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80
80화 ep27. 휴식, 이 또한 여정 중 하나 (1)
평소와 같은 오늘을 살던 베이스캠프의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 거다. 용이 날아다니고, 순식간에 산이 녹아 거대한 문자가 새겨지고…….
내가 이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대체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지.
용이 떠나고, 그 숨결의 열기가 이제야 막 사라지고 다시 공기가 차가워질 때쯤, 마을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누구일까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경비대장과 그 부하들……. 인 줄 알았는데,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일부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복장도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에는 간단한 보호복이나 군복 등을 착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상황이 발생해도 곤봉이나 전기 충격기, 테이저건을 주 무장으로 사용하고는 했지.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총이네.”
그들은 돌격소총을 들고,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진 외갑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방화복으로 보이는 전신 보호구까지 입고 있었는데, 키호테가 뿜어낸 불꽃의 숨결을 목격한 게 분명했다.
경비대장은 천천히 다가오다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아, 강선후 님. 복귀하셨습니까…….”
“네. 방금 돌아왔어요.”
“어, 그렇다면 아까 전 용은?”
나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키호테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 사귄 친구요.”
“……네?”
리리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얘가 뭘 알아듣고 웃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왜요?”
“상부에 보고…… 해야 해서.”
“죄송합니다.”
OWIC의 상부에 용이니, 천공섬이니 기사니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경비대장은 내게 딱히 보고를 강요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이제 안전한 겁니까?”
“애초에 위험한 건 없었어요. 미리 말씀드릴 수 있었다면 했을 텐데, 제가 좀 실례를 하긴 했네요.”
경비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계에서는 위험 유무를 판단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원래 많이 일어납니다. 이 정도는 평범……. 아니, 생각해 보니까 평범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문제는 아닙니다.”
경비대장은 정지훈 쪽을 바라보았다. 정지훈은 평소에 보여 주던 차분한 성격답지 못하게 조금은 멍한 상태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경비대장에게 다가갔다.
“통합분석실 권한으로 최종 경보 해제 판단을 내리겠습니다. 해당 절차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경비대장은 서쪽 바위산에 새겨진 거대한 마법진을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다가 한숨을 조금 내쉬며 복귀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지훈 씨.”
“예.”
“또 사람들 몰려와서 난리 나는 거 아닐까요? 갑자기 조금 무서워지는데.”
차소희가 어이가 털리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넌 용보다 그게 더 무서워?”
“어.”
“진짜 미친놈 아냐?”
정지훈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소한 오늘, 어쩌면 내일까지는 그럴 리 없을 겁니다.”
“그래요?”
“최고 등급의 경보가 발령되면, 그 해제 전까지는 차원문이 봉쇄됩니다. 대피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절차상 바로 해제되지도 않으니까요.”
그럼 최소한 숨을 돌릴 수는 있겠네.
차소희는 갑자기 눈빛을 반짝거렸다.
“……그, 지훈 씨라고 했나요? OWIC 직원이신 거죠?”
“네. 선후 씨 친구분이시군요. 몇 번 뵌 거 같습니다.”
“그, 차원문이 봉쇄가 되면요……. 여기에서 안 나가도 된다는 의미죠?”
“대피는 하셔야…….”
“대피를 못 했다는 핑계를 대면, 안 나가도 된다는 의미잖아?”
정지훈은 그 말의 뜻을 모르겠다는 듯, 고민에 빠졌다.
“……선후야?”
“왜.”
“나 대피 못 했어.”
……?
“나 대피 못 하고, 네 오두막에서 오늘 밤 오들오들 떨면서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린 거야. 잠깐, 라임 쩔었다.”
“미쳤어?”
“회사 안 갈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놓치라고! 안 됨! 이건 양보 못 함!”
“…….”
내 입장에서야 안 될 거 없다. 차소희가 내 오두막에서 밤새 술 먹고 논 게 하루이틀도 아니니까.
“알아서 해.”
“오예!”
그 대화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진서연이 정지훈을 보면서 말했다.
“지훈아?”
“네. 누님.”
“나도 오늘 밤 대피 못 했어. 나는 여관 지하실에 있었던 거야.”
“……누님이 그러실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요. 누님은 월차도 열 개 넘게 남아 있지 않으십니까? 휴일도 반납하시면서.”
“얘가 뭘 모르네. 월차 올리면 그건 오늘 쉬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고 웃는다.
“나는 오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니까.”
뭐…….
