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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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숲에서 돌아온 요정이 그들을 배웅했다. 눈가가 발갛게 부어오른 얼굴로 다가온 진은 떠나는 세라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세라는 진이 정신을 잃은 사이 저주를 정화해 준 에녹에게나 감사하라고 일렀으나, 그는 고집스럽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멋대로 납치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했다. 그녀가 받아 주지 않으면 그대로 영영 고개를 박고 있을 기세였기에, 세라는 마지못해 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저주도, 과거의 과오도 전부 해결한 요정은 더없이 개운해 보였다. 둘 사이에 아직 계산이 남았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걸로 끝 아니야. 너 아직 조건 하나 남았어.”
이대로 넘어가기엔 무척 찝찝한 마무리였기에, 세라는 잊지 말고 네 몫을 청구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녀가 자진해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뭘 들어달라고 할 줄 알고?”
괜히 겁을 주는 말에 세라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누가 다 들어준대? 어차피 불가능한 거면 무시할 거니까 적당히 생각해 내.”
퉁명스럽게 상한선을 정해 주자 진이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됐다. 이 정도면 집까지 다 털린 애 벗겨 먹는 것 같은 기분을 털어 내기엔 충분했다.
드디어 작별이었다.
“간다. 또 보자.”
“……또 보자. 세라 로젠바움.”
인사는 담백했다. 길드와 이어진 문이 닫히면 한동안 보지 못하는데도,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사람처럼 헤어졌다.
미련 없이 등을 돌린 두 사람은 마지막 귀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문을 함께 넘었다. 허무할 정도로 쉬워서 돌아왔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우와악! 깜짝이야!”
“무슨 뱀이 이렇게 커…?!”
길드원들은 문을 뚫고 기어 나오는 거대한 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까망이가 너무 단기간에 미친 듯이 성장해 버리는 바람에, 눈앞의 뱀과 세라가 키우는 귀여운 아기 뱀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까망이와 세라 그리고 에녹까지 전부 돌아오자 대기하고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쓰임을 다한 문은 테두리부터 차곡차곡 접혀 사라졌다.
그 광경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팔뚝에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 형량.
그제야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세라가 얼른 옷소매를 걷어 냈다.
비록 그녀가 아닌 까망이가 해결한 일이긴 했지만, 요정의 숲을 돌아다니던 거인이 제법 컸으니 이번에야말로 크게 한탕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172,917,320.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주어진 건, 시그너스의 배신자를 처단했을 때보다 훨씬 인색한 감형이었다.
“에게……?”
자리에 멈춰 선 세라가 저도 모르게 입매를 비틀었다.
“왜 그래?”
그에 먼저 도착해 있던 길드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에녹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냥…. 돌아오는 게 생각보다 허무해서.”
어차피 그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린 세라가 자연스럽게 소매를 내려 형량을 감췄다. 그리고 은근히 불만 어린 눈으로 천장을 노려보았다.
저 하늘 어딘가에 있을 신 대신이었다.
언제는 그녀가 놀랄 정도로 팍팍 깎아 주더니. 어째 가면 갈수록 들인 노력에 비해 형량이 깎여 나가는 속도가 더뎌지고 있었다.
이건 그녀를 더 오래 부려 먹기 위한 수작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당하게 계산된 감형일까. 합리적인 의심은 전자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혼자서 끙끙 앓아 봤자 열만 받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의문을 잘라 낸 세라가 에녹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원래는 병실 가득 낙인이 찍힌 길드원들이 누워 있었는데, 지금은 빈 병상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녀를 따라 환자들이 사라진 공간을 돌아본 에녹이 곧바로 대답했다.
“일반 병실로 옮겼어. 몇 시간 뒤에는 각자 다른 시간에 깨어날 거야.”
그러고 나면 그들도 집으로 돌아가겠지.
누군가의 귀가를 언급하는 목소리가 개운했다. 세라는 가족을 되찾게 될 수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불행하지 않다니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이 영위하는 일상이 누구 덕에 지켜졌는지 영원히 모를 거라고 생각하자 아리송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길드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환자가 정신을 차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병상에서 일어난 그는 진의 말대로 자신이 지독한 독감으로 인해 입원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세라는 굳이 깨어난 환자들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저 먼 발치서 한 명씩, 한 명씩, 제자리를 찾아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길드원들이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람은 홀연히 병원을 떠났다. 한낮을 조금 넘긴 시간의 길드는 평소처럼 고즈넉하고 적당한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병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에녹을 발견한 길드원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말을 걸어왔다.
“대장…? 야밤에 뛰쳐나갔다더니 언제 돌아왔어?”
“……혼자 왔어? 요정님은?”
“차였어?”
그를 보자마자 진을 함께 찾아대던 이들은 금세 결론에 다다라 안됐다는 눈을 했다.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린 요정 때문에 안 그래도 시끄러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에녹마저 오밤중에 길드를 뛰쳐나갔으니 남겨진 길드원들 사이에서 제법 흥미로운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첫사랑을 잊지 못한 에녹이 기어코 요정에게 매달리기 위해 그녀를 쫓아갔다고 말이다. 그러고 며칠을 돌아오지 않았으니, 소문에 확신이 더해져 에녹이 요정을 되찾으러 떠났다는 말은 거의 기정사실이 된 모양이었다.
“괜찮아! 살다 보면 차일 수도 있지!”
