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06
106 네가 김하늘이냐?
“백장미랑은 무슨 관계예요?”
“···백장미요?”
“설마 모른다고 하시지는 않겠죠. 서울대 재학 중 같은 과 동기였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단지 제게 그런 질문을 하신 의도가 궁금해서 말이죠.”
불쾌한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말투가 사나워졌다. 최민서조차 눈썹을 꿈틀할 만큼 감정조절이 힘들었다.
“상당히 날카롭게 반응하시네요.”
“제 질문에 대답부터 해주시죠.”
“여기까지 와서 하늘 씨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저희 경쟁사인 백화 그룹의 손녀랑 긴 세월을 함께 하셨으니까요.”
“···백화 그룹 손녀요?”
“···설마 이것도 모르고 계셨나요?”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정보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최민서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눈빛이다.
“잠시만요. 제가 아는 그 백화 그룹 맞습니까? 이번에 ‘미래 자동차’를 제치고 국내 기업 2위로 올라선 거기요?”
“네, 맞습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대한 그룹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그 뒤를 무섭게 쫓아오는 기업이 바로 백화 그룹이다.
에너지, 화학, 통신, 반도체, 바이오, 건설 등 각종 사업에 폭넓게 발을 뻗은 기업으로. 현금 유동성은 국내 제일이라던가.
“백장미는 현 회장이 제일 아끼는 손녀입니다. 최근에는 이노베이션 쪽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는 중이고요.”
“그년 소식은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는 곧바로 선을 그었다. 조금 예의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백장미하고는 정말 손톱만큼도 연관되기 싫었으니까.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도 최민서는 처음의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말을 이었다.
“정말 모르고 계셨나요?”
“전혀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늘 씨의 군대 일정에 맞춰서 휴학까지 했다고 하던데요. 옆에 항상 붙어 다녔고요.”
“보통은 그런 사람을 스토커라고 하죠?”
“······.”
잔뜩 날이 선 대답에 최민서가 침묵을 삼켰다. 그녀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되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반드시 필요한 일인가요?”
“네.”
후우-
최민서의 대답에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백장미가 경쟁 그룹의 손녀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했다만.
‘···이건 부처가 와도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백마 탄 왕자님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나타나 공주를 구해낸 용사가, 알고 보니 적국의 후계자와 함께 전장을 뒹굴던 놈이라.
심지어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들을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내니, 가족들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밖에.
정작 당사자인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지만, 원래 내 인생에는 순탄한 날이 없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지.’
강바다를 만난 이후부터 수상할 정도로 좋은 일만 일어났으니까. 설마하니 이런 문제로 발목이 잡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 질문의 의도가 나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닌, 돕기 위함이 분명하다는 것 정도.
아마 나와 백장미의 관계도 대충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앞서 ‘합격’이라고 말하지도 않았겠지.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어디서부터 설명드려야 할지 고민돼서요. 잠시 생각 정리 좀 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허구한 날 쌈박질만 하다가 뒤늦게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던 그때를.
“납득이 되실 만큼 설명하려면 제가 경영학과에 들어가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꽤 긴 이야기가 될 겁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렇다면야.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전 고등학교를 중간에 자퇴했습니다. 말이 자퇴지 사실상 권고 퇴학이나 다름없었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듣고 있다는 듯 최민서가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는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나는 유명인사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쌓아온 악명이 드높았기 때문이다.
– 쟤가 김하늘이야?
– 별명이 하남의 미친개라며.
– 맞아. 시비 거는 일진의 뒤통수를 잡아서 교실 유리창을 전부 박살 내 버렸대. 들어보니까 소년원도 여러 번 다녀왔다던데?
반 배정이 되자마자 자신을 보며 숙덕거리는 아이들. 지겹도록 익숙한 일이었기에 여느 때처럼 창가 뒷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악명이 높아서 딱 하나 좋은 점은 섣불리 건드리는 놈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선생님들조차 대놓고 쉬쉬하는 판국이었으니.
허나 당시의 내가 한 가지 오판한 것이 있다면,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을 섣불리 믿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 네가 김하늘이냐?
– ······.
