 지켜보는 사람 많을 텐데 소문나면 좋을 것도 없지.”
“우리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은 되지 말자.”
“그래. 우리 아랫도리가 친일에 익숙할지언정 돈 내고 보지는 않으니까.”
비유가 이상한데?
“코아는 포스코 대리점들하고 잘 협상해서 단돈 10원이라도 낮추는 걸로 하자고.”
“오케바리. 내가 확실하게 가격 떨궈 볼게. 지금 마진도 미친 마진인데, 코아 원단 가격까지 낮추면 장난 아니겠는데?”
“난 아직 배고프다. 일반 코아 말고 아몰퍼스 코아도 시작할 거야. 그것까지 직접 뛰어들어야 배가 좀 덜 고플 것 같어.”
“아휴. 사업을 너무 크게 키우는 것 아니야?”
“아몰퍼스 코아야 어차피 전량 수입이잖아? 괜히 중간 유통상들한테 돈 뜯기느니 우리가 원단 수입해서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어.”
미국에서 개발한 아몰퍼스 변압기는 일반 전기강판이 아니라 아몰퍼스 메탈로 코아를 사용하는데, 일반 변압기에 비해 효율이 훨씬 좋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지만, 효율이 높기 때문에 대한전력에서 발주를 늘리고 있는 품목이다.
앞으로 사용이 늘어날 것이 확실한 만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몰퍼스 코아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까지 나설 생각이다. 못해도 kg당 500원 이상이 남는 꿀사업이다. 내가 포기할 수 없지.
“음, 거기까지는 너무 전문적이라서 나는 솔직히 엄두가 안 나네. 원단 수입이야 포워더 하나 찾아서 받아 오면 되긴 할 텐데, 설비랑 인력은 와꾸도 안 나와.”
“오케이. 일단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자재는 하나씩 가져와야지. 자재 업체들한테 이제 그만 휘둘리자고.”
“예썰. 이거 대한전력 입찰 끝나면 한숨 돌릴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일이 더 많아지네.”
“덕준아. 고생 끝에 뭐 온다고?”
“롹!”
기다려라. 열심히 일한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