“그동안 막 산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마음대로 단정 지은 길드원들이 위로주라며 에녹에게 술을 권했다. 에녹은 그들이 전하는 위로가 기가 막힌 듯 하-. 하고 헛웃음을 내쉬면서도 공짜 술은 마다하지 않았다. 에녹이 시원하게 잔을 꺾자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다른 길드원들이 연신 ‘괜찮아. 괜찮아’하며 위로인지 놀림인지 모를 응원을 해댔다.
“자자, 우리 세라도 목마르게 둘 순 없지!”
“어허, 방금 병상에서 일어난 환자한테 무슨 술이야?”
그중 하나가 분위기를 타 세라에게도 술잔을 권했지만, 곧 저지당했다.
“맞아. 이번 독감이 얼마나 지독했는데!”
“세라, 너는 따뜻한 차나 마셔.”
에녹이 자기도 모르는 곳에서 실연당한 것처럼, 그녀 또한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유행성 독감을 앓은 환자가 되어 있었다. 극성맞은 부모처럼 세라에게 향하는 술잔을 차단한 길드원들이 기어코 그녀의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을 고이 안겨 주었다.
“……잘 마실게요.”
독감은 개뿔 몸살도 걸린 적 없었지만, 세라는 그들이 쥐여 준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야, 이놈아! 돌아왔으면 곧장 회의나 소집할 것이지. 한가하게 술판이나 벌이고 있어?!”
그때, 떠들썩한 분위기를 보고 달려온 마커스가 있는 힘껏 에녹의 등을 후려쳤다. 술잔을 빼앗아 든 마커스가 당장 따라오라며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에녹의 손이 세라를 낚아챘다. 그리하여 마커스는 에녹을, 에녹은 세라를, 세라는 찻잔을 든 채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에녹의 집으로 끌려간 둘은 길드장 없이 진행되고 있던 길드 회의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피로가 누적된 얼굴로 앉아 있던 이들이 에녹을 발견하고는 먹잇감을 발견한 날짐승처럼 눈을 번뜩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사랑 찾아 떠난 순정남 아니야?”
“역시 순정남은 뭐가 달라도 달라.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정확하잖아.”
“그러게. 어쩜 이렇게 딱! 정확하게! 바쁘고 힘든 일 다 끝나자마자 돌아오지?”
대놓고 앞담화를 한 길드원들이 어디 입이 있으면 말해 보라며 자신들의 길드장을 주시했다. 당연하게도, 에녹은 그들의 불만을 가볍게 무시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보고나 해.”
자연스럽게 상석을 차지한 에녹이 놀고 있는 의자를 제 옆으로 바짝 끌어와 세라를 앉혔다. 그녀는 이 회의에 있어서 엄연히 불청객이었으나, 회의에 참석한 이들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 듯 회의가 재개되었다.
“로우드 주변에 남은 소형과 중형 검은 가시는 거의 다 제거했다. 다만, 그중 몇 개는 저번처럼 입장하고 나서 크기가 자라는 바람에 그냥 나왔는데-.”
“그건 내가 처리하지. 다음?”
에녹은 자리를 비운 사람답지 않게 막힘없이 안건을 해결해 나갔다. 길드가 준비하는 목표가 뚜렷해서 그런지, 대부분이 중앙 가시 토벌에 필요한 밑 준비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중앙 가시 주변의 임시 캠프는 이번 주 내로 공사가 마무리될 거야. 기드온과 공략 대원들이 짠 공략 계획이 있는데, 한번 볼래?”
“언제부터 실행할 수 있지?”
“내일 당장이라도.”
“읊어 봐.”
여러 사람의 음성이 섞인다. 빠르게 오가는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세라가 그것을 배경 삼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매일같이 보던 풍경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 새삼스러운 감상을 곱씹어 보던 세라는 자신이 이곳을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데-. 다시 생각해 와.”
“현실적으로 이게 가장 효율적이다.”
“그럴 리 없어. 다시 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가 한번 짜 보시지.”
순조롭게 흘러가는 줄 알았던 회의가 그새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또 싸우다 파투나겠네. 그렇게 생각한 세라가 그때까지 쥐고만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려 후-. 하고 표면을 식혔다.
“내가 짜면, 실행할 능력은 있나?”
“어어, 에녹. 거기까지 해. 우리 지금 바빠. 싸울 시간 없어.”
첫 모금을 삼켰다.
따끈한 액체가 세라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말리지 마라. 마커스. 여태 요정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다 온 주제에 얼마나 위대한 계획이 있을지 궁금하군.”
“야, 임마. 기드온-.”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짝지근한 맛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감각을 깨웠다.
“적어도 네가 짜 놓은 이 머저리 같은 계획보단 나을걸.”
“오-. 정말? 뭔데? 말해 봐. 대장!”
“너희까지 왜 이래? 부추기지 말고 말려야지!”
마커스 선에서 정리되는 듯 보였던 상황은 다시 급물살을 타고 흘러갔다. 곧이어 에녹이 세라는 단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을 쏟아 냈고, 기드온은 중간중간 끼어들어 그의 말에 훼방을 놓았으며, 길드원들이 시시때때로 편을 갈라 싸움을 부추겼다.
“야, 이것들아! 회의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결국 참다못한 마커스가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애써 준비한 서류가 흩날리고, 테이블이 쿵 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그보다 더 요란하게 이따위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는 덕담이 심심찮게 오갔다.
호로록-.
그 개 싸움판에서 홀로 우아하게 찻잔을 기울인 세라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 맑은 봄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우, 날씨 좋네.”
이제야 비로소, 집에 돌아온 게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