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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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이 쓰러진 직후에 몸을 일으킨 저 거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함께 몰려들던 자그마한 검은 덩어리들은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무렵 전부 사라졌지만, 이상하게 저 놈만 멀쩡한 상태였다.
분명 처음 요정의 숲에 도착했을 땐 검은 덩어리는커녕 거슬리는 티끌 하나 없던 곳이었다. 그녀가 보지 못한 곳에 숨어 있었다 하더라도, 성능이 향상된 별의 조각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소거하고 나니, 남은 결론이 하나뿐이었다.
어제의 화재가 숲의 운명을 비틀었다.
그렇다면 상황은 좀 복잡해진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시그너스가 요정의 숲에서 철수하고 있는 이 때, 또 새로운 문젯거리가 발생한 거라면 세라는 순순히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돌아가자마자 치르게 된 중앙 가시 토벌전에서 빠져야 했다.
그 토벌전에 어떻게든 한 발 얹으려고 기드온이 시키는 대로 악착같이 구른 게 모두 헛게 되어버린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골치가 아픈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별의 조각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부터 조각이 깨어질 듯 말 듯 눈가가 간질거리기는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뭔가, 아슬아슬하게 사정거리가 어긋난 느낌이랄까.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펴봐야 하나…?”
뀨우웃!
세라의 혼잣말에 대답한 건 까망이였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검은 뱀이 숲을 돌아다니는 거인을 향해 고개를 쭉 내밀고 있었다.
“왜 그래. 까망아? 너도 저 거인한테 관심 있어?”
뀨!
“가까이 갔으면 좋겠어?”
뀨! 뀨!
그녀가 묻는 말마다 착실하게 대답하며 눈을 반짝인다.
저 거인의 무엇에 이렇게 꽂힌 건지 모르겠지만, 정신없이 몰입한 보석 같은 눈동자가 거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래. 가자.”
그 모습이 귀여웠던 세라는 까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기꺼이 걸음을 옮겼다. 워낙 작게 태어나 손가락 하나로 살살 쓸어주어도 충분했던 곳이 이제는 부쩍 자라 통통해졌다. 길드에 있을 때도 야금야금 자라나기는 했지만, 이번 성장은 수상할 정도로 눈에 띄었다.
“근데 넌 대체 뭘 주워 먹고 자꾸 커지는 거니……?”
세라는 쑥쑥 자라는 까망이가 대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낯으로 턱을 살살 긁어주었다. 분명 그녀는 아무것도 안 줬는데, 자꾸 어디선가 쩝쩝거리면서 나타나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뀨우? 뀨?
제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까망이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라는 여태 찰떡같이 잘만 알아듣던 똑똑한 아이가 갑자기 모르는 척을 해대는 게 가증스럽고 앙큼하다고 생각했으나, 귀여우니 봐주기로 했다.
그 사이 어찌저찌 거인의 근처에 다다랐다.
뀨우우우-.
천둥을 닮은 울음소리에 대기가 웅웅 울렸다. 거인은 숲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중간 어귀를 맴돌고 있었다.
구워어-.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거인은 세라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정처 없이 숲을 헤매고 다녔다. 검은 덩어리들은 세라와 시선을 맞추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말이다. 여태까지와는 뭔가 다른 걸까?
아무리 바라봐도 갈라지지 않는 별의 조각에 세라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저걸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야, 너 잠깐 여기 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상대 대신, 세라가 검은 거인을 향해 다가가 출렁대는 다리를 쿡, 찌른 순간이었다.
규우우-!
돌연 뱃고동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은 검은 거인의 몸이 부풀더니 빵! 하고 터져나갔다. 하나로 뭉쳐 움직이던 몸이 조각조각나 온 숲에 흩뿌려졌다.
“뭐, 뭐야!”
후두두둑 떨어진 검은 비는 대지에 떨어져 자기들끼리 달라붙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움직이는 게 무척 징그러웠으나, 그렇게 뭉치고 나서야 비로소 세라가 아는 무언가로 바뀌었다.
동글동글하게 뭉친 덩어리 위로 반질반질한 눈이 뾱, 하고 올라붙었다.
