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50
149
날카로운 동공 속에 들끓고 있는 건 분명 경계심이었다.
가느스름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는 고양이는 세라가 어떤 더러운 수를 써서 지옥을 탈출했다고 굳게 믿는 얼굴이었다.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자신이 번번이 환생에 실패하는 일은 지옥에서는 거의 기정사실화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다.
“내가 언제까지고 지옥 바닥이나 뒹굴고 있을 줄 알았어?”
흥, 코웃음을 쳐 준 세라가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고양이의 의심과는 달리 그녀는 누구보다 떳떳했다. 무려 신과의 거래를 이행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지상에 머무는 상태다. 심지어 형량도 제법 많이 깎았다.
“적당한 기회가 와서 잡았을 뿐이야.”
그러니 꿀릴 건 하나도 없었다.
비록 함께 욕하던 신의 발밑에 납작 엎드려 시키는 일이나 하는 처지가 되었어도 말이다.
“엄한 사람 의심할 시간에, 왜 그런 꼬락서니로 이런 곳에 있는지나 설명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걸-.”
도리어 으름장을 놓은 세라가 실로 오랜만에 상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체첸.”
세라는 아직도 욱신거리는 눈가를 손끝으로 눌렀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수천 갈래로 갈라져 그녀의 삶을 비춘 별의 조각이 아직도 과열된 상태였다.
마왕 체첸.
생전에 유령의 성 같다는 이유로 멀쩡한 남의 성을 점령한 뒤, 제 취향의 잘생기고 예쁜 남자들을 납치해 하렘을 만들고 그들을 되찾으러 온 용사들을 죽여 꼬챙이에 꽂아 전시한 미친년이었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세라와 함께 가장 뜨거운 지옥의 밑바닥을 굴러다닌 동기이자,
“형제여, 너는 오래전에 환생한 게 아니었어?”
의형제다.
세라 로젠바움, 마왕 체첸, 폭군 라그하임.
이 셋은 지옥에서도 아주 유명한 죄수들이었다.
가장 사악한 영혼만 떨어진다는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져, 누구보다 가혹한 불지옥을 겪은 자들.
이러다 환생하기 전에 영혼이 재가 되어 흩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뜨거운 지옥 불은 다시 생각하기도 진저리 처질 만큼 좆같은 기억이었지만, 그래도 함께 구르는 놈들이 있어서 그나마 견딜 만은 했다.
날 때부터 삐딱한 심보의 소유자들은 서로를 보며 혼자만 망한 건 아니라는 사실로 큰 위안을 얻었다. 같이 고통받는 입장이 되자 살아서는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동료 의식이 마구 샘솟았다.
‘야, 우리 의형제나 맺을까?’
그 미약한 마음이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진 관계로 발전한 건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라그하임의 제안 때문이었다. 지옥 불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악당들은 충동적으로 의형제를 맺었다. 거창한 의식 같은 건 없었고, 그냥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야, 너’에서 ‘형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근데 누가 첫째야?’
‘당연히 나지!’
‘당연히 나지!’
그 뒤로는 늘 유치한 서열 싸움의 연속이었지만 어쨌든 함께여서 좋았던 놈들이다.
체첸은 영원히 지옥에서 썩을 것 같던 형제들 중 가장 먼저 환생한 자였다.
재판이 열리는 날이라며 밑바닥을 나선 게 마지막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체첸의 빈자리를, 라그하임과 자신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자신들을 잊고, 지옥도 잊고,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어찌나 배가 아프던지.
작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아쉽진 않았다.
어차피 환생할 때 불의 고리를 지나면 다 잊게 될 인연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환생은 순환과 동시에 완벽한 죽음이다.
마침내 죗값을 치른 영혼이 전생의 죄와 기억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홀가분하게 삶의 바다로 투신하는 일이다.
“새 삶을 살아야 할 네가 왜 아직도 전생을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환생했다던 체첸은 여전히 세라를 기억하고 있었다.
신이 개입하지 않고서야 결코 일어날 리 없는 기적이다.
게다가 이 넓고 넓은 대륙, 많고 많은 길드, 널리고 깔린 사람들 중에 스노우의 곁을 차지하다니.
혹시, 체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과 거래라도 한 걸까?
“설마……. 너도, 나랑 같은 처지인 거야? 시한부?”
그럴싸한 결론에 도달한 세라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여기서 말하는 같은 처지란, ‘신에게 환생을 빌미로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한부 인생’이냐는 뜻이었다.
아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고 일부러 ‘신’이라는 중요한 단어는 입에 담지 않았다.
