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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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62화>062 뺑이질
한 납기에 5,200대. 눈을 떼지 못하겠다.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사장님! 내가 정리해 봤거든?”
납품하면 60억 원이 들어오니까 이것저것 다 떼도 10억 넘게 떨어진다. 자동화 덕분에 마진이 말도 안 되게 좋아진 덕이다.
대신 아주 뺑이를 쳐야 한다. 그냥 뺑이가 아니다. 좆뺑이!
현재 인원으로는 한 달에 5천 대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물론 잔업하면 더 많이 뽑을 수 있지만, 잔업은 가급적 안 하고 싶다.
잠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을 일하면서 보낸다는 것은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일이다. 잔업 수당으로 통장은 두둑해지겠지만, 허무함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잔업이다.
출근할 때 자는 애 얼굴 보고, 퇴근해서 자는 애 얼굴 보고 나면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 것이다. 친구들이 술 마시자고 전화하는데, 야근 때문에 못 가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법이지.
그래서 정시 퇴근만큼은 이어 가고 싶었는데, 대한전력의 물량전 공세가 생각보다 거세다. 이번에 5,200대면, 다음 발주에는 얼마를 쏟아 내려나.
“사장님아, 우리 재고가 3,500대라고 퉁 치는데, 다 일반형이라서 나머지 3개 품목은 다 새로 만들어야 하고, 일반형 중에서도 용량별로 부족한 게 더러 있네. 일단 급한 대로 800대 서둘러 만들어야 해. 그나저나 이게 문제가 아닌데.”
“그렇지? 이거 다 빠지고 나면 재고 거의 없잖아? 다음 납기 때 또 이만큼 나와 버리면 진짜 우리는 죽어나는 거지.”
“일단 자재 발주 넉넉하게 주문할게. 지금 돈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자재 수급은 잘되겠지? 대한전력 물량 터질 때는 자재 확보가 제일 중요해. 발주 떨어지면 전국에 변압기 회사가 모두 생산하느라 미쳐 돌아가니까 자재 확실히 확보해야 해.”
“그건 내가 책임지고 해 두겠음요! 멱살을 잡아서라도 자재 갖다 놓게 해야지 뭐.”
이제 본게임에 들어섰으니 자재 확보도 중요한 싸움이다. 자재 업체는 영세한 곳들이 많아 물량 터지면 감당을 못하는 일이 많다.
영성기업 박민창 부장. 내가 그렇게 밀어준다고 독립해 보라고 했는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네.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는데 말이야. 자재 걱정도 안 하고 얼마나 좋나. 쩝쩝.
“그나저나 대한전력 진짜 무섭다야. 이렇게 초반 러시로 물량 털어 버리면 나중엔 뭐 할라고 그러지?”
“덕준아.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려 줄까?”
“왜 그래 또. 뭐 또 있어?”
“5,200대 나왔잖아? 저거 대한전력 시험 끝나면 성적서 다음 날 나오자마자 바로 납품 보내야 하거든?”
“그거야 뭐 트럭 불러서 보내면 되는 거잖아?”
“저거 다 포장해야 해.”
“시이발.”
그렇다. 대한전력 납품은 포장이 필수이다. 물량 뽑아내는 것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만, 이거 사람 죽이는 일이다.
※대한전력 변압기 구매 규격 : 변압기는 에어캡이나 발포지로 2회 이상 감아 포장하여야 한다. 단, 제조사와 용량 마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 공기업 돈을 함부로 먹을 생각이냐, 너 죽어 봐라 하는 뜻이다.
모두가 다 싫어한다. 납품하는 회사도, 대한전력 자재처에서 납품 받는 인력도. 대한전력 지역 본부 자재 보관처 한쪽에는 뜯어 낸 포장지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이 환경 파괴!
원통인 변압기는 높이가 120cm 내외이다. 이걸 포장하려면 허리를 굽혀 포장지로 2바퀴 돌려야 하는데, 머리가 핑 돈다. 테이프로 포장지 고정해 줘야 하니 또 돌고 나면 애기 때 먹은 이유식도 올라올 지경이다.
그 짓을 5,200번이나 해야 한다!
태양전기 시절 변압기 포장은 내 담당이었다. 명확하게 정해진 일 외에 모든 일을 다 내가 했어야 하니까. 생산은 검사에서 할 일이라고 버티고, 검사는 검사만 하겠다고 버티니, 그냥 내 일이 됐다. 니미럴.
3년간 누적 포장 대수가 만 대를 넘어설 지경에 달하니 하얗게 불태웠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정자 시절일 때 아버지가 먹은 저녁밥까지 토할 지경이었다.