작고 하찮은 그것은 돌돌 굴러와 관심을 달라 조르듯 그녀의 발등을 두드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쩌저적! 그동안 감질나게 갈라질 듯 말 듯 애만 태우던 별의 조각이 비로소 갈라져 운명을 비췄다.
시그너스 길드가 돌아간 뒤, 요정의 숲이 대부분 불타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 대륙에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처음엔 그 소문을 믿지 않지만, 조금씩 신뢰할만한 목격담이 쌓이면서 기정사실화 된다. 그 와중에 요정의 숲에 고대부터 숨겨둔 금은보화가 가득하다는 소문이 돌아 숲의 보물을 노린 자들이 어둠을 틈타 잠입한다.
아이고. 이런.
얼마간 운명을 읽어 내리던 세라에게 난감함이 스쳤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숲을 굴러다니는 저 수 많은 검은 덩어리들은 어제의 화재로 비틀리게 된 숲의 미래였다.
딱 봐도 수십은 되어 보이던데. 이건 또 언제 다 해치우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세라는 서둘러 다가올 재앙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요정의 숲에는 침입자들이 탐낼만한 보석 따위 없었다. 숲을 샅샅이 뒤지던 이들은 결국 숲의 수호자인 은빛의 요정과 마주치게 된다. 범행을 발각당한 이들은 갑작스러운 요정의 등장에 당황해 그에게 달려들고, 혼자 남은 요정은 안타깝게도-.
콰직!
한창 비극을 향해 가던 이야기가 중간에 뚝 끊어졌다. 그리고 으드득. 으득. 뼈와 살이 뒤틀리는 살벌한 소리가 잇따랐다.
“……?!”
쫓겨나듯 환각에서 깨어난 세라가 두 눈을 바쁘게 끔뻑거렸다. 매끈하게 붙은 균열 너머로 시야가 돌아왔다. 검은 덩어리가 올라앉았던 그녀의 발등에는 비틀린 운명 대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는 검은 뱀 한마디가 올라앉아 있었다.
“까망아……!”
경악어린 세라의 부름에도 까망이는 으적으적 입 안에 든 것을 씹어댔다. 중간 중간 뀨우거리며 울음을 섞는 모습이 꼭 맛있어서 감탄을 내뱉는 것 같았다.
꾸울꺽.
기어코 입 안에 든 것을 삼킨 까망이가 만족스럽게 혀를 날름거렸다. 하나를 잡아먹으니 입맛이 도는 지 유난히 반짝이는 눈가에 생기가 흘러넘쳤다. 세라에게 고정되어 있던 눈동자가 검은 덩어리들이 엉망으로 굴러다니는 숲으로 옮겨갔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덩어리라 그런지. 제 동료가 잡아먹히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비틀린 운명들은 까만 눈망울만 깜빡이고 있었다.
까망이는 무방비하게 굴러다니는 덩어리들의 수를 헤아리듯 빤히 들여다보다가.
츄릅.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시작이었다.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간 까망이가 바닥에 널브러진 검은 덩어리를 족족 집어 삼켰다. 과자 부스러기를 따라 움직이는 새처럼 검은 덩어리의 길을 되짚어 간 검은 뱀이 금방 세라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콰드득! 콰득! 으적으적! 으드득! 뿌득!
세라의 주변에서 운명이 산채로 잡아먹히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니, 쟤가 또 저러네! 귀여운 애완동물의 기이한 식성에 세라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까망아! 안 돼! 지지! 안 돼!”
앙상한 숲에 메아리가 쳐지도록 소리를 쳐 보았으나 결과는 세라의 패배였다. 식욕에 눈이 돌아간 까망이는 온 숲의 검은 덩어리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제 주인을 찾아 돌아왔다.
뀨우! 뀨!
그녀의 고민거리를 자신이 다 처리했다고 말하듯 자랑스러운 얼굴로.
뀨우웃! 뀨웃!
삽시간에 구렁이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아나콘다처럼 거대해진 몸을 이끌고서…….
덩치가 산만해져서 돌아온 까망이는 제가 한 일을 칭찬해달라고 조르듯 세라의 손아래에 제 머리를 들이밀었다. 몸은 자랐어도 하는 짓은 여전히 아기였다.
“대체 그걸 왜 자꾸 잡아먹는 건데. 너는…….”