“…….”
체첸의 얼굴에 못마땅한 빛이 서렸다.
홱, 고개를 돌린 고양이가 미약하게 끄덕였다.
“정말?”
세라는 내심 놀랐다. 체첸은 셋 중에서도 가장 신을 증오하던 자였다.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그녀는 앞에서만 큰소리치고 재판에 가서는 제발 환생시켜 달라고 쩔쩔매는 세라나 라그하임과는 달리, 한 번도 신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매달린 적이 없었다.
“그렇게 대쪽 같더니. 결국 너도 굴복하고 말았구나.”
“…….”
굴복이라는 단어가 그 고고한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 고양이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가르릉. 위협적으로 목울음을 낸 체첸이 꼬리를 바짝 세우며 항의했다.
“난 너랑 달라. 굴복한 게 아니라 끌려온 거라고!”
“하이고, 그러셔요.”
세라는 네가 퍽이나 무고하겠다며 그녀를 놀렸다.
서로가 아군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경계심을 일부 누그러뜨렸다.
역시, 이 세상에 우연 따윈 없다.
그 앙큼한 신이 이런 식으로 안배를 해 놓은 모양이었다.
“아씨, 깜짝이야. 그런 줄도 모르고 괜히 힘만 뺐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세라가 창가에 놓은 의자 하나를 빼 그 위에 철퍼덕 앉았다. 안타레스고 나발이고, 지금은 흥분으로 과열된 머리와 몸을 식히고 싶었다.
체첸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창틀로 뛰어올라 세라와 나란히 바깥을 바라보았다.
지친 낯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세라가 쉬는 김에 소소한 궁금증 하나를 입에 올렸다.
“근데 왜 고양이야?”
“난들 아냐. 살린 사람 마음이지.”
“그건 그래.”
세라가 체첸의 말을 두둔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안심했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체첸이 환생해서 고양이가 된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실현되었다면, 아마 세라는 삶의 의욕을 상당수 잃어버렸을 것이다.
“라그하임은?”
꼬리를 요리조리 흔들던 체첸이 지나가는 투로 또 다른 형제의 근황을 물었다.
“걔는 진짜 환생했어. 너 다음에.”
“그럼, 너 혼자 남았던 거야?”
“그래.”
“심심했겠네.”
“뭐, 그다지.”
“…….”
“…….”
잘 이어 나가는 듯싶었던 대화는 금세 끊어졌다.
둘은 사이좋게 새파란 하늘 위로 미끄러지는 구름을 올려다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으나 둘 사이의 공기는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진 채였다.
“체첸.”
그러다 세라가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여전히 구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그녀가 성가셔 죽겠다는 투로 말했다.
“나한테 네 ‘매혹’은 통하지 않는다니까?”
그 잠깐 사이, 체첸은 아퀼라에게 한 것처럼 세라에게도 제힘을 사용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실패했고,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음을 들켰다.
“알아. 혹시나 해서 그냥 해 본 거야.”
하지만 체첸도, 세라도,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
“그럼 안 들어줄 거잖아.”
“하라고.”
그보다는 뭐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지가 궁금했다.
“네가, 널 보낸 그자한테 부탁해서-.”
툭, 툭. 규칙적으로 꼬리를 흔들던 체첸이 무심을 가장하여 간절한 바람이 담긴 부탁을 끝맺었다.
“……쟤, 살려 주면 안 돼?”
“……?”
이 방에서 둘을 제외하고 ‘쟤’라고 부를 만한 존재라곤 하나뿐이다.
“스노우, 말하는 거야?”
창밖에서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세라가 고이 잠들어 있는 스노우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죽지도 않았고,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인 남자를 신에게 살려 달라 부탁해 달라는 게 이상했다.
혹시, 체첸은 잠들어 깨어나지 않는 스노우가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 여태 잘해 왔잖아. 시키는 대로 잘. 정보도 제때 제공하고, 사람도 군말 없이 빼돌렸어. 그러니까 쟤 하나 정도는 빼달라고 전해줄 수 있지 않아?”
하지만 저 진지한 얼굴로 보건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스노우를 살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뭔가 대화의 핀트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일단은 체첸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자가 네 말은 들어줄 테니까.”
놀랍게도 체첸은 세라와 신이 제법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하는 듯했다.
금시초문이었던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세라가 얼른 그 말을 부인했다.
“……아닌데? 전혀 아닌데?”
그게 부탁을 들어주기 싫어 핑계를 대는 것으로 보였던 걸까.
