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14
114 우리 장미 왔구나?
약간 어두운 분위기가 감도는 방안.
내부에는 수십 대의 컴퓨터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빈자리 하나 없이 빼곡히 채워앉은 모두가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늘이가 전화를 안 받는데?”
“차단당한 거 아녀?”
“섭섭한 소리를! 내가 걔랑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 그럼 박 씨가 전화 걸어보든가. 오늘 진짜 중요한 싸움인 거 알잖아.”
“알겠어. 잠깐 기다려 봐.”
뚜르르-
문영철의 성화에 마지 못해 전화기를 드는 박종원. 허나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김하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거봐. 네 것도 안 받지?”
“어이구, 아주 그냥 좋단다. 그보다 얘가 전화 안 받는 일은 진짜 드문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그러게 내가 미리 연락 넣어놓자고 했잖아. 하늘이 요즘 한창 바쁘다면서 괜히 일거리 주지 말자고 그렇게 말리더니.”
“너희도 전부 동의했잖아!”
“커흠···.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아저씨들, 그만 떠들고 게임에 집중해요! 지금 적대세력 들어오는 거 안 보여요? 이번에도 막타 뺏기면 손실이 얼만데!”
웬 젊은 여성의 샤우팅에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모두가 헛기침을 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광겜 시절 공대원들이었던 자들.
나이와 성별, 신분을 막론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다들 십 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라 친구처럼 지냈다.
“그렇게 맨날 김하늘만 찾으니까 실력이 안 느는 거 아니에요! 애초에 걔는 이 게임 하지도 않는데, 언제까지 의지만 할 거예요?”
“제일 먼저 제안한 건 너잖니. 장미야.”
“······.”
날카로운 지적에 백장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재밌다는 듯 껄껄 웃어댔다.
“···시끄러워요! 당장 김하늘 없어도 평균은 우리가 훨씬 우세합니다. 제가 진두지휘할 테니까 지금부터 지방 방송 끄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방금 누구예요!?”
낄낄-!
이어진 백장미의 한숨은 아재들의 웃음소리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아무래도 평균연령이 높은 편이라 대부분은 그녀를 딸처럼 여겼기 때문.
백장미 본인도 그걸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승부욕에 불타오를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우리 장미가 불이 제대로 붙었구만.”
“저번에 하늘이가 대활약을 했으니 말이야. 젊어서 그런지 승부욕이 넘친다니까. 허허,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둘이 결혼했으면 참 재밌었을 텐데.”
“야, 인마! 말조심···.”
뚝-
어디선가 이성의 끈이 뚝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떠들썩했던 방이 한순간 물에 잠긴 듯 고요해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도 아니야.”
“박주부 목소리 아니었나?”
“이 자식이 어디서 생사람을 잡으려고!?”
다급하게 자신이 아니라고 어필하는 사람들. 대부분 사회생활에 이골이 난 이들이라, 눈치와 정치 싸움에서는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내가 듣기에는 분명···.”
“그만.”
백장미의 말과 함께 모두의 말이 뚝 그쳤다. 숨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해진 헤드셋 속에서 그녀가 나지막이 선언했다.
“제발 저랑 김하늘을 그런 식으로 엮지 좀 마세요. 걔는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잖아요. 저도 내년이면 결혼하고요.”
하아-
백장미는 지겹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받아온 오해.
‘···이제 화내는 것도 지겨워.’
놈은 자신의 원수다.
김하늘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가능하면 속이 풀릴 때까지 패주고 싶을 정도.
‘그 건방진 자식을 대체 누가 좋아한다고!’
김하늘과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 OT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이 바로 질긴 악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선배들이 짜온 스케줄을 따라 각종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김하늘과 자신은 각각 청팀과 백팀의 조장을 맡게 되었다.
– 먼저 조장들이 나와서 순서를 정하자.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간단한 게임으로 진행할게. 우리 조장님들의 실력 좀 보자고.
– 어떤 게임이죠?
– 혹시 이라고 들어봤어?
처음 게임 종목을 들었을 때 백장미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이미 알고 있는 게임일뿐더러, 두뇌를 적극 활용하는 게임이었기 때문.
대충 눈으로만 봐도 자신이 김하늘보다 선천적인 신체 조건이 훨씬 부족했기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 처음 듣습니다.