내 입장에서는 안 좋을 거 하나도 없다.
“대신에 나 짐하고 이것저것 정리할 거 있으니까 지금은 안 돼요.”
“이따 저녁에 볼래요? 제가 좋은 술 하나……. 아, 지구로 못 가지. 쓰읍.”
“여관에서 사면 돼요! 이따 저녁에 봐!”
그렇게 말하며 베이스캠프로 달려가는 차소희.
“……제발 여관에서 묵던 회사 사람한테 걸려서 꿀밤 몇 대 맞았으면 좋겠다.”
“그럼, 저희도 저녁에 보겠습니다.”
정지훈은 꾸벅 인사를 했고, 나도 화답했다.
그러고는 가방을 들고 오두막 안으로 리리와 함께 들어갔다.
리리는 우선 씻는다고 옹달샘으로 달려갔다. 나는 우선 빨랫감을 좀 정리하고, 사용한 탐험 도구들을 다시 꺼내서 진열했다.
가방에 들어가는 게 많으니 정리할 때 시간이 더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원래 있었던 것들은 빠르게 제 위치로 찾아간다. 머지않아 다시 챙겨 갈 것들이니까.
이번에 얻은 것들은 조금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록관의 반지를 꺼내서, 거기에 저장되어 있었던 룬 문자를 책상 위로 꺼내 본다.
결계의 룬 문자.
태양탑에서 얻는 바로 그것이다. 이 문자의 위력은 기생체를 사냥하면서 확실하게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계도 조금 느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 룬 문자는 크기에 비례하여 효과가 강해진다.
즉, 어느 정도 크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탐험에서 예측 불가능한 결과는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쪽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실험을 조금 더 해 봐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반지 안에 저장했다.
그리고, 다음 룬 문자.
“흠…….”
이건 확실히 실험을 해 봐야 한다. 골렘이나 리빙 메탈을 만들어 내는 룬과 비슷한 형태. 딱 봐도 특정한 변형이 가해진, 파생 문자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의 효과는, 죽은 생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
리리의 말마따나 강령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태양탑에서 만났던 별의 자손들이 끊임없이 기도를 외고 있다는 걸 기억했다.
뭔가, 특정 행동을 명령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
복잡한 소환수 역할은 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우선 킵. 나중에 실험해 봐야지 다시 반지 안에 넣기로 했다.
다음에는 하얀 보석을 꺼내서 손에 쥔다.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조금 크고 두꺼운 책으로 변한다.
예언자의 서.
“…….”
이건 진짜로 많은 걸 실험해 봐야 한다.
아는 거라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 권의 일지와 같은 스타일의 표지 디자인이라는 거다.
……왜?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시간은 충분하니까.
그리고……. 이거. 태양의 돌.
이건 연금술 재료. 확실한 건, 고대의 인물이 이 물건을 가지고 태양신이 되기 위해 탑을 쌓았다는 거다.
“그건 대체 무슨 물건이야? 뭔가 이상한 힘이 느껴져.”
마침 리리가 들어왔다. 그 머리가 흠뻑 젖어서 미역처럼 되어 있는 걸 보니 순간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반짝반짝해졌네.”
“그런 탐험을 갔다 왔는데 얼룩덜룩한 건 어쩔 수 없었잖아?”
그 말이 맞다. 나는 오히려 그런 거친 여정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부분을 더 인정하고 있었다.
리리는 다시 내가 들고 있는 태양의 돌을 만져 보았다.
“……따뜻해. 뭔가, 큰 힘이 이 안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느껴져?”
“잘 모르겠지만……. 온화한 깊이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나도 저 말에 정확히 동의한다.
어떤 거대한 잠재력이, 완벽하게 통제된 채 이 안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또 약간의 추측을 더해 보는 거다.
“고대인은 이 돌을 몸에 지니고 탑을 쌓았다고 했잖아?”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되기 위해서. 그러다 신에게 벌을 받아 땅 속으로 잠겨 버린 거야.”
“왜 굳이 벌을 줬을까?”
“응? 신성 모독이니까.”
“신성 모독하는 사람들은 많아. 근데 왜, 굳이 그 거대한 탑을 땅 밑으로 잠기게 했을까?”
“그야…….”
“그런 수고를 들어야 할 이유가 고작 그뿐이었을까?”
리리도 내 의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글쎄. 신이 지상에 직접 힘을 가하는 경우는 잘 없긴 해.”
내 생각은 이렇다.
