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86)
086 3만 원
SPRD 양산 체제가 구축됐으니, 이 기쁜 소식을 대한전력에 배달해 줘야 한다. 그럼 나에게도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얼마나 좋은 소식일지 기대감에 말년 병장 말년 휴가 전날 같은 기분이다.
“지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사업총괄부사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니 뭐 말로만 해도 고마운데, 뭐 화분까지 보내셨어?”
대한전력 생산발전본부 이춘배 본부장이 결국 경영 간부, 1직급 인사에서 부사장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순수한 축하의 뜻으로 난 화분 하나 보냈더니,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사진을 찍어 보내 주더라. 이춘배 부사장 나름의 감사 뜻이다.
“앞으로 대망의 사장 자리까지 쭈욱 올라가시라고 응원하겠습니다.”
“강 사장님하고 멘트 짜셨습니까? 어찌 그리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좋아 죽는 고딩도 아니고, 한마디 한마디에 좋아 죽겠다는 기분이 듬뿍 묻어난다. 책상부터가 고급 마호가니 같던데, 얼마나 좋겠나.
이춘배 부사장도 기쁘겠지만, 형 동생 사이로 지낸다는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도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말단 직원일 때부터 알던 동생이 거대 공기업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면 사업을 떠나서 얼마나 좋겠나.
“부사장님. 기분 좋은 소식일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SPRD 양산 체제 구축에 성공했습니다. 전기연구원 성적서도 받았으니, 이제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이게 좋은 소식이 아니면 뭐가 좋은 소식이겠습니까? 하하. 제가 영업본부장한테 얘기해 둘 테니까 바로 공급 계약 체결하도록 하시죠. 법적으로 수의 계약해도 아무 문제없으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좋은 제품 생산하겠습니다.”
이춘배 부사장이 넌지시 얘기하기로는 5년짜리 프로젝트가 될 것이란다.
원래는 1급 발암 물질이 함유된 절연유가 들어간 변압기를 교체하는 프로젝트였는데, 부천 사고를 계기로 노후 변압기 교체 사업을 확 당긴 것이다. 기존 프로젝트 기간을 줄인 데다, SPRD를 시급히 장착하는 계획이 추가됐다.
“SPRD를 장착해서 이상이 없으면 계속 쓸 수 있으니까, SPRD 장착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장님께서 차질 없게 잘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절대 심려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260만 대짜리 주문이다. 그것도 독점 공급 계약으로 말이다.
이 달콤한 꿀을 위해 법인 신설도 끝냈고, 아쉬운 대로 양산 체제로 만들어 놨다. 분사한 새 법인 명의로 계약 체결하고 부지런히 꿀 빨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전력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 관련으로 논의를 하잔다.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달려갔다. 새 법인 ODI의 황미연 사장과 함께.
“안녕하십니까, 송 과장님. 날도 추운데 왜 밖에까지 나와 계셨습니까?”
“우리 회사 고위급 인사를 좌지우지하시는 분인데 이 정도 영접을 못하겠습니까? 하하.”
대한전력 배전계획과 송정길 과장이 로비까지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준다. 확연히 달라진 대접에 어깨에 뽕이 살짝 들어갔다.
부사장 인사 이후에 이어진 본부장급 인사에서도 이춘배 라인이 확실하게 힘을 받았다.
기존 영업본부장은 이춘배 부사장의 승진으로 공석이 된 상생발전본부장으로 영전했고, 영업본부장에는 배전계획처 윤준길 처장이 승진해 앉았다.
공교롭게 내 사업과 관련된 핵심 부서장들이 이춘배 라인으로 채워진 것이다. 물론, 각자의 역량과 능력, 기수 등이 고려된 것이겠지만, 신제품으로 체면을 살려 준 내 덕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깨에 과도한 뽕이 들어갔다.
“과장님께서는 언제 처장으로 승진하십니까?”
“아이고, 아직 멀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신제품 꾸준히 개발해 주시면 조금 당겨질 수도 있겠죠. 하하하.”
“부지런히 제품 개발에 힘쓰겠습니다. 옆에 이분은 황미연 사장입니다. 회사가 커져서 SPRD 제작 부서를 분사했습니다. 이 분께서 잘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배전계획과 송정길입니다.”
“황미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황 대리, 이제 황 사장이네. 황 사장의 역사적인 데뷔.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고개를 수그릴 필요도, 굽실거릴 필요도 없어요. 확실한 실력만 가지고 있으면, 잘 부탁한다는 예의상 하는 말도 필요가 없더라구요.