불만스럽게 코를 움찔거린 체첸이 사납게 갸르릉거렸다.
“야, 진짜 쩨쩨하게!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어떤 오해를 어떻게 했는지 체첸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진짜 아니라니까? 너 대체 무슨 근거로 그 작자가 내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답답해진 세라의 언성이 슬슬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네 말이면 다 들어주지!”
체첸도 못지않게 언성을 높였다.
“아니거든!”
“맞거든!”
“아니야!”
“맞아!”
서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기는 유치한 싸움이 점점 과열되었다.
세라는 그럴수록 체첸과의 대화가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움도 잠시 서로를 ‘왜 저래?’라는 눈으로 노려보던 세라와 체첸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근거를 상대의 면전에 동시에 들이밀었다.
“신이 언제 우리 부탁 들어주는 거 봤냐?!”
“안타레스 놈들은 너한테 완전히 미쳐 있잖아!”
서로 하고 싶은 말만 소리치던 둘이 흠칫 멈춰 선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듯 당황한 두 지옥 동기는 한동안 멍청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신……?”
“안타레스……?”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배후의 이름을 낯설다는 듯이 읊조렸다.
그건 둘이 겪는 혼란에 확실한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해 주었다.
“너, 안타레스가 부활시킨 게 아니었어?”
“너, 신이랑 거래를 한 게 아니었어?”
이를테면, 대화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는 간담 서늘한 진실 같은 것.
“…….”
“…….”
아까와는 사뭇 다른,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체첸은 털을 바짝 세운 채 얼어붙었다.
“아니, 널, 보낸, 사람이, 신? 신이라고? 왜? 그 작자가, 왜? 왜 너를?”
완전히 패닉에 빠진 고양이는 고장 난 것처럼 더듬거리기만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세라의 눈 밑 살이 파르르 떨렸다.
무심코 넘긴 체첸과의 대화를 복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 지옥 동기는 환생을 한 것도 아니고, 신과의 거래로 지상에 잠시 올라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세라의 배후에 안타레스가 있다고 믿고 경계를 풀었다.
그럼 그녀가 말했던 정보도 제때 빼 주고, 시키는 대로 일을 한 그자라는 건…….
“아아-.”
꼬여 있던 매듭을 풀어낸 세라의 입에서 절로 깨달음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찔린 것처럼 체첸의 몸이 움찔 튀었다.
숨마저 멈춘 고양이는 시선만 또르륵, 움직여 세라의 눈치만 보다가.
“……!”
불시에 문을 향해 튀어 나갔다.
하지만.
뀨……?
착지한 바닥에 길게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까망이를 조우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야아아앙!”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른 체첸의 몸이 천장에 닿을 기세로 펄쩍 튀어 올랐다.
공중에서 몸서리치며 한 바퀴를 돈 그녀가 요란스럽게 땅에 착지했다.
앉아.
그러기가 무섭게 공기를 가르는 음산한 바람이 체첸의 곁을 스쳤다.
그 서늘함에 등골이 쭈뼛 서며 부르르 몸이 떨린다. 기분 나쁜 차가움을 이기지 못한 고양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을 때-.
“……냐앙?!”
체첸은 세라의 앞에 얌전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채였다.
‘내, 내가 대체 언제 여기에……?’
당황한 짐승의 눈동자가 부산스럽게 주변을 훑었다.
“아아-. 알겠다. 이제야 알겠네-.”
턱을 괸 채 생각에 빠진 세라가 연신 알겠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무방비하게 방치된 고양이를 감시하듯, 체첸의 발치로 방금 보고 놀란 검은 뱀이 스르륵 기어가고 있었다.
“아주 딱딱 들어맞아.”
하, 찬웃음을 지은 세라의 두 눈이 희번득 빛났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정답을 찾아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스노우를 찾는 방문객이 휴가 이후로 뚝 끊어진 이유.
그건 에녹이 세운 가설이 틀렸다거나, 안타레스의 목적을 잘못 읽어 낸 게 아니었다.
“쥐새끼가 아니라 고양이 새끼가 숨어 있었구나?”
그 곁에 이미, 복병을 숨겨 두었기 때문이지.
창밖을 노려보던 살벌한 시선이 체첸의 머리 위로 꽂혔다.
“히익?!”
지뢰를 제대로 밟아 버린 고양이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급한 숨을 들이켰다.
도망가고 싶은 것처럼 움찔대는 몸을 한 손에 낚아챈 세라가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양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뱉었다.
“알고 있는 거 다 불어.”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