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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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웅성, 웅성웅성.
수군수군, 수군수군.
세라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길드원들이 술렁거렸다. 딴에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는 듯했지만, 어디든 소리를 죽여도 목소리가 큰 사람은 있게 마련이었다.
저 사람이야? 세라한테 사랑한다고 했다며? 아는 사이였대? 아니. 초면이래. 성격 엄청 화끈하다. 남부 길드 사람이지? 남부 사람들이 좀 더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라더니. 진짜였네. 하늘색 머리 엄청 튄다. 잘생겼는데? 우리 세라 인기 좋네. 이름이 뭐래? 몰라. 근데, 들었어? 아까 같이 온 길드 사람들이 하는 말 들었는데, 저 남자…….
한번 물면 안 놓는대…….
“……언제까지 따라올 건가요.”
우뚝, 걸음을 멈춘 세라가 아까부터 자신을 졸졸 쫓아오고 있는 남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길드 회관에서 간단하게 환영회를 한 뒤 각자 뿔뿔이 흩어졌는데, 세라에게 냅다 사랑을 고백하던 하늘색 머리의 남자는 동료들을 따라가지 않고 피리 부는 마녀에게 홀린 어린아이처럼 세라를 따라다녔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녀의 지적에 남자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자신이 언제 이렇게까지 세라를 쫓아왔는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저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따라다닐 수가 있겠냐.
세라는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하라며 흥, 하고 그를 비웃어 주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그보다는 저 남자가 한 이상한 고백 때문에 또 구경거리가 되어 버린 게 신경이 쓰였다. 이게 흘러 흘러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알았으면 이만 갈길 가세요.”
그 뒤의 일은 상상만 해도 피곤했으므로, 세라는 남자에게 이만 꺼지라며 축객령을 내렸다. 분명 하찮은 눈으로 쳐다본 것 같은데, 남자는 세라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몸을 베베 꼬았다.
“사랑해요.”
그러고는 또 사랑을 고백한다.
그에 지켜보고 있던 길드원들이 또 한차례 크게 술렁거렸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게 다 보일 지경이었다.
하여튼,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 세라는 자신이 곤란해하는 줄 알면서도 흥미롭게 지켜보고만 있는 길드원들을 째릿, 노려보았다.
‘하지 마.’
‘……네?’
‘사랑하지 마세요.’
분명 아까 첫 고백을 받았을 때, 확실하고 단호하게 거절을 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끈질기게 구는 걸까. 정말 한번 물면 안 놓나……?
“…….”
세라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얼굴로 빤히 쳐다봤다. 다행히 남자는 자신이 거절당했었다는 사실도 잊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 죄송해요. 이것도 저도 모르게…….”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에게?”
자꾸 무의식의 세계에 자신을 맡기는 남자를 향해, 세라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만난 지 하루가 뭐야, 아직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관계에서 속삭이는 사랑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진짜로 있을까? 이게, 정말 될 거라고 생각해서 지금 제게 이러는 걸까?
이 상황의 기이함을 알아달라는 의미에서 한 질문이었건만, 그것을 대화의 시발점이라 여겼는지 남자가 쾌활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시간이 뭐가 중요하겠습니다. 유명한 고전 속 연인들도 사랑을 위해 죽음을 불사할 결심을 하기까지 2주면 충분했는데.”
“네. 근데, 걔네 결국 죽었잖아요.”
낭만적인 이야기를 시도하는 남자에게, 세라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가 말하는 연인이 등장하는 유명한 고전이라면, 세라도 읽어 보았다. 요정의 숲에 있는 도서관에서 말이다. 서로 적대 가문의 후계자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이뤄 보려 노력하지만, 결국 가문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일이 꼬여 남자가 먼저 죽고, 여자가 따라 죽는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그녀의 감상으로는 결코 낭만적일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급하게 사랑하다가, 급하게 가는 거예요.”
잔혹사였지.
세라는 남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그 이야기의 교훈을 알려 주고는 휙, 몸을 돌렸다.
“……예?”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았다.
드디어 떨쳐 냈다. 홀가분해진 세라는 곧장 제 일을 생각했다. 배가 고팠다. 오늘 점심은 뭐 먹지? 벌써 남자를 잊어버린 그녀가 심드렁하게 가게 간판을 훑다가 양고기 스테이크를 파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같은 탐색조 대원들이 굉장히 맛있는 집이라고 추천했던 게 기억났던 탓이다.
자리를 안내받고, 주문을 한 뒤, 음식을 기다리는데 세라의 맞은편에 하늘색 머리의 남자가 불쑥 들어앉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만면에 웃음을 그리고 있는 그는 아무렇지 않게 아까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급하게 사랑하다간 급하게 간다. 그 이야기를 두고 그렇게 말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아, 또 왔네.
세라는 남자를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한 게 아깝다는 듯 물 한 모금을 홀짝 마셨다.
“네. 진심인데요.”
그러니까, 그쪽도 급하게 가기 전에 포기해라. 협박이 섞인 말이었는데, 남자가 알아들었을지 의문이었다.
“그럼 얼마나 알고 지내야 급하지 않을까요?”
못 알아들었구나.
세라는 대답했다.
“300년이요.”
“아……?”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숫자에 남자가 순간적으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진담이었는데, 남자는 세라가 자신을 거절하기 위해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저는 알고 지낸 시간이 짧아서 거절하신 건가요?”