대한전력이 주요 조합들과 매년 간담회를 갖지만, 포장 문제는 한 번도 의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사장들이야 포장을 안 해 봤으니, 이게 얼마나 불필요하고 사람 죽일 일인지 몰라서겠지. 아니, 관심도 없었겠지.
아무래도 대한전력 찾아가서 건의를 할 필요가 있겠다. 무리한 청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명분도 있다. 변압기 품질과 하등 관련도 없는 일에 시간 뺏길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대한전력 상생협력본부 이춘배 본부장. 이 사람을 설득하면 사람 죽이는 포장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적당한 타이밍에 들어갈 필요가 있겠군.
“사장님아. 5,200대면 전 직원이 다 달려들어도 1인당 백 대씩 포장해야 하네?”
“내가 변압기 포장 최고 달인이야. 노하우를 다 전수해 줄게.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하자. 자재 넉넉하게 준비해서 생산 한시라도 멈추지 않게 하자고.”
“오케바리. 이거 간만에 시원하게 발주 좀 하겠네. 외함은 어떻게 할까?”
급한 대로 시제품 만들어서 시험 보내긴 했지만, 이번 납품분부터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아직 생산 설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지도 못했고.
“어쩔 수 없지. 태진기업에다 발주 줘야지. 욱해도 꾹 참고 잘 달래야 한다. 외함집이 땡깡 부리면 답 없는 거 알지?”
“그 사장 놈이랑 통화하기 존나 싫은데. 아주 거만덩어리야.”
“과장님~ 존나 화이팅!”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장 가오 세우겠다고 바쁜 사람 부르는 것보다 내가 직접 가는 것이 낫다. 솔직히 일이야 직원들이 다 하지 않나?
“공장장님, 한 과장이 보낸 대한전력 발주 문자 보셨죠?”
“5,200대라. 이번 납품이야 문제없는데, 다음부터가 걱정이네. 아무래도 다음 주부터는 주 2회 정도씩이라도 야근을 해야겠어. 그렇다고 줄야근으로 회사에 부담 줄 수 없으니까 적절하게 잘 조절해 보겠네.”
“급여 부담이 커지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물량은 맞춰 놔야죠. 이거 연말까지 계속 이럴 것 같은데, 몇 달만 빡세게 고생하시죠. 연말에 회식 아주 쥑이게 하자구요.”
월급을 기본급으로만 만들어 놓다 보니, 잔업 수당 부담이 크긴 하다. 부담이 크다고 해서 직원들 인건비를 아까워할 생각은 없다. 직원이 잘돼야 회사가 잘되는 법이다.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로 더 많은 돈을 벌면 된다.
“그러고 보니까 이 달 말에 추석도 껴 있네? 이거 원 첩첩산중이네.”
“쉴 땐 확실히 쉬어야죠. 이번 납기 최대한 빨리 끝내고 바로 다음 납기 준비하자구요.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공장장에게 넣어 둬 넣어 둬 하는 포즈로 봉투 하나를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게 뭔가? 우하하 우하하키키.”
밀어 넣으면서 슬쩍 간지럽혔다. 가끔 동심의 세계에 빠져 장난치고 싶을 때가 있다. 물량 뽑아낼 걱정에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 한 공장장 얼굴을 보니 억지로라도 웃음을 심어 주고 싶더라.
“우리 회사 공식적으로 첫 잔업 아닙니까? 공장장님께서 눈치껏 치킨이라도 시켜서 돌려 주세요. 치킨은 항상 옳습니다. 대신 술은 안 됩니다. 이제 물량 많아져서 자칫 잘못하면 사고 날 수 있어요.”
“헉헉. 아이고 숨이 다 차네. 뭐 이런 걸 다. 사장님 고맙네. 난 콜라라도 사야겠구만, 하하.”
“유 부장님은 여전히 정신없죠?”
“지금 설비가 제일 급하잖아. 나도 요새 설계 뽑고 현장 도느라 정신이 없어서 도통 신경을 못 썼네. 사장님이 가서 힘 좀 실어 주게.”
“설계자도 빨리 뽑아야겠네요. 공장장님 현장 점검하기도 바쁜데 설계까지 정신없으시겠네요.”
“안 그래도 연락 오는 애 하나 있는데 슬쩍 물어볼까?”
나까지 직원이 66명이나 되는데, 여전히 부족하다.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설계 인원이 못해도 3명은 있어야 하고, 검사 직원도 5명으로는 어림도 없다. 현장이야 다다익선일 테고. 덕준이 일 분담할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회사가 갑자기 커져 버리니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그나마 돈 걱정이 끝난 것은 다행이긴 하다. 이래 가지고 언제 담배를 끓으려나.