회의실에는 승진한 윤준길 본부장과 새로 부임한 배전계획처장이 자리해 있었다. 이젠 나도 이런 거물들과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네.
승진에 내 조력이 일부 가미됐음이 분명한 윤 본부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이건 이번 프로젝트 개요를 담은 유인물입니다. 나중에 천천히 한번 읽어 보세요. 저희가 또 회의 들어가야 해서 오늘은 간략하게 설명만 드릴게요. 총 5년간 추진하는 사업인데, SPRD 설치는 3년차에 끝납니다. 3년간 260만 대는 설치해야 하니까 수급이 어긋나지 않도록 신경 좀 써 주십시오.”
황 사장 허벅지를 살짝 찔렀다. 내가 대답해서는 안 될 자리이다.
난 그저 황 사장이 데뷔전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에 불과하니 말이다. 늘 그렇듯 똑 부러지게 해 보세요!
“네, 공급에 차질이 생기도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혹시 연간 발주량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유인물 세 번째 페이지 보시면 나와 있어요. 1년차에는 100만 대, 2년차에 100만 대, 3년차에 60만 대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계획이니까 바뀔 수도 있죠. 그래도 최대한 계획대로 해야겠죠?”
“기존 변압기 설치 작업과 함께 신규 변압기 장착도 바로 진행되는 겁니까?”
역시 황 사장. 난 그저 차나 마시면서 미소만 짓고 있으면 되겠네.
“그것도 바로 진행해야죠. 박 처장. 변압기 구매 규격 개정이랑 SPRD 제정은 어떻게 되고 있어?”
“네, 2월에 공청회 열고, 별문제가 없다면 3월에 확정합니다. 3월 확정이니까 4월 발주분부터 적용됩니다. 아니면 3월분부터 적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건 계획 나오는 것 보고 얘기하시죠.”
“들으셨죠? SPRD를 핵심 부품으로 등록해서 모든 변압기에 강제로 적용하니까, 역시 수급이 제일 문제일 것 같네요.”
“네, 현재는 월 3만 대 생산이 가능한데, 발주 상황에 따라 월 10만 대까지 늘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급에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음. 로즈마리 향 좋네. 회의실 풍경도 좋고. 호수가 보이니 마음도 뻥 뚫리네.
“지 사장님은 구경 온 사람 같습니다? 하하.”
“우리 황 사장님이 아주 능력자라 제가 입을 열 틈이 없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는 본부장 자리에 앉으니까 일이 어찌나 많은지, 원. 아주 죽겠습니다. 하하.”
“제가 보내 드린 화분 보시면서 마음을 달래시지요.”
“그러고 보니까 화분 받고 감사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조만간 제가 식사 자리 한번 만들 테니까 시간 좀 내 주시죠.”
“본부장님, 계약 건 진행하시죠.”
송 과장이 눈치껏 대화를 산에서 끌어내렸다. 자, 이제 260만 대짜리 계약 좀 해 봅시다.
“하하. 이거 또 말이 샜네. 그래요, 계약부터 마무리하죠. SPRD 특허 출원하셨죠? 아시겠지만, 구매 규격 제정되고 해당 규격과 성능만 충족되면 어떤 제품이라도 무방하니까, 새 변압기 적용되는 것에는 독점 계약이 없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기존 변압기 교체 작업이야 대한전력과 공급 계약을 맺으니까 260만 대가 확정이다. 그러나 매년 새로 발주하는 변압기 35만 대는 변압기 제조사가 제품을 선정한다.
대한전력은 핵심 부품으로 등록해 우리가 살 변압기는 반드시 SPRD를 달아야 하며, 그 SPRD는 이런이런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만 명시할 뿐이다.
다른 회사들이 따라 만들기 전에 영업에 힘써야 한다. 그 정도야 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지.
“기존 변압기에 장착하는 계약은 SPRD 개당 단가로 3만 원을 책정했는데, 괜찮으시죠? 저희 나름대로 원가 분석 자료 검토하고, 3년간 원가 상승까지 감안해서 서로 기분 좋을 수준으로 정했는데, 저희만 좋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3만 원! 우리가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 3만 원씩 260만 개면 780억 원! 못해도 절반은 남는 개꿀이잖아! 표정 관리, 표정 관리!
“네, 그 정도면 저희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만족스럽습니다.”
황 사장, 저 사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얘기하는 것 좀 봐. 어휴. 아파트 얘기할 때랑 너무 다르잖아?