– 그래? 그럼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해줄게. 9장의 카드 중 속성이 모두 같거나, 다른 조건을 충족시키는 그림 세 장을 찾아내는 게임이야.
– 모양, 색깔, 배경으로 구분하는 건가요?
– 오, 우리 역시 우리 후배님. 이해가 빨라서 좋네. 그림은 총 27장이야. 먼저 모양·배경·색깔이 모두 다르거나 같은 세 장을 찾아 ‘합’을 외치고. 만약 합이 없다고 판단 되면 그때 ‘결’을 외치면 돼.
– 그 외 다른 규칙은요?
– 제한시간은 각 10초. 시간이 넘어가거나 틀리면 상대에게 기회가 넘어가. 참고로 합은 1점이고. 결은 3점이야. 이해했니?
– 네. 대충은요.
백장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쟁쟁한 천재들 사이에서도 승률이 높은 그녀인데, 하물며 생판 초보자가 상대라면 당연히 압승하리라고 판단했다.
– 합.
– 합이요.
– 결입니다.
허나 그 예상은 1라운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김하늘은 처음 하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수한 실력을 보여줬고, 방심하고 있던 백장미는 선수를 뺏긴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 와, 미쳤다.
– 두 사람 다 장난 아닌데?
– 아니, 김하늘이 전반적으로 우세해.
– 응? 지금 좀 막힌 거 아냐?
두 사람의 공방은 치열하게 이어졌고, 이에 몰입한 관중들은 OT라는 사실마저 잊고 저마다의 추측을 꺼내놓기 바빴다.
– 아니, 더 멀리 봐야 해. 이 게임은 결국 마지막에 ‘결’을 차지하는 사람이 유리해지니까. 김하늘은 지금 일부러 턴을 넘기는 거야.
– 저게 전부 심리전이라고?
– 그래, 과연 수석 장학생답네.
– 쟤가 수석이었어!?
으득-!
간혹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백장미가 이를 갈았다. 스스로도 점점 김하늘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항상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얘가 수석이라고!?’
그녀는 추후 그룹을 물려받기 위해 경영학과로 하향 지원을 했다.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수석일 줄 알았으나 어이없게도 차석을 받았다.
감히 자신을 제친 녀석이 누구인가 궁금했는데 설마 눈앞의 이놈이었을 줄이야. 심지어 또다시 패배할 위기라니?
‘···절대 그렇게는 안 돼!’
승부욕에 불타오른 백장미는 모든 집중력을 발휘해 김하늘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으나, 결과적으로는 패배하고 말았다.
– 백장미도 대단하지만 김하늘은 진짜 괴물이네. 오늘 처음 해보는 게임이라더니, 저런 걸 두고 천재라고 하는구나.
– 가서 김하늘한테 말이나 걸어볼까?
– 과대는 김하늘이···.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시니컬하게 무대를 내려가는 김하늘.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 모습에 백장미는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고, 다음에는 꼭 그를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모든 수업이 개강한 이후 곧바로 김하늘을 찾아간 백장미.
– 야, 김하늘!
– 누구세요?
– ···뭐?
놀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른다는 듯한 반응에 그만 당황해버린 백장미. 그런 그녀를 위아래로 쓱 훑어본 김하늘은 곧장 등을 돌렸다.
– 할 말 없으면 갑니다.
– 자, 잠깐···!
김하늘은 말릴 새도 없이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달리기는 또 어찌나 빠른지 도무지 쫓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놓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엄청난 수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
– 김하늘을 모르면 간첩이지.
– 과외를 하루에 세 개씩 뛴대.
– 새벽에는 바텐더도 한다던데?
어딜 가든 김하늘이 알바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엄청난 일정이었다. 그를 보며 백장미는 헛웃음을 쳤다.
‘다음 수석은 내 차지네.’
김하늘이 계속 승부를 회피(?)하고 있으나, 이것만큼은 그도 어쩔 수 없으리라. 어쨌거나 그는 장학금이 필요한 모양이니까.
건너 듣는 것만 해도 아르바이트에 투자하는 시간이 하루의 절반 이상인데, 공부에 올인한 자신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분명 그랬을 텐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 너 그 이야기 들었어?
– 김하늘이 이번에도 수석이라고?
– 뭐야, 이미 알고 있었네.
–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성적표에 찍힌 ‘2’라는 숫자를 백장미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고, 분명 자신이 모르는 모종의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 이후 백장미는 시종일관 김하늘을 따라다니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 비결이 뭐야?