– 야, 심심한데 네 손목에 칼자국이나 한번 보여줘라. 자살하려고 칼침을 세 번이나 놨다면서. 근데 왜 아직도 살아있냐?
–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 이 시발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쾅-! 쿠당탕탕-!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도 안 나는 까까머리가 내 책상을 걷어찼고, 이후로는 중학교 때와 별다를 것도 없었다.
– 1반에서 싸움 났다!
– 미친, 첫날부터!? 누군데?
– 서한중 통이랑 하남의 미친개야!
까까머리 녀석이 나를 죽여놓겠다며 있는 대로 허세를 부리며 걸어온 탓에, 구경하러 온 아이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늘 하던 대로 했다.
– ···와, 지린다.
– ···저래서 미친개구나.
– ···그 소문이 전부 사실이었다고!?
스윽-
주변을 훑어보자 다들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내 주변에는 까까머리를 포함한 다섯 명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으니까.
– 비켜! 비키라고!
– 안 나오면 전부 벌점이다!
– 어떤 새끼들이 첫날부터 쌈박질이야!?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학주와 다른 체육계 선생님들도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움찔하며 물러설 정도였다.
이후로는 뻔한 레퍼토리의 반복. 다굴에 선빵까지 치고도 발린 주제에 쪽팔리지도 않은지 부모한테 쪼르르 달려가 이르는 새끼들.
– 선생님, 저런 양아치는 당장 퇴학시켜야죠! 고민할 게 따로 있지. 우리 착한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 지랄하네. 병신들.
– 뭐, 뭐!? 이 새끼가 어른한테 싸가지···.
– 꼭 싸가지 운운하는 놈들이 제일 개념이 없더라고. 지 아들이 깡패처럼 몰려다니면서 애들한테 삥 뜯는 건 알고 있나 몰라?
– 너, 너, 으윽···!
– 어머님! 구, 구급차 불러!
너는 내가 반드시 콩밥을 먹이겠다는 둥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아무 탈 없이 풀려났다.
애초에 그놈들의 평소 행실이 워낙 안 좋기도 했고, 우습게도 학교 선생님들이나 동년배들은 나를 좋아했으니까.
내가 있으면 일진들이 다른 애들도 못 괴롭히고 말도 잘 듣는다고. 그렇게 쌍방폭행으로 대충 넘어간 줄로만 알았다.
– 죄송합니다.
– 아들 교육 좀 똑바로 하세요.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그것도 우리 부모님이 거액의 합의금과 함께 고개를 숙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부모님이 나 몰래 뒤에서 합의를 보셨다는 걸. 덕분에 지금껏 내가 멀쩡히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 대가는 합의금을 버티지 못하고 기울어진 집안과 그 연놈들에게 싹싹 비느라 닳고 닳아버린 부모님의 무릎이었다.
“힘드셨겠네요.”
“고생은 저희 부모님이 하셨죠. 저는 그냥 힘만 센 바보였으니까요. 아무튼 이후에는 맘 잡고 제대로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근데 ‘그 사건’이 터져버린 겁니다.”
“···그 사건이요?”
“놈들이 제 동생을 건드렸거든요.”
나에게 직접 해를 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이놈들이 내 동생인 김구름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 영향으로 상당히 삐뚤어져 있던 김구름은 별 의심도 없이 놈들의 꼬임에 넘어갔고, 제 발로 아지트까지 걸어 들어갔다.
“메시지로 제 동생의 사진을 보내면서 인근의 술집으로 오라더군요. 혼자 와서 무릎을 꿇으면 동생은 얌전히 보내주겠다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뭐, 늘 하던 대로 했죠.”
동네 양아치를 전부 긁어모았는지 엄청난 숫자의 일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는 어떻게든 그 안에서 동생을 구출해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요?”
“옆 가게에 깡패들이 있었거든요.”
“네?”
내 과거가 제법 흥미로웠는지 여태껏 맞장구만 치던 최민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걔들이 주소를 잘못 찍어줬더라고요. 다짜고짜 문 부수고 들어갔더니 정장 입은 깡패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일단 전부 때려눕혔죠.”
당시에는 눈이 돌아가서 조폭 놀이하는 일진인 줄로만 알았다. 이놈들이 정장까지 빼입고 아주 작정했구나 싶었는데.