“계약은 SPRD 구매 규격 제정되면 그때 바로 하시는 걸로 하고, 향후에는 실무진하고 얘기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최대한 서두를 테니까 사장님께서도 속도 좀 내 주세요. 사업 시작부터 차질을 빚으면 안 되니까 말이죠.”
780억 원짜리 회의가 1시간도 안 걸려서 끝났다.
사기업이었다면, 못해도 한 달 전부터 비싼 술집 투어하고 선물 보내고 별짓을 다 했을 일이다. 역시 공기업! 빛이 있어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하는 대한전력!
덕준이랑 왔다면 건물 나오자마자 기쁜 마음에 담배부터 꺼냈을 것이다. 비흡연자와 오니까 이게 불편하네. 이참에 나도 끓을까?
“대리님, 아니, 사장님. 최소 연매출 300억짜리 회사를 맡은 기분이 어때요?”
“아휴, 떨려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할 말 다 해 놓고 엄살은.
“돈도 좋지만, 그 돈 벌려면 부지런히 물건 뽑아내야 하는 것 아시죠? 1년차에 100만 대 납품이니까 우리 예상보다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겠습니다.”
“네, 부지런히 해야죠. 공장을 빨리 세워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하하. 저도 우리 공장 세우기 전에 몇 달을 전전긍긍했어요. 뭐 저도 경험이 일천하지만, 그런 일 잘 처리하는 것이 사장 역할 같더라구요. 열심히 해 보세요.”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추운데 어서 차에 타시죠.”
그런 말은 돈 벌고 나서 하세요. 돈 벌고 나서도 마음속으로만.
기대했던 따뜻한 연말이다. 회사는 내년에 지금보다 몇 배 더 커질 것이다. 중소 제조업으로는 유례없이 높은 마진으로 내 수입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돈 벌어서 회사 자본금 늘리고 투자하는 데 다 쓰겠지만, 몇 년만 버티면 된다. 확실한 투자에는 돈을 아껴서는 안 되는 법이지.
직원들에게도 더없이 따뜻한 연말이다. 든든한 성과급으로 내년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이들은 단열 처리 잘된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이다.
아파트 18채를 사서 가족이 있는 직원들에게 전세 5천만 원에 살게 해 줬다. 혁신도시에 자리한 전자 제품 양판점과 가구점이 때아닌 특수를 맞이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하다니! 짜릿하다.
다 잘 풀리고 있는데, 공장장이 이상한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공장장님. 회사에서 해 주겠다는데 왜 마다합니까?”
“아휴. 난 됐어. 혼자 사는데 뭐 한다고 그 넓은 아파트에 살아? 지금 사는 빌라가 나한테 딱 맞아. 아늑하고, 회사 가깝고. 동네에 아는 할망구도 많고 말이야.”
22평짜리 빌라에서 나와 33평짜리 아파트로 들어가라니까 필요 없다고 고집이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공장장에게만큼은 대접을 섭섭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저렇게 나오니 화가 날 지경이었다.
“공장장님은 우리 회사 부사장이에요. 회사가 부사장 가오 좀 살려 주겠다는데 왜 고집을 부리세요? 아니 차도 싫다고 하고, 아파트도 싫다고 하고.”
“차는 하나 해 줘. 허허. 똥차라 그런지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오네.”
“그건 당연히 해 드리는 거구요. 아파트 들어가서 사시라구요! 다른 직원들은 좋다고 저리 춤을 추는데, 왜 그러세요?”
“아이, 됐다니까. 혼자 사는 노인네가 아파트가 무슨 필요가 있어. 어차피 직원들한테 다 돌아가지도 못하잖아? 다른 직원들 살라고 해. 난 영산포에서 할망구들 만나면서 살라니까. 얘기했으니까 더 이상 그 얘긴 꺼내지 말라고. 난 일하러 가네.”
어휴. 저 고집불통 노인네. 당장 제네시스 하나 뽑아 주고, 내년에 억대 연봉 줄 테니까 어디 한번 고생 좀 해 보셔.
이제 연말 회식 거하게 하면서 마나 좀 채우다 내년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가면 되겠다.
참! 소개팅!
최대근 사장한테서 조카 연락처까지 받았는데, 아직 연락을 못했다.
이거 큰 실례를 했네. 그 조카는 속으로 얼마나 욕을 하고 있으려나. 늦었지만, 크리스마스도 코앞이고 하니까 연락하면 용서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