–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니까.
–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거든?
–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네 눈에는 지금 내가 대걸레 들고 새빠지게 청소하는 거 안 보이냐? 발이나 치워.
– ···내가 반드시 알아낼 거야.
– 귀찮게 하지 말고 제발 꺼져 좀.
허나 아무리 따라다녀도 특별한 비밀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김하늘의 말도 안 되는 일과에 기가 질릴 정도였으니.
– 또 왔냐? 이거 영업 방해···.
– 오, 우리 장미 왔구나?
– 안녕하세요. 사장님!
– 그래그래. 하늘아,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된 장미다. 둘이 아는 사이라며? 우리 가게 에이스인 네가 일 좀 가르쳐 주고.
– 그게 무슨···.
– 잘 부탁해요? 선. 배. 님.
사장님이 사라지자마자 김하늘은 전에 없이 사나운 눈으로 백장미를 벽까지 몰아붙였다.
그녀조차 말문이 막힐 정도로 사나운 기세. 허나 백장미는 거기서 굴하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평생 패배감에 젖어 살 테니까.
– 이게 대체 무슨 개 짓거리야?
– 난 꼭 너를 이기고 말 거야.
–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너희 집 돈 많다며.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여기 한 달 월급보다 비쌀 텐데. 너 지금 나 놀리냐?
– 그런 거 아니야.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백장미는 도망치고 싶은 본능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말했다.
– 너랑 같은 조건이 아니면 안 돼. 가정환경 다 떼고 온전한 내 힘만으로 너를 꼭 이기고 말거야. 내가 그렇게 정했어.
– 뭐 이런 미친년이···.
– 내 월급을 전부 너한테 줄게.
– 어?
예상치 못한 말에 김하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를 보며 처음으로 여유를 되찾은 백장미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네 말대로 우리 집안에 돈 많아. 근데 그 돈으로 네 시간을 사려고 하면 안 받을 거 뻔히 보여서 나도 알바 시작한 거야.
– ······.
– 대신 넌 진심을 다해 나를 가르쳐. 공부든 뭐든 언젠가 내가 널 이길 수 있도록. 월급은 과외비 대신이라고 생각해.
– 너 진짜 또라이냐?
–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
– ···나중에 딴소리하면 진짜 뒤진다.
– 원하면 계약서라도 써줄게.
김하늘은 정말로 계약서를 요구했고,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백장미는 그날 바로 지장을 찍었다.
이후 시작된 두 사람의 이상한 동행. 그를 본 사람들은 제멋대로 자신들을 커플이라 오해했지만, 그런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김하늘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라이벌이자, 스승, 동시에 원수였으니까. 피부가 살짝 닿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렇게 수년이 흐르고.
다시 지금에 이르러.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김하늘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이기에, 그만큼 녀석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 또한 명확하게 알고 있다.
허나 그가 게임을 그만둔 이후, 자연스럽게 공대를 물려받아 이 자리까지 올려놓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그것이 결코 운이 아니었음을.
이 자리에서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리라.
“장미야, 물 들어온다!”
“오늘도 잘 부탁해. 공주님!”
“놈들을 아주 박살 내버리자고!”
십여 년간 옆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공대원들이 그녀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들은 김하늘만큼이나 백장미의 능력을 믿었고, 그렇기에 누구 하나 군소리 없이 그녀의 지휘를 따르는 것이었으니.
“모두 전투 준비!”
“오우!”
반지하의 제왕 공대원들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물러설 수 없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저희는 5분 후 돌입합니다.”
“···그럼 유리한 지형을 뺏길 텐데요?”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라도 당연히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을 믿기는 힘들겠지만, 오늘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싶으시다면 지금은 제 말을 따라주세요. 제임스 씨.”
“제 이름은 어떻게···.”
“그건 나중에 나랑 따로 이야기하자고. 일단 오늘은 이 친구 말대로 해보자. 실력은 내가 보증할 테니까.”
“···대장님이 그러시다면야.”
씨익-
강산은 마우스를 잡은 김하늘을 보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집중했는지 옆을 돌아보지도 않는 그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우리 매제 실력 좀 볼까?’
강산은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광겜이 푹 빠져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
이에 강산은 헤드셋을 고쳐 쓰며 힘차게 마우스를 잡았다.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뜰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