담배 하나 물고 하늘을 보는데, 누가 9월 아니랄까 봐 청명하기 그지없다. 낙엽 지는 그날 대박이 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것이 맞아 가니 기분이 더없이 좋지만, 산 넘어 산이다.
띠룽띠룽 띠루루룽.
에잇. 담배 한 대 맘 편히 피우질 못하는구만.
“박 사장님! 어인 일이십니까?”
“사장님! 축하드려요!”
하여간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 불쑥 훅 들어오는데 뭐 있다니깐.
“무슨 축하 말씀입니까?”
“첫 발주 받으셨잖아요! 얼마나 받으셨어요?”
“하하. 5,200대나 나왔어요. 이거 죽겠습니다.”
“어머. 5,200대요? 한 달에 5천 대 만드신다는데 괜찮으세요?”
“네, 재고 많이 만들어 놔서 이번 납기는 문제없는데, 다음부터 죽었다 복창해야죠 뭐. 사장님은 몇 대 나왔어요?”
“글쎄요. 아직 조합에서 배정을 못해서요. 내일 결과 나오는데, 아마 업체당 700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야 한전에서 바로 배정을 받지만, 다른 업체들은 조합으로 받기 때문에 조합 내에서 분배를 거친 후에야 배정 결과를 알 수 있다.
물량 분배 과정은 조합 장난질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계산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사장 회사에 물량을 더 준다거나 친밀한 회사에 만들기 쉬운 용량을 몰아주는 장난질 말이다.
계속된 장난질과 높은 수수료로 불만이 높았던 회사들이 결국 조합을 깨 버렸고, 입찰에서도 압승을 해 버렸으니 쌤통이다.
“700대면 좀 바쁘긴 해도 할 만하시죠?”
“그거 때문에 전화드렸는데요. 아니다. 저 다음 주 월요일에 나주 내려가니까 그때 말씀드릴게요.”
이 절단 신공 좋아하는 한국인들아!
“아니, 운 다 띄어 놓고 커밍쑨이라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궁금해서 복장 터진 얘기 안 들어 보셨어요?”
“하하하. 중요한 얘기라 전화로 말씀드리기 그래서요.”
“아이고. 이거 중요한 얘기라고까지 하시면 더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호호. 저희 수출하잖아요? 근데 주문량이 많아서 저희가 다 처리하기 힘들거든요. 대한전력 것도 해야 하고 말이죠. 사장님이야 자동권선기도 있으니까 여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외주 의뢰를 하려구요.”
이건 환호성을 질러야 할지 비명을 질러야 할지 모르겠네. 일이 많아지는 것은 좋다만.
“저한테 수출로 나갈 변압기를 대신 만들어 달라는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사장님께서 자동권선기 빨리 파셨으면 이런 부탁 안 드려도 되잖아요! 대체 언제 파실 건가요?”
“하하. 저희도 죽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나저나 몇 대나 만들어야 합니까?”
“10월 말 납품 조건으로 800대를 받았는데, 늦어도 10월 둘째 주엔 실어 보내야 해요. 아무리 계산해도 안 되겠더라구요. 대한전력도 있고, 다른 수출 물량도 있고 말이죠. 딱 500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500대라. 껌이긴 한데, 대한전력 다음 발주가 어찌 될지 몰라서 걱정이긴 하네.
지금 상황에서는 돈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소화 불량 안 걸리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막대한 양을 문제없이 처리하고 나서 노하우가 생겼을 때 영역을 확장해야 할 텐데…….
그래도 언젠가 시작할 수출이니, 이렇게라도 연습한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도지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지름길이 안 보이면 직진하라? 그래 남자는 직진이지! 부딪혀 보지 뭐!
“뭐, 부탁인데 해 드려야죠. 조건은 다음 주에 오시면 그때 얘기하시죠.”
“다음 주 월요일에 강 사장님 공장 착공식 하는 것 아시죠?”
“그럼요. 그날 뵙겠습니다.”
몇 번 빨지도 못한 담배는 검지와 장지 사이에 끼여 운명을 다했다. 이제 좀 조용히 집중해서 제대로 한번 빨아 보자.
담배에 불을 붙임과 동시에 회사로 차가 한 대 들어오더니 여지없이 전화기가 울렸다. 이거 뭐 곽철용 쫄다구라도 있단 말이냐! 담배를 못 피우게 하네.
영성기업 박민창 부장!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신 것이죠? 나한테 독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다오. 내가 적극 밀어주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