“아니요.”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남자는 자존감이 아주 높은 사람 같았다. 세라는 분명 어디에도 여지를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희망이 있다고 믿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남자의 막강함을 인정한 세라는 결국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으면 깔끔했겠다만, 차마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여 하지 못했던 그 말을.
기어코 이 말을 하게 만드는구나.
에휴, 한숨을 내쉰 세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애인 있어요.”
“하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는 아까 ‘재미있는 분이시네요.’라고 했을 때처럼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까부터 쭉 같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런 말 안 하던데요.”
그거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일찍 끝날까 봐 그런 거고. 지금쯤 다들 싸움판이라도 벌어지길 기대하고 있을걸. 세라는 차마 시그너스를 처음 방문한 손님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있다고 한다면 그게 더 문제죠. 제가 당신한테 구애하고 있다는 게 온 길드에 파다하게 퍼졌을 텐데.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당신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예요.
서슴없이 연인 사이를 이간질한 남자가 그러니 그런 애인이 있다면 얼른 버리고 저에게 오라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그 얼굴이 여태 세라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어리바리한 남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세라는 길드 회관에서부터 지금까지가 전부, 남자의 계략이었다는 걸 눈치챘다. 하, 이것 봐라? 갑자기 미친 듯이 샘솟는 난놈의 향기에 세라가 기가 막힌 헛웃음을 하, 하고 내뱉었다.
“……그럼, 이게 다 일부러-.”
“선전 포고는 화려하게 하는 편이라서.”
이제 알았냐는 듯 눈매를 접은 남자가 코를 찡긋거렸다. 여유롭고, 능글거리는 미소가 예쁘장한 얼굴에 잘 어울렸다. 적어도 세라가 보기엔, 아까의 그 수줍은 숫총각 행세 보다는 나았다. 드디어 제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달까.
철옹성 같은 철벽을 쳐 대는 세라를 앞에 두고도, 남자는 마치 두고 보라는 듯 싱글거렸다.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온몸에서 이 세상 모든 여자를 꼬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음. 이건 내가 떼어 내기엔 글렀다.
냉정하게 상황을 인지한 세라가 더 이상 말로써 남자를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대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기로 했다.
“애인 있는 거 보여 주면 가실래요?”
“정말요? 언제 와요? 이렇게 예쁜 애인을 계속 방치하는 게 누군지 저도 얼굴 한번 보고 싶은데.”
“지금 보세요.”
마침 왔으니까.
그렇게 말한 세라가 남자의 뒤쪽을 눈짓했다.
“……?”
그에 남자가 한 번쯤은 속아 주겠다는 듯 여유롭게 뒤를 돌았다가.
“……어어-.”
정말로 제 뒤에 버티고 선 남자를 보고 처음으로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한눈에 상대를 알아본 남자가 ‘당신은……?’ 이라며 알은체를 했지만, 그의 뒤에 선 이는 남자가 보이지 않는 척, 세라를 향해 말을 걸었다.
“갑자기 양고기?”
별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린 에녹이 테이블을 돌아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어느새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레스토랑 안에는 그의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에녹이 움직이는 대로, 레스토랑 안의 모든 시선들이 함께 움직였다. 방금 전까지 세라를 꼬시려 애를 쓰던 남자를 비롯해, 다른 길드원 모두 하나같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였다.
“……길드원들이 추천했던 게 떠올라서.”
세라도 하마터면 그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일 뻔했지만, 가까스로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레스토랑을 찾아온 에녹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항상 방만하게 명치까지 풀어 헤친 셔츠에 검은색 바지만 입던 사람이,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목 끝까지 단추를 꼭 채우고, 정숙한 신사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몸에 꼭 맞춘 셔츠에 넥타이, 허리를 꽉 조인 베스트로 인해 균형 있게 늘씬한 몸매가 한층 돋보였다. 고급스러운 스리피스 정장을 갖춰 입은 그는 눈이 부시다 못해 인간과 다른 어떤 존재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얘 왜 이렇게 차려입고 왔는지 아는 사람?
혼란스러운 세라가 영문을 묻듯 주변을 훑어보았으나,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여기는 그냥 스테이크보다는 립이 더 맛있는데.”
인사처럼 세라의 정수리에 입을 맞춘 에녹이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제 턱을, 다른 손으로는 세라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장난스럽게 꼬아댔다. 세라는 자꾸만 멍해지려는 얼굴에 최대한 힘을 준 채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래서 하나씩 시켰어.”
“추천한 놈이 먹을 줄 아는 놈이네.”
“음식에 관해서는 믿음직스럽지.”
“비제한테 끌려갔다 왔다며?”
“아까 잠깐. 금방 끝났어.”
“피곤하지는 않고? 오늘 힘들었을 것 같은데.”
“괜…찮지. 너, 갔던 일은 잘됐어? 찾으러 갈 물건 있다고 하더니.”
“응. 잘 찾았어.”
에녹은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세라를 향해 몸을 튼 그는 제 앞에 떡하니 앉아 있는 하늘색 머리의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맹목적인 관심과, 한결같은 무관심에 세라와 남자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크, 크흠!”
겨우 정신을 차린 남자가 크게 헛기침을 하여 자신을 피력했다.
에녹은 그제야 남자의 존재를 발견했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반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의도적으로 무시한 게 아니라 정말로 그곳에 있는 줄 모르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일행이 있었네?”
너무 칙칙해서 안 보였지 뭐야.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혼잣말을 읊조린 에녹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도도한 눈빛으로 남자를 내려다본 에녹이, 새초롬하게 첫마디를 내뱉었다.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