그게 경악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얼결에 원하는 대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이 좋은 지 보석 같은 눈을 스르륵 감아버린다. 농담으로라도 귀엽지 않은 그르렁 소리가 뱀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너는 좋겠다. 걱정이 없어서.”
근심 없이 그저 해맑기만 한 검은 뱀을 바라보는 세라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까망이는 그녀의 동생인 에델이 죽기 전에 남긴 소중한 유산이었다. 이 수수께끼의 생명체를 왜, 무엇을 위해 남긴 것인지는 에스텔라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도 뚜렷한 실마리는 잡지 못했다.
알 수 있는 건, 동생이 죽기 직전까지 까망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는 것 뿐.
그래서 세라는 알지 못했다.
까망이가 어째서 당연하다는 듯 비틀린 운명의 검은 덩어리를 볼 수 있는지. 그 불길한 걸 잡아먹고도 어쩜 이렇게 멀쩡한지. 그것들을 삼킬 때마다 왜 무럭무럭 자라나는지.
‘에델. 너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거니?’
착잡한 눈으로 까망이를 살피던 세라는 실로 오랜만에 동생을 떠올렸다. 예전부터 기분이 복잡할 때마다, 그 애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방법도 더는 쓰지 못할 모양이었다.
이전에는 에델에 대해 생각할 때, 제 어깨에 얼굴을 묻던 어린 모습을 떠올렸으나 이제는 별의 조각을 통해 본 그 아이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던 청년의 얼굴.
차라리 심장을 꺼내버리고 싶은 것처럼 가슴께를 쥐어뜯던-.
“……?”
거기까지 떠올린 세라가 멈칫, 호흡을 끊어냈다.
과하게 몰입 했던 걸까. 죽기 직전 에델의 모습에서 낯익은 기시감이 일었다. 형체 없는 손이 그녀의 머릿속에 파고들어 어디 한 구석을 간질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대로 좀 더 생각하면 떠오를 것 같기도 하고…….
뀨우우-.
그때, 생각에 잠긴 세라의 시야 안으로 거대한 뱀이 끼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창 머리를 쓰다듬다가 멈춰버린 그녀가 의아한 눈치였다.
그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혼탁하게 어지러지던 머리가 덩달아 개운해졌다.
그래. 지금 고민해봤자 다 무슨 소용이냐.
당장의 까망이가 건강하면 됐지.
“너 내가 귀여우니까 봐주는거야. 알아?”
마지못해 미소를 지은 세라가 자꾸 아무거나 주워 먹는 뱀의 머리를 힘주어 주물러주고는 앞장서서 숲을 빠져나갔다. 이제는 너무 커버려 어깨위에 올라 앉을 수 없게 된 뱀이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녀가 거인에게 신경을 쏟는 사이, 그을린 초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어느 새 길드원들은 모두 돌아갔는지,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 있다가 왔어?”
초원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문틀에 기대어 있던 에녹은 세라를 발견하자마자 그것부터 물었다. 세라보다 먼저 진에게 도착하고 먼저 밖으로 나왔는데, 오는 길에 그녀와 마주치지 못해 내내 그녀를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숲 좀 돌아봤어.”
가볍게 대답한 세라가 엄지로 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그러나 세라의 어깨 너머에는 불탄 숲 대신 거대한 아나콘다가 되어버린 까망이만 보일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버린 뱀의 모습에 에녹이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 네 뱀. 지나치게 자라지 않았어?”
“원래 아기들은 빨리 자라는 거야.”
수상하다는 듯 캐묻는 말을 대충 흘려넘긴 세라가 아무렇지 않게 상식을 뒤틀었다.
“그래? 아기는 원래 빨리 자라는 거야?”
다행히 별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는지 에녹이 그러냐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도 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그녀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재차 되물었다.
“……그래!”
어쩐지 그 눈을 마주보기 힘들었던 세라가 고개를 팩, 옆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긴장하여 펄쩍 뛰는 맥박이 돋보이는 목덜미가 그새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곳을 유심히 쳐다보던 에녹이 봐준다는 목소리로 생색을 내었다.
그러고는 길드와 이어진 문으로 다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돌아가자. 세라.”
집으로.
녹아내릴 듯 다정한 목소리가 그녀를 조른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집’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달콤하게 들렸다. 괜히 뜸을 들이던 세라는 여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며 그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