“그 남자가, 신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어서가 아닐까?”
“…….”
“태양의 돌을 손에 쥐고 탑을 쌓았던 남자는, 신이 우려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실제로 있었던 거야.”
태양신들은 그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막았다.
막았다는 것은 막지 않아서는 안 될 이유가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추측이지만.”
“그럴 듯해.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 리리.
“용은 용사의 방해자가 아니었고, 오만한 태양탑의 교훈은 사실 대의를 지킨 영웅들의 이야기였고, 흑성은 무조건적인 악이 아니었어.”
리리는 그 기억을 회상하며 웃었다.
다행이라고 여겼다. 조금은 고생이었던 그 기억이, 리리에게 그다지 부정적이진 않았다는 의미가 되었으니까.
“전승은 항상 왜곡돼. 어쩌면 진실을 완전히 감출 정도로.”
리리의 말이 맞았다.
“당신의 이야기도 그럴 거야.”
“내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는 세상에 남을 테니까.”
“……벌써 그럴까?”
“성좌와 불멸자의 기억에 남은 인간. 이야기가 안 될 리가 없잖아?”
상상하자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짐 정리를 끝냈다.
리리는 그런 나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제 뭐 할 거야?’라고 묻는 것 같았다.
확실히 해야 할 게 있지.
“쉬자.”
리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푹, 침대로 뛰어들었다.
* * *
“……선후!”
눈을 떴다. 자느라 누군가 다가오는 걸 느끼지 못한 건 아마 귀환하고 처음이었다.
그만큼 지쳤던 걸까?
아니면 이 공간이 내 긴장을 완전히 풀어 주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으음…….”
반대쪽 침대에서 리리가 뒤척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 다 뜨지 못한 눈으로 문으로 다가가 열었다.
“자고 있었어?”
“……뭐야?”
차소희가 거대한 술병을 흔들었다.
아니……. 진짜 거대한 술병.
“야, 이거 대박이야. 미쳤어.”
“뭔데?”
“술.”
“……아니, 그건 알고 있는데, 왜 대박이야? 왜 미쳤어?”
“오백만 원.”
“……?”
차소희의 목소리는 굉장히 진지했다.
보아하니 뚜껑도 열리지 않았다. 분명 방금 사 왔다는 얘기인데…….
“여관?”
차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는 이상한 걸 많이 팔긴 한다. 분명 고가의 술도 있을 게 분명하지.
근데, 누구 돈으로?
그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었다.
그 뒤에서 정지훈이 나타났으니까.
“이렇게 다시 뵙네요.”
“……서연 씨는 그렇다고 쳐도, 지훈 씨까지 자체 휴가를 쓸 줄은 몰랐는데요.”
“자체 휴가라뇨. 업무 중입니다.”
그러면서 술병을 바라보았다.
“선후 씨를 접대하는 지출로는 허용 범위 내입니다. 법인 지출이죠.”
“대박! 미쳤! 다! 나 이런 술 처음 먹어 봐!”
정지훈이 딱딱하게 일만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살짝 반성했다.
때아닌 술판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모닥불을 둘러앉았다.
한쪽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서지아는 힐끗, 오두막 안에서 눈만 내밀고 있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쟤는?”
리리는 아직도 지구의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으면 조금 무서워한다.
나는 손짓으로 리리를 불렀다.
“뭔가……. 모험을 하는 거 같아요.”
진서연이 눈을 반짝이며 별을 바라보았다.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자리를 읽을 순 없지만, 이번에 승천한 성좌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 찾아낼 수 있었다.
고개를 내려 진서연을 바라보았다.
이들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해 줘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숨겨야 할 거 있나?
진서연은 메모장을 들고 있지도, 녹음기를 들고 오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이 대화는 일이 아니었다. 연구를 위해서도, 보고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키호테는 어디로 간 걸까?”
어느새 자리에 앉아 컵을 든 리리가 모닥불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서지아도, 나도, 진서연도, 정지훈도, 그리고 차소희까지.
우리는 각자의 표정으로 리리를 바라보았다.
“얘…… 한국어 한 거야?”
“……언제부터 할 수 있었어?”
리리는 조금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비밀.”
리리는 간혹 나조차 조금 당황스러운 장난을 칠 줄 알았다.
이 나이에 열여섯 개의 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내가 너무 얕본 모양인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얘기해야지. 용과 천공의 기사, 성좌, 성녀.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여유로운 휴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생각하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다.
여유도 여정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