“어떻게든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니까 의자에 웬 여자애가 묶여있더라고요. 얼굴에 검은 봉지까지 씌어놓고.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당연히 제 동생인 줄 알고 일단 업고 나왔는데.”
“···나왔는데?”
“골목에 내려놓고 보니까 생판 모르는 얼굴인 겁니다. 그제서야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제가 속았구나 싶더라고요.”
그때의 좌절감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김구름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내가 너무 안일하게 행동한 게 아닐까 끝없이 후회했다.
체념하고 놈들에게 전화를 걸려던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들의 담배 심부름을 하러 나온 까까머리였다.
“···그 이후로는요?”
완전히 몰입했는지 나를 재촉하는 최민서.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만큼 이야기가 재밌어서 그러겠거니 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데리고 나온 여자애는 의식이 없어서 일단 골목 구석에 잘 숨겨두고, 사진이랑 위치 찍어서 경찰한테 신고했습니다.”
“···그랬군요.”
“네네. 이후에 숨 좀 가다듬고 다시 쳐들어가려는데, 소식을 들었는지 저 멀리서 다른 깡패놈들이 몰려오더라고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나도 인간인지라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으니까. 이대로 얌전히 경찰을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마침 눈앞에 쓸만한 병사들이 잔뜩 생겼으니.
“사자성어로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하죠. 튀어 나가서 대충 어그로를 끈 다음, 그대로 까까머리가 나왔던 건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럼···.”
“제 뒤로 눈이 시뻘게진 깡패들이 뛰어들어왔죠. 이후로는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쁜 틈을 타서 동생을 끌고 나왔고요.”
“으음···.”
사건이 워낙 커져서 높으신 분들 귀까지 들어갔고, 나는 일진들이 보낸 협박 문자와 녹음 기록 등으로 어떻게든 정상참작을 받았다.
허나 뻔뻔하게 학교를 다니는 것은 무리였기에 반쯤 강제로 자퇴를 했고. 사건의 충격이 크셨는지 부모님께서 차례로 쓰러지셨다.
‘···다시 생각해도 지은 죄가 크구나.’
이후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비와 치료비를 보태다가,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부모님께서 그래도 대학은 다녀오라고 사정하셨다.
도무지 거절할 염치가 없던 나는 정말 독하게 공부했고, 결과적으로 검정고시를 패스한 후 서울대에 최종합격했다.
“그러고 나니까 다들 왜 그렇게 공부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부잣집에서 과외 좀 하면 다른 알바의 몇 배가···.”
“하늘 씨. 잠시만요.”
앞선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탓일까, 최민서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를 보며 아차 싶었다.
고등학교 파트는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최민서가 워낙 맞장구를 잘 쳐줘서 저도 모르게 전부 털어놓고 말았다.
그간 어디서도 자랑할 수 없던 개인적인 무용담인지라, 어린애처럼 신이 난 탓이다.
“죄송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백장미가 등장합니다. 입학 전에 저희 학과에서 OT를 한다고···.”
“하늘 씨!”
최민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저렇게 높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인지라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멍하니 있자, 최민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백장미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듣죠. 그보다 그때 하늘 씨가 구해준 여학생 이름이 뭔지 기억하시나요?”
“누구요?”
“국제 마피···. 아니, 그 깡패들이 납치했던 여자애 말이에요. 하늘 씨가 동생으로 착각해서 데리고 나왔다던.”
“음?”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 건가 싶었으나, 일단 형수님 말에 성실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허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었으니까.
“잘 모르겠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복 비스무리한 걸 입고 있던 것 같은데, 워낙 경황이 없어서 이름표까지는 못 봤거든요.”
“얼굴은요?”
“으음. 꽤 험한 꼴을 당했는지 얼굴이 피랑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서···. 하필 또 그날 비가 무지막지하게 내렸거든요. 제 동생이 아니라는 것만 간신히 확인했습니다.”
“···그랬군요. 이제야 전부 이해가 되네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중얼거리는 최민서. 이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던 그때, 문득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풀썩-
고개를 돌려보니 문밖에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강바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강산은 입을 떡 벌린 채로 이쪽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